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라틴 아메리카

푸노 가는 길

Geotopia 2017. 10. 1. 12:41

▶ 푸노행 버스 타기


  티티카카호반에 있는 푸노로 가는 날이다. 긴 여정을 버스로 간다. 짐을 챙겨서 터미널로 가다보니 오늘따라 잉카블루로 하늘이 짙푸르다. 능선 바로 아래까지 산 비탈을 가득 메운 집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집인데 잉카블루와 어울려서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노파가 암탉을 쫓아 다닌다. 시골마을에서 도회지 장터로 팔려고 가지고 나왔던 닭이 달아난 모양이다. 양팔을 벌리고 닭을 쫓아다니지만 느린 동작으로 날쌘 닭을 잡기는 난망해 보인다.


  터미널은 복잡하다. 시끌벅적한 것이 우리나라 터미널과 다를 바 없다. 기다리는 동안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앗! 우리 일행이 모두 나가고 내 캐리어만 덩그러니 대합실 의자 앞에 서 있다. 여럿이 있다보면 이런 일이 생기기도 한다. 누군가 챙겨주겠지 막연히 생각하지만 누구도 구체적인 책임을 맡지 않은 상황. 가방을 잃어버리기라도 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버스가 떠난 것은 아닌가 싶어 후다닥 개찰구를 나섰다. 그로부터 20여분이나 지나서 버스가 출발했지만.

  푸노까지는 차삯이 30솔, 그다지 비싼 편은 아닌 것 같다. 아침 8:40에 출발했다. 2층에 좌석이 있는 버스다. 아래층엔 무엇이 있을까? 맨 뒷좌석(28번)에 여자 안내원이 탄다. 계속 동쪽을 향해 달린다. 우르밤바강 상류에 해당하는데 지류와 같은 방향이다.


▶ 안데스 산길, 국도 35번


  2층이다 보니 공항 옆을 지날 때 공항 활주로가 훤히 보인다. 쿠스코에서 푸노까지는 국도35번으로 연결되어 있다. 안데스 한 가운데를 달리는 길이어서 모르긴 몰라도 평균 고도로 치면 세계적인 수준일 것 같다.


  놀고 있는 습지가 많다. 우리나라라면 벌써 논을 만들었을 것이다. 경지율은 우리보다 훨씬 낮다.

  산에 나무가 없다. 고도 때문일까, 아니면 강수량이 적기 때문일까? 저지대에는 나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수분 공급 능력이 직접적인 원인 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폭우로 깊게 파인 우곡이 발달하는 곳도 있다.

  작은 마을을 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가옥이 거의 없는 시골이다. 중간 중간 가축들도 보이고, 일하는 사람들도 보이는데 경지화가 덜 진행된 들판이라서 더 한가로와 보인다.


  11:00경 계곡을 지나 너른 들판에 들어섰다. 옥수수 재배와 방목이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철도와 나란히 도로가 뻗어 있다.


  흙벽돌 기와집은 어디나 공통이다. 대부분 붉은색 단층 가옥이다. 도시는 구운 벽돌을 사용하는 반면, 시골은 대부분 그냥 흙벽돌로 지은 집도 많다. 양철 지붕도 많이 보인다. 작은 2층집도 있는데 1층과 2층 사이에는 각목을 걸쳐놓고 집을 지어서 완성 후에 그 끝이 드러나 있는 모양이다. 단순한 관습인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여전히 산에는 나무가 없다.

  11:30분경 ,TG(맞나?)를 통과했다. 해발고도는 4천 이상이다. 멀리 설산이 보이고 식생이 불량한 산이 연속된다. 해발고도가 높아서 식생이 잘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발달한 고산사막이다. 여전히 철도와 평행으로 뻗은 길을 동쪽으로 달린다.


  안데스의 노촌을 지난다(12:10경)


  마을 가까이에 있는 공동묘지. 양쪽 산의 가운데 발달한 계곡으로 도로가 뻗어있는데 계곡의 한 가운데로는 하천이 흐른다. 하천을 생각하면 범람원이지만 고산 사막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건조지역의 구조성 분지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천의 규모에 비해 평지가 넓다.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대부분 여성들이다. 지붕 재료는 모두 현대화되었다. 풀잎으로 만든 지붕은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

  12:19 여전히 차와 하천은 동쪽으로 달린다. 너른 들판 너머로 설산 능선이 동남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약간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든다.

  12:25 설산 사이로 드넓은 분지가 발달한다. 끝도 없는 들판에 일부 농사를 지으려고 쟁기질을 해 놓은 땅이 있다. 흙이 붉은 색이다. 규모가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넓다. 산지 사이의 넓은 평원인 이곳은 어디일까? 알티플라노고원의 북쪽 끝부분쯤 될 것 같다. 시베리아 바이칼 주변 건조지대와 유사한 경관이다.

  12:29 마을이 없다. 젖소, 양, 육우가 많다. 주로 방목으로 사육된다. 길을 따라 길다란 전기줄 울타리가 쳐져 있다. 학교는 어떻게 다닐까? 너무 멀어서.

  길 옆에 외로운 무덤들이 가끔 눈에 띈다. 이것도 시베리아에서 봤던 풍경과 유사해서 낯이 익은 느낌이다. 주변 경관까지 비슷하다. 이런 장례문화는 원주민 문화일까, 아니면 유럽문화일까? 바이칼의 몽골족과 문화적 원류가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12:40 고원에서 남남동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동쪽으로 달리고 있다. 길고도 넓은 알티플라노 고원을 달리고 있다. 고원에서는 대부분 방목이 이루어지고 있고 가끔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주변에 집이 없는 것으로 보아 들개일 것 같은데 몰려 다니지도 않고 독립적으로 한가로이 도로를 따라 어슬렁 거린다.

  건물에 튀어나와 있는 철근은 나중에 건물을 더 올리려는 의도와 함께 나름의 지진 대비책으로 볼 수 있다. 담장도 중간중간에 철근을 넣은 기둥을 세운다.

  점심은 싸 가지고 온 빵과 노점에서 산 과일과 옥수수다.

  퇴적된 지층에 따라 식생이 차이가 난다. 역시 바이칼에서도 봤던 경관이다.

  14:13 새로운 정착촌을 건설중인 모양이다. 완전히 새로 생기는 마을이다.

  동남쪽으로 달리는데 햇빛은 오른쪽(남서쪽)으로 들어온다. 대략 남위15도 부근까지 남하했는데 지금 여름인 이곳에서는 남쪽으로 뜨는 것이 맞나?


  14:31 San Roman이라는 곳에서 버스가 잠시 정차한다. Juliaca라는 도시로 푸노 북쪽 40km 쯤에 있는 도시다. 우리가 탄 2층에서는 내리는 사람이 없다. 이곳은 한창 성장중인 도시인 것 같다. 투박스럽게 생긴 트럭(볼보)이 아주 많고(돌을 잔뜩 실은 차들이 많다), 삼륜택시, 삼륜 인력 자전거들이 섞여서 도시를 누빈다. 도시 전체에 먼지(매연이 아닌 갈라진 도로 때문에 생긴)가 많다. 포장상태가 불량해서 그렇다.



  훌리아카를 지나면서 너른 들판이 펼쳐진다. 티티카카호안에 발달한 평야인데 넓이가 엄청나게 넓다.


▶ 푸노


  15:26 마지막 고개를 넘어 푸노에 도착했다. 푸노도 한창 커지고 있는 도시같다. 삐죽삐죽 철근이 튀어나온 건축중인 집들이 도시 외곽을 메우고 있다. 건물들은 모두 모양이 비슷하다. 콘크리트로 골조를 세우고 붉은 벽돌로 벽을 마감했다. 지붕이없거나 함석같은 재질로 엉성하게 덮은 집이 대부분이다. 티티카카호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좋은 곳에 있지만 전망을 즐길만한 경제적 여유는 없어 보이는 집들이다.


▶ 갈대섬 우로스(Los Uros)



  짐을 풀고 티티카카호로 나갔다. 유명한 갈대섬 우로스로 가는 배에 올랐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호수는 차가운 느낌이지만 오후 햇볕이 따갑다. 관광지 우로스섬보다는 지상 최고의 호수에 왔다는 것 만으로 지리학도는 가슴이 벅차다. '우로스'는 '갈대'라는 뜻이다. 즉 '우로스 섬'은 말 그대로 '갈대 섬'이라는 뜻이다.

  우로스섬은 입장료가 있는 관광지가 되었다. 외국인 5솔, 내국인 2.5솔. 입구에서 주민들이 외국인 '입장료'를 반긴다. 망루같은 것도 있고 고대 그리스의 배가 연상되는 배들이 유람선인 듯 정박하고 있다. 하나같이 깨끗하게 단장한 민가들은 그곳이 삶의 터전이 아니고 관광상품임을 보여준다. 우로스는 커다란 하나의 섬이 아니라 호수 연안의 갈대밭을 따라 몇 떠있는 여러 개의 섬이다. 한 개의 섬은 십 여 채 안팎의 집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이다. 그런 섬들 대략 100여 개가 줄을 맞춰 물에 떠 있다.

  얼마 만큼의 세월 동안 겹겹이 갈대를 겹쳐놓았는지 맑은 물 아래로 잠긴 부분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 만약 이 섬이 커다란 나무를 엮은 뗏목이었다면 처음에는 튼튼하고 바닥도 단단했겠지만 조금씩 썩어서 한 순간에 쪼개져 가라앉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갈대 줄기는 아래에서 썩어서 흩어지고, 위에서는 싱싱한 갈대가 그 위를 덮기 때문에 가라앉지 않고 영원히 물에 떠 있게 된다. 사람이 살면서 갈대를 보충해 주는 한은. '民草'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 지상에서 가장 높은 호수 한가운데에 있다.

  동네 잔치라도 벌어졌는지, 아니면 중요한 결정을 위한 회의라도 벌어진 것인지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있다. 갈대섬 위에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 비슷하게 생긴 배를 몰고 와서 각자 자기 배 위에 앉아있다. 음식을 먹거나 떠들지 않는 것으로 보아 회의를 하는 쪽이 맞는 것 같다.

  관광객이 섬에 당도하면 가이드가 팀별로 배정되어 설명을 해준다. 각각의 섬에는 기념품 가게들도 있고 음식점도 있어서 입장료 이외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바닥이 푹신푹신해서 느낌이 좋다. 이 섬은 모든 것이 갈대로 만들어진다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돼지, 닭 등 가축도 키우는데 땅을 파헤치고 있는 닭이 있어서 가까이 다가가 보니 갈대가 썩어 거무스름한 부분을 열심히 파헤치고 있다. 그런데 녀석이 몇 번 파헤치면 신기하게도 지렁이가 한 마리씩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오랜 세월 삶이 퇴적되면서 육지의 생태계도 이사를 온 것이다. 정말 신기할 뿐이다. 문명의 이기도 물론 활용이 되고 있는데 태양광을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 가장 눈에 띈다.

  이 섬에 사는 특이한 새가 있다. 눈이 빨갛고 부리가 뾰족한 이 녀석은 이방인이 오면 위협을 하고 심지어는 덤벼서 부리로 찍어댄다. 닭보다도 작은 녀석이지만 고개를 아래로 빼고 슬금슬금 다가오는 모습은 자못 위협적이다. '으르르' 소리를 내는데 마치 개가 으르렁거리는 소리 비슷하다. 우로스에서는 집을 지키는 개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까? 우리를 향해 자꾸 다가오곤 하는데 안내를 하는 사람이 손을 휘저어 쫓으면 또 못이기는 체 달아난다. 어느 집 뒤뜰을 혼자 들어갔다가 녀석을 만났다. 정말로 녀석이 도망갈 생각을 안 하고 슬금슬금 다가오는데 장난기가 생긴다. 설마 진짜
찍으러 덤빌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혹시 덤비면 막판에 쫓으면 되겠지 생각을 하고 녀석에게 카메라를 겨누고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녀석이 특유의 으르렁 소리를 내며 천천히 다가온다. 발 앞까지 다가왔을 때 발을 휘둘러봤지만 이미 늦었다. 녀석의 날카로운 부리가 내 앞정강이를 정통으로 찍는다. 크게 아프지는 않지만 피가 나고 상처가 나서 며칠 기분이 찜짐했었다. 병원에 가기에는 상처가 작고, 무시하자니 야생동물에게 입은 상처라서. 결국 그냥저냥 상처가 아물었지만.


▶ 유람선 조수의 꿈


  우리가 탔던 유람선에는 꼬마가 한 명 타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쯤 되었을까? 배가 정박을 하고 선장이 자리를 비우면 이 꼬마는 자꾸 운전석에 앉아서 핸들을 돌려보면서 배를 조정하는 흉내를 낸다. 옛날 풍경이 떠오른다. 버스의 남자 차장은 운전사 어깨 너머로 운전을 배워서 나이가 들면 독립을 했었다. 설움을 당하면서 견습을 할 때는 운전사가 얼마나 부러웠을까? 이 꼬마가 바로 지금 그런 상태인 것 같다. 얼른 커서 배를 멋지게 조정하는 정식 선장이 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또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지금 이 꼬마에게는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불과  몇 년 후에 다가올 일이다. 모쪼록 자신의 일에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면서 일을 즐길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기원해본다. 페루가 잘 살아야 할 것이고, 노동자가 대접을 받아야 할 것이다.


▶ 회식은 거의 불가능하다.


  저녁은 처음으로 다함께 먹기로 했다. 그런데 워낙 메뉴가 다양하다보니 한 가지를 주문할 수가 없다. 결국 각자 이것저것 주문을 하다보니 이게 하세월이다. 회식은 그러니까 우리나라 만의 문화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가도 일사불란하게 음식이 나오므로 동시에 먹고 동시에 끝낼 수가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회식이 꼭 필요한 문화인지는 차치하고 시스템만으로 보면 이건 다른 나라에 수출을 해도 될 만한 대단한 시스템이다.

  고산증으로 헤매고 있는 동료들에게 수지침을 놔줬다. 효과가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심리적으로라도 좀 안정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태환샘은 산소통까지 구입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아서 리마로 돌아가기로 했다. 마추피추에서는 멀쩡해졌었는데 쿠스코로 돌아온 뒤로 도로 심해졌다. 신기할 뿐이다. 고산증은 해발 3천m가 경계선이어서 그 고도가 되니 영락없이 같은 증상이 발생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전혀 익숙해지질 않는다.

'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 > 라틴 아메리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멀고 먼 리마: 인천-도쿄-로스엔젤레스-리마  (0) 2017.12.25
라파즈  (0) 2017.10.01
마추피추 가는 길[Ⅱ]  (0) 2017.10.01
마추피추, 너무 유명해서…  (0) 2017.10.01
우유니  (0) 2017.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