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라틴 아메리카

마추피추 가는 길[Ⅰ]

Geotopia 2017. 12. 28. 21:08

▶ 우르밤바강이 만든 안데스 산간 분지, 쿠스코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우비를 입고 길을 나섰지만 답사 중에 비가 내리면 기분이 좋지 않다. 카메라 때문이다. 비를 맞히지 않게 간수하기도 불편하고 매번 가방에 넣었다가 꺼내서 사진을 찍는 것도 번거롭다. 카메라를 어깨에 걸고 우비를 입어서 우비 속에 넣는 방책을 동원해 봤지만 카메라를 꺼내려면 우비 앞자락을 열어야 하므로 이래저래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삭사이와망은 쿠스코시의 북쪽 산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어서 쿠스코 시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진산(鎭山)이다. 하지만 분지의 모양이 동서로 긴 타원형이어서 대개 원형에 가까운 우리나라 분지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쿠스코는 우르밤바강의 지류가 만들어낸 분지이다. 우르밤바는 아마존의 지류이므로 쿠스코는 아마존 최상류 지역에 있는 분지인 셈이다.

  이 일대의 남아메리카판은 남서쪽에서 횡압력을 받아서 그 수직방향으로 구조선이 발달한다. 쿠스코분지는 이러한 지각운동을 잘 보여주는 지형으로 분지의 긴 축이 횡압력의 수직 방향인 서북서-동남동 방향이다. 시내를 흘러내린 물은 동남동쪽으로 흘러내린 다음 와르카파이(Huarcapay)라는 곳에서 수직으로 방향을 꺾어 북북동진 하다가 우르밤바강을 만난다. 우르밤바강과의 함류지점 역시 구조선을 잘 보여주는데 합류하는 각도가 수직방향이며 합류 후에는 방향을 거의 90˚ 틀어서 북서진한다. 이후 엄청난 협곡을 이루면서 흘러 아마존에 합류한다. 유명한 마추피추도 우르밤바강 협곡이 만들어낸 봉우리 가운데 하나이다.


<쿠스코 *Google earth>


<쿠스코 분지와 우르밤바강 *Google earth>


▶ 삭사이와망(Saqsay Waman)의 頓悟


  삭사이와망에서 오얀따이땀보까지 안내를 하는 현지 가이드의 이름은 에디라는 사람으로 키가 아담하고 통통한 50대 메스티죠 아저씨다. 유창하지는 않지만 영어를 하는 흔치 않은 쿠스코 사람이어서 이런 직업을 갖게 된 것 같다. 스페인어가 섞인 재미있는 발음을 한다. civilization이 '시빌리세이숑' 비슷하게 나온다. 서툰 영어로 에디가 농담을 한다. 미국 관광객들이 '삭사이 와망'을 'Sexy woman'으로 받아들인단다. 서툰 표현과 서툰 듣기가 만나니 통쾌한 웃음이 나오기가 어렵다. 상당한 지식 수준을 자랑하는 것 같다가도 어떤 때는 메뉴얼대로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면 우리의 관심사인 지질구조에 대한 설명에서 granite, limestone, fracture 등 지질 용어들이 술술 나온다. 삭사이와망의 침식을 막기 위해 심어놓은 식물의 학명들도 정확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삭사이와망의 입구가 위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이유가 지진 때문이라는 그의 설명에 대하여 구체적인 이유를 묻자 못들은 듯 대답이 없다.

  삭사이와망은 케츄아어로 '배부른 매'라는 의미인데 '마추피추'와 비슷한 장소적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쿠스코는 타완틴수유의 정치적 중심이었고, 그 쿠스코에서도 종교적으로 가장 신성한 장소가 삭사이와망이었다. 타완틴수유 전체에서 가장 권위있는 장소였다고 볼 수 있다.

  문화부에서 관리하는 곳으로 입장료를 내야 한다. 입구에는 타완틴수유 통치자의 계보와 황제의 모습을 담은 커다란 안내판이 서 있다. 안내판 앞에서 잠깐 생각이 복잡해졌다. 스페인 침략으로 멸망한 왕국의 황제를 페루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몽골사람들에게 징기스칸처럼, 역사를 회상하고 한 때의 영화를 오늘날의 진일보를 위한 영광으로 생각할까? 아니면 선진 문물에 굴복한 전근대적 통치자로 인식할까? 스페인 침략을 부정적으로 본다면 잉카의 영광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며, 반대라면 스페인에 의한 근대화를 찬양할 것이다. 에디에게 물었다. 그는 둘 다라고 대답했다. 잉카의 영광과 스페인에 의한 근대화라는 상충된 역사적 과정을 양립할 수 있는 것으로 말한다.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이건 새로운 깨달음이다. 식민지 근대화론과 박정희 찬양 등은 이런 양면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옳지 않은 것을 옳다고 우기려니 분명한 진실도 애써 외면하게 된다.


▶ 알고 보면 과학적인 미래 예측법, 야마 피 흘려 보내기

 

  삭사이와망에 올라서자 마자 맨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알파카다. 야마와 알파카는 라틴아메리카의 상징과도 같은데 사실 나는 명확하게 구분을 못했었다. 이번 기회에 둘을 잘 구분할 수 있는 눈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풀밭을 거니는 녀석들이 비를 맞아서 몰골이 좀 측은해 보인다. 털이 길어서 배 아래로 긴 털이 늘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알파카가 틀림없다. 알파카는 수리(suri)와 후야카야(huacara) 두 종이 있는데 이 녀석들은 털이 직모인 수리종 알파카다. ☞야마, 알파카  http://blog.daum.net/lovegeo/6780022

  알파카 무리들이 노닐고 있는 평지의 양쪽은 야트막한 동산이다. 남쪽 동산은 거대한 돌로 지은 신전이고 북쪽 동산은 자연석이 드러나 있다. 북쪽 동산의 자연석이 눈길을 끈다. 표면이 매끈하고 모서리가 둥그스름하며 매끈한 표면에는 일정한 방향으로 줄이 그어져 있다. 빙하의 이동으로 만들어진 찰흔(擦痕, rub pattern)이다. 빙하기에 해발고도가 높은 이 일대는 빙하로 덮여 있었고 빙하의 엄청난 무게 때문에 빙하의 이동 방향으로 바위가 긁혀서 만들어졌다. ☞ 찰흔 http://blog.daum.net/lovegeo/6780141


  남쪽 동산에는 돌로 만든 신전이 있는데 일명 지그재그 신전이라고도 한다. 태양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야마의 피를 지그재그로 흘려 보내서 길흉을 점쳤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비과학적인 미래 예측법인데 결과는 대부분 흉한 쪽으로 피가 흘렀다고 한다. 돌을 파서 만든 물길이므로 흐르는 방향이 일정할 수밖에 없으며 만들었을 당시부터 결과는 거의 정해진 것과 다를 바 없다. 왜 그랬을까? 흉한 미래가 예측된다면 '흉'의 가능성을 모두 경계해야 한다. 특히 외적의 침입은 '흉'의 전형적인 목록이다. 예나제나, 여기가 거기나 통치자들은 외부의 적을 만들어서 내부 결속을 다지는 통치법을 구사했던 모양이다. 결국 매우 비과학적으로 보이는 방법이지만 알고 보면 매우 과학적인 미래 예측법이었던 셈이다. 항상 궁금했던 'Lliama'의 발음을 원어민 에디에게 물었더니 '야마' 비슷하게 발음을 한다. 우리말로 표현하려면 '야마'가 가장 가까운 것 같다.

  삭사이와망 신전의 바로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쿠스코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나온다. 워낙 동-서로 긴 도시라서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중심가의 대부분은 볼 수 있다. 가까이 아르마스광장이 보이고 우리가 묵었던 호텔 앞의 광장도 보인다.

  거대한 돌들을 이 꼭대기까지 가져온 것이며, 철기도 사용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반듯하게 돌을 잘랐는지 등등, 불가사의에 가까운 현상들이 눈앞에 있다.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강력한 절대권력이 있었다는 것과 돌을 다루는 뛰어난 과학기술이 있었다는 점이다.


<삭사이와망에서 바라본 쿠스코 전경>

 

▶ 인디오 할머니 모델


  삭사이와망 답사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원주민 복장을 완벽하게 갖춘 인디오 여인 둘이 알파카를 한 마리씩 끌고 나타났다. 웬떡인가 싶다. 재빨리 사진을 몇 장 찍고 차에 올랐다. 그런데 차에 올라서 밖을 보니 이 사람들이 사진을 찍혀주는 대신에 모델료를 받는다. 그러면 그렇지… 비까지 내리는데 알파카 목에 오색 목도리까지 한 것이 일상생활의 한 장면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약간 들기는 했었다. 모델료를 절약한 셈인데 비까지 맞으며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 옳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이미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었지만 다시 나가서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보너스 사진인 셈이니 내 얼굴을 넣기로 한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두 여인 중에 한 사람은 호호할머니다. 올긋불긋 전통 의상 때문에 멀리서 봤을 때는 중년 여성쯤으로 보였었다. 그리고 키가 아주 작다. 큰 키도 아닌 내가 무릎을 잔뜩 구부려야 겨우 키가 맞는다. 기분이 묘하다. 노동의 댓가를 지불했다는 뿌듯함보다는 전통이 돈벌이가 된 현실이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할까? 하지만 좀 더 생각해 보니 그런 생각도 참 이기적인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사람이다. 내가 무슨 권리로 이 사람들에게 일상 속에서 전통 복장을 하고 알파카를 끌고 다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인디오 여인들과 함께>


▶ 뿌카뿌카라와 땀뽀마차이


  삭사이와망을 내려와서 마추피추로 가는 긴 여정에 올랐다. 산간 분지인 쿠스코에서 마추피추를 가려면 일단 안데스 산줄기를 넘어야 한다. 마추피추가 우르밤바강 협곡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강을 따라 내려가는 것이 가장 길이 좋은데 그럴려면 분지를 벗어나는 산길을 넘어가야 한다. 우르밤바 협곡을 따라 가지 않고도 갈 수 있는 길(그 길은 오얀따이땀보에서 우르밤바 협곡을 만나기 때문에 오얀따이땀보부터는 결국 우르밤바 협곡을 따라 간다)도 있기는 하지만 길이 좋지 않고 산길이 길어서 차라리 급경사지만 거리가 짧은 안데스를 가로지르는 산길을 넘는 것이 더 낫다.

  삭사이와망의 해발고도가 대략 3,560m정도인데 계속 고도가 높아져서 3,780m까지 올라갔다가 이를 정점으로 다시 고도가 낮아져 삐싹에 이른다. 우르밤바강가에 자리한 피삭은 해발고도가 대략 3,000m 정도이다. 요약하면 이 길은 해발3,300m 안팎인 쿠스코에서 3,800m가까이 올라갔다가 3,000m로 내려가는 길이다. 직선거리로 쿠스코와 삐싹은 18km에 불과하지만 높은 산지를 넘어가는 구비구비 산길이어서 실제 거리는 훨씬 멀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길 옆으로 유칼리툽스가 많이 눈에 띈다. 오스트레일리아 고유종인 이 나무는 남아메리카의 고산지에도 많이 자란다. 건조한 고산기후 환경에 잘 맞아서 도입되었다고 하는데 길을 따라 상당히 많다. 혹시 환경에 잘 맞는다고 하더라도 식물이 대륙을 건너게 되면 기존 생태계에 많은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그다지 쓸모가 있어보이지 않는 이 나무를 구태여 들여온 이유가 무엇일까?

 

  높은 산지지만 중간에 자리를 잡은 산간 마을도 있다. Huayllarcocha라는 마을을 지나는데 고도가 3,700에 이르는 마을이지만 의외로 주변이 평평하다. 길 옆으로 옹기종기 집들이 늘어서 있고 경작지도 집 근처에 펼쳐져 있다. 집들은 그다지 크지 않은데 벽은 흙벽돌이고 지붕은 대부분은 붉은 기와로 되어 있고 가끔 초가 지붕도 있다. 초가집이든 기와집이든 공통적으로 지붕 용마루 한가운데에 동물 모양의 조상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통 신앙이 거의 가톨릭에 의해 말살되다시피 한 나라인데 이건 어떤 의미가 있는 구조물일까?


<삭사이와망, 뿌카뿌카라, 땀보마차이, 피싹, 오얀따이땀보  *Google earth>


   이 길을 가는 또 하나의 이유는 가는 길에 뿌카뿌카라와 탐보마차이라는 잉카 유적을 볼 수 있는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유적은 안데스 산길에 있어서 해발고도가 매우 높은 곳에 위치한다.

  '뿌카뿌카라'는 '붉은 성'이라는 의미이다. '뿌카'는 '붉다'는 뜻이고 '뿌카라'는 '요새'라는 뚯이다. 에디의 'Red Fortress'라는 설명을 'Rat Poultry'로 알아 듣고 한 동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 열심히 듣기는 하는데 절반도 못 알아듣는다고 봐야 한다. 차라리 안내판을 열심히 읽어보는 편이 더 낫다. 그런데 안내판도 가관이다. 얼마나 시적인(?) 표현을 했는데 읽어도 도무지 뜻을 알아내기가 어렵다. 실력이 짧은 탓이지만 맞는 어법인지 전공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글이다. 그나마도 끝 부분은 설치 과정의 실수로 글자가 보이지도 않는다.

  쿠스코에서 7km정도 떨어져 있는 이곳은 해발고도가 무려 3,750m나 된다. 올라오기 조차 힘든 이런 곳에 왜 요새를 만들었을까? 안내판의 설명을 어거지로 라도 맞춰보면 군사적 의미보다는 물을 숭배하는 의식과 관련된 장소로 보인다. 하지만 잉카제국과 이곳의 위쪽에 있는 땀보마차이를 방어하기 위한 시설이었다고도 한다(Wikipedia). 대단한 구경 거리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안데스 산지와 아래로 펼쳐지는 계곡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뿌카뿌카라의 안내판. 안내문의 마지막 줄은 틀에 가려서 보이지도 않는다>


  뿌카뿌카라에서 3백여m만 더 가면 땀보마차이가 있다. 해발 3800m의 고지대에 계단식으로 정교하게 쌓은 돌 구조물로 수로와 폭포가 설치되어 있다. 무슨 역할을 했던 구조물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물을 숭배하는 행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혹은 군사 시설이거나 잉카 지배층의 위락시설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케츄아어 'Tampu'는 '숙박시설'을 의미하여 'machay'는 '마시기' 또는 '실이 감긴 실패'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El Baño del Inca (잉카 목욕탕)'라 불렀다.

  또 다른 해석은 '동굴'의 뜻을 가진 'machay'로 해석하는 것이다. 인디오 전설에 의하면 독특한 이곳의 환경이 이러한 자연석을 만들어냈으며 이 바위들은 숭배, 또는 주술적 의식의 대상이었다.

  입구에 서있는 설명문은 뿌카뿌카라와는 달리 시적 표현이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어이없는) 사실은 뿌카뿌카라의 안내문의 끝부분이 이곳 안내문의 중간부분과 똑같다. '~물의 숭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안데스인들의 세계관을 나타내는 기둥(비문?)의 하나이다. 이는 안티수요(타완틴수요의 일부/사방의 일부인 북방: 필자 주)의 첫번째 의식로 상에 있는 사원 중 하나로 생각된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뒷 문장은 뿌까뿌까라 안내판에서는 잘려서 안 보이는 마지막 문장과 똑같다. 뿌까뿌까라 안내판 마지막 줄의 2/3가 가려져 있어서 읽을 수는 없지만 남은 1/3에 이 문장을 대비시켜서 추측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뿌카뿌카라와 땀보마차이는 서로 연관성이 큰 구조물이라는 얘기가 된다. 



▶ 해발 3,000m의 저지대



  삐싹을 향해 계속 동진하면서 산을 넘는다. 해발 3700m를 넘나드는 곳인데도 나무가 자란다. 동북쪽으로 산을 넘는 고개가 산줄기 중에서 낮은 곳에 발달한다. 이 산줄기의 봉우리들은 3900~4000m 안팎인데 이 고개는 3780m로 갑자기 낮아졌다. 태백산맥의 대관령과 같은 고개다. 분명히 이름이 있음직 한데 표지판을 아무리 살펴봐도 이름을 찾을 수가 없다.  

  정점을 넘으면서 산을 내려 가는데 곳곳에 작은 산사태 잔해를 볼 수 있다. 가파른 산길은 석회암 계열의 퇴적암이 풍화된 풍화층을 깍아서 만들어졌다. 대부분 암반을 잘라서 산길을 내는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른 모양새다. 환경적 조건이 이렇다 보니 산사태로 길이 막혀서 일정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한다. 그런 경우에는 더 긴 산길을 타고 오얀따이땀보로 가야만 한다. 가파른데다 비에 젖은 산길을 내려가다 보니 그 말이 실감이 난다.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내려다 보이는, 그리고 젖은 길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달린다. 차라리 눈을 감는 것이 낫겠다.

  우르밤바강의 지류인 하천 옆까지 내려오니 겨우 마음이 진정이 된다. 하천의 양 옆으로는 비탈을 일구어 만든 농경지가 산 중턱까지 펼쳐져 있다. 이곳의 해발고도도 3천m가 넘지만 상당히 높은 부분까지 경지로 이용이 되고 있다. 해발고도란 상대적인 것이어서 이곳에서는 3천m도 '하천 연안의 저지대'에 속한다. 산마루 바로 아래까지, 어떤 곳은 노출된 암석 절벽 위쪽까지 계단식 경지를 만들어서 농사를 짓고 있다. 

 

▶ 삐싹에서 먹은 옥수수


  삐싹까지는 계속 비가 내렸다. 시내로 진입하는 작은 다리 아래로 흙탕물이 넘칠듯 흘러 내린다. 우리나라 장마철을 보는 것 같다. 2솔짜리 간이 판쵸가 그래도 몸이 젖는 것을 막아준다. '판쵸'는 스페인어인데 왜 우리나라에서 널리 쓰일까? 군대 우비는 '판쵸우의'가 거의 공식용어다. 그런데 판쵸는 사람 이름이고 원래 비옷을 뜻하는 말로 뽄쵸(poncho)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뽄쵸는 원주민이 몸에 걸치고 다니는 모포로 비 올 때는 비옷으로, 추울 때는 외투로, 야간 여행 때는 이부자리 등 다용도로 쓰인다. 그러니까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판쵸우의는 발음이나 뜻이 왜곡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삐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삼삼오오 일행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데 굳이 혼자 가겠다고 나섰다. 독립군을 지향해서가 아니라 어느 집단에 끼어들든 혹시 폐가 되지 않을까 해서다. 나이든 이방인으로 기존 조직에 끼어들기가 만만치 않은 일이다.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한적한 음식점을 만났다. 자루 째 삶은 옥수수 한 개와 치즈 두 조각으로 구성된 음식을 주문했다. 알고 주문한 것은 아니고 메뉴판에서 가격이 적당한 것을 골랐다. Choclo Con Queso라는 메뉴로 6솔(S/6.00)이다. 알이 매우 굵은 옥수수와 두부같이 생긴 치즈다. 그리고 커피(3.5솔). 어떻게 먹는지 몰라서 먹는 방법을 물어야 하는데 도무지 말이 통하지를 않는다. 보디랭귀지로 간신히 의사를 전달했더니 포크를 가져다 준다.


  삐싹은 작은 마을이어서 시장도 한산한데 호객을 하는 상인이 한 명도 없다. 먹고 살만한 동네라서? 하기사 욕심을 내지 않으면 충분히 산다. 그런데 민속 복장을 한 꼬맹들이 카메라에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더니 바로 손을 내민다. 시장을 돌아다니다 만난 아진샘이 대신 동전을 건네준다. 그러니까 삶이 여유로와서 호객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골목들이 모두 돌로 포장이 되어 있어서 깔끔하다. 돌을 네모지게 잘라 끼워 맞췄는데 표면이 매끈하지 않고 우둘두둘한 천연석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도로의 가운데가 배수로다. 비가 내리면 물이 스며들 곳이 없기 때문에 여기로 물이 흘러 나가도록 되어 있다. 일반 하수는 따로 하수구가 설치되어 배출되는 모양이다. 이 배수로가 하수와 빗물이 함께 빠져나가는 수로하면 아무리 하수 처리를 잘 해도 지저분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스펜인에 기원했을 것이다. 이런 시스템을 쿠바에서도 본 적이 있다.


  삐싹산에는 공동묘지가 있다. 신성한 산이어서 그 힘으로 조상들이 보호된다고 믿기 때문에 그곳에 공동묘지가 만들어졌다.


  옥수수는 상층민, 감자는 하층민의 식량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산비탈을 계단으로 바꿔서 옥수수를 심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계단식 논처럼 생겼는데 물을 가둬야 하는 논도 아닌데 왜 굳이 평평한 계단을 만들었을까 의문이 생긴다. 원주민 문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옥수수는 농사력의 근본이 되는 작물로 잉카의 농사력은 태양력으로 표현된다. 반면에 감자는 태음력을 기준으로 한다. 그래서 옥수수와 감자는 각각 하늘과 땅을 상징한다. 특히 흰 옥수수는 신성하게 여겨 제물로 썼다.


▶ 삐싹에서 오얀따이땀보로


  삐싹을 떠나 오얀따이땀보로 향한다. 이 길은 줄곧 우르밤바강을 따라가는 길이라서 길이 좋은 편이다. 대략 진행 방향이 북서쪽인데 강 양쪽으로 발달한 가파른 사면이 발달한다. 우르밤바는 '신성한 계곡'이라는 뜻이라는데 이름에 걸맞게 계곡이 대단하다. 우르밤바강은 협곡을 흐르는데 강수량은 적지만 유황은 안정되어 있다. 주변에 설산이 있고, 유역면적이 넓으며, 상류에 티티카카호가 있기 때문이다. 협곡에 유황이 안정적이므로 수력 발전에 유리할 것이다. 식생은 모두 초본류 뿐인데 도로 주변으로는 나무가 자란다.

  여름인데도 산지 밭은 수확이 끝나서 비어있다. 그런데 하천 양 옆의 저지대는 한창 옥수수가 자라고 있다. 우리나라라면 작물의 수확시기가 거의 비슷하지만 이곳에서는 해발고도에 따라 달라지는 경향이 있는 모양이다.

  우르밤바강의 지류들은 대부분 수직으로 본류와 합류하는데 합류지점에는 대부분 선상지와 유사한 지형이 발달한다. 비옥한 충적지가 발달하고 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대부분 크고 작은 마을과 이를 부양하는 경지가 발달한다. 선단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어김없이 옥수수가 무성하다.


<우르밤바강으로 유입하는 지류의 하구에 발달한 선상지  *Google earth>


  급경사의 산지 사면에는 우곡이나 사태같은 지형이 발달하는 곳도 있다. 강수량이 많을 때 급격하게 침식을 받아서 이런 지형이 만들어진다. 건조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지형이지만 식생이 불량한 급사면이기 때문이다.


  진행 방향의 오른쪽, 그러니까 동북쪽 산지는 매우 높아서 우르밤바를 지나면서 잠깐 만년설에 덮인 봉우리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안데스의 정점을 넘은 것이 아니다. 어제 리마에서 넘어올 때 잠깐 보였던 설산이 바로 안데스의 본줄기였다. 이 일대는 아마존의 상류로 본줄기에서 동쪽으로 상당히 벗어나 있는 안데스의 지맥이다.삐싹에서 하류쪽으로 갈수록 우르밤바 양쪽 산지들의 고도가 높아진다. Sahuasiray(5818m)를 비롯한 해발 5천m가 넘는 산이 솟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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