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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피추 가는 길[Ⅱ]

Geotopia 2017. 10. 1. 12:39

오얀따이땀보(Ollantaytambo)


  삐싹을 떠난 지 5시간 30분, 우르밤바를 따라 내려 온 긴 여정 끝에 오얀따이땀보에 도착했다. 오얀따이땀보는 북쪽에서 유입하는 우르밤바강의 지류가 만든 선상지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하천 연안 경관이 우리나라의 논과 영락없이 닮았다. 하천과 경지를 막은 제방, 평평한 경지, 경지와 경지 사이를 경계짓는 두렁… 하지만 벼 대신에 옥수수가 자란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케츄아어 '땀보'는 '땀보마차이'의 '땀보'와 같다. 즉, 숙소, 휴식소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오얀따이가 머무는 곳'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까? '오얀따이'는 타완틴수유의 장군이었는데 파차쿠텍 잉카의 딸을 사랑했으나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비련의 주인공이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우르밤바강변에 발달한 오얀따이땀보>


  들어가는 초입부터 길이 좁은 것이 오래된 마을임을 알 수 있다. 길은 좁지만 돌로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는 것은 삐싹과 같다. 앞에서 대형 버스가 한 대 나오는데 눈대중으로는 도저히 버스 두 대가 교행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마도 이곳의 운전사들은 이런 경우를 많이 만났을 것이다. 당황은 우리나 하는 것이고 정작 당사자들은 별 걱정이 없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맨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정교한 계단 경작지이다. 남해도의 다랭이논처럼 돌로 축대를 쌓아 계단형으로 농토를 만들었다. 하천 연안의 비옥한 경지가 이 마을의 경제적 배경이었겠지만 많은 사람을 부양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래서 산록을 개간하여 경지로 만들었는데 돌을 쌓아 만든 경지가 예술이다. 삐싹에도 엄청난 계단 경작지가 있었고 어디를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농업경관이지만 오얀따이땀보의 그것은 다른 곳에 비해 독특한 무엇이 있다.

  수십 단의 사람 키 만한 계단이 산 비탈을 덮고 있다. 그런데 돌을 쌓아 만들어진 경지 면적보다 계단을 만든 돌의 표면적이 더 넓어 보인다. 사람 키 정도 높이로 둑을 쌓아 만들어진 경지의 폭이 사람 키를 조금 넘을까말까 하다는 얘기다. 수확의 기쁨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까? 매우 규칙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평민들이 자신의 먹을 것을 생산하기 위해 한 뙈기 한 뙈기 틈 나는대로 일군 땅이 아니다. 즉, 절대 권력이 작용하여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경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런 엄청난 역사가 가능했을 것이다.

  많은 공을 들여서 만든 경지가 투여된 노동력을 부양할 만큼 충분한 생산력을 갖지 못한다면 아무리 절대 권력이라도 이런 일을 벌일 수는 없다. 노예도 기본적인 식량은 제공해야 하니까. 옥수수는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가장 많은 작물이기 때문에 이런 경작지가 가능했다.


▶ 옥수수 재배에도 수리시설이 필요하다


  벼가 아닌 옥수수를 심는 이곳은 우리나라에 비해 수리 시설의 중요성은 좀 낮을 것 같다. 하지만 물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조건이다. 땀보마차이가 물을 숭배하는 전통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안데스 고산지 생활에서 물 관리가 상당히 중요했음을 말해준다.

 마을 한 가운데로 물길이 지나간다. 돌을 쌓아서 만든 잘 정비된 물길이다. 상류에서 흘러 내려온 물을 물길을 만들어 마을로 유도해서 활용하는 시스템이다. 선상지라서 지하수면은 낮겠지만 집집마다 우물을 뚫는 것보다는 이렇게 수로를 내서 물을 활용하기에 유리할 것이다.

  산중턱의 옥수수 창고가 눈길을 끈다. 급경사면 암반을 파서 만든 대규모의 공동 창고 역시 절대권력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


▶ 가옥구조 등등 마을 모습


  벽체는 벽돌로 만드는데 네모난 돌과 흙으로 만든 벽돌을 섞어서 짓는다. 지붕은 주로 풀을 엮어서 덮었고 잔돌들이 그 위에 불규칙하게 흩뿌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초가의 표면은 이끼로 덮여있다. 이론적으로 선상지의 가옥은 선단에 집중한다. 이 마을 역시 주로 가옥이 선단에 집중하지만 지표로 물을 끌어들였기 때문에 위치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는 듯하다. 마을 곳곳에서 굵고 둥근 돌들을 볼 수 있다. 하천에 운반되어 온 돌들이다.

  주변의 산지들은 경사가 매우 급하고 높으며 대부분 석회암질의 바위다.

  우리나라의 솟대같은 것이 서 있는 곳도 있다.

  꾸스께냐 맥주와 잉카블루가 들어간 식탁 보



▶ 화강암 거석을 어떻게 잘랐을까?


 

마을의 북서쪽 계단 경작지를 오르면 오얀따이땀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 있다. 경작지라기 보다는 방어나 제사를 위한 시설로 보이는데 화강암질의 거대한 바위를 깎아서 벽을 만들었다. 기반암은 석회암질인 것으로 보아 주변에서 가져온 돌인데 우선 규모가 만만치 않다.

  반듯하게 잘랐는데 철기도 없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바위를 자를 수 있었을까? 비위 틈에 나무 쐐기를 박고 물을 흘러 넣어서 나무를 불려서 터뜨리는 방법 등의 방법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런 원시적인 기술로 설령 바위를 터뜨릴 수는 있다고 치더라도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육면체를 만들었단 말인가? 더구나 모든 돌들은 그냥 육면체가 아니며 모든 면 마다 돌기와 홈이 있어서 인접한 돌을 끼워 맞췄다. 그래서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견고하다.  


▶ 마을 축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식당 앞이 아담한 공원인데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들린다. 마침 오늘이 마을 축제인 모양이다. 마을 단위로 팀은 구성한 듯 여러 팀들이 각양 각색의 복장과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면서 공원 앞을 행진한다. 브라스밴드가 주를 이루는데 가면을 쓴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보아 축제의 주제가 가면인 모양이다. 가면을 쓰고 뒤로 걸어가는 팀이 가장 이색적이다. 반복되는 단순한 음악에 맞춰서 경쾌하게 행진을 하는데 모두 뒤로 걸어간다.

  인디오 전통은 분명히 아니고 유럽 냄새가 많이 나는 축제다.


▶ 세비체: 문화체험, 하지만 다시 먹고 싶지는 않다


  오얀따이땀보에서 저녁을 먹었다. 밤열차를 타기 위해 저녁을 먹고 잠시 기다려야 한다. 드디어 Cevbiche를 먹어볼 기회가 왔다. 30솔짜리 세비체와 쇠고기 스테이크(Steck Grilled), 포도 증류주 칵테일(Pisco Sour)을 주문했다. 칵테일은 계란 흰자로 거품을 낸다. 비린내가 '먹을 만 하다'와 '역겹다'의 경계선을 왔다갔다 하는 정도로 나는 세비체는 먹는 동안 은근히 걱정과 의심이 된다. 이 한적한 시골에서 이런 횟감이 잘 관리되었을까 하는 의심과 배탈이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다. 문화체험으로는 상당한 의미가 있는 식사지만 또 먹고 싶지는 않다.



▶ 협곡을 달리는 마추피추 행 협궤 열차


  우리를 태우고 온 버스와 함께 에디는 오얀따이땀보에서 쿠스코로 되돌아 간다. 우리가 돌아 오는 날 다시 이곳에서 만날 예정이다.  에디가 은근하게 책을 선전한다. 역사 유적을 설명하고 나서 그와 관련된 책을 선전하는 것인데 역사 유적 중심이어서 우리 모두 별다른 흥미가 없다. 지도집도 있기는 하지만 우린 이미 대부분 준비를 했기 때문에 필요가 없다. 미안하고 안타깝기는 하지만 판매고가 '0'이다.

  오얀따이땀보부터 마추피추가 있는 아구아깔리엔테스까지는 기차로 간다. 4열이기는 일반 열차와 같지만 복도가 좁은 협궤열차다. 우리나라의 5열짜리 무궁화 열차의 좁은 복도쯤 된다. 컴컴해진 21:00경에 출발했다. 주변 풍경을 볼 수 없는 밤이니까 그냥 편하게 잠이나 자야겠다.

  그런데 열차의 승하차 체계는 매우 정리가 안 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표를 사서(우린 예매를 했다) 개찰구를 통과하는데 검표 절차가 엉성하다. 그리고 기차에 오를 때 문앞에서 다시 검표를 한다. 한 명씩 검표를 받고 차에 오르려니 시간이 많이 걸려서 문앞에 사람들이 길게 장사진을 이룬다. 승객 수의 증감에 따라 탑승 시간에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승객이 많으면 열차가 제 시간에 출발할 수가 없다. 정시성이 생명인 열차가 이러면 어떻게 정시성을 확보하나?


▶ 아구아깔리엔테스


  두 시간 여를 달려서 아구아깔리엔테스에 도착했다. 야간에 도착하는 열차다 보니 여기저기 숙박업소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호객을 하고, 혹은 예약 손님을 찾는다. 역 광장 앞이 소란스럽다. 'Machu Piccu Pueblo'라는 이름표가 붙은 조각상이 역 광장에서 두 팔을 벌려 손님을 맞고 있다. 조각상의 주인공은 잉카의 모습이다.

  컴컴한 골목을 걸어서 물소리가 요란한 다리를 건너 숙소로 향해 걸었다. 갑자기 앞을 막아선 벽이 있어 자연스럽게 눈이 벽을 따라 위로 올라가는데 캄캄해서 그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 설마 이게 산은 아니겠지? 산 등성이 뒤로 새카맣게 구름이 덮일 때 '저게 산이라면 높이가 얼마나 될까?', '저런 산이 우리나라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 장면이 대자뷰로 떠오른다. 다음 날 아침에 봤더니 그것이 바로 산이었다. 깎아지른 듯 높이 솟아서 바로 앞에서는 그 꼭대기를 볼 수 없는 안데스의 산.

  호텔에 들어갔더니 이곳에서도 로비에는 코카차가 반겨준다. 코카차는 언제 마셔도 구수하다. 머리는 한결 맑아졌다. 아구아칼리엔테스의 해발고도는 2080m에 불과하다. 삐싹과는 직선 거리로 80km에 불과한데 고도차는 거의 1천m에 이르니 하천의 경사가 엄청나다. 우리나라와는 매우 다른 지형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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