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아산의 지리환경/역사지리

아산의 驛과 院

Geotopia 2016. 5. 16. 10:34

▶ 驛에 비해 드문 院


  院은 국가에서 설치했던 숙박시설이다. 원은 숙박을 전문으로 하는 客舍를 중심으로 설치되었으며 아산시 인근에는 인후원, 신례원, 요로원이 잘 알려져 있다. 역이 각 군현 별로 1개씩 설치되었던 것에 비해 원은 군현 소재지와 무관하게 설치된 경우도 많았다. 대개는 교통의 요충지에 설치되는 경향이 있었는데 요로원도 그런 예이다. 즉, 직산과 아산을 연결하는 길과 신창에서 평택으로 가는 길의 교차점에 요로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예산의 신례원이나 홍주의 인후원도 역시 주요 도로의 교차점에 자리잡고 있었다. (☞ 요로원의 자취가 요란슈퍼로 남아있다 http://blog.daum.net/lovegeo/6780769)

  院은 驛과 짝을 이뤄 '驛院'으로 흔히 통칭된다. 숙박시설이었던 원과 비교할 때 역은 국가에서 설치, 관리했던 교통·통신 기관이었다. 조정의 명령을 전달하고 관리나 외국 사신, 또는 군사의 왕래 등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한 기관이었다. 이를 위해 말을 키우고 숙박 시설을 갖추었다. 대동여지도에는 '역참(驛站)'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참(站)'은 중국식 표현으로 고려시대 원나라 침략기 이후로 쓰이기 시작하였다. 

  역과 원은 기능이 겹치기도 하지만 다소 차이가 있었다. 대동여지도에는 역은 기호로 표시한 것에 비해 원은 기호 없이 이름만 써 놓았는데 같은 곳에 설치하지는 않았다.

  아산시 관내에는 세 개의 역이 있었는데 군현이 3개였으므로 3개가 있는 것이다. 온양군의 역은 온양읍치 남쪽 4km지점에 있었는데 지금의 송악면 역촌리이다. 이곳은 조선시대 時興驛이 있던 곳으로 '驛村里'라는 지명으로 그 자취가 남아있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군현의 10리 안쪽에 驛이 설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지도에서 院은 요로원 하나 뿐이다>


  신창현의 역은 '昌德'이었는데 지금의 창암리에 있었다고 전한다. 대동여지도에 따르면 창덕역은 신창에서 곡교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 지도로 보면 창암리는 신창읍치의 남쪽으로, 신창-온양 간 도로에 가깝다. 대동여지도의 오기인지, 아니면 행정구역 통폐합 이후 이름이 잘못 정해진 것인지(창암리는 일제 강점기까지 창덕리라는 이름으로도 쓰였다. '驛'자를 이름에 넣지는 않았지만 과거 역이름을 그대로 마을 이름에 썼던 것이고, 지금 남아 있는 지명도 그 중에 한 글자인 '昌'자를 넣은 것이다), 그도 아니면 과거의 길이 지금과는 달리 신창읍치에서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곡교 방향으로 간 것인지는 명확하게 규명된 것은 없다.


<창덕역이 있었던 곳으로 알려진 창암리>


  아산현에서는 읍치에서 둔포 방향으로 가는 길에 '長時'라는 역이 있었으며 '驛里'라는 지명으로 남아있다. 아산읍치와 영인면 역리와의 거리는 2km 남짓으로 상당히 가깝다. 역촌리, 역리, 역말 등은 과거 '역이 있던 마을'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전국적으로 많이 남아있는 이름이다.


<아산현 관아지와 영인면 역리>


▶ 여기서 잠깐! 조치원은 원이 아니다


  조치원은 院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연기현 주변에 '조치원'이라는 이름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으며 공식적으로 조치원이라는 원 이름은 기록에도 전하지 않는다. 場院이라는 다른 이름이 기록에 전하는 것으로 보아 비슷한 곳에 원이 있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 이름이 조치원은 아니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조치원은 최치원이 이곳에 와서 상업을 장려한 것과 관련하여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 공수리(公須里) : 역에 딸린 토지가 있던 곳


  역원의 운영 경비는 어떻게 충당하였을까?

  둘 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기관이었으므로 경비는 국가가 부담했다. 지금처럼 현금이 지급되었을리는 없고 토지를 사급 받아 운영 경비를 충당하였는데 원에 지급되는 토지는 원위전(院位田), 역에 지급되는 토지는 공수전(公須田)·관전(館田)이라 하였다. 

  여기서 주목을 끄는 것이 있는데 바로 '공수전'이다. 아산시 배방읍에는 '공수리'라는 마을이 있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물 水'자 이름이 아니고 '모름지기 須'자를 쓴다. 그런데 옛 이름을 찾아 보면 '아산군 일동면 공수리'와 '천안군 군서면 공수동'이라는 똑 같은 이름이 등장한다. 이곳은 행정구역 통폐합 때 합쳐져서 지금의 음봉면 산동리가 되었다. '公須'라는 낱말은 '공적(公的)인 쓰임. 관(官)의 비용' 이라는 뜻이다. 한자 표기로 볼 때 '공수전'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위치를 알아보자. 위치가 驛과 가까운 곳이라면 그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고 볼 수 있다. 먼저 배방읍 공수리는 과거 온양군에 딸린 역이었던 시흥역(時興驛)과 직선거리로 약 6km 정도 떨어져 있다. 따라서 배방읍 공수리는 온양군 관아 남쪽에 있었던 時興驛의 공수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배방읍 공수리와 송악면 역촌리>


  음봉면 산동리는 천안시 서북구 백석동과 붙어 있다. 이곳 역시 역에 지급했던 공수전과 관련이 있는 이름이라고 가정하면 이곳은 '新恩驛'의 공수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신은역은 호남로 상에 있던 역으로 천안현의 북쪽에 있었다. 역시 '역말오거리'라는 이름으로 자취가 남아 있는데 천안시 신부동과 천안시 두정동의 경계 지점으로 국도 1호선 상에 있다. 역말오거리와 산동리-백석동 경계 지역은 거리가 5km 정도이다. 따라서 신은역에 지급되었던 공수전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역말오거리와 산동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