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량화가 어려운 '적당히'
잎을 '적당히' 따줘야 열매가 잘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으나 그 정도가 잘못되었던 것 같다. 추석을 맞아 집에 오신 숙모님께서 이렇게 잎을 따주셨다. 이쁘게 머리 단장을 한 것 같다. 속이 훤히 보이는 것이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수시로 잎을 따준다고 따줬지만 너무 많이 따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었다. 너무 많이 따버리면 광합성 양이 줄어들어 열매가 덜 맺힐 것이라는 얄팍한 생물학 지식 덕분이다. 작년에도 잎을 따주셨기 때문에 그 정도를 경험했었는데도 일년 사이에 그 '적당히'의 정도를 잊었다. 농사는 계량화할 수 없는 기술이 많이 필요한 '예술'이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기억력도 좋아야 하고 명석해야 한다. '적당히'를 잘 기억하고 해마다 새롭게 적용을 해야 하므로.
▣ 잎을 따주면 열매가 많이 달린다
잎을 따주면 열매가 많이 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렸을 적에 콩밭 옆을 지나는 소가 콩 잎을 한 잎 가득 베어 물어도 어른들은 말리지를 않았다. 우리 꼬맹이들은 콩 잎을 따서 말아쥔 손에 올려놓고 반대 손으로 내리쳐서 '빵!' 소리를 내는 놀이를 즐기곤 했었다. 농작물을 훼손 한다고 야단을 맞을만도 한데 역시 어른들에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없다. 무리 중에는 뭔가 아는 친구가 있기 마련인데 누군가가 '소가 콩 잎을 뜯어 먹으면 열매가 많이 생긴다'는 소리를 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었지만 알고보니 그 친구가 선각자였다.
▣ 위기의식: 종족 보존을 위한 본능
열악한 환경은 식물들의 종족 보존 본능을 자극한다. 고구마를 영양이 풍부한 땅에 심으면 잎만 무성하게 뻗는다. 잎이 이렇게 무성하니 뿌리는 얼마나 클까 기대를 하지만 실은 그 반대다. 소나무는 매연이 심한 도로변이나 사람이 많이 지나 다녀서 바닥 상태가 좋지 않은 곳에 있으면 솔방울을 많이 매단다. 모두 종족 보존 본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잎을 따는 것은 가지를 괴롭혀서 위기의식을 유발함으로써 수확량을 늘리는 행위이다. 거름 주기도 수확량을 늘리기 위한 행위지만 일단은 작물을 배불리 먹이는 방법인데 비해 잎을 따는 것은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작물을 괴롭히는 방법이다.
▣ 궁금증
그런데,
식물들은 무엇으로 상황 변화를 감지하고 거기에 적당한 반응을 하는 것일까? 동물은 뇌를 통해서 명령을 내리지만 식물은 그런 중앙처리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상황 변화를 느끼고 거기에 맞는 적응 전략을 펼친다니 신기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