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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먼 리마: 인천-도쿄-로스엔젤레스-리마

Geotopia 2017. 12. 25. 02:49

▶ 새벽에 도착한 미국, 로키와 태평양 연안, 그리고 로스엔젤레스


  날짜 변경선을 넘은 지 약 5시간이 지났다. 비몽사몽하다가 창밖을 보니 훤하게 여명이 보인다.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자정이 넘었지만 17시간이 느린 로스엔젤레스 시간으로는 아침 7시다. 다행스럽게도 구름이 걷혀서 전망이 괜찮다. 캘리포니아 해안을 따라 비행기가 남쪽으로 내려간다. Google 위성 영상을 찾아보니 맨 처음 육지의 형체가 구분된 곳은 Morro Bay라는 곳으로 LA 북서쪽 280km 정도 되는 지점이다.


<Morro Bay 해안>


  가끔씩 해안에 인접한 산지가 보이기도 한다. 높은 곳에는 희끗희끗 눈이 쌓여 있는 곳도 있다. 겨울철이니 눈이 쌓여 있다고 해서 해발고도가 매우 높은 것은 아니다. 로키산맥에서 뻗어나온 산줄기이긴 하지만 해안에 가깝기 때문에 본줄기는 아니다. 하지만 산의 두께가 매우 두터워서 어떤 곳은 구조선이 직각으로 교차하는 두툼한 산 덩어리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지형 경관은 한반도에서는 보기 어렵다.


<구조선이 직각으로 교차하는 산지>


  마침내 로스엔젤레스,

  세계적인 도시의 첫 인상은 우리나라 도시와 너무도 다른 모습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규모가 어지간 하기만 하면 도시는 하늘로 치솟은 고층의 아파트가 먼저 보이기 마련이다. 읍단위, 심지어는 면단위까지도 거의 어김없이 고층 아파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로스엔젤레스의 외곽 지역은 단층이나 2층 정도되는 건물들이 긴 줄을 지어 서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디를 가도 '절대로'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층이 낮은 단독 주택이 넓은 공간 범위를 차지하고 자리를 잡고 있으므로 인구 밀도가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낮다. 아파트 한 동이 어지간한 시골 마을 한 개보다 인구가 많으므로 우리나라는 인구 밀도가 엄청나게 높다.


<낮은 건물들로 이루어진 LA의 주택가>


  넓은 평야에 발달한 도시라는 점도 우리나라 도시와는 다른 점이다. 우리니라 도시들은 대부분 분지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도시에 비해 공간적 압박감이 적어 보인다.


  08:05,

  정확히 예정 시간에 도착했다. 출발 시간도 정확했었다. 이건 그동안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대신에 게이트에 접근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 꺼내 놓은 물건이 많아서(PC, 책, 카메라, 메모장 등) 미리 가방을 꺼내려했더니 옆자리 승객이 말없이 내 옷깃을 잡아 당긴다. 그러고 보니 먼저 일어서려고 한 사람이 딱 나 한 사람이다. 이렇게 뻘쭘할 수가… '이게 미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 든다.

  샌프란시스코에 산다는 옆 자리 승객은 일본계 미국인으로 한국에 여러 번 와 봤다는 초로의 노인이다. 사업을 한다는 그는 한국 음식과 서울에 대해 잘 알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왔다. 내가 한국말을 하는 바람에 그가 알아듣고 아는 척을 했기 때문이다. 한국말을 하게 된 연유는 우리나라 할머니가 손주와 자리가 떨어졌다며 바꿔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내 자리는 맨 앞줄로 다리가 매우 편한 자리였다. 하지만 창가 자리가 아니어서 좀 아쉽기도 했었다. 곧 밤이 올거라는 것을 알았지만 할머니의 청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창밖 경관은 한 시간 만에 해가 져서 못 보게 되었다.


▶ 입국 심사장의 굴욕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가는 통로에 환영 인사와 함께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있다. 낯설다. 한 때 공공기관 마다 대통령 사진이 걸려있던 때가 우리나라에 있었지만 옛날 이야기가 된지 오래다. 그래서 지금 미국 공항에서 보는 대통령 사진은 무척 낯설게 느껴진다. 우리나라에도 공항에 대통령 사진이 걸려 있던가? 어쨌든 지지 여부와 무관하게 자국의 대통령을 대표로 인정하는 태도에서 나온 경관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깜짝 놀란다. 내 마음 속에 숭미주의가 숨어있는 것일까? 어떤 제3세계 국가였다면 과거의 우리 모습을 떠올리면서 단박에 '후진국'으로 낙인을 찍었을텐데…

  전체적으로 시스템은 매우 선진적이지만 직원들은 불친절하다. 선진국의 오만? 검색과 세관의 직원이 친절한 경우는 전혀 없다. 전신 X-Ray검색을 통과해야 하는데 검문을 받는 자세로 양손을 들고 다리를 벌리고 서 있으면 기계가 회전을 하면서 온몸을 샅샅이 스캔을 한다. 굳이 환승객을 불러내서 이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다. 환승객을 검색한다는 것은 다른 나라의 검색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외국인과 내국인 통로가 따로 있는데 무심코 내국인을 따라 가다가 직원의 제지를 받았다. 가방 찾으러 간다고 말했더니 한 숨을 쉰다. 제스쳐가 우리와 다를 수도 있지만 기분이 별로다. 의사 소통이 잘 안 되는 외국인에 대한 태도가 이런 나라는 정말 처음이다. 대부분은 친절하게 안내 해 주는데…

  입국 심사에서도 굴욕감은 이어졌다. 매우 무뚝뚝한 표정의 흑인 직원이 내 여권을 던지듯 돌려 주는데 그 사이에 끼워 두었던 세관 신고서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미안하다고도 안 하는데 그걸 주우려고 허리를 구부리는 내 입에서는 무의식중에 'Thank you'가 튀어 나온다.



▶ 따가운 LA의 겨울 햇빛


  환승을 하려면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다. 입국 심사 때 받은 푸대접 때문에 영 기분이 좋지 않다. 환승 대기 중에 건물 밖으로 나갈 수가 있다. '나갈 수 있다'기 보다는 '나가야만' 다른 터미널로 이동할 수 있다. 공항의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나는 미국 땅을 처음 밟아 봤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했던 이런 시스템이 좋았다. 시내로 나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처음 미국에 온 지리학도로서 땅이라도 밟아 볼 수 있으니 다행스럽다.

  겨울철이지만 지중해성 기후답게 햇볕이 따갑다. 멀리 로키산맥의 눈 쌓인 봉우리가 보인다.


<로스엔젤레스 공항의 겨울 햇빛>


<눈 덮인 로키산맥의 봉우리가 멀리 보인다>



▶ 로스엔젤레스 공항 속의 라틴 아메리카, 119번 게이트


  LA 공항 119번 게이트는 라틴 냄새가 물씬난다. 미국 속의 라틴이라고 할까? 전신을 스캔하는 살벌한 검색대와 불친절한 직원들 때문에 자존심이 구겨지고, 기분이 상해 있었는데 이곳에 들어오니 완전히 느낌이 다르다. 같은 공항이 아닌 것 같다. 탑승 절차도 왠지 느슨한 느낌이다. 11:30까지 오라고 해놓고 12:00도 넘어서 개찰을 한다. 미국에 있지만 시스템은 라틴스럽다.

  그런데 119번 게이트에서 대기중인 사람들은 대부분 행색이 여유가 있어 보이는 백인들이 대부분이다. '라틴'하면 내 머리 속에는 Mestizo나 흑인, 또는 원주민이 떠오르는데 이곳에는 그런 사람들이 거의 없다. 해외 여행은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대중적이지는 않다. 즉, 경제적 수준의 영향이 없지 않다. 그런데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그 격차가 인종간의 격차로 나타나는 느낌이다.

  공항은 전체적으로 낡은 편이다. 인천에 비하면 건물도, 시스템도 훨씬 뒤떨어진다. 그런데도 이명박은 그 공항을 팔아치우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으니 그 저의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생각할때 마다 새삼스럽게 화가 나는 희대의 사기꾼…


<Marina Del Rey 해안>


  백사장이 길게 발달한 Marina Del Rey 해안으로 비행기가 날아 오른다. 직선 거리로 30km에 이르는 긴 해안의 가운데로 하천이 빠져나가는데 하구 양쪽에 인공구조물이 길게 설치되어 있다. 모래의 흐름을 차단할 것 같이 생겼는데 왜 설치되어 있는 것일까? 왠지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 설치했을 것만 같다. 또 한 번 고개를 드는 숭미주의…

  사구의 뒷편은 주택가이다. 마치 배후습지처럼 낮고 평평한 땅이 넓게 펼쳐져 있는데 나즈막한 건물들이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 멕시코 서해안을 지나


  나리타에서 LA까지 타고 온 비행기는 보잉777이었는데 Rima로 가는 비행기는 보잉767이다. 좌석의 배열이 2-3-2인데 좌석번호는 J, L로 나간다. 그 이유는 비행기 탈 때 마다 궁금하기는 한데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른다. 파트너 두희샘과는 또 자리가 떨어졌다. 창가에 붙은 자리를 요청했지만 나만 창가다.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므로 캘리포니아반도가 잘 보인다. 라틴아메리카의 가장 서쪽이 미국의 플로리다 반도와 비슷한 경도이므로 거의 내내 바다 위를 날아간다.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캘리포니아반도를 잠깐 가로지르기 때문에 잠깐 캘리포니아 반도가 보이더니 그것으로 끝이다. 좌석이 너무 아쉽다. 왼쪽에 앉았더라면 내내 멕시코와 중미 여러 나라의 해안을 보면서 갈 수 있었을텐데…

  그런데 캘리포니아 반도가 끝나면서 바로 짙은 구름이 낀다. 다행스럽다. 이런 상황이 살면서 많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놀라곤 한다. 왜 다행스런거지? 내 놀부 심뽀를 눈치챘는지 멕시코 해안(지도를 보니 '푸에르토 발라타 Puerto Vallarta'라는 곳이다)에서 구름이 걷히고 화창해진다. LA시간으로 15:20(Rima 18:20), 약 2시간 50분 정도 비행한 셈인데 캘리포니아 반도를 완전히 벗어나서 멕시코 중서부 해안을 날고 있다. 서울 시간은 1월4일 08:20, 인천에서 출발한 시간(1월 3일 07:30)을 기준으로 하면 꼬박 하루가 지났다. 참 먼 길이다.

  책만 들여다 보면 왜 이렇게 졸리운지 얼추 병이다. 옆 자리에 앉은 메스티죠 아가씨에게 민망할 지경이다. 자다가, 책을 보다 한 끝에 어쨌든 자료집의 페루 부분까지는 그럭저럭 진도를 떼었다. 주마간산이지만… 입국신고서를 작성하다가 직업란에 'Teacher'를 써야 하는데 갑자기 스펠링이 생각이 안 난다. 치매 증상이라는데…



<로스엔젤레스와 푸에르토 발라타  *Google earth>


<LA 해안>


<LA 앞바다의 Santa Catalina 섬 남단부>



<캘리포니아 반도(멕)의 San Antonio(사진 오른쪽) ,Rosarito(사진 왼쪽 바닷가), 그리고 두 도시 사이에 있는  La Hoja. 사진의 오른쪽
끝 부분이 미국과 멕시코의 경계이다>


<캘리포니아 반도(멕시코의 Baja California주)의 농업지역>


<닭고기 덮밥?>


<캘리포니아 반도의 惡地>


<캘리포니아 반도 남부(Melitón Albáñez Domínguez)>


<캘리포니아 남단부>



  위도상으로 산호세 부근에서 석양(Rima시간 19:40)을 만났다. 왼쪽에 앉았다고 해도 파나마 운하는 볼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나저나 아직도 다섯 시간이나 남았다니… LA까지 올 때보다 훨씬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반지의 제왕 세 편을 모두 끝내고 4편를 12분까지 봤더니 리마 도착 40분 전이라고 한다.


<리마 행 중에 만난 석양>


▶ 익숙하지 않은 공간은 멀게 느껴진다.


  LA 출발 12:30(리마 시간 15:30)인데 도착시간은 20:40(리마 시간 23:40)이다. 무려 8시간 10분이나 걸린다. 나리타에서 LA까지 9시간40분이 걸린 것을 생각하면 잘 비교가 된다. 매우 먼 거리인데도 같은 아메리카이기 때문에 무의식 중에 가깝다고 생각을 한다. 가본 적이 없는 낯선 곳이기 때문에 거리감이 정확하지 않다. 지도에서나 봤던 두 도시 간의 거리를 축척까지 고려해서 추정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리타에서 화장실을 가고 아직까지 가지 않았다. 아침 시간을 놓쳤기 때문이다. 시차가 워낙 많이 차이가 나니까 마치 때가 되지 않은 것 같아 그냥 넘겼는데 시간을 계산해 보니 타이밍을 제대로 놓쳤다. 뱃속에서는 이따금 천둥소리가 난다. 양치질도 나리타에서 점심 먹고 한 후 여태 하지 못했다.



  23:40, 드디어 리마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1월4일 13:40으로 1월3일 08:00경에 출발했으므로 정확히 29시간 40분 만에 도착한 것이다. 멀다! 월요일 출근길보다 멀다. 무엇을 보러 여기까지 날아온 것일까?


▶ 리마 국제공항: 가방이 오지 않았다.


  입국장에는 눈에 띄게 백인이 많다. LA공항은 미국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페루에서도 이런 풍경이 보이는 것을 볼 때 '해외 여행을 하는 원주민은 드물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만약 사실이라면 인종 간의 경제적 격차가 여전히 있다는 뜻이다.

  반가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늦게 도착한 우리는 먼저 도착한 일행을 만나러 호텔까지 가야 하는데 공항에 우리 일행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몇 시간을? 알고보니 가방이 도착하지 않아서 가방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가방이 오지 않은 사람이 일행 중에 8명이나 된다. 단순한 업무 착오가 아니라 가방 속에 들어있던 액체류 따위의 물건들이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미국은 검색이 까다롭기 때문에 검색에서 액체류가 발견되면 가방을 열고 검사를 하며 시간이 지체되면 다음 비행기로 가방을 보내준다. 그 과정에 겪는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덕분에 현지 시간으로 새벽 3시도 넘은 시각에 호텔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가방은 오지 않았다. 다음 숙박지인 쿠스코로 보내준다는 연락을 받았다. 스페인어를 하는 길잡이가 있었기에 맘 편하게 기다릴 수 있었지만 만약 혼자서 이런 상황을 맞았다면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Rima의 Horge Chavez 국제공항>


<해안과 산과 열대림을 갖춘 페루를 자랑하는 광고와 옆 건물의 'SAMSUNG'>


<이에 질세라 현대자동차 광고도 거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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