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아산의 지리환경/역사지리

고분다리(曲橋): 서울로 가는 가장 빠른 육로

Geotopia 2016. 5. 16. 09:43

▶ 고분다리(曲橋): 신창현과 아산현을 연결하는 다리



  신창현은 당진 쪽과 예산 쪽에서 올라온 길이 만나는 곳이었으며 합쳐진 길은 다시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하나는 신창면 남성리-아산시 배미동을 거쳐 곡교천을 건너는 길로 이어졌고 다른 하나는 온양군 읍치로 이어졌다. 온양읍치로 가는 길은 순천향대학교 앞을 거쳐 구온양으로 가는 옛길과 거의 일치하는 길이었다. 두 길 가운데 곡교천으로 이어지는 길이 더 중요한 길이었는데 이 길은 호남대로와 가장 빨리 연결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즉, 이 길은 호남대로의 소사(대략 천안시 성환읍, 평택시 유천동, 안성시 공도읍의 경계 지점)로 연결되어 내포 일대에서 한성부에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육로였다.


<대동여지도>


  대동여지도에 따르면 곡교천을 건너는 주요 나루는 두 곳이 있었는데 하나는 삽교천과 합류하는 지점 부근에 있었던 견포(犬浦)였고 또 하나는 바로 배미동에서 염치면 곡교리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견포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포구였는데 바닷물이 드나드는 감조 구간이어서 배가 없으면 하천을 건널 수가 없었다. 곡교리로 건너가는 길은 역시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다리가 있었다. 배를 타고 건너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었고 또 돈이 필요했을 것이므로 사람들은 다리를 건너는 길을 더 많이 이용했을 것이다.


▶ 그곳에 다리가 있었던 이유


  '曲橋'는 '고분다리(굽은 다리)'를 한자식으로 표현한 이름으로 하천의 폭이 좁아져서 배가 들어올 수 없는 시작 지점이었다. 곡교리의 아랫쪽으로는 新浦, 中方浦 등의 포구가 있었으며 이곳까지는 대동여지도에 쌍선(배가 드나들 수 있는 하천은 두 줄로 표기했다)으로 표기되어 있다. 곡교는 중방포의 상류 쪽에 있었는데 하천의 폭이 좁아지고 수심이 얕아져서 배가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고, 따라서 당시의 기술로 다리를 놓는 것이 가능한 곳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염치면 일대의 범람원 평야와 곡교리. 사진에서 하천 건너에 있는 마을이 곡교리이고 멀리 보이는 저수지는 염치저수지이다>


<곡교천 북쪽, 염치면 일대의 범람원 평야>


▶ 여담 한 마디: 김정호도 전지전능하지는 않았다


  신포와 중방포는 지금의 염치면 중방리 일대에 있었는데 대동여지도에는 '中木浦'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 후기까지 중방포리로 쓰였던 것을 볼 때 대동여지도의 오기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실수들은 대동여지도에서 가끔 눈에 띄는데 정보 수집 과정, 표기 과정에서 충분히 오류가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료를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도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