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삶과 지리

용이 많은 쌍용동, 절이 없는 불당동

Geotopia 2016. 4. 3. 22:06

▶ 용이 많은 도시 천안


  나는 쌍용동에서 10년을 넘게 살았다. 그곳 태생이 아니었으므로 이사를 하자마자 지리학도로서의 강박증이 발동하여 '두 마리의 용'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雙龍'은 '두 마리의 용'이니까 쌍용동에는 용 두 마리가 어디엔가 있을거라는 생각에. 천안은 삼룡동, 오룡동, 구룡동 등등 워낙 용이 많은 도시라서 별 의심 없이 쌍용을 실체로 받아 들였다. 지세는 또 거창하게 '五龍爭珠'라고 하지 않던가! 수 많은 용 중에 두 마리가 바로 우리 동네에 있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천안천 자전거 답사 때 작성한 지도로 대신(귀차니즘^^). 노란선이 오룡이다  ☞ http://blog.daum.net/lovegeo/6779750(천안천 답사기)>


  지세를 보니 쌍용이 영락없다. 금북정맥의 만일고개(성거읍 천흥리와 목천읍 송전리 사이에 있는 고개) 남쪽 400m 지점에서 갈라진 지맥이 천안의 북쪽(두정로, 삼성대로 주변)으로 흘러 노태산에 이르고 여기서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봉서산이 된다. 그 봉서산 줄기는 다시 둘로 나뉘어 하나는 서쪽으로 흘러 월봉산에서 끝을 맺고, 또 하나는 남쪽으로 내려가 일봉산에서 끝을 맺는다. 바로 두 마리의 용인 것이다. '쌍용'은 옛 사람들이 이러한 지형과 지세를 보고 지은 이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런 여러 정황들을 이어 붙여서 스토리를 만들어 보니 아귀가 딱딱 맞았기 때문에.


<봉서산에서 바라본 쌍용동 일대. 사진 오른쪽 삼각형 모양의 산은 월봉산이고 왼쪽 끝에 일봉산 자락이 보인다>


▶ 쌍용동에는 용이 많다, 하지만…


  쌍용동에 용이 있는 것은 분명히 맞다. 월봉산으로 가는 용과 일봉산으로 가는 용이 쌍용동과 백석동 경계에서 갈라져 나간다. 두 마리의 용이 쌍용동의 동서쪽을 감싸고 흐르는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뭔가 좀 이상하다. 봉서산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서 내려오는 용 가운데 동쪽으로 내려오는 용은 봉서산 남쪽 약 600m 지점(팔각정)에서 다시 둘로 갈라진다. 동쪽 줄기는 위에서 이야기한 일봉산으로 이어지는 줄기이고 다른 한 줄기는 그대로 남쪽으로 뻗어 내려간다. 월봉산 줄기와 일봉산 줄기의 가운데 부분을 관통하여 남쪽으로 곧장 내려간 이 용은 대부분 아파트 단지와 건물로 덮여 있기 때문에 잘 구별이 안 되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곳은 바로 나사렛대학교인데 쌍용동 시내에서는 가장 고도가 높아서 구별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쌍용동 일대에는 용이 '두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가 있는 것이다.

  그럼 쌍용동이라는 이름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세 마리 용 가운데 어떤 용 두 마리 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쌍용동 일대에 세 마리 용  *원도: Google지도>


  하지만 알고 보면 쌍용동이라는 이름은 '두 마리의 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일본은 식민지 정책의 하나로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하였다. 통폐합 하기 전 이 일대는 천안현 군서면이었다. 군서면에는 아홉 개의 里가 있었다. 彌羅里, 佛舞里, 龍巖里, 雙井里, 書堂里, 公須里, 松谷里, 白石里, 栗枝洞이 그들이다. 이 마을들 가운데 지금까지 변함없이 옛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 곳은 백석리(지금의 백석동) 뿐이다. 나머지는 이름을 잃었거나 통폐합으로 한 글자만 살아 남았다.

  아홉 개의 이름을 잘 살펴보고 조합해 보자. 그러면 '쌍용동'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쌍용동은 바로 雙井里와 龍巖里의 첫 글자를 각각 떼어다가 만든 이름이다. '두 개의 우물'과 '용바위'라는 뜻이니 '두 마리의 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둘을 뜻하는 '雙'은 용을 수식했던 말이 아니고 우물을 수식했던 말이다. 그러니 쌍용동에서는 용 두마리를 찾을 것이 아니라 우물 두 개를 찾는 것이 옳았던 것이다.


▶ 절이 없는 불당동


  쌍용동 옆에는 불당동이 있다. 불당동의 '佛堂'은 '부처가 있는 집', 곧 '절집'이다. 옛날에 큰 절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실제로 이 지명을 일부 기독교계에서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불당동 역시 1914년 이전의 마을 이름을 조합해 보면 답이 나온다. 바로 '佛舞里'와 '書堂里'이다. 두 마을에서 각각 앞 글자와 뒷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인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불무리는 '풀무질'을 하는 대장간이 많이 있어서 '풀무골'이었는데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풀무를 음차한 '불무'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마도 풀무질을 하던 동네와 서당이 있던 동네였던 모양이다. 한자 이름은 '절집'이라는 뜻이지만 '절집'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 학교 이름으로 부활한 옛 이름

 

  학교 이름으로 '부활'한 이름이 몇 개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럽다. 쌍정초등학교, 미라초등학교, 불무고등학교, 용암초등학교, 서당초등학교 등이다. 이 지역의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많은 학교가 새로 생겼고 이 과정에서 옛 이름들이 되살려진 것이다. 마을 이름으로 되살아나지는 못했지만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옛 이름을 발굴해 낸 결과로써 적어도 학생과 주민들에게 그 이름의 기원이 무엇인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니 그나마 의미가 있다고 할까?

 

▶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의미없는 통폐합

 

   하지만 지금도 일제강점기 못지않은 통폐합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예를 들면 천안-논산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정우터널'이라는 곳을 지난다. 이건 어디서 온 이름일까? 이 터널은 공주시 '정안(正安)면'과 '우성(牛城)면'을 나누는 산줄기를 뚫은 터널로 두 面 이름의 첫 글자를 각각 따서 지은 이름이다. 도대체 지리적 의미도, 역사적 의미도 없는 이름이다. 먼 훗날에 후손들이 '正牛'의 의미를 '정의로운 소'로 해석한다면? 정말 소가 웃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