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태안 34

[토크영상]산촌-태안반도를 이해하는 키 워드

▣ 산촌은 매우 예외적인 우리나라, 태안반도를 규정하는 대표적인 문화경관 산촌, 자연적 배경(비산비야, 리아스식 해안), 역사적 배경(고대 삶의 터전, 고려시대 이후 조운의 요충지, 특수취락, 고려시대말 왜구 침입) ▣ 역사적 배경(왜구의 침탈, 조선 초 방어 기능 강화, 그러나 조선초까지는 인구가 많지 않았다, 임진왜란 이후 인구 증가), 사회·경제적 배경(은거, 산거, 밭농사 중심, 논 중심의 소작제도, 지주-소작 관계, 독특한 분가 방식, 독특한 택지 선정 원칙)

충청남도/태안 2023.11.22

산촌(散村): 태안반도를 이해하는 키워드

산촌(散村, dispersed settlement), 태안반도를 규정하는 대표적인 경관이다. 해안지형, 국립공원, 농수산 특산물 등 많은 지리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 태안반도지만 특히 산촌은 태안반도의 다양한 특징들을 포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리적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촌락 형태는 집촌(集村, agglomerated settlement)이 일반적이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벼농사가 기반이 되기 때문인데 벼농사는 협동노동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영농이 불가능하므로 집촌을 형성한다. 따라서 태안반도에 발달하는 산촌은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예외적인 현상으로 그 자체로 큰 지리적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태안반도의 산촌은 그 자체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예외적인 현상이 만들..

충청남도/태안 2023.11.11

[토크 영상] 굴포운하(II)

▣ 굴착 실패 원인에 대한 문제 제기 : 단단한 화강암 / 석비레 층 / 화강암이 아닌 곳도 있다 / 거의 다 뚫었었다 / 안면도는 뚫었다 ▣ 굴착 실패 원인에 대한 문제 제기 : 안면도는 뚫었다 / 화강암을 다루는 기술 / 조수를 막는 토목 기술 / 만약 뚫었더라면? ▣ 굴착 실패 원인에 대한 문제 제기 : 만약 뚫었더라면 / 뚫었더라면 조수를 활용할 수도 있었다 ▣ 여러가지 걸림돌들 : 노동력이 부족한 散村 / 풍수지리 / 관리들의 비리와 태만 ▣ 굴포운하로 나타나는 태안 지역성 ▣ 드론 영상으로 보는 굴포운하 ☞ 굴포운하[ I ] [토크 영상] 굴포운하-이루지 못한 500년 꿈 ▣ 1부: 조운체제와 굴포 역사 / 도대체 안흥량이 어땠길래? 정낙추선생님(소설가, 시인, 해양문화포럼기획운영위원, 전 태..

충청남도/태안 2023.10.26

[토크영상] 안흥진성으로 보는 태안

▣ 태안의 지리적 위치, 태안의 지리적 위치와 역사, 농업·방어에 불리한 지질구조와 지형, 살 곳으로 만들기 위한 왕실의 노력, 조운과 안흥진, 조운관련 지리적 조건, 조선 초 잦은 조운선 사고 ▣ 관장목을 피하기 위한 시도, 의항운하, 임진왜란 이후 안흥진 위상 강화: 군사적 의미, 정치적 변동에 따라 위상 변화, 수군 진영과 군관 체계, 임진왜란 이후 인구 증가

충청남도/태안 2023.10.09

안흥진, 무너미재, 소근진성 답사

▣ 답사 경로 안흥진성(용굴 - 서문 - (성벽길) - 태국사 - 북문 - 동문 - 남문) - 안흥항 - 안흥나래교 - 태안해양유물전시관 - 신진도항 - 물넘이고개(무너미재) - 소근진성 ▣ 안흥량과 안흥진성 안흥진(安興鎭) - sillokwiki 조선후기 충청도 태안군 근서면에 설치한 수군 거진. 개설 안흥진은 1609년(광해군 1) 충청도 태안군 근서면에 설치한 수군 거진(巨鎭)이다. 안흥진은 방어영으로 승격되거나 충청도 수영의 행영( dh.aks.ac.kr ▶ 끊임없는 해난사고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규모가 큰 조운선 사고를 간추려 보면, 태조 4년(1395) 경기도 조운선 16척이 난파되었고, 태종 3年(1403)의 5月 경상도 조운선 34척의 침몰과, 같은 해 6月에는 경상도 조운선 30척의 ..

충청남도/태안 2023.08.06

조운선 침몰에 관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 「太祖實錄」4년 8월 戊辰 忠淸道漕運船十艘, 慶尙道漕運船十六艘, 遇風摧敗 충청도 조운선(漕運船) 10척과 경상도 조운선 16척이 바람을 만나 파선되었다. ▣ 「太宗實錄」3년 5월 辛巳 慶尙道漕運船三十四隻, 沒于海中, 人死者甚衆。 萬戶使人搜之, 依島而生者一人, 見之而走, 追執之, 問其故, 答曰: "欲遯去薙髮, 離此苦也。" 上聞之, 嘆曰: "責乃在予。 豈非驅萬人就死地乎? 五日, 於陰陽爲受死, 且風氣甚惡, 非行船日也。 知其風惡而發船, 此實驅民而就死地也。" 問左右曰: "人之死者幾, 米之失幾?" 左右不能對。 上曰: "大槪幾何?" 左右對曰: "米則萬餘石, 人則千餘名。" 上曰: "米雖多, 不足惜也, 人之死者, 甚可憫也。 其室家之心, 爲如何也? 漕運之苦如此, 船軍不堪其苦, 而逃散宜矣。" 右代言李膺曰: "陸轉則其難尤..

충청남도/태안 2023.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