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삶과 지리

비행기가 가장 빠른 길로 비행하지 않을 때도 있다

Geotopia 2017. 4. 30. 06:10

 ▶ 지구상의 두 지점을 연결하는 가장 빠른 길은?

 

  지구상의 두 지점을 연결하는 가장 빠른 경로를 대권(大圈)항로라 한다.

  '대권'을 수학적으로 정의하면 '구의 중심을 지나도록 자른 평면'을 뜻한다. 이것을 지구에 적용을 하면 '지구의 중심을 지나도록 잘라서 만들어진 평면의 외곽, 즉 지구의 표면이 만들어내는 원'이 된다. 그러니까 지구를 자른다고 가정했을 때 절단면이 가장 큰 면적을 가질 수 있도록 잘라서 만들어지는 원이 대권이다. 그래서 대권을 다른 용어로 '대원(大圓, great circle)'이라고도 한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두 지점을 연결하는 선을 연장하면 원이 그려진다. 이때 만들어지는 원은 굉장히 많다. 그 수 많은 원 가운데 딱 하나 만이 가장 크며 그 원이 바로 대권이다. 대권 상의 한 지점에서 정확히 반대쪽(180˚)을 향해 직선을 그으면 그 선은 반드시 지구 중심을 지나도록 되어 있다. 그 대권 상에 있는 두 지점은 가장 가까운 거리가 된다.

  예를 들면 적도는 대권이다. 적도의 어느 지점에서 지구 반대쪽으로 직선을 그으면 그 직선은 반드시 지구 중심을 통과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적도 상에 있는 두 지점을 여행하고자 할 때는 적도를 따라 이동하는 것이 가장 가깝다. 그 경로가 가장 빠른 경로인 이유는 적도를 벗어나서 간다고 가정해보면 쉽게 짐작이 된다. 적도를 벗어나는 만큼 돌아가는 경로가 되기 때문이다.

 

 ▶ 적도를 제외한 위선(緯線)은 대권이 아니다

 

  하지만 적도 이외의 위선(緯線)은 대권이 아니다. 모든 위선은 지구상에서 원을 그리지만 그 크기는 적도에 비해 작다. 예를 들면 30˚N 위선은 지표 상의 원이지만 적도에 비해 훨씬 작다. 30˚N 위선 상의 한 지점에서 반대쪽을 향해 직선을 그으면 그 선은 지구 중심을 통과하지 않는다. 따라서 30˚N 위선 상에 있는 두 지점을 여행할 때 30˚N 위선을 따라 여행을 하면 가장 빠른 길이 되지 않는다.

 

  아래 그림을 보자.

  A지점과 B지점은 모두 30˚N 위선 상에 있다. 하지만 30˚N 위선은 대권이 아니기 때문에 이 선을 따라 가면 두 지점 간의 가장 빠른 경로가 되지는 않는다.  A지점과 B지점을 잇는 대권은 적도와 크기가 같은 훨씬 큰 원(A지점과 B지점을 연결한 선을 연장한 노란 선)이다. 따라서  A지점과 B지점을 가장 빠른 경로로 가기 위해서는 30˚N 위선이 아닌 대권을 따라 가야 한다. 즉, 30˚N 위선은 최단 코스가 아니고 외돌아 가는 코스이다.

 

 

<*자료: Google earth>


  ▶ 미국 갈 때 알래스카를 통과하는 이유

 

  우리나라와 미국을 오가는 비행기의 항로는 북극을 통과한다. 모든 경위선이 직각으로 만나는 지도(Mercator도법)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항로가 최단 코스가 아니고 매우 돌아서 가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비행 중에 제공되는 항로 표시 서비스도 Mercator도법으로 그려진 지도 위에 표시된 경로로 제공되기 때문에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 쉽다.

  Mercator도법에서는 지구의 모든 경위선망이 직각으로 만나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아래 지구본을 보면 지구상의 모든 경위선은 직각으로 만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Mercator도법은 실제 지구와는 매우 다르게 왜곡되어 표현되는 지도이다. 특히 방향과 면적이 실제와 매우 다르게 표현이 된다.

 

 

<인천-디트로이트를 연결한 대권 항로  *자료: Google earth>

 

  아래 지도는 실제 지구상의 여객기들의 이동 경로를 서비스하는 프로그램을 캡쳐한 것이다. 인천-디트로이트 항로를 Mercator도법에 표시한 지도인데 이 지도에서 대권은 엄청난 곡선을 그린다. 만약 이 지도에 인천-디트로이트 항로를 직선으로 그리면 어떻게 될까?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짧은 직선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선을 위의 지구본에 옮겨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즉, 40˚N 위선과 거의 일치하는 커다란 곡선이 된다. 가장 빠른 경로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Mercator도법에 표시한 인천-디트로이트 항로  *자료: Flight radar>


  ▶ 하지만 예외가 있다

 

  하지만 모든 사실에는 예외가 있기 마련이다.

  아래 사진은 비행기에 설치된 모니터 화면을 촬영한 것으로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미국 휴스턴 공항으로 실제 비행했던 경로(2016.1.10)이다. 이 사진에 따르면 비행기가 대권을 따라 가지 않고 위도와 평행한 선을 따라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단 거리가 아닌 매우 외돌아 가는 경로를 선택한 것이다. 왜 이런 예외가 생길까?

 

 

 

<나리타-휴스턴 항로가 태평양을 관통하고 있다(2016.1.10)>

 

  제트기류와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날 이 비행기는 속도 740miles/h을 넘나들었다. 시속으로 환산하면 1100km/h가 넘는 엄청난 속도다. 제트기류를 타고 동쪽으로 가기 때문인데 제트기류를 감안 하더라도 일반적인 비행 속도에 비해 굉장히 빠른 속도다. 나리타에서 휴스턴까지의 최단 거리, 즉 대권 항로는 약 10,752km이다. 하지만 이날처럼 태평양을 횡단하면 비행 거리가 약11,190km 정도로 대권보다 450km가 더 멀다. 서울-제주 거리 만큼을 절약할 수 있으니 대권을 이용하면 연료비가 훨씬 적게 든다. 더구나 이 비행기는 보잉777로 아주 큰 비행기여서 모르긴 몰라도 연료 소모가 많은 비행기다.

  그런데 만약 450km를 외돌아 가는 대신에 제트기류 덕분에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면 어떨까? 보통 중위도 서쪽에서 동쪽으로 비행할 때 항공기의 비행속도는 시속 900km를 넘나든다. 그런데 이날은 1100km/h에 육박했으니 450km의 거리를 주파하는데 불과 25분 정도면 된다는 얘기다. 대권으로 갔을 경우 평균 900km/로 난다고 가정하면 200km/h의 차이가 나며 450km의 거리를 2시간 조금 넘는 시간에 벌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즈음에 북반구에서는 제트기류가 북극권에서 멀리 남하한 상태였다. 정리해 보면 대권으로 가지 않고 등각 항로로 비행을 해도 멀어진 거리를 충분히 벌충하고 남을 만큼 빠른 속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대권을 비행하지 않았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도쿄-휴스턴 간 대권항로와 등각항로  *자료: Google ear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