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지리 시사자료

쌍독수리 세레머니: 코소보 독립의 꿈

Geotopia 2018. 6. 25. 23:06

  2018 월드컵 예선 리그 스위스와 세르비아의 경기 중 골을 넣은 스위스 축구 선수가 독특한 골 세레머니를 선 보여 화제에 올랐다. 두 명의 선수가 동시에 손을 엇갈려서 흔드는 흔치 않은 세레머니는 곧 쌍독수리 세레머니로 인터넷에 퍼졌다. 두 선수가 FIFA의 제재를 받을 것이라는 소식도 함께 들려왔다.


■ 지구의 화약고 발칸반도


  '쌍독수리'

  알바니아의 상징이라고 한다. 스위스와 세르비아의 경기에 알바니아라니 난데없다. 이 난데없는 상황에는 발칸반도의 복잡한 역사가 배경으로 깔려있다. 발칸반도는 오랫동안 '세계의 화약고'로 불려왔다. 지금은 일촉즉발의 화약고 상태는 벗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불씨를 안고 있다. 가장 큰 불씨는 코소보 문제인데, 스위스의 두 선수가 바로 코소보 출신이라고 한다. 뭔가 흔치 않은 사연이 있음이 분명하다.


  20세기 후반까지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가 이 반도를 지배하고 있었다. 1929 유고슬라비아 왕국이 만들어졌고, 2차 대전이 끝나면서 1945 유고슬라비아 연방 인민 공화국이 이를 대체했다. 하지만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면서 유고슬라비아는 여러 나라로 분할되었다. 1991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 1992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독립함으로써 연방이 사실상 해체되었으나 1992년에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가 신유고연방을 결성하였다. 2003에는 신유고연방이 이름을 세르비아몬테네그로로 바꿨다가 3년후인 2006년 몬테네그로가 독립함으로써 연방이 완전히 해체되었다.

  유고 연방의 해체는 민족,종교 문제가 복합되어 나타난 결과이다. 발칸반도는 보스포로스해협이라는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시아(터키)와 경계를 이룬다. 과거 오스만투르크라는 이슬람 제국이 이 해협을 건너 유럽을 침략했다. 해협의 서쪽에는 이스탄불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이 도시는 동로마가 번성했을 당시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이었다. 오랫동안 이슬람과 동방정교회가 다툼을 벌였던 곳인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나라들의 인구 구성을 보면 동방정교회 교도들이 우세한 데 비해 알바니아는 유독 무슬림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라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도 무슬림이 약간 더 많다(이슬람교 40%, 동방정교 31%). 코소보는 이슬람 교도의 비중이 훨씬 많은데(약 90%) 알바니아와 접경을 이루기 때문에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유고연방에 속했던 발칸반도 국가들.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그리고 코소보. Google earth에는 코소보가 분쟁지역(빨간 색 국경)으로 표시되어 있다  *자료: Google earth]


■ 독재자의 광기, 인종청소, '사람을 닭 죽이듯 죽였다'


  2008년 세르비아의 남서부 지역에서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코소보'라는 나라를 세우고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1999년 유명한 세르비아의 독재자 밀로세비치가 중심이 되어 이른바 '인종 청소'라는 엄청난 인권 탄압이 벌어졌던 그곳이다. 밀로세비치 일당은 1996년까지 보스니아에서, 그리고 1998년 이후에는 코소보에서 수 십 만 명의 무슬림을 학살했다.

  '사람을 닭 죽이듯 죽였다'

  남자는 모조리 죽였고 여인들은 성폭행을 당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상처가 아물었을 리가 없다. 가족을 모두 떠나보내고 처절하게 목숨을 부지해 온 사람들의 그 상처난 가슴을 어떻게 보듬을 수 있단 말인가! 영화 '그르바비차', '마우스 2017' 등 보스니아 인종 청소를 다룬 영화들이 당시의 아픔을 잘 표현하고 있다.

  아픈 역사 만큼 민족 간의 감정의 골이 깊이 파여있는 곳이어서 세월이 지나도 그 상처들이 치유되지 않고 있다. 코소보의 독립 선언에 대해 당연히 세르비아는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러시아가 세르비아의 입장을 지지해주고 있다. 반면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고 있다. 다분히 정치적 이해 타산을 따진 입장 표명이다.


■ 코소보 난민 출신의 스위스 선수들


  세레머니의 주인공인 두 선수는 모두 코소보에서 귀화한 사람들로 부모가 알바니아계라고 한다. 세계의 화약고로 일컬어져 온 발칸반도의 코소보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다. 두 선수 중 한 사람인 그레니트 샤카의 아버지는 코소보의 독립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3년 반이나 유고연방에서 감옥살이를 했다고 한다. 그런 배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니 경기 상대인 세르비아가 단순히 경기 상대로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우연이라기 보다는 어쩌면 경기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했던 세레머니였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 스위스 축구대표팀의 그래니트 샤카(왼쪽)와 세리단 샤키리가 23일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아레나에서 열린 세르비아와의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E조 2차전 도중 골을 넣은 뒤 독수리 비상 세리머니를 연출하고 있다.(서울신문, 2018.6.23/ 칼리닌그라드)


■ 민족이란 무엇일까?


  민족이란 무엇일까?

  해방된지 60년도 더 지났지만 여전히 일본에 대한 감정적 앙금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우리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갈 듯도 하다. 이 선수들은 어려서 귀화하여 스위스에서 잘 살고 있는데도 그들은 코소보와 알바니아를 자신의 모국으로 여기고 있다. 만주에서, 하와이에서, 심지어 쿠바에서도 나라를 잃은 슬픔을 가슴에 새기며 독립 자금을 모았던 일제 강점기 우리 선조들도 아마 이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민족 문제는 경제적 차별과 관련이 있으며 종교적 신념과 결합이 될 때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확대된다.



▲ 샤키리의 축구화 한쪽에는 스위스 국기가, 다른 쪽에는 고향 코소보 국기가 새겨져 있다.

칼리닌그라드 AFP 연합뉴스(서울신문, 2018.6.23/ 칼리닌그라드)


  세계화(Globalization)는 국가간 민족간 차별을 약화시켜 가고 있다. 하지만 지구촌 어느 곳에서는 여전히 민족감정이 펄펄 살아서 모든 가치 판단을 앞서는 최고의 판단 기준이 되곤한다. 자본주의가 인류를 지배하면서 이미 '자본이 민족을 초월'한지가 오래되었는데도 말이다. 하긴 국가 간의 대결인 월드컵이 정치적 입장 표명을 금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인지도 모른다. 국가주의, 또는 민족주의가 없다면 어떻게 월드컵이 상업적 성공을 거둘 수 있겠는가? 흥행을 위해서 민족감정을 부추겨 놓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금지하는 꼴이다.

  만약 외계인이 침입을 해와서 한 판 싸움을 벌여야 한다면 지구인 간의 민족감정이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민족주의, 과연 빛바랜 가치일까, 순수하고 고귀한 가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