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삶과 지리

소나무 무덤, 참나무 포대기: 환경 차별 대우

Geotopia 2016. 7. 20. 23:48

▶ 괴이한 풍경, 소나무 무덤


  산행을 하면서 특히 안타까운 장면이 있다.


  소나무재선충.


  몇 해 전 울산에 갔다가 근교 야산 기슭 여기저기에 녹색의 포장이 덮여있는 괴이한 장면을 보게되었다. '괴이하다'고 표현한 것은 마치 무슨 동물의, 또는 사람의 사체를 덮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덤도 아닌 것이 모양이 무덤과 흡사하고, 게다가 산 기슭에 있었으므로.

  소문으로만 들었던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된 나무라는 것을 금방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처리하는 줄은 처음 알았다.


▶ 금북에서 만난 소나무재선충병, 괴기함은 안타까움으로


  아마 남부지역에서 시작이 되었던 듯 당시 우리 동네에는 없었던 풍경이었는데 이제 우리 지역에서도 심심찮게 만날 수가 있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보니 멀리서 봤을 때의 '괴이함'에서 '안타까움'으로 느낌이 변했다. 울창한 숲속에서 재선충에 걸린 나무를 모두 찾아내기가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란 옛말이 떠오른다. 서울의 김서방은 말귀는 알아들으니 소리소리 부를 수나 있다. 원격탐사 기술이 아무리 발달했다 하더라도 결국 사람이 하나하나 찾아내어 베지 않으면 안 된다.


<소나무재선충 감염 소나무가 격리되어있다. 금북정맥 종주중에 만났다. 이 깊은 산중에서 감염된 나무를 모두 찾아낼 수 있을까?>


  그런데 병에 걸린 나무를 잘라서 격리한다고 감염이 더이상 확산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과연 있는 것일까? 방제 작업을 할 때 감염이 되어 겉으로 표시가 나는 나무만을 골라서 처리할 것이다. 그런데 이미 감염이 되었지만 표시가 나지 않는 나무들은 어찌한단 말인가? 틀림없이 감염된 나무 주변에 2차 감염된 나무들이 많이 있을텐데… 감염된 나무 주변에 있는 나무들까지 몽땅 잘라내지 않는다면 감염을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지금도 계속 확산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그야말로 '언발에 오줌누기'다.

  게다가 처리 과정은 감염을 차단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되고 있기는 한 것일까? 설혹 감염된 나무를 모두 가려내는 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처리과정이 완벽하지 않다면 말짱 헛일이 되고 말것이다. 베어 놓고 포장을 덮지 않은 상태로 그냥 방치된 소나무를 실제로 만난적도 있다. 깊은 산 속을 헤매고 다니면서 수많은 나무를 자르다 보면 깜박 잊을 수도 있고, 작업 도중에 하루가 다 가서 마무리를 못할 수도 있다. 숲 속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만약 이 한 그루가 감염원이 된다면 정말 어렵게 했던 작업이 모두 도루묵이 된다.

  이런저런 사정들을 고려해 볼 때 내 생각으로는 감염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얼추 불가능에 가까워보인다.


<감염된 나무를 자르기는 했는데 뒤처리가 안되어 있다. 깜박했는지, 덮개가 모자랐는지…>


<대충 세워봐도 40여 년이 넘은 큰 나무다. 아깝다>


  그리고 의문은 불경스럽게 진화를 했다. 과연 소나무가 이렇게 어렵게 보호할 가치는 있는 나무일까? 소나무는 경제성도 크지 않고 토양을 산성화시키기 때문에 생태적으로도 그리 좋은 나무가 아니라고 알려져 있다. 생각이 꼬리를 문다. 자꾸 사람이 개입함으로써 숲을 건강하게 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연스런 생태계의 천이 과정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재선충을 막기 위해 살충제를 뿌려서 사람의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그렇다면 살충제는 환경을 위한 필요악인가?>


 

▶ 포대기를 두른 참나무, 참나무시들음병 환자


  올해 이른 봄이었다. 산행 중에 노란 테잎을 둥치에 칭칭감은 나무를 만났다. 가을에 해충이 모이게 한 다음 봄에 모아 태우는 볏짚 옷을 본적은 있지만 테잎으로 감아놓은 것은 처음 보았다. 경험으로 판단하는 관성 때문에 내 생각은 거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아닌게 아니라 자잘한 벌레들이 테잎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아하! 새로 나온 벌레 모으는 장치로구나!' 냄새를 맡아보니 약간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이 벌레들이 꼬일 것도 같다.

  조금 의아하기는 했다. 겨울이 갓 지난 이른 봄이라서 아직 벌레들이 활동하지 못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난 겨울 이전에 달라붙은 벌레들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럼 벌써 테잎을 떼어 뒷처리를 했어야 하는데 어째서 그대로 있는 것일까?


<봄에 봤던 장면. 해충을 모으기 위한 시설인줄 알았다>


  여름이 된 어느날 산행을 하다보니 몇 그루에 새롭게 테잎을 감아 놓았다. 아하! 가을에 벌레를 모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등산객들을 위해 날파리를 유인하는 용도로구나, 친절하기도 하지! 여름에 등산을 하다보면 날파리 때문에 귀찮을 때가 종종 있다. 녀석들이 눈 앞을 왔다갔다 하면 쉽게 쫓아지지도 않고 보통 성가신 것이 아니다. 냄새로 녀석들을 유인해서 등산객에게 달려들지 않도록 붙여놓았구나! 등산객이 많은 산이라서 관청에서 친절하게도 등산객을 배려했구나! 생각까지 했다.


<6월에 본 장면. 등산객을 위한 서비스인줄 알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완전한 소설이었다. 얼마 뒤에 다른 산에서 정답을 찾았다.

  참나무시들음병이란 것이 있는데 그걸 막기 위한 방법이었다. 봄에 봤던 산에는 테잎을 감은 나무가 듬성듬성 있었는데 이 산은 온통 테잎을 감은 나무 투성이였다. 등산로 주변 나무만 감아놨던 앞의 산에 비해 이 산은 등산로가 아닌 곳까지 산에 있는 참나무란 참나무는 모두 테잎을 칭칭 감아놨다. 누군가 길도 없는 산속을 돌아다니면서 작업을 하느라 고생깨나 했겠다 싶었다.

 

<참나무시들음병 방제구역>


▶ 벌레는 생태계에서 불필요한 존재인가?


  그런데,

  벌레는 뭐지? 다닥다닥 테잎에 붙어 있는 벌레들을 보면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참나무 한 그루를 살리기 위해 붙여 놓은 테잎에 말 그대로 셀 수조차 없는 많은 벌레들이 달라 붙어서 비명횡사를 했지 않은가! 나무든 벌레든 똑 같은 하나의 생명체라고 한다면 하나를 살리기 위해 엄청난 생명들을, 아무 죄도 없는 무고한 생명들을 이유 없이 죽인 것이다. 개중에는 해충(물론 그 규정도 인간이 한 것이지만)도 섞여 있을지 모르지만 작은 벌레 하나하나가 모두 생태계라는 거대한 피라미드를 구성하고 있는 소중한 성원들이다. 생태계에서 불필요한 생명체는 없다. 인간에서 혹시 해롭다 하더라도 최소한 상위 포식자의 먹이라도 되어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하나하나의 생명체들이다. 참나무입시들음병을 막으려고 엄청난 숫자의 벌레들을 죽였으니 모르긴 몰라도 이 산의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렇게 벌레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엄청난 수의 생태계의 구성원들이 비명횡사했다>

 

<참나무잎시들음병?>


  참나무잎시들음병은 곰팡이균인 라펠리아 크에르쿼스 몽골리게(줄여서 라펠리아라고 한다)가 참나무의 도관을 막음으로써 영양분과 물의 이동을 막아 나무를 죽게 하는 병이다. 그런데 이 곰팡이균을 옮기는 매개충이 광릉긴나무좀이라는 벌레인데 테잎은 바로 이 녀석이 나무에 침투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미 감염된 나무는 이 녀석이 다른 나무로 이동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살충제를 뿌리는 것보다 훨씬 친환경적이며 감염된 나무를 훈증처리(소나무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를 처리하듯이 잘라서 포장으로 밀폐해 놓기도 한다) 하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이 당국의 주장이다. 이와 같은 주장을 근거로 최근에 테이핑이 크게 확산이 되고 있다고 한다.


<테잎을 감았던 두루말이 잔해물이 버려져 있다>



▶ 지구적 스케일의 환경변화: 인간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까?


  온난화로 대표되는 지구적 환경 변화와 글로벌 스케일의 물자 이동이 과거에는 없던 병충해를 유발하고 있는 것은 이미 전 지구적 현상이다. 그걸 막으려면 세계화를 막는 수밖에 없으니 막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환경을 보호하는 이유는 생태계의 일부인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인위적인 원인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자연과의 조화를 통하여 결국 인간이 오래도록 살기 위한 일이다. 그런데 생태계의 일부인 소나무를 위해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숲속에까지 살충제 뿌리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참나무를 살리기 위해 수많은 곤충들을 살생한다. 도대체 환경에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 경계는 어디까지란 말인가? 어떤 면에서 보면 이렇게 깊은 산중 생태계에 사람이 개입함으로써 오히려 조화를 깨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나무는 예로부터 군자 대우를 받아온 우리나라의 대표격인 나무이고 참나무는 한반도 중부지역의 극상림을 이루는 나무로 어디를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이 나무들이 새로운 질병 때문에 위험에 처했다면 그것은 환경 변화 탓이거나 이전에는 이땅에 없던 외래충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경은 자정능력이 있다. 생태계를 곧 무너뜨릴 것 같았던 황소개구리가 자연 감소하고 있다는 얘기는 환경이 스스로 조절을 하면서 생태계를 튼튼하게 만든다는 증거다. 소나무나 참나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새로운 질병에 노출되었을 때 처음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들도 이에 적응하고 극복하는 방향으로 진화를 한다. 사람이 그들을 일방적으로 편애하면 자연의 적응 과정은 당연히 지체되거나 불가능해진다. 완전 박멸이 불가능하다는 뻔한 사실 앞에서 부분적 방제를 고집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의 적응력을 떨어뜨리고 스스로 극복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을 늦추는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自然'

  '스스로 그러하게' 놔두는 것이 보다 현명한 방법이 아닌가 싶다.


[설화산. 베어낸 나무를 비닐로 감싸 놓았다]


[이렇게 하나하나 표시를 해 놔야한다]


[주변에 수도 없이 늘어선 나무들이 참나무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