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아산의 지리환경/역사지리

지명의 변화: 영웅바위

Geotopia 2019. 10. 27. 01:46

  1894년 6월 6일, 청군이 백석포에 상륙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백석포에서 근무하던 일본 상사 직원이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조사, 보고서를 작성하여 인천의 본사로 보냈다. '京 第30號, 淸國軍 牙山 上陸에 따른 諸 報告'라는 이 보고서에는 당시 청군 주둔과 관련하여 비용과 인력을 마련하기 위해 취해진 정책들이 자세하게 조사되어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청군 군함이 닻을 내린 곳은 '여흥암(礪興巖)'이라는 바위이다. 아산만 연안은 수심이 얕아 청국 군함은 수심이 깊은 아산만 한가운데까지만 올 수 있었고 둔포, 백석포 등 인근 포구에서 작은 배들을 징발하여 백석포로 청군을 상륙시켰다.

  그런데 '여흥암'이라는 바위는 당시 고지도나 고문헌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여러 종류의 고지도에 아산만 중심부에 있는 바위섬이 표기되어 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실제 위치는 행담도의 동북쪽이었다. 그런데 모두 여흥암이 아닌 다른 이름이다. 「지승」,「대동여지도」에는 '영옹암'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어감이 '여흥암'과 비슷했기 때문에 일본인 상사 직원이 오기했을 가능성이 크다.

  재미있는 점은 이 바위는 시대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고 한자 표기 오류도 발견된다. '영(令)'이 '영(㚑)'이나 '영(永)'으로 바뀌기도 했고, 심지어는 모양이 비슷한 '합(合)'으로 바뀌어 기록되기도 했다. 군현별로 차이를 보이기도 하는데 1872지방지도의 경우 수원부 지도에는 '合翁巖'으로, 아산현 지도에는 '㚑翁巖'으로 기록되어 있다. 해방 이후에 이르러서는 음도, 한자 표기도 전혀 다른 '영웅바위'로 변했다.


  

  [지승(地乘): 18세기 후반]

[광여도(廣輿圖): 19세기 초반]

[대동여지도(19세기 중반]

[1872 지방지도]

[지형도(1919)]

[지형도(1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