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뉴질랜드, 2주일로 끝장내기

타이베이, 홍콩을 거쳐서 오클랜드로

Geotopia 2018. 12. 23. 10:25

▶ 나는 아산 사람


  외지에서 누가 어디 사느냐고 물으면 '천안이요' 라는 대답이 아무 생각없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아산 사람이다. 이제 1년하고도 5개월이 지난 어엿한 아산 사람이다. 인천공항행 버스를 아산터미널에서 타면서 '아산 사람'으로서 나의 정체성을 느낀다. 10년 넘게 몸에 밴 관행 때문에 여전히 천안이 생활의 무대지만 아산 시내에 갈 일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 아산 사람이 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아산에서 출발하는 인천공항행 버스는 모두 천안을 들러서 간다. 뿐만 아니라 모두 김포공항을 들러서 가기 때문에 두 시간이 훨씬 넘게 걸린다. 천안에서 출발하는 버스 중에는 김포공항을 들르지 않고 평택-시흥 고속도로를 거쳐 인천대교를 건너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이 노선은 1시간40여 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돌아올 때 보니 우리가 탄 차바로 뒤에 출발하는데 천안에 더 먼저 도착하는 차가 있었다. 천안이 아산에 비해 두 배 정도 큰 도시이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다.


▶ 출발 두 시간 전까지, 누가 정해놓은거지?


  11.22(화), 9:20 비행기, 두 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려면 아산에서 다섯 시에는 출발을 해야 한다. 잠꾸러기 아들이 평소와는 달리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하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여행을 즐기기 위한 적극적인 자세다.

  출발 두 시간 전.

  누가 정해 놓은 시간인지 알 수 없지만 항상 시간이 남는다. 뻔히 알면서도 늑장을 부릴 수는 없다. 4:30에 일어나 유난을 떨었더니 터미널에서도 시간이 남고, 공항에서도 시간이 남는다. 임박해 공항에 도착해서 이리뛰고 저리뛰는 추억을 만드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그런 모험(?)보다는 내 몸을 괴롭혀서 안정을 선택하는 것이 마음이 편안한 나이가 되었다. 예전에 어른들이 자꾸 시간을 재촉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老婆心이라는 약간 고리타분한 뉘앙스를 갖는 낱말이 이젠 내게도 적합한 말이 되었다. '老婆'는 여성이지만 나이가 들면 성별 구분없이 걱정이 많아지는 모양이다. '老婆心'이라는 성 차별적 낱말보다는 '老心'이 맞지 않을까?


▶ 특가 상품의 단점: 좌석을 미리 선택할 수 없다


  특가 상품이라서 그런지 좌석을 미리 지정할 수가 없었다. 자동 발매기에서 티켓팅을 하는데 직원이 와서 도와준다. 홍콩까지 가는 비행기는  A330-300, 미리 알아본 바에 따르면 날개 위 좌석은 30~46이다. 요걸 피해서 창가 좌석을 주문했는데 58번이 나왔다. 하지만 58번도 날개 때문에 밖이 안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창가 자리가 튕겨서(창구 직원이 이런 낱말을 썼다) 가운데 자리가 되었다. 숨은 경유지인 타이베이까지는 창가 자리가 배정됐는데 타이베이부터 홍콩까지는 둘의 자리가 분리된다고 한다. 할 수없이 창가를 포기하고 자리가 붙은 가운데로 골랐다. 아쉽기는 하지만 이 구간은 많이 지나봤으니까 괜찮다고 나를 다독거린다.


<모니터로 보는 홍콩 가는 길>


  숨은 경유가 뭔고 했더니 내렸다가 다시 타는데 다른 비행기를 타는 것이 아니라 같은 비행기를 다시 타는 것을 말한다. 이 비행기는 타이베이에 들러서 승객을 내려놓고 타이베이에서 홍콩까지 가는 승객을 태우는데 이때 타고 있던 모든 승객들이 내렸다가 타야한다. 그러니까 우린 '나라시' 비행기를 탄 것이다. 타고 있던 승객들의 자리는 거의 같은 자리로 배정되지만 보안 관계와 기내 청소 등의 이유로 모두 내렸다 타야 하며 검색대를 다시 통과해야 한다. 예전에 남미 칠레 푼타아레나스에서 경험했었다.


<숨은 경유지 타이베이 다오위안공항>

 

▶ 여객기: 가장 자본주의스러운 교통 수단


  기내식 메뉴가 두 종류인데 어느 한쪽이 모자라는 경우는 없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자원 낭비가 있다는 뜻이다. 재활용은 못할테니까. 가격을 내리고 메뉴를 하나만 내놔도 나로서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입맛이 가지각색이라서 아마도 일정한 손실을 감수하는 것이 영업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비로 경제가 운용되는 매우 자본주의스러운 현장이다.

  돈에 따라 클래스가 명확히 구별되는 것까지 비행기는 정말 자본주의스럽다. 모든 사람이 이걸 당연한 사실로 인정하는 것도 참 자본주의스럽다. 평등과 자유라는 자본주의가 내세우는 가치가 아무런 저항없이 뭉개지는 현장이다. 불평등이 능력의 차이로 합리화되는 현장이다. 버스 좌석을 가격으로 구분한다고 가정해보자. 카스트제도가 아니고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엄청 비싼 교통수단인 비행기만이 가능하다. 능력이 달려서, 돈이 없어서 이코노미를 이용하면서도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우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믿는 허위의식도 이러한 불평등을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원인 가운데 하나다.


▶ 아들의 발견(?)


  아들이 뜬금없이 비행기 날개 앞 부분은 비행중에는 색깔이 진한 색으로 변한다고 말한다. 진짜? 비행중인 케세이퍼시픽은 날개 앞부분이 짙은 회색인 걸 알 수 있는데 다른 비행기도 그런지는 관찰해봐야겠다. 만약 맞는다면 이유가 뭘까 둘이 한참 토론(?)을 했다. 둘 다 모르는 현상을 토론을 하면 팽팽하지 않고 대개 맥이 빠진다. 토론의 근거가 추측뿐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된다면 아들은 재빨리 검색을 해봤겠지만 비행중에는 불가능하다. 기온 때문일까, 아니면 기압 때문일까? 원인을 알기에 앞서 현상의 사실 여부가 먼저 밝혀져야 하지만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므로 추측 만이 난무했다.

  여튼 아들은 가끔 놀라운 눈썰미로 나를 놀래킬 때가 있다. 이것도 맞는다면 대단한거다. 아직 비행기를 타본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데도 말이다.

  결론은?

  비행중일 때는 그 부분의 색이 좀 더 진해지는 것 같기도 한데 여전히 정답은 모른다.


▶ 헷갈리는 홍콩 공항에서 기억 주워담기


  홍콩 책랍콕 공항은 비가 내린다. 날씨 탓인지 비행기가 공항 직전에서 한 바퀴 바다를 선회하고 이십분이나 늦게 착륙을 한다. 착륙허가를 못받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날씨가 나빠 바다에 기름을 버리느라 그랬는지?

  작년 1월에 왔었으니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왔던 기억이 어렴풋하고 그때 환승 게이트를 찾아 길을 잃고 헤맸던 곳이 생각난다. 입국으로 들어와서 E,W,M등으로 갈리는 곳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입국이다. 환승이 많은 공항답게 환승 안내 데스크가 여럿이다. 주요 항공사들이 환승 안내 데스크를 운영하고 있다. 두시 사십분 경에 데스크 앞에 왔는데 네시나 되어야 게이트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뭐 상관없다. 널럴한게 시간이니까. 어쨌든 안내 데스크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검색대가 나오고 검색을 통과하면 위층으로 올라간다. 거기가 탑승구다. 다음엔 헷갈리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쓴 글을 미리 읽어보고 온다면 헷갈리지 않겠지. 근데 그동안 나의 행적과 기억력으로 볼 때 분명 또 그냥 와서 흩어진 기억을 주워담으려고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이러고도 그럭저럭 지리로 밥을 벌어먹으니 참 다행이다.


  14:20에 도착해서 검색 마치고 탑승구에 들어오니 세 시쯤 되었다. 17:55에 출발하니 세 시간 정도를 여기서 보내야 한다. 아들이 치솔을 캐리어에 넣고 와서 치솔을 사고 간식을 좀 먹기로 했다. 비행기가 출발하면 바로 또 기내식이 나오겠지만 시간도 때울 겸 간식을 좀 먹기로 했다. 약간 출출한 느낌도 있었지만 배가 고픈 정도는 아니었으므로 다분히 시간을 때우는 의미가 크다. 정체가 좀 불분명하지만 일본 냄새가 많이 나는 음식점에서 치킨과 면이 세트로 나오는 메뉴를 골랐다. 하나를 주문해서 둘이 먹으니 간식으로는 딱이다. 밖에 서있는 케세이퍼시픽 비행기들을 보니 날개 부분의 색이 흰색에 가까운 연한 색으로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홍콩공항에서 먹은 간식>


▶ 오클랜드행 에어뉴질랜드 기장이 Galluxy Note7 광고를?


  홍콩에서 오클랜드까지는 제휴 항공사인 에어뉴질랜드의 보잉777(NZ80)로 간다.  날개 위 좌석은 26~46 사이이고 59~61은 bad seat로 구분된다. 우리 좌석은 43번, 정확히 날개 위다. 하지만 다행이도 밤이다. 지도로 비행 노선을 보니 낮이고 창가 자리라면 정말 좋겠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파푸아뉴기니, 오스트레일리아 동부를 지난다. 특히 대보초 위를 지나는 것이 매력적이다. 올 때는 꼭 날개를 피해서 창가를 차지해야지.

 

  에어뉴질랜드는 선진국 냄새가 확 난다. 모든 것이 원칙적이다. 안전 안내도 자체 제작한 코믹한 화면과 함께 직원들이 앞에 서서 시범을 보이는 것을 함께 한다. 비행기도 깨끗하고 화면도 마음에 딱 든다. 해상도가 뛰어나고 경로 안내와 기타 사항 서비스도 좋다. 기장이 친절하게 '삼성 갤럭시노트7'을 선전(?)해준다. 기내 반입했다면 조심하라는 얘기같은데 노이즈 마켓팅? 과연 Global 삼성이다. 

  아까 탔던 에어버스가 지도와 비행정보를 교대로 제시하는데 비해 신형 보잉은 둘을 고를 수도 있고 지도를 골라도 화면 위에 비행정보가 작은 글씨로 계속 나온다. 전세계 어디를 골라서 손가락으로 화면 확대를 하면 점점 자세한 정보가 표시된다. 영어 자막이 들어간 우리나라 영화도 있다. 봉이김선달을 좀 보다가, 졸다가, 지도 보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밖을 볼 수 없는 야간 비행은 정말 지루하다. 지루하니 다리가 더 저린 것 같다. 좁은 공간에서 깜냥껏 뻗어도 보고, 들어도 보고, 비비적대보지만 소용이 없다. 소용없는 비비적거리기를 반복하다가 아예 양반다리로 다리를 적극적으로 괴롭혀봤다. 결과는 대성공! 신기하게도 다리가 편안해졌다. 의자에 앉는 것보다 양반다리로 바닥에 앉는 것이 더 편안한 모양이다. 다음을 위해서 평소에 자주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야겠다.


<에어뉴질랜드 기내식>


  신형 비행기라서 모니터에 서비스 되는 내용이 많다. 세계 각 도시의 여행지를 소개하는 메뉴도 있는데 오클랜드를 검색해봤다. 그런데 소개된 오클랜드의 명소들은 대부분 잘 모르는 곳들이다. 오기 전에 미리 알아봤던 곳들은 거의 안 나온다. 혹시 참고가 될까해서 적어놓긴했지만 그다지 매력적인 곳은 없다. 동물원, 페리터미널, Holly trinity Cathdral, Kelly Tarlton, MOTAT(museum of transportation and technology)… 계획을 수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홍콩에서 오클랜드까지 타고 온 NZ80. 아들이 내리자마자 잽싸게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