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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가톨릭 성지의 올레길

Geotopia 2017. 6. 25. 17:03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Via Crucis)'은 예수가 빌라도 총독에게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걸었던 800여m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에 각각의 의미를 지닌 장소를 지정했는데 이 과정은 14세기 경부터 시작되어 18세기 경까지 지속되었다. 주로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도사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1731년 교황 클레멘스(Clemens)12세가 모든 교회에 십자가의 길을 14처로 설립하는 것을 처음으로 허용함으로써 지금의 14처가 확정되었다.

  본디 중죄인을 처형하는 형틀이었던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 된 과정을 잘 보여주므로 신앙심을 굳게하는 데 큰 의미가 있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을 찾아 십자가의 길을 순례하는 이유일 것이며, 또한 전세계로 퍼져 나간 이유일 것이다.

 

 

<예루살렘 십자가의 길  *자료: Daum 카페 하얀교회>

 

 

<십자가의 길 제1지점 빌라도 총독 법정. 지금은 엘 오마리에 아랍 초등학교. *자료: Daum블로그 배성수성지사랑>

 

 

 

<진천 배티성지 십자가의 길 제5지점.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졌던 장면을 형상화했다>

 

  십자가의 길은 모든 천주교 성당이나 순교 성지에 설치되어 있다. 특히 순교성지는 '예수의 고난'과 동일시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더 큰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천주교가 전래되는 과정에서 탄압을 심하게 받았던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많은 순교성지가 있는데 순교 성지라는 역사적 장소에 종교적으로 가장 의미있는 사건인 예수의 고난을 형상화한 시설을 설치함으로써 장소에 더 큰 의미와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십자가의 길이 대형 조형물(彫像이나 부조 등)로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는 그리 오래 전이 아닌 것 같다. 주로 작은 액자같은 형식으로 설치되어 잘 눈에 띄지 않았던 과거에 비해 근래에는 대형 조형물을 설치하여 눈길을 끈다. 신도가 아닌 사람의 눈으로 볼 때 그런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신도들은 그 의미를 잘 알기 때문에 조형물이 작아도 눈에 띄었겠지만 신도가 아닌 내 눈에는 그것이 들어오지 않았었다(그래서 나는 십자가의 길이 근래에 새로 만들어진 것이려니 했었다). 어느날 공세리 성당에 갔더니 성당 둘레 산책길을 따라 실물 크기보다 약간 작은 조각상이 잔뜩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소박한 아름다움이 가톨릭 성당의 특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솔직히 좀 생뚱맞아 보였다. 그것이 2007년이었다. 그 이전에도 어딘가에는 대형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여기저기 뒤져보니 유명한 제주의 '성 이시돌 새미 은총의 동산' 십자가의 길이 2007년에 완성되었고 시작은 2003년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대형 조형물과 산책로가 결합된 초기의 사례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대략 최근 10년 사이에 대형 조형물과 산책로가 결합된 십자가의 길이 많이 조성되었다고 생각되는데 최근에는 개신교에서도 십자가의 길을 조성한 사례가 있다. 십자가의 길은 신앙심을 굳건하게 하면서 전도 효과도 도모할 수 있는 훌륭한 장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충남 공주 수리치성지에 설치된 십자가의 길 부조>

 

 

  좀 엉뚱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최근의 경향은 우리나라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는 '걷기' 열풍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2014년) 등 큰 행사나 교계의 정책과 관련이 있겠지만 '걷기'가 크게 유행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도 없지 않은 느낌이다. 걷기 열풍의 시작이 된 것은 제주 올레길이다. 그 올레길이 탄생한 때가 2007년이다. 그후 10년이 지난 지금은 26개 코스 425km로 제주를 모두 아우르는 제주의 명물이 되었다. 올레가 제주의 명물이 되면서 전국적으로 '걷는 길' 열풍이 불었다. 지리산 둘레길, 태안 해변길, 송도 해안 볼레길, 내포문화숲길, 괴산 산막이옛길, 경주 양남 주상절리길… 

 

  그런데 제주 올레길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예수의 열두 제자였던 야곱(야고보)의 무덤이 있다고 알려진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야곱(Jacob)'은 스페인어로 '이야고(Iago)'가 되었기 때문에(영어로는 'James') 'Santiago'라는 이름이 생겼다)로 향하는 약 800km에 이르는 길이다. 야곱은 헤롯 아그립바 1세에게 살해됨으로써 12사도 가운데 가장 먼저 순교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걷기 열풍의 시작인 제주 올레는 기독교 순례길에서 비롯되었고, 그래서 널리 퍼진 걷기 열풍이 기독교 십자가의 길에 다시 영향을 미치게 된 셈이다.

 

  우후죽순처럼 여기저기 생겨서 신선감이 떨어지는 아쉬움은 있지만 성지마다 각양각색으로 조성된 조상이나 부조들을 눈여겨 보면서 걷다 보면 산책길이 보다 의미있는 길이 될 수 있다.

 

 

 

 

◈ 안성성당 십자가의 길

 

  1901년에 세워진 안성 구포동 성당은 고풍스럽고 아담하다. 그래서 그랬는지 14지점을 형상화한 조각상이 간명하고 예쁘다.

 

 

<제1지점  빌라도 총독에서 사형 선고를 받음>

 

 

<제2지점. 로마 병사들이 예수에게 가시관을 씌우고 홍포를 입혀 희롱한 곳>

 

 

<제3지점.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진 곳>

 

 

<제4지점. 예수가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를 만난 곳>

 

 

<제5지점. 키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진 곳>

 

 

<제6지점. 성 베로니카 여인이 물수건으로 예수의 얼굴을 닦아주었던 곳>

 

 

<제7지점. 예수가 두 번째로 쓰러진 곳>

 

 

<제8지점.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제9지점. 세번째로 쓰러진 곳>

 

 

<제10지점. 예수의 옷을 벗긴 곳>

 

 

<제11지점. 십자가에 못 박힌 곳>

 

 

<제12지점. 십자가 위에서 죽은 곳>

 

 

<제13지점. 아리마태아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내려놓은 곳>

 

 

<제14지점. 아리마태아 요셉이 예수를 장사 지낸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