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옥상 화분에서 자라는 병꽃나무 가지에 애벌레가 잔뜩 생겨서 깜짝 놀라 가지를 자른 적이 한 번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뒤로는 더 생기지 않아서 안도를 했었다. 못 보던 벌레라 검색을 해보니 미국흰불나방 애벌레라고 한다. 1화기에는 나뭇잎을 말고 거미줄 같은 줄을 쳐서 그 안에 알을 낳고, 부화하면 그 안에서 고물고물 모여 산다는데 딱 그 모양이었다. 이 녀석들은 털이 없고 작다. 이때 나뭇가지를 잘라버리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제법인데 이 시기를 놓치면 이 녀석들이 주머니를 빠져 나와서 나무 전체로 옮겨가며, 그 나무에서 먹이가 부족하면 다른 나무로 이동하기도 한다. 가지를 자른 것이 우연히 방제를 제대로 한 셈이 되었다.
그런데 올해는 1화기의 벌레가 없었다. 너무 더워서 미국흰불나방이 힘을 못쓴다는 얘기가 들려서 다행스럽다고 생각했었다. 작년에 벌레가 생겼던 병꽃나무를 매일같이 유심히 살폈지만 다행이 녀석들의 흔적이 없었다. 그런데…
10월 초, 어느날 갑자기 옥상 병꽃나무에서 가지 하나에 다닥다닥 붙은 2화기의 벌레들을 발견했다. 들판에서는 이미 작년과 마찬가지로 가을에 접어들면서 벚나무를 필두로 나무들이 이 놈들에게 초토화되기 시작했었다. 피해 정도가 작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상황이 그 지경인데 우리집만 나방이가 피해갈 리가 없다. 1화기 애벌레도 징그럽지만 삐죽삐죽 털이 달린 2화기 애벌레는 머리가 쭈뼛 설만큼 더욱 징그럽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다른 가지로 옮겨 가기 전이라서 가지 두어 개를 제거하는 것으로 참사를 막을 수는 있었다.
이 추세라면 내년에도 또 발생할텐데 걱정이다. 우리집 옥상이 걱정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걱정이다. 천적이 없는 외래종에 초톼화되는 것은 아닌지…
☞ 가을에 벚꽃이 피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