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리/문화 역사 30

조운의 역사와 태안반도

▶고려 성종11년(992) 처음으로 조운이 제도화 수군에 13倉과 60浦 설치: 개경 이남에 12창, 개경 이북에 1창 ▶가을에 거둬들여 창고에 보관했다가 이듬해 2월부터 수송 조운은 2월에 시작하여 5월까지 이뤄졌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거둬들인 곡식을 창고에 보관했다가 이듬해 2월(양력 3월)부터 수송을 시작했던 것이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바로 조운을 시작하면 거센 북서풍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농사철이 시작되는 5월까지 조운을 마쳤다. 겨울 북서풍은 서해안에서 장애물이 없기 때문에 그 자체로 항해에 악영향을 끼치는 위험 요소일 뿐만 아니라, 북쪽으로 항해하는 조운로에 역풍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항해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음력 2월까지 서풍계열의 계절풍이 상당히 세게 부는 날이 많다...

[링크] 유대인이라는 종족 공동체, 만들어진 신화

이스라엘 역사학자가 쓴 문제작 / 출애굽, 강제추방 등 근거 없어 / 유대인은 종족 아닌 종교공동체 / 국가 건설 위해 민족사 창조해내 유대인이라는 종족공동체, 만들어진 신화 이스라엘 역사학자가 쓴 문제작출애굽, 강제추방 등 근거 없어…유대인은 종족 아닌 종교공동체국가 건설 위해 민족사 창조해내 www.hani.co.kr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 주권과 영토의 관계 BC734∼BC721년 지금의 팔레스타인 북부지역에 있던 이스라엘왕국이 아시리아에 멸망하면서 많은 유대인들이 고향을 떠났다. 이후 BC598~BC587년에 걸친 바빌로니아의 침입으로 남부지역에 있던 blog.daum.net '민족'이 되고자 한 유대인이 만든 모순과 비극 ▣ 유대인은 민족일까? '유대인' '아랍인'과 대립하는 민족으로 흔히 알..

택리지, 전라도에 대한 박한 평가 뒤집은 황상의 필사본

▣ 조선 최고의 인문지리서 는 청담(淸潭) 이중환(1690∼1756)이 1751년 세상에 내놓은 인문지리서로 이본(異本)만 200여 종에 달하는 조선 후기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당시에는 필사(筆寫) 외에는 책을 소장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으므로 좋은 책들은 필사가 널리 이루어졌는데 고전을 제외하고 이처럼 많은 이본이 전하는 책은 흔치 않다. 원본을 그대로 필사한 경우도 있지만 많은 이본들은 필사자의 지식과 견해가 가미되는 경우가 많았다. 필사본들이 다양한 제목으로 바뀌어 전하는 이유도 그러한 관행 때문이었다. ☞ 택리지 http://blog.daum.net/lovegeo/6780038 ▣ 西人의 텃밭 충청도 태생의 南人 이중환 는 당색이 남인이었으며 당쟁의 회오리에 휘말려 관직을 잃은 지식인이었던 이중..

우리나라의 姓氏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성씨를 빼고는 우리 문화를 이야기할 수가 없다. 그런데 문헌을 보다보면 알듯말듯한 용어들이 자주 나온다. 토성, 촌성, 속성, 망성… 이러한 용어들이 등장하게 된 역사적 연원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태조 왕건이 측근들에게 賜姓을 한 것이 성씨가 널리 퍼지는 시작이었다. 지방의 호족이었던 측근들에게 그들의 근거지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내림으로써 土姓이 등장했다. 고려 초기부터 각 본관마다 읍사를 중심으로 반근착절(盤根錯節)되어 있던 토성은 상경종사(上京從仕)·유이(流移)·소멸 등의 과정을 밟아 지역적 이동과 신분적 분화를 계속하였다. 그 결과 기존 토성의 소멸에서 망성(亡姓)이 생기고, 북진정책에 따른 사민(徙民)에서 입진성(入鎭姓)이 생겼는가 하면, 지역적인 이동에서 경래성(京來姓)·내성(..

우리나라의 전통 지리 사상

▶ 전통적 국토관 우리 민족이 살아온 삶의 터전인 국토에 대한 관심은 유사 이래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지리에 대한 관심은 초기에는 주로 대외적으로는 정복, 대내적으로는 통치나 개척이 주요한 원인이었으며 우리 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문헌이나 지도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 당시의 지리사상을 추적해 보는데 어려움이 많으나 조선시대 이후에는 많은 지리서들이 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전통 지리 사상에 대한 연구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Geography'가 일본인에 의해 '地理'로 옮겨지면서 전통적 의미의 '地理' 곧 풍수와의 혼란을 초래하였고 이러한 것이 전통지리 사상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졌다. 더욱이 일제의 민족정기 말살 정책은 전통지리에 대한 접근을 의도적으..

실학(實學)적 지리지

1)이수광의 『지봉유설』 이수광(1563∼1628)은 선조, 광해군, 인조에 걸쳐 주요 관직을 역임하면서 세 차례에 걸쳐 중국을 왕래하면서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실증적이며 새로운 시대를 모색하는 사상적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실학의 학풍을 불러일으킨 인물인데 『지봉유설』은 그의 이러한 사상적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저서이다. 책의 내용은 천문, 지리, 災異, 역사, 군사, 행정, 인물, 기예, 음식, 복용, 잡사에 이르는 백과사전적인 것인데 특히, 서양세계 및 서양지리에 대한 소개가 가장 큰 특징으로 당시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지양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마련하였다. 재이부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놓치지 않고 기술하여 당시의 자연현상을 잘 전해주고 있으며 지리부에는 우리나라의 산천과 자연현상에 대하여 ..

관찬(官撰) 지리지

조선시대 대표적인 관찬지리서인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은 그 체제와 목적에서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체제면을 보면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국 지리지인 세종실록 지리지는 각도의 내용구성이 관원, 연혁, 四境, 행정구역, 명산, 대천, 호구, 군정, 墾田, 貢賦, 약재, 鎭營, 역 등의 순서로 되어있는데, 군명의 변천, 행정단위의 승강, 소관 군현의 이속, 월경처 등 연혁 부분과 호구, 군정, 공부, 전결, 토산, 조운 등 조세 力役 수취에 필요한 경제관계, 명산, 대천, 군영, 역관, 성곽, 목장, 봉수, 관방 등 군사 관계, 성씨, 인물 등 주민들의 신분 구성에 관한 사항 등이 상세하다. 즉 세종실록 지리지는 조선왕조의 새로운 정치, 사회, 경제적 기반을 확립하는데 필요한 통치자료를 수집 ..

擇里誌

이중환(1690∼1756)의 『택리지』는 우리나라의 지리서 중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많은 평가와 함께 애독되어온 책이다. 『八域志』·『可居志』·『八域可居志』·『山水錄』·『東國山水錄』·『震維勝覽』·『總貨』·『동국총화록』·『팔역가거처』·『사대부가거처』·『吉地總論』·『東嶽小管』·『팔역紀聞』·『博綜誌』·『形家要覽』등의 많은 異名을 가지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 책이 얼마나 높이 평가되고 애독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많이 읽혔을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읽고 자신의 관점으로 제목을 붙였다.『東國山水錄』·『震維勝覽』등은 산수 경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물산의 종합'을 의미하는『總貨』,『동국총화록』은 상업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 그리고『形家要覽』·『吉地總論』등은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붙인 제목..

풍수지리 사상

풍수지리설은 傳來 이래로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경관, 나아가서는 한국 문화자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자리를 잡아왔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도시와 마을의 위치 및 구조는 대체로 풍수에 대한 안목이 없이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고려의 개경이나 조선의 한양과 같은 수도의 입지 결정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풍수적인 해석들은 진위를 떠나 풍수적 지리관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풍수사상은 지형과 기후, 풍토 등, 넓은 의미에서의 지리관, 토지관이자 자연에 대한 해석 방법이다1).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시대별로 풍수사상이 어떻게 인식되었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지리관의 변천과정을 이해하는데 의미가 있는 일이다. 이 글에서는 풍수사상의 이론적 체계는 논외로 하고 시대적으로 풍수사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