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 서쪽을 지나간다!
19호 태풍 솔릭(Soulik)이 온 나라를 한바탕 흔들어 놓고 지나갔다. '6년만에 중부지방을 관통' 한다고 난리가 났었다. 그렇게 되려면 서해안으로 올라와야 되고, 서해안으로 올라오게 되면 태풍의 오른쪽인 위험 반원에 속해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는 한반도 남서부인 목포 부근으로 상륙해서 강원도 동해안으로 빠져나가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 후지와라 효과
이번 태풍은 또 온 국민의 지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후지와라 효과'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후지와라 사쿠헤이(藤原咲平, 1884~1950)라는 일본 기상학자가 처음 주장을 해서 그의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두 개의 태풍이 1,000km 이내로 접근하면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이다. 영향을 어떻게 미치는지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운데 두 개의 태풍이 하나로 흡수될 수도 있고 상호 간에 이동 속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솔릭과 시마론 사이에서도 후지와라 효과가 일부 나타났는데 솔릭의 이동 속도가 느려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두 개의 태풍이 만나면 왼쪽 태풍은 속도가 느려지고 오른쪽 태풍은 속도가 빨라진다. 왼쪽 태풍은 남쪽으로 가려는 성질이 있고, 반면 오른쪽 태풍은 북쪽으로 가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같은 방향(반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두 개의 태풍이 서로 근접하게 되면 서로의 회전이 영향을 받게 된다. 두 태풍 모두 같은 방향으로 회전하므로 만나는 부분에서 두 태풍 모두 회전이 방해를 받을 것이다. 왼쪽의 태풍은 자신이 오른쪽 부분을, 오른쪽 태풍은 자신의 왼쪽 부분을 각각 다른 태풍에게 방해를 받게 된다. 모든 태풍은 중위도 지역에서 오른쪽이 더 강하다. 다양한 형태로 후지와라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볼 때 이러한 태풍의 특징이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효과를 내지는 않는 것 같으나 일반적으로 왼쪽 태풍의 회전이 방해를 받으면서 속도가 느려지는 경향이 있다.
[*자료: 국가태풍센터. 2018.8.21]
[*자료: 국가태풍센터. 2018.8.22]
☞동·서로 밀려오는 2개 태풍에 예측불허된 '솔릭'의 경로 https://news.v.daum.net/v/20180821095603480?f=m [아시아경제, 2018.8.21]
['솔릭' 발생 드문 '도넛 태풍'.. 북상해도 위력 막강 *자료: KBS, 2018.8.21]
[*자료: 국가태풍센터. 2018.8.23. 10:45.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 태풍의 이동 속도가 느려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데 무서운 사실은 최근 태풍의 이동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후지와라 효과와 무관하게.
미국 해양대기청(NOAA) 국가환경정보센터(NCEI)의 연구에 의하면(제임스 코신 박사팀, 1949~2016 태풍 연구) 지난 68년 동안 지구의 열대성저기압의 이동속도가 10% 이상 느려진 것이 확인되었다. 특히 태풍은 이동 속도가 20% 정도 감소하여 다른 지역보다 더 느려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온난화'가 범인이다.
태풍은 적도의 열을 극 지방으로 이동시키는 메커니즘이다. 다만 대기대순환과는 달리 갑작스런 기온 상승으로 발생하므로 특급 이동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열 순환은 기온차와 관련이 있다. 기온차가 클수록 이동 속도가 빨라진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온난화는 중위도 지역까지도 여름철 기온을 높여서 적도 해상이나 중위도 해상이나 기온차이가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태풍의 이동 속도가 느린 이유이다. 만인의 적 온난화…
실제로 제주도에 도착한 태풍은 엄청난 강풍과 폭우로 많은 피해를 일으켰다. 이동 속도가 느렸기 때문에 더욱 피해가 컸다. 제주도에서는 심지어 시속 3km로 움직이기도 했기 때문에 더욱 큰 피해를 입혔다. 제주도에서 큰 피해를 입힌 다음에도 솔릭은 매우 느린 속도로 본토로 이동해왔다. 다행이도 남해를 통과하면서 이동 속도가 약간 빨라지기는 했지만 시속 15km에 불과한 느린 속도를 유지했다. 남해바다와 서해바다 일대의 수온이 매우 높다는 소식이 들렸다. 태풍이 느리게 움직일 수 밖에…
[*자료: 국가태풍센터. 2018.8.23. 12:45. 13:00경부터 북풍 계열의 바람이 약하게 불기 시작했다]
[솔릭의 최후 경로. 전남 해안으로 상륙해서 내륙을 관통하여 동해로 빠졌다]
▣ 갑자기 세력이 약해진 이유
그런데, 그 기세등등하던 솔릭이 목포 해안으로 상륙하면서 급격하게 세력이 약해졌다. 제주도와 남해안에 큰 피해를 입힌 다음이기는 했지만 그나마 중부 지방에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건 또 왜 그랬을까?
역설적이게도 제주도에서 오래 머무른 것이 그 원인이 되었다.
솔릭은 8월 23일 새벽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9시간 가량 제주도 서해상에 머물면서 시속 4~8㎞ 속도로 느리게 이동했다. 그런데 마침 그 해역이 수온이 10~14도인 '황해저층냉수(黃海底層冷水)' 지역이었다. 태풍은 열과 수분이 유지되면 세력이 유지되는 일종의 '자가발전 장치'이다. 따라서 그 둘 중 하나를 빼앗기면 급속하게 세력이 축소된다. 솔릭이 수온이 낮은 바다에 오래 머물다 보니 태풍의 세력을 키우는 데 필요한 열에너지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했던 것이다.
온 나라를 한 바탕 긴장 속으로 몰아넣었던 솔릭, 후지와라 효과니, 황해저층냉수니 공부도 많이 시켜준 솔릭. 본토에서는 한바탕 헤프닝으로 끝났지만 변화한 지구의 기후는 언제든 솔릭 이상의 태풍을 생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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