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부여 7

계획 도시 사비

▣ 오랫동안 준비한 도시 사비 웅진에 도읍한 뒤 백제는 세 명의 왕이 잇달아 살해, 또는 정치적 변란을 당하는 혼란기를 겪는다. 문주왕은 천도한지 3년만에 웅진 호족 해구에게 살해를 당했고, 해씨와 대립관계에 있던 진씨가에 의해 옹립된 삼근왕은 즉위 3년만에 사망한다. 13세 나이에 즉위했으므로 자연사했을 가능성은 낮다. 그 뒤를 이은 동성왕은 비교적 집권 기간이 길었지만 끝내 호족 백가에게 살해를 당했다. 이미 천도가 예정되어 있던 것과 다름이 없었다. 1달만에 이루어진 웅진 천도와는 달리 사비 천도는 오랫 동안 계획적,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동성왕은 사비로 자주 사냥을 나가 정황을 살피고 가림성(임천)을 세웠다. 그는 자신이 세운 가림성에 측근 백가를 성주로 임명했다가 그에게 살해를 당하는 역설을 ..

충청남도/부여 2022.09.30

백마강 일대의 지형과 역사

▣ 규암진 일대 공격사면과 포인트바 ▶ 공격 사면에 드러난 바위 자온대 공주 곰나루에서 수북정까지 약 30km 구간에서 금강은 작은 굴곡은 있지만 대체로 직선상으로 흐른다. 이는 구조선을 반영한 흐름으로 한반도의 전형적인 구조선 방향인 북동-남서 방향이다. 부여읍을 감싸고 흐르는 백마강에 이르면 맨 처음 부소산을 만나는데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인 부소산이 흐름을 방해하여 약간 서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때 공격 사면에 해당하는 부소산 북쪽 사면이 침식되어 낙화암으로 대표되는 암벽이 만들어졌다. 이어 백제교에 이르면 거의 반대 방향인 동남동으로 크게 방향을 튼다. 이곳에도 역시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가 자리를 잡고 있다. 자온대를 필두로 수북정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암반이다. 자온대 일대의 암반도 낙화암 일대와..

충청남도/부여 2022.09.26

자연지리: 지질구조와 지형

▣ 지질구조 한반도의 중부를 북동-남서 방향으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화강암 지역은 한반도에서 가장 큰 화강암 분포지역이다. 동쪽의 오대산에서 출발하여 여주․이천 너른 들을 이룬 뒤 둘로 갈라져서 북쪽 줄기는 진천분지-천안-아산-예당평야-가야산-태안에 이르고, 다른 한 줄기는 청주-대전-논산을 거쳐 김제․부안 호남평야를 지나 서해안의 영광․함평에서 끝이 난다. 부여는 이 화강암 지대의 서쪽에 위치한다. 부여읍 일대가 화강암 지대의 중심부이며 동쪽으로 석성면에 이른다. 부여읍 부근의 금강은 이 화강암 지대의 대략적인 경계를 이룬다. 금강 건너편에는 선캄브리아기 변성암(화강편마암)이 분포한다. 이 변성암지대는 북서쪽으로 규암면, 은산면으로 지나 청양군으로 이어져 칠갑산을 중심으로 하는 충남의 알프스를 이룬다. ..

충청남도/부여 2022.09.26

사비 천도, 백제 중흥을 위한 선택

▣ 웅진 천도: 백제의 쇠락, 그러나 왕조의 멸망을 막은 궁여'비'책 한강 유역을 장악하고 5백여 년 굳건한 역사를 지켰던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412-491)의 침입으로 위례성이 함락되면서 역사의 대전환을 겪게 된다. 493년간(BC18~475)의 한성백제 시대가 막을 내리고 도읍지를 웅진으로 옮긴 것이다. 왕(개로왕(455-475))이 살해되었으므로 사실상 왕조가 막을 내릴 큰 위기였으나 태자(부여문주)가 몸을 피해 대통을 이음으로써 왕조의 멀망은 막을 수 있었다. 웅진 천도는 백제의 쇠락을 의미하지만 한편으로는 왕조의 멸망을 막은 한 수이기도 했다. '신의 한 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후의 짧지 않은 백제 역사를 생각하면 궁여지책으로 평가절하 할 수만은 없다. 훗날 의자왕 이후 백제부흥운동 과정과..

충청남도/부여 2022.09.21

부여 답사: 백제시대 사비성과 자연환경

▣ 답사 일: 2022.10.1(토) ▣ 일정 단구면(신동엽시비/군수리사지) 10:00 - 대왕포(大王(旺)浦) 10:30 - 궁남지와 왕포천 합류점(왕포천 배후습지) 11:00 - 궁남지(합류점에서 궁남지까지 약 300m) 11:30 - 부여나성 12:20 - 점심(규암면 나복리) 13:00 - 낙화암·고란사 관망점(백마강 건너편/규암면 신리77) 14:30 - 수북정(水北亭) 15:00 - 규암진(窺巖津) 15:20 - 마무리 16:00 ▣ 답사 주제 및 답사지 ▶ 백마강 일대 지형과 취락 발달: 신동엽 시비, 군수리 절터 일대 하안단구(부여읍 동남리/군수리) -일정 / 하안단구 취락 / 천도 이유 / 사비 시기 불교 -답사지 지도 / 지형과 퇴적구조 ▶ 사비의 남쪽 관문 대왕포 -금강 감조구간 / ..

충청남도/부여 2022.09.19

역사지리: 고지도와 고문서로 보는 부여

■ 이름의 기원: 夫餘國에서 내려온 백제의 왕족 扶餘는 지명의 기원이 夫餘國에 있다. 즉, 백제를 세운 온조의 아버지가 부여국에서 내려온 주몽이다. 백제의 성왕이 수도를 공주에서 부여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南扶餘)로 바꾼 것은 이러한 그들의 뿌리를 부각시킨 것이다. 부여의 기원은 더 멀리 단군왕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조선 숙종 2년(1676) 재야 사학자 북애(北崖)노인이 저술한 에는 단군의 네 아들이 기록되어 있다. 부루(扶婁), 부소(扶蘇), 부우(扶虞), 부여(扶餘)가 그들이다. 부여는 단군의 넷째 아들 이름이며 부여의 상징 부소산은 둘째 아들 이름과 같다. 부여국에 기원하든, 단군신화에 기원하든 ‘부여’라는 지명은 역사적 근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세종실록지리지의 부여 ..

충청남도/부여 2022.09.14

백마강을 따라 흘러간 영화, 부여

▣ 부여 정체성: 백제의 도읍지, 그런데… '부여'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백제의 도읍지'이다. 도읍지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방어, 교통, 경제활동 등 다양한 조건들이 다각적으로 고려되었을 것이다. 한 국가의 수도였다는 사실은 이곳이 범상한 위치가 아니었음을 뜻한다. 1,500여 년 전 이곳은 매우 뛰어난 입지 조건을 갖춘 도시였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백제가 멸망하던 바로 그때의 도읍지여서 왠지 애잔한 느낌이 든다. 백제와 경쟁하던 신라의 경주나 고구려의 평양 역시 멸망의 역사를 겪었지만 부여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아마도 두 도시는 지금도 부여에 비해 번성한 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평양은 북한의 수도로서 과거의 영화에 못지 않은 상태이며, 경주 역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광도시로서 그 지위가 확..

충청남도/부여 2022.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