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지리 시사자료

누벨 칼레도니 독립 투표

Geotopia 2018. 10. 5. 16:20

   '독립운동'

 

  우리에게 독립운동은 곧 죽음을 불사한 투쟁을 의미한다.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의 선조들은 국내에서, 국외에서 엄청난 피를 흘렸다. 그래서 일제의 잔혹한 식민통치로 인한 아픔은 7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모두의 가슴과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최근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 아마도 이런 민족 정서가 히트의 배경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독립이 투표로 결정된다고?

 

  우리 역사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지금 남태평양의 섬나라 누벨칼레도니(Nouvelle Calédonie/New Caledonia)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오는 11월에 역사적인 독립 투표가 치러질 예정이다. '투표'라는 평화적 절차를 통해 독립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하지만 '독립'이라는 낱말 속에는 이미 '차이'가 내재되어 있으며 어떤 형태로는 갈등이 있어왔을 개연성이 크다. 평화적 절차가 제시되기까지는 누적된 갈등과 누군가의 노력, 나아가 희생이 있었다는 의미이다.

  몇 해 전(2014년)에는 영국의 스코틀랜드가 독립 투표를 했던 '사건'이 있었다. 55%가 반대해서 부결이 되었지만 여전히 스코틀랜드 독립 논의는 진행 중이다. 만약 그 때 찬성이 과반수를 넘었다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투표를 통해 스코틀랜드라는 독립국가가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스코틀랜드인들이 독립을 요구하는 배경에도 이런 차별 의식이 깔려 있다. 1707년에 잉글랜드 왕국과 통합이 되어 무려 311년이나 지났음에도 스코틀랜드인들은 잉글랜드인들로부터 정치경제적 차별을 받고 있다는 피해 의식이 강하다고 한다. 또한 독립이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할 것이라는 기대심리도 독립 요구를 높게한다. 스코틀랜드 독립주의자들은 북해유전과 넓은 경제수역을 독점함으로써 보다 나은 경제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누벨 칼레도니 독립 투표 역시 역사적 갈등과 투쟁의 소산이다. 또한 더 나은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누벨 칼레도니의 상징 깃발]


  누벨 칼레도니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프랑스령이다. 1853년 당시 지배국이었던 영국으로부터 프랑스가 전쟁으로 이 땅을 빼앗았다. 그러니까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지 이제 165년이 되었다. 뉴 칼레도니아라는 영국식 이름에서 누벨 칼레도니로 이름이 바뀐 것도 이런 역사 때문이다. 이후 프랑스 정치범, 기타 범죄자들의 유형지로 활용되었는데 이 정책은 1922년에야 끝이 났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연합군의 기지로 쓰였고, 전쟁이 끝난 후 1956년에 프랑스의 해외 영토로 통합되어 주민들이 모두 프랑스 시민이 되었다. 1976년에 자치가 허용되었지만 고위행정관을 본국에서 임명하여 파견하였다.

  1985년부터 원주민을 중심으로 카나키(kanak) 민족해방전선의 독립 운동이 시작되었다. 1989년 독립운동 지도자 장 마리 티바우가 암살되면서 유혈 사태로 비화하여 1988년 갈등이 절정에 달했다. 이에 프랑스는 마티농협약(1988), 누메아협약(1998) 등의 협약을 통하여 자치권을 확대 허용하였다. 카나키 민족해방전선은 자치권을 비롯하여 상징 깃발 사용, 누벨 칼레도니 자체 시민권 등을 확보하였다. 또한 2014년 이후 독립을 비롯한 중요 사안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함으로써 이번 독립투표가 가능한 법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현재 누벨 칼레도니의 민족 구성을 보면 원주민인 멜라네시아계 44.1%, 유럽계 34.2%, 기타(폴리네시안, 타히티인, 베트남인, 일본인 등) 21.7%다. 원주민이 많은 수를 차지하기는 하지만 과반을 넘지 못하므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의견이 인종별로 명확히 갈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니켈 등 자원이 풍부하여 국민소득이 3만5천 달러에 이를 만큼 잘 살고 있다. 그래서 많은 시민들은 독립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한다. 독립주의자들은 이러한 부를 독점함으로써 더욱 경제적 지위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얼마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하여 '시민들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프랑스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한 속내는 독립을 촉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프랑스령 잔류를 호소하기 위해서임이 자명하다. 또한 '가결된다면 독립을 허용하겠다'는 언명에는 국민투표가 부결될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원주민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거나 심한 경제적 차별을 받고 있다면 아마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었다면 독립투표는 당연히 가결될 것이다. 따라서 독립투표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단언컨데 멀쩡히 빼앗길 줄 알면서도 말없이 땅을 양보할 이상주의자 정치인은 지구상에 없다. 대신에 피비린내가 진동했을 것이다. 지구상의 분쟁 지역들의 공통점이다. 경제적 차별이 있는 곳에 분쟁이 있다. 그것이 민족, 또는 종교와 얽혀 상황이 더욱 복잡해지는 것도 공통점이다.

  11월에 치러질 누벨 칼레도니 독립투표,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여담 한 마디,

  최근 독립투표가 치러진 스코틀랜드와 곧 독립투표가 치러질 누벨칼레도니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원래 이 섬에 처음 발을 디딘 유럽인은 제임스 쿡이었다. 1774년 이 섬에 도착한 제임스 쿡은 자신의 고향 이름을 따서 New Caledonia라는 이름을 붙였다. 쿡의 고향 스코틀랜드의 옛 이름이 바로 칼레도니아이다. 쿡의 고향인 스코틀랜드에서 독립투표가 있었고, 쿡이 발견하여 자기 고향 이름을 붙인 뉴 칼레도니아에서 다시 한 번 독립 투표가 이루어질 예정이니 투표로 독립 여부를 묻는 두 번의 역사적 사건이 모두 '칼레도니아'에서 일어났다는 얘기다. 물론 두 사건 간의 역사적, 논리적 연관성은 없지만.

 

☞관련 기사 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809130177381901 [한국일보, 2018.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