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리/음식문화

슬리보비츠, 자두 브랜디

Geotopia 2020. 8. 18. 01:52

▣ 체코 술, 무엇으로 만들까?

 

  유럽에서는 보리, 밀, 포도, 감자 등이 술의 원료로 주로 사용된다. 지역별로 명확하게 원료의 분포를 구분할 수는 없지만 서유럽에서는 보리(맥주, 위스키), 남유럽에서는 포도(와인, 브랜디), 동유럽에서는 감자나 밀(보드카)이 많이 쓰이고 있다.

  체코는 어떨까?

  독일과 인접한 체코는 서유럽에 가까운 동유럽 국가로 냉대습윤기후(Df)가 나타난다. 따라서 보리나 밀이 잘 자라며 서늘한 기후라서 감자도 잘 된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보리나 밀로 만든 맥주가 유명하고 호밀이나 감자로 만드는 보드카도 잘 알려져 있다. 

  체코를 대표하는 술 중에 슬리보비츠(Slivovitz)라는 술이 있다. 맥주도 아니고 위스키도 아니며, 보드카도 아닌 이 술은 과일주인 브랜디의 일종이다. 유럽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브랜디는 프랑스의 꼬냑이다. 하지만 체코는 질 좋은 포도가 나지 않기 때문에 꼬냑같은 좋은 포도 증류주가 생산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슬리보비츠는 어떤 과일로 만드는 브랜디일까?

 

슬리보비체 10년산

 

  슬리보비츠(Slivovitz)라는 이름은 "slivka/sliva"라는 낱말에서 비롯되었는데 "slivka/sliva"는 '자두'를 뜻하는 슬라브어 이다. 즉 슬리보비츠는 자두로 만든 브랜디인데 체코뿐만 아니라 발칸 반도에서 체코에 이르는 동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만들어진다. 자두는 유럽이 원산지로 남부유럽의 이탈리아에서 북부유럽의 노르웨이에 걸친 거의 전 지역에서 자랄 수 있다. 자두 브랜디가 어느 지역에서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원산지인 유럽에서 탄생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탄생지가 남부 유럽이 아닐 것이라는 점도 추측이 가능하다. 남부유럽은 포도가 잘 되기 때문에 굳이 자두를 술의 원료로 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자두처럼 새콤, 달콤한 맛일까?

 

  슬리보비츠는 자두를 발효시킨 원액을 증류한 다음 숙성시키는데 특별히 향신료를 넣지는 않는다. 독특한 향이 나는데 바로 자두 씨앗 때문이다. 발효시킬 때 과육과 함께 씨앗을 으깨어 넣는다. 씨앗에는 아몬드 성분인 아미그달린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데 그것이 독특한 향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향은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다.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좋은 향과 맛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 

 

  은은한 갈색에 자두 이미지가 겹쳐서 매우 기대가 부푼 상태로 맛을 봤다.

  이건 뭐지?

  분명히 생전 처음 마셔보는데 어디선가 한 두번은 맛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넘기자 마자 곧 이어 목구멍을 엄습하는 강한 알콜 냄새는 꼬냑이나 스카치위스키가 왜 유명한지를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꾹 참고 한 잔은 마시리라는 다짐을 두 모금 마시고 접었다. 뒷맛으로 남는 강렬한 향은 쑥향 비슷한데 내가 맛 본 술 가운데 가장 맛이 없었던 술과 닮았다. 엄청난 향 때문에 도저히 마실 수 없었던 그 술은 '압생뜨(Absinthe)'라는 술이었는데 압생뜨는 쑥을 포함한 3종류의 허브를 넣어서 만든다. 고호가 즐겼다는 값이 싼 술이다. 

  복숭아 씨앗이 떠오른다. 어렸을 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쓰고 신맛이 났던 것 같다. 모습은 아몬드처럼 생겼지만 먹을 수 없는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