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리/문화 역사

우리나라의 전통 지리 사상

Geotopia 2013. 3. 16. 09:31

▶ 전통적 국토관

 

  우리 민족이 살아온 삶의 터전인 국토에 대한 관심은 유사 이래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지리에 대한 관심은 초기에는 주로 대외적으로는 정복, 대내적으로는 통치나 개척이 주요한 원인이었으며 우리 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문헌이나 지도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 당시의 지리사상을 추적해 보는데 어려움이 많으나 조선시대 이후에는 많은 지리서들이 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전통 지리 사상에 대한 연구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Geography'가 일본인에 의해 '地理'로 옮겨지면서 전통적 의미의 '地理' 곧 풍수와의 혼란을 초래하였고 이러한 것이 전통지리 사상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졌다. 더욱이 일제의 민족정기 말살 정책은 전통지리에 대한 접근을 의도적으로 차단했던 측면이 많으며 그 결과 나타난 '전통적 사상이 사라진 지리'는 '자원이 빈약한 국토'라는 국토에 대한 비관을 이끌어 내는 역할만을 했을 뿐이었다. 이처럼 식민지 역사는 역사뿐만 아니라 지리에 있어서도 완벽한 단절을 유발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輿地'라는 전통적 의미의 지리를 의미하는 용어를 사용한 지리서들이 무수히 존재해 왔으며 이는 우리 나라도 지리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전통지리사상에 대한 관심은 따라서 단순한 지리의 한 분야로서가 아니라 끊어진 지리의 맥을 잇는다는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 공간의식

    : 서울 중심(右道와 左道), 관청 중심-신분사회의 특징

 

 

<좌,우가 서울을 기준으로 정의되었다>

 

 

<관청을 중심으로 그려진 읍지도(함흥)>

 

 

   ★ 추천 영상 : 그림지도에 대하여(KBS 역사 스페셜)

     : 조상들의 공간인식 방법, 고지도의 표현법, 관찬지도의 활용

 

  2)지리적 인식의 범위: 군·현 중심, 팔도 중심

 

  3) 환경인식

   풍수사상

       - 大地母사상(전통적 자연관) + 陰陽五行(중국의 우주관)

     - 결정론적 견해 : 환경에 대한 인간의 효과적인 적응

     - 도참(圖讖) 사상

         : 고려의 통치 수단, 조선 시대의 종족 중심주의 등과 결부되어 왜곡

          ☞ 클릭 : 풍수지리 사상의 역사적 전개 과정

 

 

▶ 국토 인식의 변화

 

  1)지리적 지식의 증가

   ① 지리지(地 理 誌)

- 官撰地理誌 :국가통치목적
  :新撰八道地理志(세종14), 輿地勝覽(성종12), 東國輿地勝覽(성종17),
     新增東國輿地勝覽(중종25), 輿地圖書(영조41)
   클릭!: 관찬지리지
- 私撰邑誌(조선 중·후기)
- 실학자들의 지리지
 :擇里志(이중환), 疆界考(신경준), 我邦疆域考(정약용), 大東地志(김정호) 등
    클릭!: 실학자들의 지리지
- 근대의 지리서
 :여재촬요(오홍묵), 대한지지(현채,장지연), 만국신지지(김홍경), 조선지지(학부편집국)

 

   ② 지도의 발달

    가. 관찬지도 - 삼국시대 이후 제작   

      - 활용 : 방어 및 군사정보 수집, 군진설치와 축성, 왕권강화, 행정구역 개편, 조세 및 공물 수취

      - 삼국시대의 지도

: 요동성도(벽화)       - 고려시대의 지도

: 5도양계도, 오천축국도

      ☞ 클릭!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지도

 

      - 조선전기의 지도 : 팔도지도(이회),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현존 동양 最古), 동국지도(정척,양성지), 조선방역도, 동람도

      ☞ 클릭! 조선시대 전기의 지도

 

      - 조선후기의 지도 : 동국여지도(신경준), 전국군현지도(대원군)

      ☞ 클릭! 조선후기의 지도

 

    나. 정상기의 동국지도 : 백리척 사용, 산천도로 표시, 대축척(1/42만), 방안좌표, 북부지방 정확, 채색지도, 산맥연결

     ☞ 클릭! 동국지도

 

    다. 대동여지도(1861)  ☞클릭! 김정호의 청구도와 대동여지도

 

가. 실측도 - 1:160000 축척
나. 실용적 - 지도표를 사용하여 다양한 지리정보 수록 / 10리 마다 거리 표시
다. 분첩절첩(分帖折疊)식
    - 총 22층, 126목판본, 227면
    - 각 면은 동서 80리, 남북 120리
라. 분수령, 하천유역, 산계의 파악에 유리
    - 산맥을 선과 면으로 표시
마. 목판본 - 다량으로 지도를 만들 수 있도록 함

 

 고지도에 나타난 지리 인식

 

 

  2)지역 및 환경인식의 변천

   ① 조선후기 : 실학적 지리관

    擇里誌(이중환)-대표적 인문지리서   ☞클릭! 택리지에 대하여

가. 답사를 토대로 한 사실적 기술
  - 들 가운데 흐르는 내는 수심하고, 그 연안에 쌓인 흑석은 마치 벌레가 먹은 것 같다. 참 이상한 일이다. (철원지방의 용암대지)
  - 바닷가는 모두 모래밭이다. 그 모래는 대단히 곱고 금색을 띠어 해에 빛이 반짝이며 20리나 계속된다. 바람이 불면 봉우리를 이루어, 높아지고 허물어져 조석으로 옮겨져, 혹은 동쪽에 언덕이 생기고, 혹은 서쪽에 언덕이 생기어 좌우로 갑자기 이동함이 일정치 않다. 그러나 모래위의 탑묘는 장려하고 그리고 마침내 파묻히고 눌리지도 않으니 이는 실로 괴이한 일이다. 혹 말하기를 바다에서 용이 그리 한다고 한다.(장산곶 금사시 해정 사구 이동)
  - 나주 서쪽은 칠산해이다. 그전에는 깊었는데, 근자에 와서 모래 따위가 쌓여 점점 얕아져가고 있어 퇴조시에는 깊이가 무릎에 달 정도이나 중앙에 골이 있어 강줄기 같이 되어 배는 이 길로 다닌다.(칠산해 간석지 발달)
  - 내 나이 14세때 가마를 타고 운교서 강원부의 서쪽, 대관령에 이르는 연도는 평지와 높은 재를 막론하고 모두 수림으로 덮여 하늘을 쳐다보아도 해가 보이지 않았는데 약 4일간의 노정이 모두 그러하였다. 그런데 수 십 년 전부터 산야가 모두 개간되어 지금은 농토가 되고 이에 따라 촌락이 인접하여 산에는 작은 나무도 없어졌다. (중략) 인삼의 옛 산지는 거의 영서의 깊은 골짜기였는데, 산속 사람들이 들을 불태우는 까닭에 인삼의 산출은 점점 적게 되었고, 홍수가 나고 산이 무녀져서 모래가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서 한강의 하상이 점점 높아져 간다(대관령 일대 개간에 따른 영향).


나. 거주지 선택 기준-지리,생리,인심,산수\ 
  - 地理 : 풍수지리적 길지를 뜻하며 수구(水口), 야세(野勢), 산형(山形), 토색(土色), 수리(水理), 조산조수(朝山朝水)를 중시하였다.
  - 生利 : 이중환의 실학적 지리관이 잘 드러나는 요소로 네가지 요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생업을 이어가기 위한 경제적 기반을 강조한 것으로 '비옥한 땅'과 '물자 교류에 유리한 위치'를 꼽았다.
  - 人心 : 당쟁에 밀려 불우한 일생을 살았던 자신의 입장이 잘 반영된 요소이다. 당색이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을 권하였다.
  - 山水 : 백두산에서 시작된 우리나라의 산수경계를 논하였다.


다.결정론적, 가능론적 입장
  - 땅이 갖는 초자연적인 신비력을 인정하고 그 힘에 의하여 길지에서는 훌륭한 인물이 배출된다고 믿었던 당시의 자연관을 반영하고 있다. 자연환경의 차이에 의해 각기 다르게 적응한 인간의 생활양식을 논하였다.
  - 인간이 자연을 변형시키고 활용하며 그 영향이 환경에 반영되는 예를 들고 있다.


라. 대표적 인문지리서
  - 백과사전식 기술이 대부분이던 당시의 실학서에 비해 팔도총론, 복거총론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지리, 생리, 인심, 산수로 나누어 주제별 기술을 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자연환경에 대한 기술과 함께 각 지역의 인문적 특징들이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양반관료의 입장에 입각하지 않고 백성들이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지리 지식을 싣고 있다.

 

 

 

  ② 일제 강점기에 왜곡된 국토 인식 -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

    :‘국토가 좁은 나라’,‘자원이 빈약한 나라’등 국토에 대한 비관을 심어줌

  ③ 20세기 후반 : 개발 위주의 사고

  ④ 최근 : 생태적 환경 윤리

 

◆ 국토 이용관의 변화


 가. 조선 이전 : 治山治水 중시
   ① 중요 도시의 요새화 -양성지
   ② 수원성 축조, 도서 자원 관리-정약용
   ③ 수운(水運) 체계 개발 - 가적운하(천수만∼가로림만)


 나. 식민지 시대 : 자연과의 조화 무시
   - 병참 기지화 : 국토 정보 수집, 강제 개발


 다. 60년대 :경제 개발에 활용 
  ① 경제 개발 계획
  ② 국토 이용 관리법 제정


 라. 국토 개발의 결과 
  ① 지역 격차 발생-수도권 인구 집중, 도시 과밀화 
  ② 환경오염과 자연 파괴-개발 제한 구역 설정,국립 공원 지정

 

 
조선시대 지도와 지리서로 살펴본 국토 인식의 변화.pptx
7.63MB

'인문지리 > 문화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아있는 일제의 유산 2  (0) 2013.09.28
명당이란?-가야산 남연군묘  (0) 2013.04.10
실학(實學)적 지리지  (0) 2013.03.09
관찬(官撰) 지리지  (0) 2013.03.09
擇里誌  (0) 2013.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