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라틴 아메리카

라파즈

Geotopia 2017. 10. 1. 23:15

▶ 인구 90만의 종주도시


  오늘 일정은 8:30부터 시작된다. 차칼타야를 등반한 다음, 달의 계곡을 간다. 다시 라파즈로 돌아와서 시내 투어를 한 다음 19:00에 우유니를 향해 출발한다. 밤새 달려서 새벽에 우유니에 도착할 예정이다.


  아침 일찍 차칼타야를 향해 출발했다. 미니버스를 타고 간다. 차가 낡아서 의자가 덜렁덜렁 하는데 심지어는 의자 바닥에 뭔가 삐죽 튀어나온 것이 있어서 자꾸 엉덩이를 찌른다.

  길가에 시멘트로 만든 화단이 설치되어 있는데 철근으로 둘레를 막아놨다. 모양이 예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장식은 아닌 것 같고 화단의 꽃과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사람들이 뽑아가기라도 한단 말인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구조물이다. 시내는 매우 혼잡하다. 사람, 차가 뒤엉켜서 복잡한 모습은 한창 도시화가 진행 중인 도시라는 느낌을 준다. 이촌향도로 수도의 인구가 늘어 종주도시화가 진행중임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알고보니 라파즈는 인구가 90만 여 명밖에 안 되는 작은 도시이다. 볼리비아 전체인구가 1천1백만 명이니까 그다지 인구가 집중한 것도 아니다. 사법수도인 수크레의 인구가 약 40만 명 정도이므로 이론적으로는 종주도시화가 일어났다고 볼 수 있지만 의외로 인구가 적은 도시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복잡해 보일까? 사람들이 다 쏟아져 나와서 돌아다니나?

  원주민 복장을 한 사람들이 확실히 많다. 페루에서도 그랬지만 원주민 복장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주로 여인들이다. 길가에 구두닦이가 있어서 더욱 옛날 같은 느낌을 준다. 분지 지형이어서 주변이 모두 비탈인데 비탈이 대부분 작은 집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라파즈 분지 외곽의 산비탈을 뒤덮고 있는 달동네]


▶ 차칼타야 가는 길


  분지를 벗어나는 길 옆에 절개지는 분급이 안 된 퇴적층이다. 흙과 자갈이 무질서하게 섞여 있는데 자갈은 대부분 하천의 작용을 받은 듯 원력이다. 일종의 단구로 보이는데 융기로 솟아 올랐다는 얘기인가?

  전봇대에 허수아비가 달려있다. 주술적인 의미일까?


  분지를 벗어나서 위에서 바라보니 비탈에 지은 게딱지 같은 집들의 지붕이 은빛으로 반짝거린다. 지붕이 한결같이 함석 재질이기 때문이다. 집은 규모가 상당히 작아서 많은 식구가 살기는 어려워 보인다. 도심부에는 빌딩들이 솟아 있는데 그곳을 제외하면 높은 건물이 거의 없다. 경제 수준이 낮은데다 지진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높은 건물을 잘 짓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 전체가 뿌연 매연으로 뒤덮여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매연이 심한 도시답다. 분지지형이어서 오염물질이 배출이 되지 않기 때문에 대기의 질이 매우 나쁠 수밖에 없다. 분지 바깥은 넓은 평지인데 역시 집들이 계속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산으로 올라가는 비포장길 옆으로 수로가 설치되어 있는데 수로에는 붉은 황토물이 흘러 내려간다. 홍수가 나서 내려오는 물은 아닌 것 같고 철분이 많이 함유된 녹슨 물 같은 느낌이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스텝같은 식생 경관이 나타난다. 나무가 없고 짧은 풀이 자란다. 차칼타야의 만년설이 멀리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붉은 황토가 노출된 곳도 있는데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광산이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집을 짓기 위해 흙을 파가는 곳인 모양이다. 풀 사이로 자갈들이 흩어져 있다. 

  더 올라가니 호수들이 나타난다. 증발량이 매우 적기 때문에 겨울 동안 쌓였던 눈이 녹아서 작은 분지에 물이 고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이 일대는 툰드라 환경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알파카떼가 산 마루 스카이라인을 따라 한가롭게 풀을 뜯는 그림같은 장면도 있다.


  정상으로 다가갈수록 길이 가파라지면서 곡예 운전이 시작된다. 낡은 차가 낭떠러지길을 마구 내 달리니까 정말 손에서 땀이 난다. 게다가 의자까지 불편해서 이만저만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고통을 호소했더니 누군가 자리를 바꿔준단다. 그러자고 한 말이 아니고 농담을 섞어서 한 말인데 그렇게 반응이 오니 당황스럽다. 아직 농담을 할 만한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다. 더구나 나이 차가 많이 나서 내가 '경로의 대상'임을 느낀다. 친구들이었다면 분명히 되받아치는 농담이 되돌아왔겠지만 이 자리에서는 내 농담이 동료들을 부담스럽게 한다. 또 한 번 다짐한다. 말을 조심해서 하자.


  식생이 사라지고 대신 동파로 부서진 암설들이 땅을 덮고있다. 경사가 심한 곳은 진행중인 테일러스들이 발달하고 있다. 호수도 점점 많아지는데 규모가 크지 않은 것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있다. 설식(nivation)으로 만들어진 와지들이다.



▶ 차칼타야, 5421m 내 생애 가장 높은 곳



  차칼타야 정상 바로 아래까지 차가 올라간다. 차가 올라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에는 기념품과 음식을 파는 가게가 있다. 가파른 산 마루를 깎아서 터를 만들고 건물을 지었다. 응달에는 희끗희끗 눈도 쌓여 있다. 산의 남사면에 눈이 쌓여 있어서 남반구임을 느낄 수 있다. 긴 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인생에서 가장 높은 곳에 걸어서 올라가보기로 했다. 숨이 차지 않도록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 처럼 숨이 차지는 않고 그냥 걸을 만 하다. 정상까지 걷는 거리는 채 1km도 되지 않은 것 같다. 하얗게 눈이 쌓여 있지만 그런대로 걸을만 하다.

  정상은 나 혼자만 올랐다. 5421m, 내 인생에서 가장 높이 올라온 곳이다. 북쪽으로 눈덮인 알데스의 연봉들이 늘어서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산은 '와이나포토시(6088m)'라는 산이다. 포토시는 칠레의 구리 생산지로 유명한 이름인데 이곳에도 같은 이름이 있다. 스페인어는 같은 이름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와이나'는 마추피추 앞에 서있는 와이나피추와 또 같다. '젊은'이라는 뜻이니 '와이나포토시'는 '젊은 포토시'라는 뜻이다. 포토시도 무슨 의미가 있을텐데… 사전을 찾아보니 스페인어 'potosi'는 지명 외에도 '엄청난 富'라는 뜻이 있다. 그런 뜻으로 지었을까?


  정상에서 멕시코 사람을 만났다. 아들들을 데리고 관광을 왔단다. 같은 라틴아메리카에 속하지만 멕시코와 볼리비아는 굉장히 먼 나라다. 내가 날아온 거리에 비하면 훨씬 가깝지만 아주 먼 나라로 가족 여행을 온 사람이니 멕시코에서는 꽤 경제력이 있는 사람인 모양이다. 아이들은 초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데 그렇다면 나이도 많지 않다는 뜻이다.



▶ 달의 계곡, 지형 형성 작용이 식생을 방해한다


  스릴 만점의 길을 되짚어 내려와서 달의 계곡을 향했다. 달의 계곡은 라파즈를 기준으로 차칼타야의 반대쪽에 있다. 즉 차칼타야는 라파즈의 북쪽에 있는데 달의 계곡은 라파즈의 남쪽에 있다. 볼리비아 시내를 벗어나 계곡 하나를 지나면 마야사(Mallasa)라는 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에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이 있다. 알티플라노 고원을 아마존강의 최상류가 동쪽에서 침식을 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거대한 침식곡이 만들어졌다. 위성 영상을 보면 알티플라노 고원을 점점 깎아먹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넓고 평평한 침식곡에 라파즈가 자리를 잡고 있고 남쪽에도 라파즈가 있는 계곡과 규모가 비슷한 침식곡이 하나 더 있다. 달의 계곡은 라파즈 남쪽 침식곡에 자리를 잡고 있다.

  입구에 여러나라 국기가 휘날리고 있는데 그 중에 우리 태극기도 눈에 띈다. 반갑다.

  이름처럼 식생이 전혀 없는 것이 달에 온 것 같다. 아타카마 사막에도 같은 이름의 계곡이 있는데 이곳은 사막이 아닌데도 이런 지형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해발 3300m가 넘는 고지대이긴 하지만 건조한 사막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비밀은 나중에 타이완에 가서 풀었다. 타이완 남부 강샨(岡山)이란 곳에 웨쓰지(月世界)라는 곳이 있다. 이곳 역시 뜻이 달의 계곡과 비슷한데 습윤한 아열대 지역에 이런 지형이 있는 것이다. 알고 보니 이런 지형은 세계적으로 꽤 많다. 뉴질랜드를 여행하다가 오마라마라는 마을 근처에서 우연히 찾아간 적도 있다. 그곳은 이름이 '달의 계곡'이 아니고 '진흙 절벽(Clay Cliff)'이었다.

  이런 지형은 매우 빠른 지형 형성 작용 때문에 만들어진다. 대개 암석화가 덜 진행된 이암이나 진흙층이 두껍게 분포하는 곳에 발달한다. 두터운 진흙층은 비가 내리면 쉽게 침식이 된다. 식생이 안착을 하려면 토양이 안정되어야 하는데 계속 침식이 일어나기 때문에 식생이 안착을 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서 하천이 침식 기준면에 가까워지면 하방침식이 둔화되고 봉우리가 점차 낮아질 것이다. 점차 지형의 경사가 완만해지면 식생이 안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달의 계곡은 수명을 다할 것이다.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도 이런 지형을 발견했는데 침식이 진행되어 절벽이 깎여 나가서 그 위에 지은 집이 위태로운 아슬아슬한 장면도 볼 수 있었다.


▶ 라파즈에 딱 하나 있다는 한국 식당

 

  시내로 돌아와 한인 슈퍼에 들렀다. 해외에서는 단연 신라면이 인기인 모양이다. 소주, 전기밥솥, 냄비 등등. 우리나라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가게라기 보다는 한국제품을 좋아하는 라파즈 사람들도 많이 이용할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주인은 우리를 소 닭보듯 한다. 그래도 그렇지 멀리 고국에서 사람들이 왔는데 반갑지 않을까?


  어렵사리 카메라 가게를 찾았는데 두희샘 카메라에 적당한 렌즈가 없다. 내심 라파즈에서 내 렌즈를 되찾을 기회가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는데 이제 난망하게 되었다.


  라파즈에 딱 한 개 있다는 한인 식당을 어렵게 찾았다. 고산증에 시달리는 태환샘이 김치찌개를 먹으면 나을 것 같다고 해서 물어물어 어렵게 찾은 것이다. 그런데 문을 닫았다. 이를 어쩌나… 무작정 문을 두드렸더니 빼꼼 비상구(문에 작은 창문 같은 것이 달려서 그걸 열고 안팎 사람이 대화를 할 수 있다)가 열리더니 점원이 고개를 내민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현지인이다. 주인은 시장을 보러 가서 자리에 없고 마침 브레이크 타임이라서 문을 닫은 것이었다. 반찬이 없어서 음식을 팔 수가 없다고 한다. 현지인 입에서 '반찬 없어요'라는 우리말이 나와서 그 와중에도 재미가 있다. 이것도 한글의 세계화인가? 문을 닫으려는 그에게 멀리서 왔으니 아무거나 되는 음식 좀 만들어달라고 사정을 했더니 겨우 문을 열어준다.

  김치찌개를 주문했는데 소주가 빠지면 안된다. 고산증 환자에게 소주는 쥐약이지만 그래도 지구 반대편에서 김치찌개를 먹는데 소주를 빠뜨릴 수는 없다.


▶ 유럽스러움과 식민지스러움


  신호대기 하고 서있는 승합차 콜렉티보 앞에 잽싸게 두 젊은이가 나서더니 서로 곤봉을 던지는 저글링 공연을 한다. 흰 얼굴의 백인이어서 더 눈길을 끄는데 용돈 벌이라도 되기는 되는 걸까? 이런 거리 공연 문화는 유럽스러운 면이다. 남미 도시들이 그런 것 같다. 무질서한 제3세계 국가스러움과 유럽식 문화가 섞여 있다.

  시내 곳곳에 서 있는 동상들도 유럽스럽다. 독립 영웅 쯤 될 듯한 인물이 말을 타고 있는 조각상을 비롯하여 짧은 역사의 나라지만 꽤 고풍스러운 느낌의 동상들이 많다.


▶ 대성당 구경


  샌프란시스코성당과 옛 총독부 건물이 있는 곳이 라파즈의 중심이다. 전형적인 라틴아메리카 식민지 도시구조를 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성당에 들어갔다가 자원봉사자를 우연히 만나서 성당 구경을 샅샅이 하게 되었다. 나의 짧은 영어와 자원 봉사자(그날 있던 자원봉사자 가운데 가장 영어가 잘 되는 사람인 듯 직원이 가서 이 사람을 데리고 왔다)의 짧은 영어가 만나서 엄청 어려운 소통을 했다. 둘 중 한 쪽이 잘 하면 소통에 큰 문제가 없는데…

  성당 내부를 이렇게 자세히 보기는 처음이다. 고풍스러운 성당의 구석 구석 마다 이야기가 서려있다. 종탑에도 올라가 보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각각의 음계를 내는 여덟 개의 종이 있고 그 종을 치는 줄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성당의 종은 그냥 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과 같다. 종을 치는 사람은 음악에 조예도 있고 숙련도 되어야 할 것 같다.


☞ 라틴아메리카의 가톨릭  http://blog.daum.net/lovegeo/6780445


  노점에서 알파카 새끼를 미이라처럼 통째로 말려서 판다. 이건 어디에 쓰는 것일까? 오렌지 껍질을 벗겨서 압축기에 넣어서 즙을 짜서 파는 즉석 주스 노점도 있다. DVD판매점에는 작은 모니터가 있어서 영상을 보여주면서 손님을 유혹한다. 삼성 텔레비젼에서 우리 나라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라파스 시내에도 삼성과 엘지가 커다란 간판을 달고 광고를 하고 있다.


▶ 우유니행 야간 버스


  버스 시스템이 무질서하다는 것을 라파즈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단지 페루에서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라 남아메리카 전반에 퍼져있는 문제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우리나라 시스템을 정상으로 생각한다면 매우 비효율적인 체계이다. 그렇다면? 시내버스 회사를 설립하여 교통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문제점은 없을까? 수많은 영세업자들의 생계는? 떡볶이까지 프렌차이즈화 하여 골목 상권이 붕괴되어 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비춰볼 때 어떤 측면에서는 영세업자를 보호하는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다. 대규모 자본에게 시내버스 운영을 통째로 집어 주기 보다는 영세업자들의 기득권을 보장하면서 체계를 정비해 나가면 정리해 나가면 자연스럽게 불량 영세 업체의 정비를 연착륙시킬 수 있을 것이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우유니로 떠난다. 밤새 달리는 야간 버스다. 야간 열차는 들어봤어도 야간 버스는 생전 처음 듣는다. 손님들이 모두 잠을 자는 한밤중에 운전을 하려면 운전사는 졸리지 않을까? 하긴 덜컹거리는 길이 많아서 졸릴 틈도 없겠다. 가는 길에 밥을 주는데 너무 덜컹 거려서 나미샘은 밥을 몽땅 쏟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