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라틴 아메리카

마추피추, 너무 유명해서…

Geotopia 2017. 10. 1. 12:39

  요쿠르트를 챙겨서 먹었다. 집을 떠난 긴 기간 동안 배출이 원활해야 여행도 원활하기 때문이다. 김치를 구경할 수 없기 때문에 요쿠르트로 유산균을 공급해야 한다.

  마추피추로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야한다. 버스타는 곳으로 가기 위해 호텔 밖으로 나오니 빌딩처럼 거의 수직으로 솟은 까마득한 봉우리가 사방을 막고 있다. 어젯밤에 어둠 속에서 봤던 그것이 산이 맞았다. 정상을 보려면 고개를 뒤로 젖혀야 할 판이다.


  걸어서 올라갈 수도 있지만(아구아칼리엔테스 시내와 와이나픽추 정상 간의 표고차는 500m가 채 안 된다) 우리 일정상 시간이 없기 때문에 우린 모두 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여유있게 천천히 산에 올랐다가 내려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버스를 타고 가는 경험도 꼭 한 번은 해봐야 할 것 같다. 비탈을 올라가기 위해 지그재그로 낸 버스길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버스들이 쉴 새없이 오고가는데 앞을 바라보고 있으면 손에 땀을 쥘 수밖에 없다. 수직에 가까운 사면에 낸 길이니 폭이 넓을 수가 없다. 한쪽은 수직 낭떠러지다.


  산을 올라가는 길은 우리나라에도 많지만 마추피추 산길과 우리나라 산길은 약간 구조가 다르다. 산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마추피추에서 어제 쿠스코 거리에서 스쳐 지나갔던 친구를 만났다.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이 내외 간에 함께 여행을 왔단다. 평생 올까말까한 장소에서 이렇게 아는 사람들을 만나다니 반갑기 그지없다. 그리고 신기할 뿐이다.


  사실 표고차 500m라면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다. 우리 아산의 광덕산도 표고차가 550m 정도이다. 그런데 마추피추에서 내려다보는 우르밤바 협곡은 발끝이 저릿저릿할 만큼 까마득하다. 경사도 때문이다.


  마추피추(놁은 봉우리)와 와이나피추(젊은 봉우리)라는 두 개의 봉우리 사이에 있는 마을이 마추피추마을이다. 폐허가 되었다가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여러가지가 불가사의하다. 왜 이런 산꼭대기에 마을이 자리를 잡았을까? 엄청난 계단 경작지들은 누가, 왜, 어떻게 만들었을까? 왜 폐허가 되었으며 사람들에게서 잊혔을까? 등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어서 음식을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 멋도 모르고 돗자리 펴고 앉아서 점심을 먹으려다가 관리원에게 제지를 당했다.

  제단으로 쓰였음직한 단이 있다. 거대한 돌을 깎아서 만들었는데 제단의 방향이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우리나라식으로 이런 경관을 해석하는 내 생각이다. 이 제단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를 정확히 모르는데 이것이 북쪽을 바라보는 것인지, 서쪽을 바라보는 것인지 어떻게 정확히 정의한단 말인가?

  직선상의 절리가 발달한 암반이 있다. 직선 절리의 방향이 북동-남서 방향, 많이 보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절리 방향과 같다.



<마추피추산 기슭에서 바라본 마추피추 마을과 와이나피추, 그리고 우르밤바강>


  몇 마리의 야마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초원도 있다. 북쪽인데다 해발고도가 낮은 이곳에서는 알파카를 사육할 수 없다고 한다. 


  와이나픽추에는 일행 중에서 여섯 명이 올랐다. 와이나픽추에 오르려면 미리 신청을 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하루에 갈 수있는 인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약 시간을 기다렸다가 와이나픽추에 올랐다. 올라가는 길에 내려오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하고 먼저 인사를 했더니 반갑게 화답을 한다. 지나쳐서 내려가면서 어떤 한 젊은이가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 데서 인사를 하시는 걸 보니 선생님들이 틀림없어'

  대부분 서로 인사를 안 한다는 얘기다. 정말 그렇다. 우리나라 사람을 만나도 그저 데면데면하는 것이 보통이다. 단체로 여럿이 다니다 보면 사실 반갑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하지만 말하는 데 돈 드는것도 아니고, 산에서 사람을 만나면 인사하는 것이 예의인데 소 닭보듯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앞으로도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사를 할 작정이다.

 

  아마존의 상류인 우르밤바가 아스라이 내려다 보이는 그곳은 '환상적'이라는 말 밖에는 적절한 표현이 없다. 움직임 조차 불편한 좁은 정상에서 사람들은 서로 자리를 양보하면서 벅찬 풍경을 조용히 감상한다. '깎아지른'이라는 말이 딱 맞는다. 어제 비로 흙탕물이 된 우르밤바는 와이나픽추의 동쪽에서 흘러와서 북쪽으로 감입한 다음 서쪽으로 흘러간다. 설명이 필요없다. 융기가 감입곡류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여기 와서 보면 그냥 이해가 될 것 같다. 위에서 조망하니 버스길이 난 사면은 그 중에서도 경사가 좀 덜한 사면임을 알 수 있다. 용케도 그런 곳을 찾아내서 길을 내는 것을 보면 사람 참 대단하다. 협곡을 따라 난 철도로 기차가 지나가는 장면도 '사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게한다. 강가가 아니고는 철길을 낼 방법이 없겠다.

  어떻게 이런 절벽과 다름없는 경사면에 경지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이곳에서 경관을 바라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것이 일상적인 식량을 생산하기 위한 경지는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수직으로 돌을 쌓아 경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아마도 숱한 사람들이 죽고 다쳤을 것이다. 단지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 이유가 없다. 목숨을 걸 만큼 생산성이 보장되는 위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옥수수는 아마도 중요한 종교적 의식에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견해에 동의한다.

  와이나픽추 정상은 밀도가 매우 높은 인종의 전시장이다. 전세계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각자 빈 공간을 찾아 앉아서 경치를 감상한다. 좁고 돌로 이루어진 정상은 돌아다닐래야 돌아다닐 수도 없다. 그러니 사람이 없는 적당한 곳을 찾아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인종의 전시장이 될 수밖에.

  내려오는 길은 더 스릴만점이다. 원래 그렇다. 올라갈 때 느껴지는 경사도보다 내려올 때 느껴지는 경사도가 훨씬 크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공포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내려오는 길을 동영상으로 찍어봤다. 뷰파인더에 눈을 댔다가는 그대로 낙상할 것이므로 목에 카메라를 걸고 셔터를 누른 다음 그냥 내려왔다. 렌즈가 아랫 방향을 가리키므로 평지라면 땅 바닥만 나오겠지만 워낙 경사가 심한 이곳에서는 아주 마음에 드는 앵글이 나온다.

  마치 사다리처럼 생긴 길은 뒤로 엉금엉금 기어서 내려와야 한다. 마침 지진이라도 나면 그냥 떨어져버릴 것 같은 길이다.


  '거기까지 간 것을 후회해요'

  와이나픽추에 올라가지 않은 연희샘이 그 앞까지 갔던 것을 그렇게 표현했다. 못 올라 갔음을 아쉬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때론 적절한 합리화가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마추피츄에서 두희샘이 카메라를 떨어뜨렸다. 렌즈가 두 동강이 났다. 안타깝지만 내 렌즈를 빌려주지 않을 수가 없다. 허리 부상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거북이 등딱지처럼 가지고 다니는 기본 렌즈들이다. 70-300은 용도가 매우 제한적이므로 빌려주나 마나다. 나로서는 자주 쓰지 않는 렌즈이므로 그걸 빌려주면 가장 좋지만 두희샘의 크롭바디에 물리면 105-450이 되므로 엄청난 망원이 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14~24를 빌려줄 수 밖에 없다. 안타깝다.


  오후 1시가 넘어서 아구아칼리엔테스에 돌아왔다. 아침 6시 경에 출발했다가 오후 1시에 돌아왔으니 7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좀 어이가 없다. 엄청난 인류의 유적을 답사하고 돌아온 시간으로는 너무 짧다고 할까?

  아구아칼리엔테스를 흐르는 하천은 성이 난 것 같다. 경사가 급하고 바닥이 울퉁불퉁하기 때문이다. 수직의 산 자락 옆으로 쏟아지는 빗줄기도 장관이다. 성난 물이 흘러내려가는 계곡을 바라보면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치차 한 잔과 꾸스께냐를 곁들여서 감자칩과 생선튀금, 그리고 볶음밥. 음식점과 기념품 가게들이 기차길 옆에 붙어 늘어서 있다. 전주의 기차길 마을같다.


  열차 색깔이 진한 파랑, 잉카블루다. 파란색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오후 여섯시가 조금 넘어서 열차가 출발한다. 어제 왔던 오얀따이땀보까지 기차로 간 다음 버스로 옮겨타고 쿠스코로 돌아간다. 안데스 협곡을 운행하는 열차답게 천정 일부가 유리창으로 되어 있다. 워낙 협곡인지라 천정 유리로 협곡 양쪽의 산봉우리가 보인다.


  오얀따이땀보 시내를 흐르는 하천도 물이 불었다. 산이 깊어서 물걱정은 안할테니 좋겠다. 하천 옆에 작은 기도처같은 것이 있다. 십자가가 있는 것으로 보아 기독교 관련 경관인데 안에 세워져 있는 조각상은 하얀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관을 쓰고 있어서 전형적인 마리아와는 이미지가 많이 다르다.

  오후 여섯 시 경에 버스를 만나 쿠스코로 향했다. 거리에 많은 현지인들이 몰려나와서 길이 매우 복잡하다. 어제는 축제를 했었는데 오늘은 평상복 차림의 사람들이다. 밤길을 달려서 쿠스코에 도착한 시간은 잠 9시가 넘은 시각이다. 갈 때에 비하면 훨씬 짧은 시간이 걸렸는데 삐싹으로 우회하지 않고 직접 산길을 넘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꾸스께냐를 곁들인 파스타로 늦은 저녁을 먹었다. 로얄잉카, 마추피추에 가기 전에 묵었던 그 호텔에서 다시 하룻밤을 더 머물렀다.


'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 > 라틴 아메리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푸노 가는 길  (0) 2017.10.01
마추피추 가는 길[Ⅱ]  (0) 2017.10.01
우유니  (0) 2017.10.01
라파즈를 향하여  (0) 2017.10.01
Falkland와 Malvinas  (0) 2015.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