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삶과 지리

경주는 지진이 잘 나는 곳일까?

Geotopia 2016. 9. 17. 17:45

▶ 경주에서 온 전화


  "선생님 깜짝 놀랐어요!"


  휴대폰으로 들려오는 현묵이 목소리에서 흥분이 튀어 나왔다.


  "우와~ 지진이 이런 것인지 처음 알았어요!"

  "그나저나 괜찮니?"


  일단 전화를 한 것으로 보아 큰 일을 당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안부부터 물었다.


  "예, 저는 괜찮아요"

  "유리창이 통째로 깨진 곳도 있다며?"

  "예. 어느 병원이 그랬다는데 여긴 괜찮아요"

  "어떤 상황이었는지 얘기 좀 해봐라"

  "밖에서 막 기숙사로 들어가려는 상황이었어요, 근데 땅이 막 흔들리는 거예요. 두 번째는 음식점에서 뭘 먹는데 일어났어요. 겁나서 기숙사에 못 들어가고 다시 나와서 곱창에 소주 한 잔 하고 있었거든요. 지금은 거의 대부분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 있어요. 학교에서 기숙사에 들어가지 말래요. 내일은 모든 강의 휴강이예요"

  "그럼 얼른 기차타고 올라와, 어차피 추석 쇠러 와야 되잖아"

  "예,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어요"


  상황을 전하는 현묵이의 목소리는 걱정 반 흥분 반이다. 이런 가슴 떨리는 경험이 아직 없었으니까.


  "근데 선생님! 경주가 지진이 잘 나는 곳인가요?"



 12일 저녁 경주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5.8 지진으로 경남 김해대로 한 주상복합건물 내 대형 식당 천장 일부가 폭탄을 맞은 듯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2016.9.13. 연합뉴스


<경주시 건천읍의 한 사찰이 뒷산에서 굴러 떨어진 바위에 크게 부서졌다. 2016.9.17 연합뉴스>



▶ 경주는 지진이 잘 나는 곳?


  '경주가 지진이 잘 나는 곳'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다른 곳보다 가능성은 높은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첫번째 근거는 경주 남산 열암곡에 있는 마애불상이다. 이 마애불상은 1200년 전에 있었던 지진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이 쓰러진 이유는 지진 때문? http://blog.daum.net/lovegeo/6779973). 1200년이면 오래 전이지만 지질시대 개념으로 보면 아주 가까운 과거라고 봐야한다. 그러니까 경주는 근래에 적어도 두 번의 큰 지진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1200년 전 지진의 증거물인 열암곡 마애불과 이번 지진의 진앙지가 거의 인접한 지역이라는 점이다. 열암곡은 경주시 내남면 노곡리에 있는데 이번 지진의 진앙지였던 화곡저수지(내남면 화곡리, 2차 지진 진앙)와는 5.2km, 내남초등학교(내남면 부지리, 1차 진앙)와는 불과 3.8km 떨어져 있다. 1200년을 사이에 두고 비슷한 곳에서 지진이 일어났다는 뜻이다.


<경주 지진 진앙지와 열암곡  *원도: Daum지도>


  두번 째 근거는 진앙 주변으로 많은 단층선이 통과한다는 사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언양단층이다. 경주시내에서 남산의 서쪽을 거쳐 울산 언양으로 이어지는 이 단층선은 양산단층으로 이어져 낙동강 하구에 이르는 한반도의 대표적인 단층선이다. 1차 진앙지는 바로 이 단층선 상에 있다. 2차 진앙으로도 뚜렷한 단층선이 통과하고 있다. 이 단층은 경주시 서악동에서 울산 두서면 복안리까지 이어지는데 2차 진앙인 화곡저수지는 이 단층선의 한 가운데에 있다. 이외에도 모량단층(경주시 건천읍 모량리-경남 김해시 생림면 사촌리)과 밀양단층(건천읍 건천리-김해시 한림면 시산리) 등이 서쪽에 평행으로 발달하는데 모량단층과 밀양단층은 낙동강 건너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단층이다. 그리고 남산의 동남쪽을 통과하는 단층선이 있는데 이 단층선은 앞의 네 개에 비해 짧지만 문제의 열암곡 동쪽 500m 지점을 통과한다.


<지질구조 *자료: 한국지질자원연구원>



▶ 안전지대란 없다


  관측 이래 최대의 지진이었다는 이번 지진은 전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진도 5.8은 세계적인 규모로 보면 작은 지진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엄청난' 지진이 분명하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지진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당황하여 우왕좌왕 하다가 말았고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적절한 대비는 커녕 심지어는 지진인지 조차도 모르고 있다가 뉴스를 보고 지진일줄 알았다는 사람도 많았다. 집에 같이 있던 우리 아이는 놀라서 내게 달려와서는 '집이 흔들리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이 지진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 얘기를 듣고서야 컴퓨터로 달려가서 검색을 하는 모습이 좀 어이가 없었다. 가까이 사는 한 지인은 '누가 현관문을 엄청나게 세게 흔들어대서 심지어 침대가 흔들렸다'면서 놀라서 나에게 전화를 하기도 했다. 듣는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생전 처음 지진이라는 것을 경험했으니 그것이 지진인지 문을 흔들어대는 것인지 구분할 수가 있었겠는가?

  우리나라 사람의 대부분은 지진이란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인터넷과 미디어가 발달해서 바로 지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그냥 지나친 사람도 부지기 수였을 것이다. 지진을 인식조차 하지 못해서야 어떻게 대비책이 나올 수 있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접 경험을 하지 못했을 만큼 우리나라는 지진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땅이다. 하지만 판 운동이 멈추지 않는 한 지구상에 지진 안전지대란 없다. 안정지괴의 복판인 중국 쓰촨에서도 대지진이 났었다. 우랄산맥은 안정지괴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지만 먼 옛날에 습곡으로 만들어진 산이다. 고생대 당시 이 일대는 활발한 지각운동이 일어나던 곳이었다는 뜻이다.

  적어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지진에 대비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할 것 같다. 간접적으로라도 지진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알아야 실제 상황에서 빨리 지진을 인지하고 대비를 할 수 있다. 시뮬레시션 시설이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재난에 취약한 나라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동영상: 강아지 짓자 와르르르 http://tvpot.daum.net/v/v60cfkpkpOhZrJrKtdPJqRq <2016.9.13 Y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