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리/문화 역사

실학(實學)적 지리지

Geotopia 2013. 3. 9. 11:31

  1)이수광의 『지봉유설』

 

   이수광(1563∼1628)은 선조, 광해군, 인조에 걸쳐 주요 관직을 역임하면서 세 차례에 걸쳐 중국을 왕래하면서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실증적이며 새로운 시대를 모색하는 사상적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실학의 학풍을 불러일으킨 인물인데 『지봉유설』은 그의 이러한 사상적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저서이다. 책의 내용은 천문, 지리, 災異, 역사, 군사, 행정, 인물, 기예, 음식, 복용, 잡사에 이르는 백과사전적인 것인데 특히, 서양세계 및 서양지리에 대한 소개가 가장 큰 특징으로 당시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지양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마련하였다.

   재이부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놓치지 않고 기술하여 당시의 자연현상을 잘 전해주고 있으며 지리부에는 우리나라의 산천과 자연현상에 대하여 주목한 기록들이 실려있다. 즉, 백두산을 우리나라의 산의 근본으로 보았으며, 역사적으로 논란이 많은 水에 대한 역사지리적 고증, 울릉도, 동해에 밀물 썰물의 현상이 없는 점 등 다양한 관심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인 諸國部에는 50개가 넘는 나라들에 대한 기록이 들어있다. 여기에는 그나라의 역사적 배경과 인심, 풍속, 법제, 신앙 등의 인문지리면과 지형, 기후, 산물 등의 자연지리면에 관심을 두고 있다.

   『지봉유설』은 주자학을 지도이념으로 삼아 공리공론에 흐르고 있던 당시의 진부한 학풍에 도전하여 현실생활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역사, 지리, 경제, 정치 등의 연구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였고 중국중심의 지리관에서 어느정도 벗어나 우리나라 중심적인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부분들이 있어 주목된다.

   

   2) 유형원의 『동국여지지』 와 『군현제』

 

   우리나라 실학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유형원(1622-1673)은 일찍부터 실학의 영향을 받은 가문에서 실학적 사상을 학습하는 것과 함께 30대 초반까지 영호남 남부를 제외한 전국을 거의 한바퀴 돌아본 경험을 바탕으로 변화된 현실에 이미 부합하지 않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바로잡기 위한 목적으로 『동국여지지』를 저술하였다.

   『동국여지지』의 특징은 첫째, 17세기 이래 실학파 지리학의 주요한 흐름이었던 강역, 위치, 지명 등 역사지리적인 측면을 중시하였으며 그 결과를 지리지에 결합시키려 하였던 점이다. 기존의 지리지에는 없었던 本國總敍를 卷首에 수록하여 우리나라의 강리의 나누어지고 합하여짐의 대개를 요약하였으며, 각도의 첫머리에도 각도총서를 수록하였다. 각 군현의 연혁에서도 여지승람이나 기타 지리지에 비하여 지역이 역사를 더 이전으로 소급하여 기술하였다. 둘째, 본관 위주로 되어있어 지역의 인물을 살피는데 큰 의미가 없었던 인물조와 제영조를 삭제하는 등 지역을 위주로 문제를 인식하고 지지를 편찬하여 지역의 실상에 접근하는 지지를 편찬하여 하였다. 세째로는 실증적이고 실용적인 지지 편찬 방식을 채택하였다.

   비합리적이었던 행정체계 개혁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던『군현제』에서는 군현을 병합하여 전국의 군현 수를 2/3정도로 줄이고 중심지로부터 사방 50리를 한 고을의 표준적인 면적으로 정하고자 하였으며, 산천의 형세 등 자연적인 경계를 가장 우선적인 군현 경계의 기준으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단순한 자연적 경계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생활의 편의를 중요시하였다. 또한, 군현의 승강제도를 폐지하여 안정된 행정제도를 유지하고자 하였으며, 비효율성의 대표격인 월경지의 정리를 주장하였다. 방어와 생활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군현의 병합과 아울러 일부 군현의 중심지 즉 치소를 옮길 것을 주장하였고 군사시설과 교통 체계의 개선을 제기하였다.

   유형원은 행정체계와 행정 구역의 문제는 백성들의 생활에 매우 중요하게 관련되어 있으므로 국가 행정의 합리화라는 측면에서도 개편되어야 한다고 보고 이 문제를 전면적이고 적극적으로 제기하였으며 실제 여행을 통해 현실을 파악하고 접근하려 하였다. 특히 반계가 행정체계의 개혁을 주장한 근본적인 목적은 지역적인 불평등을 시정하는데 있었다. 즉 백성의 고통의 해결, 생활의 개선. 토지제도 지방행정제도, 군사제도 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제도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고 이를 개혁함으로써 효율적인 토지이용, 나아가 이상사회를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군현제 개혁에서 고려한 지역 편제의 기준은 자연환경, 토지와 인구, 군사, 방어적 측면, 교통로와 접근성 등의 요인이었으나, 반계에게서 특히 주목되는 점은 이들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전개되는 생활권 지역권을 파악하였던 통찰력이다. 따라서 상업적 토지이용을 장려하는 등 상공업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지닐 수 있었다. 그러나 향촌사회의 안정과 중앙집권의 강화라는 유교적 유교적 통치이념을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3) 신경준의 『산수고』와 『산경표』

 

   신경준(1712∼1781)은『강계고』,『四沿考』,『도로고』,『가람고』,『군현지제』등의 많은 저술을 통하여 실학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대부분의 여타 실학자들과는 달리 官界에 몸을 담고 능력을 발휘하여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그의 대표적인 저작들을 간단히 살펴보면, 먼저 잘 알려져 있는『강계고』는 우리나라 역대의 강계와 지명 등을 고찰한 역사지리서이며 일본, 대만, 유구국(오키나와), 섬라국(태국) 등 외국에 대한 내용도 별도 항목으로 설정하고 있다. 『사연고』는 압록강, 두만강 등 江路와 각 도별 연해로, 중국 일본과의 해로, 조석 등 주로 수로 교통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도로고』에는 어로와 서울부터 전국에 이르는 六大路, 그리고 四沿路와 팔도해연로, 대중소의 역로, 봉로, 해로, 외국과의 해로, 조석, 전국 장시의 개시일 등 각종 도로와 정기시장이 망라되어 있다. 『가람고』는 각 군현 별 사찰의 위치, 연혁 등을 다루고 있다. 또한, 『군현지제』에서는 우리나라 군현제의 실상과 문제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①『산수고』

 

   우리나라의 산수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있는『산수고』는 나라의 근간이 되는 산과 강을 분합의 원리로 파악하여 대칭적이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음양의 구조처럼 이해하고 있으며, 경혈에 해당하는 주요 산과 하천을 각각 12개로 파악하고 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자연관과 우주관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신경준 개인의 생각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살고 있던 국토를 소우주로 이해하여 완결적인 존재로 파악하던 당시 사람들의 전통적인 자연관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산수고』에는 열두개의 주요 산과 이들의 상호 연결관계, 주변의 작은 산들, 산줄기의 뻗침, 군현과의 관계 등을 기록하였고, 그 주요 산에 포괄되는 지역, 주요 산계가 미치는 하천의 범위, 즉 수계를 적어 놓았다. 『산수고1 (山經)』은 산의 맥을 파악하고, 산과 산의 연결, 이에 의하여 나누어진 지역들의 범위와 사방의 경계를 하천 중심으로 파악한 것이다. 특히 산의 맥과 산줄기를 알기 쉽게 순서대로 정리하고,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적 범위를 포착하여 자연적 지형에 의한 지역권을 구분하여 놓아 산줄기의 체계화를 이룩하였다. 즉, 군현 단위를 넘어가는 산줄기의 파악과 그 산맥으로 둘러싸인 보다 커다란 지역권을 이해하도록 되어있다. 『산수고2 (山緯)』와 『산수고3 (山經)』은 각 군현별로 군현 내에 있는 주요 산 이름을쓰고, 그 산의 위치, 산의 갈래, 祈雨處라든가 특별히 설명할 내용을 기록하였다. 산줄기가 대상이 아니고 보다 미시적으로 접근하여 개별 산이 파악의 중심 대상이다. 전국의 각 군현에 어떤 산들이 위치하고 있고, 그 산들의 연계 관계는 어떠한가, 어느 산이 군현의 주산이고 사람들에게 이용되고 있는가를 이해하기쉽도록 군현 행정 단위별로 적은 것이다.

  『산수고4 (山經)』에는 한강부터 시작하여 전국의 주요 하천과 그 지류들의 발원지, 주요 경유처, 합류점을 기록하고, 지류 들을 열거한 뒤 마지막에 하천의 분수계, 즉 하천으로 흘러 들어오는 물의 지역적 범위를 산계와 연결시켜 기록하였다. 『산수고5,6 (水緯)』에는 군현별로 각 지역의 하천, 淵, 池, 津, 浦 등의 이름과 위치, 명사들이 남겨 놓은 관련 기록 등을 수록해 행정단위를 기준으로, 그리고 작은 지역 내의 강의 분포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산수고』는 이와 같이 우리나라 전역의 산과 강을 거시적인 안목에서 조망하여 전체적인 체계를 파악하고, 촌락과 도시가 위치한 지역을 산과 강의 측면에서 파악한 책이다. 이와 같이 산천을 체계적으로 파악한 점은 전통적 지형학이라 부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②『산경표』

 

   최근 관심을 끌기 시작한 『산경표』는 우리나라의 산줄기와 산이 갈래, 산의 위치를 일목요연하게 표로 나타낸 역작으로 어느 산의 내력과 높낮이, 읍치를 어떻게 둘러싸는지, 산이 치닫다가 생긴 고개 등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산경표』의 특징은 우선 대간과 정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하천의 수계를 기준으로 산줄기를 나눈 점이다. 산줄기를 산줄기만으로 분리시켜 고찰한 것이 아니라 하천을 중심으로 하나의 생활권 내지 지역권을 형성하고 있었던 인문적인 측면까지 고려하여 자연과 인간을 분리시키지 않고 유기적인 통합체로 보는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는 대간, 정간, 정맥 등으로 산줄기의 위계를 부여하였다. 이는 물리적인 외형상이 차이일 수도 있지만 모든 사물과 현상을 계층성과 차별성을 두었던 중세적인 사유, 성리학적인 사유 구조에서 말미암을 자연의 분류 체계로 해석할 수도 있다. 셋째는 산과 산의 분포, 위치를 줄기 또는 맥으로 파악하여 끊어짐이 없이 이어지는 것으로 이해하였고 백두산이 국토의 중심 또는 출발점으로 인식되어 있다. 이는 한양을 중시했던 산수고와는 다른 인식체계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신경준의 산천인식 체계는 풍수적 사고의 영향, 청나라와의 국경분쟁 등으로 인한 관심의 촉발, 북방 지역의 개발과 거주 확대에 따른 지역인식의 변화, 중국 중심의 공간적 사고에서 탈피할 수 있었던 조선 후기의 일부 사조등의 측면에서 파악이 가능하다.

 

 

<전통적 지형인식 체계-대동여지전도>

   

   4) 정약용의 『大東水經』

 

   실학의 집대성자로 잘 알려진 정약용(1762∼1836)은『我邦彊域考』,『我邦備禦考』,『대동수경』등 주목할 만한 지리 관계 저술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대동수경』은 가장 지리적인 저술로서 하천지에 대한 그의 특별한 관심의 결과이다. 국가적 사업으로 하천지 편찬이 이루어지기를 바랐으나 특별한 관심을 보였던 정조가 급사하고 자신도 긴 유배생활을 하게됨에 따라 직접 저술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리서 저술에 있어서 정약용은 규장각 招啓文臣을 겸하면서 일찍부터 인물, 시문 중심의 지리서 보다 강역, 역사, 산천, 전쟁 등의 사적 중심의 새로운 지리서를 편찬할 것을 제안하였다. 즉 강역의 구분을 세밀하게 표시하고 고금의 연혁을 자세하게 기록하며, 산은 그 줄기를 기록하고 강은 원류와 지류를 구분하며, 古事는 모든 전쟁에서의 공격 방어의 사적을 아주 상세히 기록하되 효자 열녀등 인물은 뛰어나게 순수하고 정직해서 온 세상에 다 알려진 사람이 아니면 생략하고 제영에서는 백에 하나 정도를 남김으로써 규례를 엄격히 하여 편찬할 것을 주장하였다.

   『대동수경』은 우리나라 하천 및 지류의 유로, 하천 유역에 있거나 그와 관련된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실, 관방 등을 기록한 책이다. 압록강, 두만강,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임진강 등 주요하천이 발원하여 바다로 들어가기까지의 유로 및 주요 지류의 경로를 經으로 기록한 후 注에 하천이 통과하는 곳의 상세한 지명, 역사적 사실, 여러 문헌의 기록을 발췌하여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기술한 하천에 관한 지리지이다. 그 특징을 보면 첫째, 기존의 전통적인 지리서의 체제에서 벗어나 특정한 주제와 대상을 가지고 서술한 자연지리서이다. 즉, 하천을 중심으로 서술한 조선시대의 유일한 지리서로서 발원지, 흐르면서 거치는 군현,마을 골짜기 벌판, 중간에서 합치는 물의 발원지 경유지사적 등을 세밀하게 기록하여 지역과 이에서 일어났던 역사의 전개과정을 살필 수 있다. 둘째는 문헌(중국, 일본, 조선)을 고증하여 잘못된 점을 바로잡고 중국과 다른 독자적 하천체계를 구축하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중국은 북부의 하천을 河, 남부의 하천을 江이라 하였는데 정약용은 우리나라의 하천을 모두 水라하여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고자 하였다. 셋째, 중국,조선, 일본의 문헌 중에서 산천, 특히 하천에 관련된 내용을 뽑아 면밀하게 비교 검토한 역사지리서이며 지도를 깊이 참조하여 답사가 부족한 면을 보충하였다.

   『대동수경』의 가장 큰 특징은 하천을 주제로 계통적 접근을 시도했던 유일한 저술이라는 점인데 이는 당시 생활에서 수로가 차지하고 있던 위치를 인식하고 이를 정리하고자 했던 것이며 전체적으로 조선중심의 공간인식을 반영하여 실학적 지리관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5) 김정호의 『東輿圖志』,『輿圖備志』,『大東地志』

 

   지도제작자로 잘 알려진 김정호(?∼1864)는 이에 못지 않은 많은 지지서를 저술하였는데 『東輿圖志』,『輿圖備志』,『大東地志』등이 그것이다. 김정호가 활동하던 시기는 여지승람이 편찬된 지 300년이 지난 후여서 문물이 많이 변화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수정, 보완이 필요한 때였다. 김정호의 지지서 저술 동기는 바로 이러한 이유였는데 따라서 체제를 여지승람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김정호는 지도를 제작하기 위하여 지지를 작성하였는데 동여도지는 청구도 제작에, 輿圖備志는 동여도 제작에, 大東地志는 대동여지도 제작에 각각 기초 자료로 활용되었다.

   『동여도지』에는 지역별지지 외에 역대 주현, 역대 강역, 역대풍속, 역대관제, 程里考가 수록되어 역사지리적인 내용과 도로에 관련된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대동지지』에는 각 군현 지지를 앞에 두고 후반부에 산수고, 변방고, 정리고, 方輿總志(역대지) 등을 수록하였다. 『대동지지』의 체제는 『동여도지』의 것을 한층 발전시킨 형태로서 『동여도지』에 포함된 내용에다가 산맥과 하천의 흐름, 국방문제 등을 강화한 것이다. 각 지역 단위로 지역의 성격을 기술하는 지역별 지지와 그리고 강역, 도로, 국방, 산천 등 자연환경과 주제별 지리학을 결합시킨 독특한 구성 형태로서 주목되는데, 이는 조선 전기의 전국지리지 편찬과 조선후기 읍지 편찬의 맥락을 계승한 후, 조선 후기에 새로이 꽃을 피운 실학적 지리학의 연구성과를 지지에 종합하여 집대성하려는 시도였다.

   고산자 지지의 내용상의 특징을 요약해 보면 첫째, 인물, 성씨, 시문에 관련된 내용의 삭제, 항목을 통합하였는데 항목을 보다 체계적으로 조정하고 이를 통하여 지역의 종합적 특성을 전달하려는 목적이었다. 둘째는 군사적 측면을 강조한 점이다. 典故조를 독립항목으로 설정하여 외국의 침략과 그 지역에서 일어났던 역대 전투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셋째, 내용의 철저한 사실성과 고증을 기초로 한 지지 편찬의 과학적 자세가 돋보인다. 또한 계속적인 보완을 통해 지역의 변화상을 반영하고자 하는 노력이 작용하였다. 넷째, 자주사상이 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에는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말로 '청구', '左海', '동국' 등의용어를 사용하였으나 후기에 이르면 '대동'으로 표현한 것이나, 편찬연대를 "신라시조원년갑자..."로 표현한 것에서 이러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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