충청남도 108

하평리 역사

신암면 하평리는 삽교천으로 잘려 있다. 한 쪽은 엉뚱하게 내 건너 당진 땅에 붙어 있다. 삽교천과 무한천 합류 지점은 조선 후기 당시 덕산군과 천안현의 월경지였다. 지금의 예산 신암면 지역은 천안현 신종면이었고, 아산 선장면 지역은 천안현 덕흥면이었으며 당진 합덕 지역은 덕산군 비방곶면이었다. 하평리는 신종면의 북쪽 끝에 있던 마을로 삽교천과 무한천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 그런데 일제가 단행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삽교천 건너 당진쪽 땅이 예산군 하평리에 속하게 되었다. 유로 변화가 자주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때 정해진 경계가 오늘날까지 크게 바뀌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일제강점기 하평리의 경계는 당진쪽으로 삽교천 너머에 있다. 지형도를 보면 경계선이 구하도를 따라 정해졌..

충청남도/예산 2021.04.30

고덕면 상장리 여주이씨 종족촌락

▣ 상장리 여주이씨와 내포 상장리는 내포성의 상징이 될만하다. 여주이씨는 경기도(안산 성포리)에 연고를 두었던 가문이었으므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내포와 인연을 맺기가 쉬웠다. 정착한 이후에도 계속 교류했었다는 증거는 안산의 성호 이익과 상장리 조카들 사이에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는 점이다. 성포리도 포구였으므로 더욱 교류에 유리했다. 만선의 기쁨을 노래하는 소리가 커서 성포리라고 했다고 전하는 매우 번성한 포구였다. 이익이 주로 머물던 곳은 성포리 옆의 첨성리라는 마을이었는데 같은 이름인 광주 첨성리에는 이익의 묘가 있다. ▣ 여주이씨(驪州李氏) 여주이씨의 시조는 고려 예종 때의 인물로 추정되는 이인덕(李仁德)[?~?]이다. 고려시대 중엽부터 경기도 여주에 정착하여 살았기 때문에 여주를 본관(本貫)으로 한다..

충청남도/예산 2021.04.30

당진(唐津): 內浦에서 철강도시로

▣ 2021.3.28(일), 결성향교 2021 洪州人文輿地圖 답사 ▣ 답사 주제 ① 수도권에 인접한 해안도시: 당진(통일신라)-견훤과 복지겸(후삼국)-사대부 가거지(조선)-천주교 요람(조선후기)-근대교육(일제강점기)-인천과 교류(1970년대까지)-제철공업과 화력발전소(1990년대 이후)-수도권과 인접한 공업도시․대중국 항만도시 ② 제철 공업으로 성장한 도시: 한보철강(1995), 현대제철(2004년 한보철강 인수)과 관련 산업, 화력발전소(1999년) ③ 조선시대 이후 근기권: 능성구씨 종족촌락, 천주교 경관, 근대 교육 운동, 1970년대까지 경인지역과 교류 ④ 관방유적: 면천읍성, *면천복씨 복지겸 ⑤ 관광: 왜목마을, 삽교호 유원지 ⑥ 기타: 간척지(석문간척지, 대호간척지, 예당평야) ▣ 답사 경로..

오석산과 화암사

▣ 화강암 잔구(殘丘) 오석산(용산)은 가장 높은 곳이 93.9m에 불과한 낮은 산이다. 차령산지에서 갈라진 지맥이 마지막 끝을 맺는 지점이어서 해안에 가깝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 일대가 해안(아산만)에서 10km 이상 떨어져 있지만 이 일대에서 해안에 이르는 대부분의 지역이 신생대 제4기 마지막 빙하기 이후에 만들어진 충적지로 충적되기 이전에는 모두 바다였다. 또한 중생대 백악기 이후 오랜 침식으로 평탄화된 지형이다. 이 일대는 모두 백악기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심성암인 화강암이 지표에 드러나 있다는 것은 오랜 시간 침식을 받았다는 뜻이다. 예당평야 일대가 모두 중생대 화강암(쥬라기~백악기) 지대인데 특이하게 화암사 일대는 주변과는 약간 다른 화강암이 분포한다. 미문상(微文狀, granophyri..

충청남도/예산 2020.11.19

삽교읍 이리: 한산이씨 종족촌락

▣ 답사 일정09:00 출발(홍주문화원) – 09:30 목은 영당(삽교읍 이리) – 삽교천 제방 따라 하류로 이동- 10:30 구만포(고덕면 구만리) – 11:00 신리성지(당진시 합덕읍 신리) – 12:00 하평포구(신암면 하평리) – 12:30 여사울 성지(신암면 신종리) - 13:30 점심(신례원) - 15:00 영산신씨 종족촌락(신암면 오산리) – 15:30 화암사(신암면 용궁리) - 16:30 마무리(화암사)▣ 목은 이색 영당(影堂)​​* 삽교읍 이리 419-1(다락로 103-10)◆ 영당 내력​  1520년 5대손 좌의정 이유청(李惟淸, 목은의 2남 이종학 후손)이 화상에게 2본을 모사하토록 하여 하나는 본인이 봉안하고, 하나는 4대손 한원군 이장윤(韓原君 李長潤, 목은의 3남 이종선 후손, ..

충청남도/예산 2020.11.18

신암면 오산리: 근기권 종족촌락의 전형

▣ 신암면의 지리적 특징 ​ 예산 신암면 일대도 하천의 합류지점 안쪽에 발달한 구릉지대로 삽교읍 이리와 지리적 조건이 아주 비슷하다. 하지만 신암면은 삽교천 하류 지역으로 하구와 가까워서 배가 드나들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리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곳은 삽교천과 무한천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금북정맥의 백월산에서 갈라진 산줄기가 오서산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려 봉수산을 거쳐 오가면 일대를 지나 신암면 신종리 일대에서 끝을 맺는다. 이 산줄기의 끝 부분(용궁리, 종경리, 오산리 등)에는 경주김씨 김정희 가문을 비롯하여 순흥안씨, 신천강씨, 광산김씨, 영산신씨 등 유력한 가문이 세거하였다. 이들 가문들이 입향한 이유는 여러가지지만 공통적으로 한성, 또는 경기도에 연고를 두고 있었던 가문으로 양쪽을..

충청남도/예산 2020.11.18

회니시비(懷尼是非)와 노소 분당

우암 송시열과 명재 윤증 사이에 벌어진 논쟁을 말한다. 송시열은 회덕(懷德)에 살았고 윤증은 니산(尼山)에 살았기 때문에 첫 글자를 따서 '懷尼'라는 이름이 붙었다. 숭명 의리론과 주자 무오류설을 추종했던 송시열을 윤증이 비판하면서 논쟁이 촉발되었고 노론과 소론이 분당되는 원인이 되었다. ① 윤선거(윤증의 아버지, 1610~1669)와 송시열(1607~1689)은 김집에게 사사한 동문이다. 그런데 윤선거는 윤휴(1617~1680)와 교류하였는데 남인이었던 윤휴와 교류하는 윤선거에게 송시열이 여러 차례 절교할 것을 권고하였으나 윤선거가 이를 거절하였다.  ② 이에 송시열은 윤선거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살아나온 사실을 비난하였다. ③ 윤선거가 죽자(1669년(현종 10)) 윤증은 스승인 송시열에게 여러 ..

충청남도/논산 2020.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