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서산 10

서산 답사 II : 운산면 여미리(2)

■ 전주이씨 선성군파 종족 촌락 정종의 4남 선성군의 후손이 세거하는 마을이다. 선성군은 9남3녀를 두었는데 여미리는 3남 명산부수(明山副守) 이금정(李金丁)의 후손들이 이룬 마을이다(선성군의 장남인 명선대부(明善大夫) 춘산도정(春山都正) 이귀손(李貴孫)의 후손이라는 설도 있다). 여미리 전주이씨는 ‘예미 이씨’라고도 부른다. 처음 입향한 인물은 선성군의 6세손 이창주(李昌冑)[1567~1648]이다. 마을에 선성군 사당(선정묘), 가묘(이창주, 이정방, 이진백, 이택 등), 신도비(이택), 이택이 심은 비자나무, 이진백의 글이 새겨있는 바위(西巖洞天, 醉石) 등 관련 경관이 남아 있다. 지금도 마을 전체 80여 가구 중 절반 이상이 전주이씨이다. ▶ 宣城君 李茂生(1392-1460) 정종의 네 번째 서..

충청남도/서산 2022.03.28

서산 답사 II: 운산면 여미리

■ 답사일: 2022년 4월 2일(토) ■ 답사 주제와 답사지 ⊙전주이씨 종족촌락: 선정묘, 가묘(이창주, 이택 등), 이택 신도비, 350년 비자나무, 서암동천 ⊙서산유씨 관련 경관: 유상목가옥, 유기방 가옥, 유상목 묘 ⊙불교 경관: 여미리 석불, 황운사, 강댕이 미륵불(운산면 용현리) ⊙민속 경관: 산제바위(산신제), 석장승, 300년 소나무, 250년 느티나무 ⊙문화공간: 여미갤러리, 여미녹거근대사박물관, 생활문화센터, 서예전각연구소, 마애환경조형연구소 ■ 답사 경로 전라산 - 유상묵묘 - 여미갤러리 - 석불입상 - 유상묵가옥 - 선정묘 - 유기방가옥(수선화축제) - 비자나무 - 이진백 묘 - 이창주 묘 - 이택 묘 - 이택 신도비 - 황운사 - 취석 - 서암동천 - 여미도예 - 여미녹거근대사박물..

충청남도/서산 2022.03.20

마애여래삼존상이 거기에 있는 이유

▣ 왜 그런 오지에? 왜 거기에 있을까? '백제의 미소'로 일컬어지는 백제의 대표 불상인데 공주, 부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것도 이상하고, 그것도 큰길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에 있는 것도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중국과의 통상로 상에 있었다는 사실이 이제 정설이 되었지만 사실을 받아들이려면 그럴싸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 시간을 되돌려 보자 시간을 옛날로 되돌려 봐야 한다. 신작로나 철도가 포구를 없앴고 옛길을 바꿔놨지만 우리의 공간 감각은 지금의 길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있다. 서산마애여래삼존상은 주변의 국도나 지방도로 등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다. 옛길도 지금의 길과 많이 닮기는 했지만 지금의 길과 크고 작은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주로 걸어 다녔던 옛날에는 길이 지형적 장벽을 피해서 나 있었다..

충청남도/서산 2021.07.09

서산: 가야산지 주변

▣ 일정 10:00 용현리 서산마애여래삼존상 입구 주차장 도착 - 10:30 서산마애여래삼존상 - 11:30 보원사터 - 12:00 서산목장 - 12:30 점심(서산) - 14:00 유계리 경주김씨 종족촌락 - 15:30 문수사 - 16:00 해산(용현리 주차장) ▣ 주제 ▶비산비야(非山非野)와 낙토(樂土) 큰 하천이 발달하지 않아 벼농사가 발달하지 못했고, 따라서 규모가 큰 집촌이 발달하기 어려웠다. 대신에 개간이 쉽고 물난리가 잘 나지 않으며 토질이 좋기 때문에 조선 후기에 이르러 인구가 빠르게 늘어났다. 오늘날은 마늘, 당귀, 생강 등 상품작물을 주로 재배하는 밭농사가 발달한다. ▶불교적 장소성 '내포(內浦)'가 기록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시기는 조선시대이다. 그리고 조선 중기를 넘어서면서 한양 사대..

충청남도/서산 2021.06.27

문수사와 보현사, 상왕산을 협시하는 절

▣ 삼존불 형상의 보현사와 문수사, 그리고 상왕산 가야산의 옛 이름은 상왕산이었으나 신라 이후로 가야산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상왕산이라는 이름은 지금도 살아있다. 상왕(象王)은 산스크리트어로 코끼리를 뜻하는 '가야(गज)'를 한자말로 옮긴 말로 곧 석가모니를 뜻한다. 지금의 상왕산은 가야산 북쪽의 석문봉에서 서북쪽으로 갈라진 줄기 위에 있다. 그 상왕산 줄기에 문수사와 보현사가 있다. 둘 다 조선시대까지 기록에 전하고 있는 이 일대에서 잘 알려진 절이었지만 지금은 문수사만이 남아있다. 그런데 이름이 범상치가 않다. 문수(文殊)와 보현(普賢)은 석가모니를 협시(脇侍)하는 보살인데 그 이름을 딴 것이다. 상왕산과 그 양쪽에 문수사와 보현사, 바로 삼존불 형상이다. ▣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지혜와 실천을 상징..

충청남도/서산 2021.06.20

보원사터: 폐허의 힘

▣ 예사롭지 않은 입지 : 하천 상류 저지대 보원사터는 용현계곡, 또는 강당골이라 불리는 깊은 골 안에 있다. 북쪽으로 흘러 나가는 하천(역천) 상류에 자리를 잡았는데 동서 양쪽으로 뚜렷한 산줄기가 하천과 평행으로 뻗어있는 독특한 위치이다. 동쪽(앞쪽)으로는 가야산 본줄기가 흐르는데 가야산(678.2m) 주봉으로부터 약 7km 북쪽에 있는 수정봉(453.4m)이 동남쪽에 우뚝 서있다. 이 산줄기는 북쪽으로 계속 이어져 서산마애여래삼존상을 지나 고풍저수지 상류의 하천 합류 지점에서 끝을 맺는다. 서쪽으로는 금북정맥이 지나간다. 금북정맥은 가야산 북쪽 약 1.7km 지점에 있는 석문봉(656.8m)에서 서북쪽으로 갈라지는데 이 산줄기는 일락산(521.4m), 상왕산(309.6m)으로 이어져서 안흥진에 이른다..

충청남도/서산 2021.06.20

유계리 경주김씨 종족촌락

▣ 경주김씨가 유계리에 살게 된 내력 ▶ 안동에서 한성으로, 한성에서 서산으로 유계리 경주김씨의 입향조는 안주목사를 지낸 김연(金堧, 1494~?)이다. 대대로 안동에 세거하던 경주김씨 가문 출신의 김연이 명종 때에 만년 은거지로 서산을 택함으로써 연고를 맺게 되었다. 그는 관직에 있는 동안에는 한성에 살았는데 관직에서 물러난 후 서산 덕지천(德止川)에 정착했다가 이곳 유계리(한다리)로 이주했다. 김연은 유계리에 세 채의 집을 지어 후손들이 살도록 했는데 큰 아들 김호윤(金好尹)과 그의 아들 김적(金積), 차남 김호열(金好說), 김호윤의 사위 김지남(金止男)이었다. 이들이 실질적인 유계리 입향조로 이후 유계리에 자손이 대를 이어 살게 되었다. 일설에는 김연이 임꺽정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이곳에 사패를 받..

충청남도/서산 2021.06.19

가야산(伽倻山): 불교의 상징

▣ 불교문화 특구 가야산 불가에서는 가야산을 '불교문화 특구'라고 부른다. 초기 불교 유적인 마애여래삼존상을 비롯하여 수많은 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남아 있는 절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지만 가야산 자락에는 무려 200여 개의 절터가 있다(김기석, 2012, 내포에 핀 연꽃 가야산의 절터들, 도서출판 가야). 그 중에서 대표적인 큰 절이 동서남북에 각각 하나씩 있었다고 하는데 동쪽에는 서림사, 서쪽에는 개심사, 남쪽에는 가야사, 북쪽에는 보원사이다. 지금 남아있는 절은 개심사 뿐이고 보원사는 터만 남아있으며 서림사는 회암서원(예산군 봉산면 봉림리)이 세워지면서 자리를 내주었고, 가야사 자리는 남연군묘가 차지하고 있다. 절터는 가야산을 중심으로 동쪽의 가야사와 서쪽의 보원사 일대에 가장 많이..

충청남도/서산 2021.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