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라틴 아메리카

잉카의 심장 쿠스코

Geotopia 2017. 12. 27. 00:23

▶ 지구 반대편에서 처음 먹은 음식이…


    리마의 미라플로레스 지역에 있는 라스팔마스 호텔이 우리의 첫번째 숙박지이다. 가방 때문에 공항에서 늦게 들어온데다(04:00경에 취침), 떠드는 소리 때문에 그나마 잠을 설친 끝에 05:00에 일어났다. 그런데 첫날부터 아침 집합에 5분이나 늦었다. 늦게 잠이 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입고 온 두꺼운 옷을 가방에 넣으려니 공간이 부족해서 한참을 씨름하느라 그렇게 됐다.

  일찍 쿠스코로 떠나야 하기 때문에 호텔에서 아침을 먹을 수가 없어서 공항에서 아침을 때웠다. 잠을 못자서 입이 깔깔하다. 플라스틱 포장재 같은 느낌의 딱딱한 빵에 햄, 양상추, 토마토 등이 들어있는 샌드위치를 먹었다. 소문대로 주문을 받는 속도가 상당히 느리다. 유명한 세비체를 주문하려다 줄이 길어서 빅맥으로 갔다가, 결국 줄이 없는 가게(던킨이었던가?)에 가서 고른 메뉴가 바로 이것이다. 2인분에 32솔인데 아메리카노 커피가 딸려 나온다.

  민족을 초월한 다국적 자본의 위력을 느낀다. 지구 반대편까지 와서 먹은 첫번째 식사가 이것이다. 지구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서구형 메뉴를 선택할 수 밖에 없도록 패스트푸드가 전 세계를 지배해 간다. 정작 나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때까지 이런 걸 사먹어 본 적이 없는데 처음 먹어본 곳이 지구 반대편 낯선 나라라니… 전세계를 시장으로 하는 패스트푸드 다국적 기업은 세계인의 입맛을 보편화해 가고 있다. 같은 메뉴라도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둔다고는 하지만 큰 틀에서는 같다.


▶ 종주도시화, 빈부격차, 외국자본…


  외국 자본이 페루 경제에 매우 많이 들어와 있다. 마트 등 유통업에는 칠레 자본이, 스페인 자본은 주로 금융계에, 한국이나 미국자본은 석유 산업 등에 진출해 있다. 국내에서 많이 들어 본 'SK Inovation!'이 대표적인 예다. 채굴 기술이 부족하고 정유 시설이 부족하여(1개뿐이라고 한다) 빈곤이 악순환되고 있다. 풍부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국민 소득이 7천달러 이하이다.

  전체 인구가 3천만 명 정도인 나라인데 리마의 인구는 1천만 명이나 된다. 도시 내의 빈부격차가 심각하고 도시 구조도 독특하다. 일반적인 남미 도시와는 달리 리마는 센트로가 도시의 중심지가 아니라고 한다. 중국인과 칠레인이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것도 문제점이다.

  어제 입국장에 봤던 사람들이 대부분 백인(크리올로)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님이 얼추 확실하다. 백인이 경제의 중심이라는 사실은 출국장을 벗어나자 마자 확인 되었다. 팻말을 들고 서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메스티조나 뮬라토 계열의 사람들이다. 공항 밖의 인부들도 마찬가지다.

  페루의 모든 마을에는 3가지가 있다고 한다. 카지노, 사우나, 중국 식당(치파(Chifa)이다. 이 나라의 특징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도박과 유흥, 그리고 중국 자본.

  정치적 의사 표현에서 지역색이 매우 강하고(우리식의 지역주의와는 약간 다르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차이는 아직 잘 모르겠다) 심지어는 취업도 출신 지역에 따라 결정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투표 열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이러한 경향은 오히려 정치적 혼란의 원인이 되고 있다. 집권자의 변동에 따라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지역색과 격차가 선진화를 가로막는 큰 걸림돌이라고 볼 수 있다.


Andes Identity


  현지 시각으로 8:18분에 출발했다. 우리나라보다 14시간이 느리므로 우리나라 시간은 밤 10:18이다. 6석 1열에 모두 24열인 작은 비행기를 타고 안데스를 넘는다. 승무원들은 한결같이 무뚝뚝하다. 좌석이 창가가 아니라서 사진 한장 찍지 못하고 안데스를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다. 너무 아쉽지만 차라리 일찌감치 포기를 하고 부족한 잠을 자기로 한다.

  안데스 국가들 간의 여행에서는 항공료가 할인되는 독특한 제도가 있다. 남아메리카의 대부분 나라들이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이런 제도를 통해 포함되는 국가들을 하나로 묶는 지역 아이덴터티가 만들어질 수 있다. 항공사들이 시행하고 있으므로 국가보다는 기업이 선도하고 있는 아이덴터티다. 더욱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경영 전략이지만 이용자들은 이를 통해서 어떤 동질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국경 분쟁도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페루-칠레-볼리비아 등이 지금도 국경 분쟁을 계속하고 있다. 국경 분쟁은 국가 간의 갈등으로 자본의 이익과는 배치될 수 있다. 자본은 국가 간 갈등과 무관하게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장치들을 만들어 낸다. 안데스 국가 간 항공료 할인제도는 국가 간 갈등과 자본의 이윤 추구가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갈등과 동질감이 공존하는 독특한 안데스 정체성이다.

  새로 산 앞으로 메는 카메라 가방을 시운전해본다. 상당히 번거롭다. 산에 갈 때 외에는 활용성이 별로 높지 않을 것 같다. 마추피추나 빙하 탐험 때나 써야겠다.


<리마, 쿠스코 일대 위성영상 *Google earth>


▶ 잃어버린 이름 타완틴수유


  쿠스코는 안데스 한가운데 산간 분지에 자리를 잡은 도시라서 평지가 그다지 넓지 않다. 동-서로 길게 뻗은 이 분지는 동-서 길이가 약 15km 정도이고 남북 방향의 넓이는 2km 남짓되는 좁은 산간분지다. 해발 3천m가 넘는 고지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이 도시는 스페인 침략 이전 이 일대를 지배했던 타완틴수유의 수도였다. '잉카'는 '사파 잉카'에서 유래한 낱말로 타완틴수유의 지배자를 칭하는 '유일한 잉카'라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스페인 침략자들은 이곳을 지배자인 '잉카'의 땅으로 불렀던 것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흔히 쓰이고 있는 '잉카제국'은 잘못된 이름이다. '타완틴수유'는 케츄아어로 '사방국(四方國)'이라는 뜻이다. 안데스의 대부분(사방)을 지배하던 나라라는 의미이다. 그 나라의 한 가운데에 쿠스코가 있는데 '쿠스코'는 케츄아어로 '배꼽', 또는 '중심'이라는 뜻이다. '사방을 지배하는 나라'의 '중심'이므로 '수도'가 될 수 있었다. 四方國의 중심, 즉 십자로의 중심을 뜻하는 말이 바로 쿠스코다. 우리나라 양구의 배꼽축제가 떠오른다. 배꼽축제의 '배꼽'도 지리적 중심을 의미하니까 '쿠스코'와 같은 의미이다.

  쿠스코 공항은 규모가 작은 공항인데 좁은 산간 분지이기 때문에 분지의 한가운데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활주로의 길이가 4km에 이르므로 도시의 중심부를 차지하지 않을 수 없었겠다.

  이 작은 분지에 45만 명이 모여 산다. 분지의 양쪽 산 비탈에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건조하고 고도가 높기 때문에 주변의 산 비탈은 나무보다는 풀이 주로 덮여있다. 나무를 잘라내지 않아도 땅을 고르면 집을 지을 수 있겠다. 산비탈의 집들은 멀리서 봐도 좋은 집들은 아니다. 도심에 거주할 수 없는 서민들이 얼기설기 쉽게 집을 짓고 살고 있는 모양이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나타난 경관일 것이다. 주변에서 몰려든 사람들과 수많은 관광객까지 더해져서 쿠스코는 항상 사람들로 넘쳐난다. 

  45만 명의 인구를 거느린 쿠스코시의 경제적 기반은 관광산업이다. 그런데 관광 관련 산업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남성 실업이 많다는 점이 쿠스코의 고민이다. 방콕에 넘쳐나는 남성 실업자와 구조적으로 같은 패턴이다.

  도시의 성격이 시대에 따라 매우 심하게 바뀌어 왔던 것이 쿠스코의 특징이다. 타완틴수유제국의 수도였을 때는 이 일대에서 가장 큰 정치 행정도시였다. 식민지가 되면서 도시의 성격은 식민 통치를 위한 단순 행정도시로 바뀌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관광도시가 되었다.

  지진의 위험성 때문에 높은 건물을 짓지 못한다. 벽돌 건물의 한계 때문이다. 산비탈에 있는 집들도 그렇지만 도시 내부에도 고층의 건물은 거의 없다.

  산비탈의 풀을 제거하고 잔 돌들을 땅에 박아 거대한 나스카문양을 만들어 놓은 곳도 있다. 이런 문양도 쿠스코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가 될 수 있겠다. 대우전자에서 가전제품에 나스카 문양을 넣어서 매출을 획기적으로 늘린 적이 있다고 하니 나스카 문양은 이 사람들에게 매우 의미가 깊은 상징인 모양이다.


▶ 티코의 도시 쿠스코


  쿠스코는 티코의 도시다. 티코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최초의 경차로 꽤 긴 시간 동안 서민의 발이 되어주었다. 작은 차를 좋아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온갖 우스개의 대상이 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못 보게 된지 오랜데 뜻하지 않게 쿠스코에서 만나니 매우 반갑다. 어떤 연유로 이 차가 이 먼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지금은 이름이 바뀐 대우자동차에서 만든 차인데 지금도 대우는 이곳에서 인기가 좋은 브랜드라고 한다. 일찌기 대우가 페루에 진출해서 이 차를 팔았다. 그런데 오래된 도시인 쿠스코는 길이 좁고 뒷골목이 많아서 일반 자동차들이 다니기에 불편한 곳이 많다. 폭이 좁은 차인 티코가 이런 쿠스코에 딱 맞았던 것이다. 예전에는 훨씬 더 많았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생산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점점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꽤 많은 티코가 쿠스코 시내를 활보하고 있다.


▶ 특이한 가옥 구조: 쿠스코의 호텔


  먼저 호텔에 들러서 짐을 풀었다. 광장을 앞에 둔 호텔로 'Royal Inca'라는 이름의 낡은 호텔이다. 짙은 남색을 칠한 육중한 대문을 지나면 약간 침침한 로비가 있다. 옛날 집을 개조해서 만들었는지 3층짜리 건물은 고색창연하다. 객실을 찾기가 굉장히 어렵다. 712호가 우리 방인데 로비에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다가 길을 잃었다. 3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는데 우리 방이 없었다. 2층은 600代, 3층은 700代로 객실 호수가 매겨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방은 2층에 있는데도 712호다. 직원이 알려줘서 겨우 찾았다. 그래도 한 번 헤매고 나면 구조가 익숙해지기 마련인데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건물의 가운데에 마당처럼 생긴 공간이 있고 그 둘레로 방들이 4각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몇 번 왔다갔다 하면서 관찰해 보니 마당이 앞뒤로 두 개가 있다. 우리 방은 앞 마당의 3층에 있으며 엘리베이터는 앞 뒤 마당의 중간에 있다. 아마도 마당의 높이가 1층 정도 차이가 나는 모양이다.

  이런 폐쇄적인 가옥구조는 스페인에서 전래된 문화다. 마당이 집의 앞이나 뒤에 있어서 마당이 가옥과 가옥의 경계가 되는 일반적인 형태의 가옥과는 달리 이런 형태의 가옥은 집과 집이 벽을 맞대고 붙어 있다. 외적의 침입을 막는데는 유리한 가옥구조일 수 있겠지만 화재에는 매우 취약해 보이는 구조다.


<가운데 마당이 있는 특이한 구조의 호텔 건물>


▶ 텔레파시? 그 찰나의 순간에 친구의 얼굴이 보이다니!


  호텔에 여장을 풀고 쿠스코에 있는 볼리비아 대사관으로 비자를 받으러 갔다. 볼리비아를 관광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쿠스코를 들러서 가기 때문에 수도가 아닌 이곳에도 대사관이 있는 모양이다. 내일과 모레 모두 일정이 빡빡해서 시간 여유가 있을 때 비자를 미리 받아놓아야 한다. 현지 안내인인 중년 여성이 왔다갔다 두서없이 서두른다. 원칙대로 하면 그만인데 어째서 이렇게 적어라 저렇게 적어라 난리를 치는지… 볼리비아측의 문제인지, 페루측의 문제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타고 온 전세버스 주차 문제로 기사는 집주인 듯한 백인 부부와 한 동안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대사관 옆에 사는 이 사람도 참 괴롭겠다. 한 두번 일어난 일이 아닐텐데 매번 이렇게 언쟁을 해야 한다면 신경이 쓰여서 어떻게 살까? 또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 관광버스 주차를 금지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은 자신의 존재 기반을 흔드는 정책이다. 관광산업이 고도화 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제주도의 관광산업과 비교가 된다. 주민의 자발성과 정책적 지원이 결합되면 세수 확보가 가능하고 이것이 인프라에 재투자 되어 관광기반을 더욱 튼튼하게 한다. 농업은 생산 기반으로서 큰 의미를 갖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진짜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비자 수속을 마치고 전세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을 보고 있는데 얼핏, 친구의 얼굴이 보인다. 대학 동기지만 과가 달라서 자주 만나지도 못하는 그냥 '아는 친구'다. 그런데도 그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다. '홍구야~' 마음 속으로 이름을 불렀다. 소리를 질러봐야 창에 막혀 소리가 전달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그가 고개를 돌려 우리 차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놀랄 겨를도 없이 반사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랬더니 또 기적처럼 그가 나를 알아보고, 차창 속의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드는 것이다. 참 놀랍다. 지구 반대편에서 친구를 만났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 짧은 순간 우리가 눈빛을 나누었다는 것이 정말 놀랍다. 텔레파시라는 것이 정말 있는 모양이다.


▶ 회랑이 추운 서늘한 날씨


  회랑이 있는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노천 회랑에서 거리 경치 구경을 하면서 폼나게 먹으려고 했지만 추워서 실내로 자리를 옮겼다. 여름이지만 햇볕에 나가면 따뜻하고 그늘에 들어가면 춥다. 마치 맑은 가을날 같다. 회랑은 지중해의 따가운 햇살을 막는 기능을 가진 가옥 구조이다. 처음에는 스페인 침략과 함께 형식적으로 전파된 문화였을 것이다. 즉 오랫동안 스페인 사람들이 체득하여 가지고 있던 문화가 식민지의 환경과는 무관하게 전파되었다. 그런데 이날 답사 중 갑자기 비와 우박이 내렸는데 이때 회랑은 아주 훌륭한 피신처가 되었다. 원래를 따가운 햇살을 막는 것이 주 목적이었던 가옥 시설이 변화가 심한 고산기후 환경에서도 실질적인 쓰임새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쓰임새가 있었기 때문에 퇴화하지 않고 유지, 발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리마에서는 지붕이 없는 빈민가의 가옥이 눈에 띄었는데 쿠스코에서는 회랑이 눈길을 끈다. 가옥구조의 차이는 기후 조건과 관련이 깊다는 것이 기초적인 사실이지만 지붕없는 빈민가와 회랑은 역사적 원인, 경제적 불평등 등이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 같다.

  일곱 명이 함께 들어가서 메뉴를 모두 다르게 주문을 했다. 나는 28솔짜리 알파카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알파카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고기지만 남미에 왔으니 한 번 쯤은 맛을 봐야할 것 같아서. 공항에서 50달러를 환전해 왔는데 121솔이다. 밥 먹는 것 외에는 쓸 일이 없으므로 일단 많지 않은 액수 만을 환전해 봤는데 121솔이면 알파카 스테이크로 네끼를 먹을 수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비해 음식값이 싼 편은 아니다.

  듣던대로 음식이 정말 천천히 나온다. 추워서 얼른 숙소에 달려가서 옷을 껴입고 돌아왔는데도 그때까지도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음식이 나왔는데 스테이크가 거의 식어서 나왔다. 여러 종류를 천천히 만들다보니 먼저 만든 음식은 식을 수밖에 없겠다.

  메뉴판에 있는 설명에 꼬냑을 준다고 써있는데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의사 소통이 잘 안된다. 스테이크와 함께 나온 메뉴는 감자에 치즈를 입혀서 익힌 요리다. 식으니까 치즈가 굳어서 맛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각자 다른 음식을 주문했으므로 서로 한 젓가락씩 교환해서 음식을 맛보기로 했다. 공통점은 음식의 양이 많고 우리 입맛에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일, 스프, 볶음밥, 야치 샐러드 등이 주류를 이룬다.


▶ 독특한 문화들


  성의식이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고 한다. 15세만 넘으면 자유롭게 연애하고 쉽게 헤어진다. 그러고 보면 이 나라가 특이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특이한 경우라고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많은 나라들이 비슷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광장문화가 발달한다. 고대의 시민문화가 바로 광장문화였다. 아고라, 아크로폴리스 등이 그 출발이다. 이후 절대 왕정시기가 되면서 군사문화로 바뀌었고 시민혁명 이후 다시 시민문화로 복원되었다. 식민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스페인식 도시구조가 이곳에 그대로 투영이 되었기 때문에 쿠스코도 곳곳에 광장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흔한 이름은 아르마스광장(Plaza de Armas)인데 도시의 중심부에는 거의 어김없이 이런 이름의 광장이 있는 것이 식민지 시기 건설된 남미 도시들의 특징이다. 'Plaza de Armas'는 '연병장'이라는 뜻으로 절대왕정 시대의 군사 문화를 상징한다.

  노천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 인형 등 공예품을 파는 아이들이 많이 온다. 추워서 그랬지만 이 아이들을 어찌할 수가 없었던 것도 안으로 들어오게 된 이유다. 일일이 사줄 수도 없고 외면하기는 마음에 걸리니 안 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산 꼭대기에 많은 안테나들도 눈길을 끈다. 몽골과 러시아에서도 이와 비슷한 풍경이 있어서 궁금했었는데 이곳에서 의문이 풀렸다. 알고보니 무선전화 통신장치를 연결하는 장치라고 한다. 무선전화가 도시단위로 연결이 되기 때문에 이런 안테나가 필요하다고 한다.

  개팔자가 상팔자인 것도 특징이다. 힌두교 영향권에 속하는 지역에서 나타나는 풍경과 매우 느낌이 비슷하다.

  식민지 역사에 대한 불만이나 적개심이 없다. 성의식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개방적인 성 의식은 침략자와 피지배자 간의 혼혈을 자연스럽게 했다. 침략자의 자손은 부정한 존재로 취급했던 우리와는 매우 다른 인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식민지 시대의 유산이 완벽한 경관으로 남아있다. 우리나라는 한 때 침략의 유산을 제거하는 것이 민족정기를 살리는 길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졌었다. 그래서 조선총독부의 첨탑을 해체했고 군산의 일제식 건물들이 철거되기도 하였다. 식민지 본국에 대한 인식도 우리나라가 특이한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잉카블루를 빼놓을 수 없다.


▶ 잉카블루(Inka blue) - 안데스의 하늘 빛


  ☞ http://blog.daum.net/lovegeo/6780446


▶ 버스인가 택시인가?


  알파카 매장과 커피숍 등은 남자들에게는 전혀 매력이 없는 장소다. 여인들이 알파카 제품을 사러 들어간 알파카 매장 밖에서 하릴없이 기다리다가 결국 먼저 돌아오고 말았다. 그래서 알파카 매장에서 나와서 가기로 했던 커피숍도 못 가보고 말았다. 

  버스 승강장이 여러 곳에 있다. 버스를 타려면 반드시 공용터미널에 가야 하는 우리나라와는 매우 체제가 다르다. 버스가 개인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크기와 모양이 가지각색인데 시간표도 없어서 그냥 길 옆에 서 있으면 사람들이 타고, 적당한 타이밍이 되면 운전사와 조수가 알아서 출발을 한다. 보험 등 여러 문제가 파생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비 공식 부문이기 때문에 세수로 잡히지도 않는다. 악순한 구조다. 버젓이 이루어지는 공인된 경제 행위가 일종의 지하 경제인 셈이다. 자본주의는 세금으로 유지되는 것인데 지하경제가 활성화되어 있을수록 경제구조가 취약한 것은 당연하다. 어쩌면 이런 취약한 경제구조는 식민지 유산일 수도 있다.


▶ 왕궁 위에 지은 침략의 표상, 산토도밍고 성당


  시내 중심가는 엘솔로이다. 시청 등 주요 건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페루 국기가 걸려있고 중앙정부 문양이 있는 건물을 지났다. 무슨 건물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경찰에게 물었지만 안타깝게도 모른단다. 영어를… 이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잘 못한다. 안 하는 것인지, 못 하는 것인지…

  산토도밍고 성당은 타완틴수유 왕궁을 무너뜨리고 지은 성당이다. 아래 부분을 이루고 있는 벽돌은 왕궁의 유적이고 위는 스페인이 지은 성당이다. 원주민의 저항이 거셌기 때문에 침략자들은 더욱 종교의 전파에 공을 들였다. 당시 타완틴수유의 절대 권력을 무력화하고 그들의 신을 능멸하는 것이 식민지 지배를 쉽고 빠르게 진행하는 데 필요했기 때문이다.

  성당 옆에 있는 중학교를 방문했다. 교사도 학생도 모두 영어가 전혀 되지 않는다. 조금만 공부하면 우리보다는 훨씬 잘 할 수있을텐데, 그러면 이 지역에서는 매우 특화된 사람이 될 수 있을텐데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하긴 그건 주제넘은 생각이다.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머리 아프게 남의 말을 배우겠는가?

  갑자기 우박과 비가 내려서 거리 복판에서 비를 그어야 했다. 버스 승강장에서 아르마스 광장에 이르는 곳이었다. 천상 아르마스 광장 앞 회랑에 갖혀서 하염없이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쿠스코에서는 이오니아, 도리아, 코린트 등 다양한 양식의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다. 태환샘의 설명이다. 스페인어라고는 배운 적이 없기는 마찬가지인데 대략 스페인어를 추측해서 읽는 뛰어난 감각을 갖고 있다.


▶ 식민지 도시 쿠스코


  ☞ http://blog.daum.net/lovegeo/6780447


▶ 고산증: 은근히 불쾌하다.



  머리가 아프고 아주 은근히 불쾌하다. 여행 출발 전에 앓았던 불쾌한 두통과 증상이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더 무감각해진 것 같다. 다행스런 일인가?

  식사를 못할 만큼 구토증을 보이는 일행도 있다. 룸메이트 두희샘은 시내 답사를 포기할 정도다. 아스피린 2알을 먹으니 좀 나아졌다. 호텔 로비에 있는 코카차를 틈나는 대로 마셨더니 좀 나은 지도 모른다. 코카차는 구수한 것이 맛도 괜찮은 편이다.

  저녁 토론회에서 농담으로 '그만 합시다'고 했다가 진짜로 모임이 끝나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그러면 안 되는 입장이다. 가장 나이가 많아서, 그것도 많이 많아서 농담을 해도 진담으로 받아들인다. 모두들 내가 힘들어서 그만 하자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조금 신중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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