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서산

여미리 답사 정리

Geotopia 2022. 4. 10. 07:31

350년 비자나무와 전주이씨 묘. 전주이씨의 상징과도 같은 나무지만 지금은 유기방 가옥 소유가 되었다. 수선화축제 기간 중에 이 나무를 보러 가려면 축제장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한다.
바람에 누운 나무들(비자나무 앞)
비자나무에서 선정묘 가는 길
선성군 이무생 신위(선정묘)
선정묘 용문양
유기방가옥 주변의 수선화. 2000년대 초반부터 유기방씨가 수선화를 꾸준히 심어서 지금과 같은 관광상품이 만들어졌다.
낙락장송 아래 자라고 있는 수선화
수선화축제로 전통가옥에 볼거리가 더해졌다
수선화축제 관광객
전주이씨 묘역에서 바라본 유기방가옥. 유기방가옥은 옆마을(가좌리/서산유씨 종족촌락) 출신으로 입신한 유상묵이 1919년에 지어서 아들에게 줬다고 한다. 원래 이 자리에는 전주이씨 가문의 집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정방 묘비(입향조 이창주 아들) 연대 표기가 '숭정기원후일백일계崇禎紀元後一百一季)'라는 독특한 방식을 썼다.
이진백(입향조 이창주 2대손, 이택의 부친) 묘. 뒤편은 이정방 묘

 

일부 묘는 가까운 다른 마을에서 옮겨왔다

 

옮겨온 묘의 묘비. 이끼가 예술처럼 끼었다
묘역 앞에서 바라본 수선화축제 주차장. 마을 앞 논이 주차장으로 변했고 들고나는 차로 시골마을이 북새통이다.
입향조 이창주 묘에서 바라본 부인(한양조씨)묘. 서로 보이는 곳에 있지만 합장하지는 않았다.
석인이 독특하다. 복색은 문관석인데 머리에 관을 쓴 대신에 뿔이 달렸다.
꽃망울이 녹색인 벚꽃
이창주 배위 한양조씨묘.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가장 좋은 자리에 있다. 마을의 성쇠와 이 묘자리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
이 묘의 연대 표시는 '주갑(周甲)'이라는 표현을 썼다. '숭정기원주갑후(崇禎紀元周甲後)' 부군이 세상을 떠난 뒤 1년 후에 배위도 세상을 떠났다.
한양조씨 묘에서 바라본 이택 묘와 여미리
한양조씨 묘 양쪽에 있는 배롱나무. 엄청난 둥치가 전주이씨의 위상을 말해준다.
이택 묘. 이창주 3대손 이택은 3도통제사(종2품)에 올라 여미리 전주이씨 위상을 크게 드높인 인물이다.
이택 묘 앞 보리밭. 멀리 이창주묘가 보인다.
이택 신도비. 윤봉조가 지었다.
마을이 관광지로 바뀌어가면서 이처럼 상업적으로 장을 담그는 집도 생겨났다. 관광 기능 때문에 생겼지만 자리를 잡으면 마을의 관광 기능을 더욱 강화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황운사의 운용매. 꽃이 구름(雲)같고, 줄기는 용(龍) 같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황운사 석불
이진백과 남구만이 교류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취석(醉石)
취석 아래에 서 있는 단풍나무도 예사롭지 않다.
'서암동천(西巖洞天)'이 새겨져 있는 멍석바위
마을 길 옆에 민들레와 냉이가 피었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유기방 가옥 수선화 축제장. 오른쪽은 비자나무, 왼쪽은 전주이씨 묘역이다.
유상묵 가옥(나전헌). 유상묵의 아들 유정로가 전라산(田螺山, 全羅山)에서 따서 붙였다. 유정로의 아들 유기상 부부가 살고 있다. 유기상과 유기방은 사촌 간이라고 한다.
여미리석불입상과 3백년 소나무. 여미리는 유교와 불교, 그리고 토속신앙(산신)이 결합한 독특한 경관을 보여준다. 멀리 보이는 앞산줄기의 오른쪽 봉우리 아래에 산신당이 있다.
고향출신 인사가 지은 여미리를 노래한 시
전라산 아래 서 있는 유상묵 송덕비
유상묵묘. 유상묵은 세 번째 집(유상묵 가옥)을 짓고 2년 뒤(1927) 세상을 떠났다.
전라산에서 바라본 역천과 가야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