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리/문화 역사

살아있는 일제의 유산 2

Geotopia 2013. 9. 28. 15:36

  내 고향 마을 앞에는 '말무덤'이라는 작은 동산이 있다. 조선시대 홍주목사 홍가신의 애마가 묻힌 자리라고 들으며 자랐다. 조선 선조 때 홍주목사를 지낸 홍가신은 충청도 홍산에서 난을 일으켰던 이몽학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청난공신 1등으로 책록된 인물이다.

  논 한 가운데 자리를 잡은 그 동산에는 어렸을 적 기억으로 커다란 팽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고 그 앞에 비각이 하나 있었다. 철없는 어린 것들이 비각 둘레에 있는 각목을 잘라다가 썰매를 만드는 재료로 써먹는 것을 보며 자랐다. '문화재 보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개발도상국을 여행하다가 방치된 문화재들을 볼 때 마다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흑역사이다.

  명절 때마다 고향에 가지만 그 곳을 눈여겨 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날 조선시대 홍주목 지도를 보다가 뜬금없이 그곳이 생각이 났다. 그 비문은 과연 홍주목사의 애마를 추모하는 비문이 맞는 것일까? 마침 홍성에 갈 일이 생겨서 들러 보았다. 멀리서 보니 비각은 사라지고 팽나무는 더욱 크게 자라고 있다. 비각은 사라졌지만 다행스럽게도 비석은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길 옆에 차를 세우고 내려가 봤더니…

  비문의 주인공은 일제강점기 행정공무원이다. 비문의 내용만으로는 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친일 행위를 했는지, 아니면 일제의 공무원이었지만 양심적으로 주민을 위하는 행정을 했는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비문을 세워줄 수 있는 사람은 헐벗고 굶주리는 민초들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수많은 '선정비'가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이미 역사로 증명이 되었다.

 

 

<비석 뒷 면에 새겨진 건립 연대. 2013.9.23>

 

  누군가가 비문의 건립연대인 쇼와(昭和)라는 글자를 깨뜨려서 뭉개 놓았다. 일제에 대한 적개심에서 한 행동인지, 아니면 후손이 일제때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그랬는지 역시 알 길이 없다. 이런 유적들도 잘 보존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만 그 평가를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하여 후손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昭和'라는 글자를 뭉개는 것으로, 적개심을 불태우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안된다. 과거를 명확하게 반성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철저하고 정확하게 반성하지 않으면 반복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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