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리/위치&지도 12

조선시대 11대로와 1리(里)

위 연구에 따르면 「大東地志」 '程里考'를 기반으로 거리를 계산하면 '1里(평균)=459m'이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 편차가 매우 커서 범위가 312m~650m에 이른다. 즉, 정확하게 오늘날의 미터법으로 환산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보통 10리는 4.6km~5.7km였다. '10리=4km'는 대한제국 당시 미터법이 도입된 이후 대략적으로 쓰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김정호의 靑丘圖와 大東輿地圖

정상기와 함께 조선 후기의 2대 공로자로 꼽히는 사람은 김정호이다. 김정호는『大東地志』,『東輿圖誌』,『輿圖備志』등의 3대 地誌書를 저술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 , 등의 뛰어난 지도를 제작하였다. ① 는 필사본으로 축척이 대동여지도와 같은 1/16만 정도이므로 정상기의 에 비해 훨씬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크기가 7m에 달할 만큼 크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동서 22판, 남북 29층으로 나누어 남북 100리, 동서 70리의 방안을 책의 1면으로 하는 지도첩을 만들었다. 지표면을 일정한 크기로 나누어 지도를 만드는 방법은 현대식 대축척 지형도와 같은 방법이며, 배수의 지도제작 6원칙을 충실히 이행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평환법, 유클리드의 기하원리 등을 과학적으로 활용하였다. 가. 의 제작원리 의 제작원리는 최한..

조선시대 전기의 지도

지도 제작과 관련된 측지술은 일찍이 2세기에 중국의 張衡에 의해 창안된 方格法(바둑판 눈금 방법)을 거쳐 3세기 후반에는 裵秀라는 학자가 나와 6體의 원리를 제시하면서 한층 과학적으로 발전하였다. 이 6體란 分率(축척), 準望(평행선의 모눈), 道里(길이), 高下(고저측정), 方邪(직각과 예각), 그리고 迂直(곡선과 직선측정)을 말하는 것으로서, 고려인들이 한반도의 모습을 비교적 사실에 가깝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이러한 6체의 원리를 터득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와 같이 고려시대까지 축적된 지도 제작기술을 바탕으로 조선시대는 유례없는 지도제작의 융성기로서 과학과 실측에 의한 관찬지도가 제작되기 시작했던 때였다. 가. 태조는 한양에 도읍을 정한 다음 행정구역 개편을 시도하였다. 1402년(태종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