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리/문화 역사

명당이란?-가야산 남연군묘

Geotopia 2013. 4. 10. 23:44

  명당의 대명사로 알려진 남연군묘.

  충남 예산, 서산의 경계를 이루는 가야산의 동쪽 기슭에 자리를 잡고있다.  '2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라는 지관의 말에 따라 대원군이 그의 부친 묘소를 이곳으로 옮겼다. 그 후 그의 아들이 대한제국의 황제가 되었으니 단순하게 생각하면 맞는 말인 듯 하지만 결국 그 후손에 이르러 조선왕조가 멸망하고 일제에 나라를 넘겨주었으니 과연 '명당'이 맞는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천자의 지위를 누렸으나 나라는 망했으니 이건 아무래도 명당이 아니다. 침몰해가는 배에서 선장 노릇을 하는 것도 출세라고 한다면 맞는 말이지만. 

  도참적인 음택풍수가 유행하던 조선후기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장소이다. 풍수가 가문과 개인의 영달을 위한 장소인식체계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성격은 지금까지도 상당히 많이 남아있다. 사회적으로 공동의 선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실종하면 민중은 야생동물처럼 각자 살길을 찾는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명당'은 구세주와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 더욱이 그런 장소들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은 대개 권력을 가진 지배집단이었으므로 민중들은 당연히 명당과 권력을 동일시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장소를 차지하기 위한 세력다툼이 빈번하게 일어나곤 했다. 이곳 역시 이런 양상이 잘 나타나는 장소이다. 남연군묘 이장 이전에 이 마을에는 파평윤씨가 세거하고 있었으나 남연군묘 이장과 함께 이 마을에서 쫓겨났다. 심지어는 판서와 참판을 지낸 윤봉오, 윤봉구 형제의 묘가 공주와 옆 마을로 이장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정2품의 판서와 정3품의 참판을 배출한 세도가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왕가의 권력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장소를 침탈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묘에서 바라본 상가리>

 

 <남연군묘 전경>

 

<묘 앞의 장명등에서 바라보면 명당의 조산(祖山)인 봉수산이 보인다>

 

<가야산에서 바라본 봉수산. 안개속으로 가장 멀리 보이는 산으로 예당평야 건너편에 있다>

 

<저수지 아래쪽(사진에서는 저수지 왼쪽/ 사진의 가운데 부분) 작은 숲 아래가 남연군묘이다. 20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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