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거문도

여수, 거문도[Ⅳ]

Geotopia 2016. 9. 8. 10:17

▶ 답사일 : 2016. 8.18(목) ~8.19(금)


▶ 일정  

  *18일: 천안아산역 출발(07:45) - 여수엑스포역 도착(10:11) -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 도착(10:30) - 승선표 매표(12:40) - 점심 식사(13:00) - 여수항 출발(13:40 - (나로도- 손죽도-초도-거문도 서도 경유) - 거문항 도착(고도,16:00) -  동도 방파제(16:25) - 거문대교(16:40) - 서도분교장(16:50) - 이끼미(이금포)해안(17:00) - 저녁식사(장촌, 17:50) - 1박(고도 거문리)  


  *19일: 거문등대(07:15) - 거문중학교(09:00) - 인어공원 전망대(10:50) - 녹산등대(11:30) - 점심(고도, 12:50) - 고도 답사 - 거문항 출발(16:30) - 여수연안여객터미널 도착(18:20) - 여천 진남시장(군산수산횟집, 18:50) - 여수엑스포역 출발(23:20) - 천안역 도착(03:11)  *[Ⅳ]편 내용은 빨간 글씨 부분임

 

 

▶ 개학 후 첫 강의는 거문도 지역 연구

 

  씻고 준비하다 보니 금세 아홉시가 다 되었다. 개학 첫 날, 첫 시간 수업을 보러 가겠다는 억지를 썼지만 갑인이는 말없는 웃음으로 허락을 했다. 치밀하지 못한 나는 개학이 어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개학이므로 하루 전인 어제 거문도에 들어와 있었던 것인데…

  거문중학교는 거문리 삼호교 부근으로부터 1km정도 떨어져 있는데 덕촌 들머리에서 산비탈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 자동차도 중간에 엑셀레이터를 한번 더 밟아줘야 올라갈 정도로 경사가 급하다. 3년간 개근하면 학생들 다리는 엄청 튼튼해지겠다.

 

거문중학교 입구. 급경사면 아래로 바다가 펼쳐져 있고 고도와 동도가 훤히 보인다

 

불탄봉(195m) 기슭에 자리를 잡은 거문중학교. 덕촌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현관에서 슬리퍼를 갈아 신고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바로 교무실이다. 열 분 선생님들이 일제히 인사를 하셔서 순간 당황스럽다. 아직 1교시가 시작되기 전이라서 모두 자리에 계신 것이다. 잠깐 생각해 보니 평소에도 교무실 분위기는 비슷할 것 같다. 모두 세 학급이니 열 분 중에 수업에 들어가시는 샘은 세 분 뿐일테니까. 고등학교를 기준으로 보면 교사의 수는 보통 전체 학급 수의 두 배가 못 된다. 그러니까 수업이 시작되면 매 시간 절반 이상의 교사가 수업에 투입이 된다.

  거문중학교는 1학년 8명, 2학년 8명, 3학년 5명이고 선생님들 평균 수업 시수는 12시간이다. 이 정도라면 열심히 연구하고 학생들과 충분히 소통하는 것이 가능한 이상적 환경에 가깝다. 40여 명의 학생에 보충수업까지 25시간, 그리고 야간자율학습까지 했던 것이 작년까지 내 현실이었다. 연구년 끝내고 내년에 복귀를 해도 똑같은 현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교과서, 문제집, 잡무, 그리고 짬을 내서 상담… 틈틈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저녁이 있는 삶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갑인이를 따라 교무실 옆의 교장실, 행정실을 거쳐 2층 교실을 휘 둘러본 다음 수업에 들어갔다. 3학년 수업이다. 3학년은 모두 다섯 명, 예고도 없이 개학 첫 날, 첫 수업에 선생님 친구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수업에 꼽사리를 꼈으니 학생들이 아마도 당황했을 것이다. 수업 참관은 교실 앞에서 하는 것이 좋다는 배움의 공동체 전문가인 송우정님의 주장을 바로 며칠 전 들었지만 내 생각에 그 자리는 교사에게 꽤 큰 부담을 줄 것 같다. 나란히 한 줄로 앉아 있는 아이들 옆에 앉기로 했다. 함께 수업을 듣는 것이다.

 

교사의 눈에 모든 학생들이 한 눈에 들어오니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왼쪽 의자는 내가 앉았던 의자다

 

 

  방학 과제 확인하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한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과제였는데 대표로 한 학생이 나와서 발표를 한다. 뒷통수를 긁으며 멋적게 나왔지만 방학 동안 진지하게 책을 읽었음을 알 수 있다. 발표도 진지하고 듣는 학생들도 진지하다. 

  발표가 끝나고 거문도 지역연구 특강이 이어진다. 개학 첫 수업에 난입한 외부인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면서 학생들에게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을 가르치는 것이다. 정약용의 제자였다는 황상이라는 인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정약용, 김정희, 기정진, 김유 등 많은 인물들이 거문도 지역사로 연결이 된다. 곤여만국전도, 중화사상 등 관련 정보들이 등장하는 통합교과적 수업이다. 내용이 만만치 않아서 개학 첫 수업부터 힘이 들법도 한데 다섯 명의 학생들은 진지하기만 하다. 거문도 사람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지라는 당부가 주제이다.

  이어서 진학과 장래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고등학교가 없는 거문도 중학생들에게 진학이란 곧 섬을 떠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진로 지도는 다른 지역 학생들에 비해 훨씬 큰 의미를 가질 것 같다. 전문계를 갈 것인지, 인문계를 갈 것인지와 함께 거처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도 매우 중요한 결정 사항이다. 거문도 사람으로서의 자긍심을 바탕으로 큰 꿈을 꾸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김갑인샘의 바램이 느껴진다.

  학생들은 전 교과를 통합한 플래너를 활용한다. 작은 학교라서 이런 시도가 실효성이 있을 것 같다. 파편화된 학문을 극복하고 통합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면 섬에 태어난 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교과를 통합한 플래너를 활용한다

 

 

수업이 8교시까지다. 사교육이 없으므로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전체 학생들과 기념 촬영. 다섯 명 뿐인데 그나마 한 명은 병원에 가느라 일찍 나갔다. 3학년보다 1, 2학년 학생 수가 더 많으니 다행인가?

 

 

▶ 백도를 못보고 가다니

 

  10:30에 출발하는 백도 유람선을 타기 위해 서둘러 선착장으로 달렸다. 학교에 가기 전에 미리 표를 끊으러 갔었는데 바람이 불어서 출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표를 팔지 않았었다. 내가 보기에는 배를 못 띄울만큼 바람이 부는 것이 아니다. 보아하니 평일이라서 유람선 이용객이 많지 않아서 바람을 핑계대고 운행을 하지 않을 작정인 것 같다. 몇 사람이 나처럼 헛 걸음을 하고 돌아간다. 그냥 경치를 관망하는 유람선이라는 것은 크게 매력적이지 않는 여행방식이지만 갑인이가 '선경을 볼 것'이라고 했기 때문에 기대가 컸었다. 아쉽다. 쉽게 올 수 없는 곳이 거문도인데 백도를 못 보고 가다니… 한가꾸와 백도를 위해서 거문도를 꼭 다시 와야 할 것 같다.


▶ 녹산등대 가는 길 

 

  어디를 갈까?

  전망이 좋은 산에 올라가 보면 좋겠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서 겁이 난다. 어제 못 간 녹산등대가 떠오른다. 차가 있으므로 쉽게 갈 수 있다. 유람선을 못 타게되어 발길을 돌렸던 한 가족이 걸어서 삼호교를 건넌다. 이 더운 날 이 가족은 어디를 걸어서 갈 수 있을까? 다리를 건너 덕촌에 가봐야 특별한 것이 없다. 걸어가는 가족을 보면서 차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니 정말 큰 일 날뻔 했다 싶다.

  고개길은 좁아서 차 2대가 서로 교행할 수 없는 곳도 있다. 덕촌과 장촌 중간쯤 되는 곳일까? 길 옆에 핀 빨간 꽃이 눈길을 끈다. 사람도, 차도 없는 아담한 길과 푸른 바다가 배경을 이루는 정말 그림같은 풍경 앞에서 차를 세웠다. 길을 막고 차를 세워도 아무 문제가 없다. 마주오는 차도, 따라오는 차도 없으니까.

 

거문대교를 배경으로

 

 

이번엔 고도를 배경으로

 

 

  거문초등학교  서도분교장에 차를 세웠다. 어제 왔었기 때문에 익숙하다. 조금이라도 그늘에 차가 들어갈 수 있도록 운동장 가 나무 아래에 차를 세워보지만 그늘이 손바닥만해서 겨우 운전석이나 가릴 정도다. 녹산등대를 가려면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야트막한 오르막이지만 워낙 날이 더워서 땀을 내지 않을 만큼 걸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최대한 천천히 숨을 고르면서 오르막을 오른다. 초등학교에서 녹산등대까지는 대략 1.3km 정도되는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다.

 

▶ 쑥대밭이 돈이 된다: 거문도 해풍쑥

 

  학교 뒷쪽으로 산을 오르다보니 쑥대밭이 보인다. 돌담이 둘러쳐져 있는 멀쩡한 밭인데 쑥대밭이다. 농사를 짓지 않고 방치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일부러 심은 '쑥밭'이라는 사실을 어제 들어서 알고 있었다. 거문도에 도착해서 처음 들렀던 동도방파제에서였는데 거문도에서 첫번째로 만난 독특한 지리적 현상이어서 관심이 갔었다. '거문도 해풍 쑥'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까지 된 거문도 특산물이다. 실제로 노령화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 늘어나서 자연스럽게 쑥대밭이 되었는데 의외로 쑥의 품질이 좋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요가 생겼고, 지금은 일부러 쑥을 심어 생산하고 있는 밭이 늘고 있다. 곰이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쑥은 농약을 칠 필요도 없고 고라니같은 야생동물을 걱정할 필요도 없으니 이런 효자 농산물이 어디 있을까?

 

동도방파제에서 바라본 산비탈의 쑥밭

 

 

  1월~3월에 생산된 쑥(따뜻해서 다른 지역보다 햇쑥이 일찍 나온다)은 국거리로 팔고 4월~6월 사이에 생산된 쑥은 다양한 가공식품의 원료로 쓰인다. 쑥 분말, 쑥차 등 쑥을 그대로 이용하는 상품과 함께 다양한 가공식품이 생산되고 있다. 쑥인절미, 쑥개떡, 쑥떡, 쑥송편, 쑥막걸리, 쑥진액, 쑥빵, 쑥초코크런치 등인데 2015년에 2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0여 가구가 쑥을 생산하여 짭짤한 소득(가구당 평균 7백만원 정도)을 올리고 있다. 혹시나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최근(8월30일)에 돌산 갓김치와 함께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선정하는 '2016농식품파워브랜드'에 선정이 되었다는 기사가 검색된다.

 

돌담이 둘러쳐져 있는 쑥밭에서 어린 쑥이 자라고 있다

 

 

쑥밭에서 내려다 본 아름다운 장촌 풍경

 

 

잘라주지 않았는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된 곳도 있다

 

 

장촌마을에 있는 해풍쑥 영농조합 쑥 가공 공장

 

 

해풍쑥을 선전하는 장촌마을 벽화

 

 

길을 잘못 들다

 

  올라가다 보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전망대를 먼저 들러야 하므로 자연스럽게 전망대쪽 길을 선택했다. 상록수 터널도 지나고, 쑥밭도 지나면서 거의 8부 능선 정도에 도착했을까? 점점 길이 이상해지는가 싶더니 끝내는 얼추 가슴께까지 올라오는 풀밭이 나타난다. 길의 자취는 보이지만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아 우거진 풀숲이나 다름이 없다. 전망대가 건너다 보이므로 가기는 가야 하는데 짧은 바지 아래 맨살이 드러나 있는 상태로 엄두가 나질 않는다. 인어공원이라고 이름 짓고 산책로까지 만들어 놨지만 사람이 많이 찾는 곳이 아니라서 길이 이렇구나. 이 상태로 등대까지 1km 이상을 가야 한다면 등대 답사는 포기해야 한다. 맨살이 긁히는 느낌과 함께 풀숲을 헤쳐 나가자니 "등대는 도저히 안 돼" 소리가 입에서 저절로 나온다.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잡은 묘. 밭을 이용했다. 땅이 좁은 섬에서도 묘지는 어김없이 명당을 지향한다. 햇빛이 잘들고 전망이 좋은 곳은 농토로도 좋은 곳이다

 

 

상록수 터널을 지나고

 

 

전망대가 눈앞에 보이는데 그 앞을 가로막고 있는 풀숲

 

 

▶ 걸어다니면 3박4일은 걸리는 거문도 : 이런 여행도 괜찮겠다

 

  "등대는 도저히 안돼"를 중얼거리며 전망대 계단을 오르는데 인기척이 있다. 내 발자국 소리를 듣고 후다닥 몸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전망이 좋은 전망대에서 돗자리를 깔고 호젓함을 즐기던 중이었던 모양이다. 사람의 발길이 거의 없는 곳이므로 한숨 늘어지게 자도 뭐라 할 사람이 없겠다. 커다란 배낭을 옆에 놓은 것으로 보아 트래킹으로 하는 중인 모양이다. 그의 달콤한 휴식을 본의 아니게 깨버렸으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는 마치 사람을 기다렸던 것 같다.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정보를 들려준다. 경기도 화성의 기아자동차에 근무한다는 자신의 신상도 앞서 알려준다. 휴가내서 혼자 거문도 트래킹을 하고 있는 중인데 3박4일 일정이라고 한다. 이미 녹산등대 주변을 훤히 알고 있다. 순환 산책로가 있고 데크가 설치된 길이 등대까지 나 있으며 내가 올라온 길이 정상적인 산책로가 아니라는 중요한 정보도 알려준다.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등대는 도저히 안돼"를 중얼거리며 풀숲을 헤치고 다시 내려갔을 것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인어공원 전경과 녹산등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장촌.왼쪽은 해협쪽 항구이고 오른쪽은 이끼미해수욕장이다. 장촌은 사주 위에 발달한 마을이다. 지금의 인어공원은 옛날에는 독립된 섬이었을 것이다. 사주로 연결이 된 다음 강한 북서풍의 영향으로 사구가 성장하여 고도가 높아진 곳에 마을이 들어섰다

 

 

  '休家'란 무엇일까?

  원래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집에서 편하게 쉰다'는 뜻일텐데 휴가를 그렇게 보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집을 떠나 여행을 간다. 그렇다면 여행은 어떻게 가야할까? 나의 여행은 항상 답사다. 쉬지 않고 싸돌아 다닌다. 나뿐 아니라 지리학도는 누구라도 하나라도 더 보려는 강박증 환자이기 때문에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날 만났던 그 사람처럼 그냥 누워서 쉬는 법이란 거의 없다. 가끔 아내가 내 스타일이 힘들다고 투정할 때도 있지만 수십 년 함께 여행을 하면서 아내도 자연스럽게 내 스타일에 적응을 했다. 

  그런데,

  3박4일 일정으로 거문도에 들어와서 배낭을 메고 샅샅이 섬을 밟고 다니는 여행은 어떨까? 그러다가 힘이 들면 바람 좋고, 전망 좋은 곳에서 한숨 자고, 괜찮았던 곳은 다시 한번 더 가보고… 나에게는 낯선 여행 스타일이지만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는 여행 방법이 아닐까 싶다. 매일같이 꽉 짜인 업무에 시달리던 몸과 마음에게는 '그냥 쉬는 것'이 가장 좋을지도 모른다. 구태여 무리하게 몸을 혹사한다면 그게 무슨 '휴식'이겠는가. 나이가 더 들고 은퇴를 하면 나도 이런 여행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Ⅴ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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