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라틴 아메리카

라파즈를 향하여

Geotopia 2017. 10. 1. 00:00

▶ 호숫가 도시 푸노, 하지만 고산증은 여전하다


  1월8일 7:10, 아침 일찍 푸노를 출발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은 푸노 시내의 Casa *** 호텔이다. 아침에 갑자기 와이파이가 터져서 카톡 메시지가 한꺼번에 우루루 들어왔다.

  어제 저녁에 수지침으로 고산증 시달리고 있는 동료들에게 침을 놔줬지만 침을 놓고 사혈을 하는 나도 사실은 정신이 몽롱한 느낌이 계속된다. 티티카카호안에 있는 푸노지만 티티카카호의 호수면 해발고도가 3900m에 이르기 때문에 고산증세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 볼리비아로 가는 베이스캠프

   

  푸노 시내는 길이 매우 좁다. 전세 버스를 타고 볼리비아 국경까지 간 다음 버스를 갈아타고 라파즈까지 간다. 우리가 탈 버스는 전세 버스인데 다른 사람도 탄다고 한다. 쿠스코에서도 느꼈지만 페루의 버스 체계는 참 신기하다. 우리가 탄 버스는 분명히 전세버스인데 터미널로 들어간다. 푸노 역시 쿠스코와 마찬가지로 개인 버스가 활성화되어 있다. 중형 버스가 대부분인데 차장이 문을 붙잡고 호객을 한다. 그렇지만 터미널에는 큰 버스만 들어오는 모양이다. 바퀴가 많이 달린(앞에 둘, 뒤에 둘인 것도 있다) 2층인 버스도 많다. 그런데 우리가 탄 버스는 단층에 바퀴가 한쌍씩 뿐이라 이상하게 좀 실망스럽다.

  터미널에는 외국인들이 상당히 많다. 볼리비아로 넘어가려면 푸노가 베이스캠프와 같은 역할을 하는 도시라서 그런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인지, 일본 사람인지 우리와 닮은 동양인도 눈에 띈다. 단체로 여행을 하다가 단독 여행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째서 은근히 주눅이 드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 이유가 없는데… 비용이 적게 들고 자신이 원하는 곳을 갈 수 있는 장점을 갖는 것이 자유여행이라면 단체여행은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가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지리과들이 함께하는 여행은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다. 하나라도 더 봐야하는 지리학도의 강박증을 해소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


▶ 알티플라노, 고산과 건조 사이


  드디어 출발!

  시내를 벗어나면 풀로 덮여있는 메마른 산이 보인다. 듬성듬성 나무가 자라는데 나무가 계곡을 따라서 자라서 수분이 풍부한 곳에 나무가 잘 자란다고 추정할 수 있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별다른 규칙이 없다.


  오래된 산방산처럼 툭 튀어나온 봉우리도 있는데 사면이 주상절리처럼 떨어져 나왔지만 색깔이 붉은 색이 섞인 회색 암석이다. 어떤 곳에서는 건조지역의 뷰트처럼 생긴 바위도 있다.


  산 아래로 너른 평지가 발달하는 것은 어제 왔던 길과 비슷하다. 평지에는 풀이 자라고 경지로 이용되고 있는 곳도 있다. 가축도 키우는데 소, 당나귀, 양 등의 가축을 키운다. 상업적 목적으로 대규모 사육을 하는 모양은 아니고아마도 일을 시키기 위해 키우는 가축들을 것이다. 돌로 경지와 경지 사이에 경계를 만들어 놓은 곳도 있다.


  낡은 건물 벽에 'Keiko Presidente'라는 구호가 써있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인 게이코를 지지하는 문구인 모양이다.


  화강암 암반이 노출된 곳도 있다. 석회암 계열의 바위가 주를 이루지만 이렇게 화강암질이 분포하기도 한다. 오얀따이땀보의 요새가 화강암질이었는데 인근에 화강암이 분포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민가들은 대부분 흙벽돌을 사용하는데 지붕은 똑같이 함석을 얹었다. 하지만 블록같은 새로운 재료로 만든 집들도 자주 눈에 띈다. 마을에 한 두채 끼어있는 것이 아니라 대개 너댓채씩 모여있어서 좀 생뚱맞은데다 집이 튼튼하게 보이질 않는다. 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뜬금없이 바뀌었던 시골 마을이 떠오른다.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우리집 지붕이 파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날 대통령이 우리 마을 앞을 지나가기로 되어 있었다는 말을 어른들에게 들었다. 한 달도 더 지난 다음에 뒷뜰에 갔다가 지붕의 뒷뜰 쪽 반쪽은 그냥 회색 빛 기와여서 뜨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결국 대통령이 그날 마을 앞을 지나지도 않았다고 했다.


▶ 국경도시 융구요 



  드디어 국경도시 융구요(Yunguyo)에 도착했다. 푸노를 떠난 지 약 2시간이 지났다. 출입국 관리소는 융구요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2km정도 떨어져 있다. 국경에서 가장 가까운 볼리비아의 도시는 코파카바나(Copacabana)로 직선거리로 7km, 산길로 10여km를 더 가야한다. 국경을 넘기 전에 페루 돈을 몽땅 털어서 노점 환전소에서 환전을 한다. 국경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환전이 전부다. 간단한 조각공원도 있지만 비를 맞으며 볼 만큼 매력적이지는 않다. 민가 마당에는 돼지 가족이 놀고 있다. 비만 내리지 않았더라면 꽤 한가로운 풍경이었을텐데 비가 내려서 영 그림이 나오질 않는다. 돼지 우리란 것이 없고 어미는 목살이를 만들어 묶어 놓았고 새끼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땅을 판다.

  페루에서 볼리비아로 넘어가려면 약간 경사진 언덕을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양국 모두 삼엄한 경비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국경은 왠지 긴장이 되는 것은 한반도에서 태어난 사람의 숙명인 모양이다.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국경의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운데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외국인 관광객들 뿐만이 아니라 라틴 사람들이 매우 많은데 이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국경을 넘는 것일까? 관광객들에게 물건을 팔기 위해서 가게와 노점들이 나래비를 서 있는데 그 중에는 리어카에 가득 계란을 실은 계란 장수도 있다. 낱개도 아니고 계란판을 차곡차곡 쌓아 싣고 나온 이유가 무엇일까? 국경을 넘어 볼리비아로 물건을 팔기 위해서 가져왔겠지? 무역이 비교우위에 기반한다고 보면 페루가 볼리비아에 비해 계란을 생산하기에 유리한 조건이라고 봐야할까?


▶ 코파카바나가 호숫가에 있다

 

  언덕을 넘으니 볼리비아 입국심사소가 보인다. 작은 언덕 아래에 있어서 페루쪽에서는 보이지 않았었다. 이쪽에도 환전소를 비롯하여 작은 잡화점이 있다. 출출해서 꺼낸 스낵 봉지며 커피믹스 봉지가 빵빵하게 부풀어있다. 계속해서 고산지역을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수속을 마치고 코파카바나로 이동한다. 유명한 브라질 코파카바나와 이름이 같다. 공통점을 찾자면 둘 다 물가에 있다는 점이 같다. 어떤 의미가 있어서 붙은 지명인지 단서를 붙잡아보려고 머리를 굴려봐도 밑천이 달려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스페인식 지명은 같은 것이 상당히 많은데 포루투갈어를 쓰는 브라질과도 같은 지명이 있다니…

  코파카바나는 작은 호안 마을인데 호안을 따라 백사장이 길게 발달했다. 브라질의 코파카바나와 공통점이 있기는 있는 것이다.

  점심을 먹을 겸 잠시 마을을 돌아보았다. 흙벽돌로 지은 집들이 많다. 직접 벽돌을 찍어서 집을 짓는데 어떤 집은 찍어 놓은 벽돌이 비를 맞아 뭉개진 곳도 있다. 흙벽돌은 만들기는 쉽지만 비에 약한 단점이 있다. 열대의 라테라이트는 비를 맞아도 끄떡이 없지만 온대지역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곳은 고산지역이지만 기온으로 보면 온대와 유사하기 때문에 라테라이트성 토양이 발달할 수가 없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흙벽돌과 함께 구운 흙벽돌도 함께 건축자재로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도 구운 흙벽돌은 많이 쓰이는데 이곳의 구운벽돌은 모양이 많이 다르다. 속이 비어있다. 우리나라 흙벽돌은 무게가 상당히 무거운데 속이 비어있는 이곳의 벽돌은 매우 가볍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재료로 집을 지으면 어떨까? 속이 비어 있어서 겨울철 추위를 잘 막지 못할 것 같다. 새마을 운동 때 양산되면 시멘트 벽돌 중에 가운데가 빈 것이 있었다. 가볍고 크기가 커서 집을 짓기에 편리했지만 매우 약하고 겨울에는 외부의 온도를 충실히 전달하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높은 봉우리가 하나 있어서 올라가 보면 좋겠는데 시간이 넉넉치 못하다. 한 시간 만 더 여유가 있으면 올라갔다 오면 딱 좋을텐데…

  호안으로 연결된 주요 도로를 따라서 상업시설이 들어서 있다. 음식점도 있고 주전부리를 파는 곳도 있다.


▶ 이런 때가 없었다니…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다시 출발. 또 구불구불 호수 옆 산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30여 분을 달리면 티퀴나(Tiquina)에 당도한다. 티퀴나는 티티카카호에서 반대편과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곳이다. 그래서 라파즈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야 한다. 커다란 페리호가 운항하는 것은 아니고 사람들은 내려서 작은 배로 옮겨타고 조금 더 큰 배가 버스를 따로 실어서 건너편으로 운반한다. 대략 거리는 750m 정도다.

  배삯은 따로 현금으로 지불해야 되는데 그곳에서 만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마침 잔돈이 없다고 빌려달란다. 스물일곱 먹었다는 청년은 우리와 비슷한 여정으로 이곳까지 왔는데 여행비는 우리의 절반 정도만 가지고 왔다고 한다. 젊음이란 이런 것이다. 이들을 보면서 지난 날을 되돌아 보게 된다. 지리학도였지만 바다를 건너 외국에 간다는 것은 정말 '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40여 명 과동기들 가운데 외국 여행을 해 본 친구가 한 명도 없었으니까. 이제 이렇게 지구 반대편까지 올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개인적인 결단도 필요하겠지만 여행이 대중적인 문화가 되었다는 뜻이다. 부럽고 기특하다. 언젠가는 이들의 경험이 소중한 재산이 될 날이 있을 것이다.


▶ 구조토일까?


[알티플라노 고원의 가옥]


  호수를 건넌 시각이 대략 오후 1:30, 이제부터 라파즈까지 계속 달린다. 알티플라노고원을 가로질러 라파즈까지는 대략 100km가 넘는 거리다.

  산지 사면에는 독특한 모양으로 돌 무더기들이 쌓여있다. 농경지가 조성되지 않은 산 사면에 쌓여있는 것으로 보아 인위적인 돌무더기는 아니다. 사면 방향으로 길게 늘어진 일정한 방향성을 갖는다. 아래쪽 평지 부분에는 둥근 형태로 쌓여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구조토 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고산지의 기후 환경은 짧은 여름과 긴 겨울을 갖는 툰드라와 유사하기 때문에 이러한 지형이 발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멀리 만년설이 보이는 알티플라노고원은 드넓다. 초원 식생이 뒤덮인 평원은 혹은 밭으로, 혹은 목초지로 이용되고 있다. 돌 무더기들은 평지에도 곳곳에 분포한다.


[구조토]


▶ 라파즈, 우리나라 달력이 걸려있는 음식점


  두 시간이 조금 넘게 달려서 마침내 라파즈에 도착했다. 라파즈는 복잡하다. 살아있다. 거대한 고원 안에 있는 분지처럼 생겼다. 라파즈의 서부는 넓고 평평한 고원지대에 있지만 동부지역은 갑자기 낮아진다. 대략 동부와 서부의 경계는 해발 4000m 부근이다. 동부지역이 구도시 지역인데 산 비탈은 모두 붉은 벽돌집이 가득 채웠다. 거리에는 원주민 복장을 한 사람들이 가끔 눈에 띄는데 공통적으로 여인들, 나이 든 여인들 뿐이다.

  우리가 라파즈에서 묵을 호텔은 사하마(Sajama)호텔이다. 3성급의 아담한 호텔인데 구도심의 중심부에 자리를 잡고 있다. 호텔 건너편에 있는 음식점으로 저녁을 먹으러갔다. 누드김밥이 나오는데 초밥처럼 무엇인가를 덧붙였다. 일본식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볼리비아산 포도주를 한 병 주문해 놓으니 마음이 든든하다. 이젠 식사와 함께하는 음료로 술이 자연스럽다.

  일본식인가 했더니 벽에 걸려있는 달력이 한국제품수입업자들이 만든 것이다. 한자가 섞인 동양화가 들어있는 달력이라서 단번에 우리 눈길을 끌었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우연히 발견한 우리문화는 반갑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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