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리/문화 역사

언어경관으로 나타나는 권위주의 사회의 단면

Geotopia 2014. 7. 13. 18:00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말은 엄청나게 때가 묻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낱말 중에는 일본식 한자말이 엄청나게 많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것이 일본말에 기원한 말인지 조차 모르고 쓰고 있다. 쉬운 예로 일본의 신문을 읽어보면 거기에 쓰인 한자 낱말이 거의 우리와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타이완(중국은 이미 간체자를 쓰고 있기 때문에 정통 한자를 찾아보기 어렵다)의 신문을 보면 매우 낯선 낱말들이 대부분이다.

 

<타이완 신문 기사  *출처: 믹바이두, 박유천갤러리>

 

<일본 신문 기사  *Daum 카페 '한류열풍사랑'>

 

  그런데 단지 '일본식 한자말'이 난무한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일제는 군국주의로 식민지를 통치하면서 우리나라에 온갖 권위주의 문화를 유포시켜 놓았다. 그것이 지금의 우리말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경고', 또는 '계도'성의 낱말들이다. 국민을 '나라의 주인'으로 본 것이 아니라 '통치의 대상', 그것도 '말을 잘 안 들으므로 강제적으로 통치해야 하는 대상'으로 봤기 때문에 그들이 썼던 낱말들은 강제, 겁박, 무시의 뉘앙스를 풍기는 것들이 많다. 그 잔재는 우리 주변에 오롯이 남아 있으며 정부기관에서 생산되는 문서나 시설물에서는 더욱 많이 나타난다. 여파는 당연히 민간 문화에 미친다.

  학교 주변을 산책하다가 눈에 들어오는 글귀들을 찍어봤다. 이미 우리 말에 묻은 때는 '쇠때'가 되어 떼어내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젠 아무런 느낌이 없이 무심코 지나칠 만큼… 그렇지만 권위적인 어투들은 자꾸 고쳐갔으면 좋겠다. 시민은 수단이나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주인이니까.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고 낚시를 하면 환경이 파괴됩니다'>

 

<'발씻는 곳'이라고 쓰면 뜻도 명확하고 보기도 좋지 않을까? 더구나 초등학교 학생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인데>

 

<누군가가 이런 장난을 쳐서 '권위에 상처(?)'를 내놨다>

 

<금지, 금지, 금지… 이런 것도 백성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권위주의의 한 단면이다. 사용된 낱말이 거의 일본어식 한자말임은 물론이다>

 

<민간에도 이런 일본어식 문어체가 난무한다. '옥상에 함부로 놓아 둔 물건을 치워 주세요'>

 

  이젠 한 술 더 떠서 영어까지 가세했다. 언어는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며, 따라서 변화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의도적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라면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부 기관에서 쓰는 용어들은 그것이 필요한 용어인지, 적합한 용어인지를 꼼꼼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사회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일본어식 표현과 영어가 결합된 'Global' 현수막>

 

<밀양 얼음골에서 만난 이 안내판 때문에 하루가 즐거웠다. 조금만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렇게 예쁘고 효과도 큰 글귀를 만들 수 있다>

 

☞ Click! 예쁜 우리말은 오히려 다른 나라에 남아 있다http://blog.daum.net/lovegeo/6779977(중국에서 만난 예쁜 우리말)

 

☞ Click! 학술 용어도 일본식 한자말이 대부분이라는… http://blog.daum.net/lovegeo/6779848(정체불명의 낱말 '구락부'-일봉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