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거문도

여수, 거문도[Ⅰ]

Geotopia 2016. 9. 1. 08:58

▶ 답사일 : 2016. 8.18(목) ~8.19(금)


▶ 일정  

  *18일: 천안아산역 출발(07:45) - 여수엑스포역 도착(10:11) -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 도착(10:30) - 승선표 매표(12:40) - 점심 식사(13:00) - 여수항 출발(13:40 - (나로도- 손죽도-초도-거문도 서도 경유)-거문항 도착(고도,16:00) -  동도 방파제(16:25) - 거문대교(16:40) - 서도분교장(16:50) - 이끼미(이금포)해안(17:00) - 저녁식사(장촌, 17:50) - 1박(고도 거문리)  *[Ⅰ]편 내용은 빨간 글씨까지임


  *19일: 거문등대(07:15) - 거문중학교(09:00) - 인어공원 전망대(10:50) - 녹산등대(11:30) - 점심(고도, 12:50) - 고도 답사 - 거문항 출발(16:30) - 여수도착(18:20) - 여천 진남시장(군산수산횟집, 18:50) - 여수출발(23:20) - 천안도착(03:11)



<주요 답사지  *원도: Google earth>


▶ 아내 없는 틈에 거문도로!


  짧디 짧은 방학이 끝나자 마자 아내가 또 출장을 간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거문도에 가자. 학창시절 단짝이었던 갑인이가 고향인 거문도에 들어갔으니 친구도 보고, 거문도도 보고, 갑인이 수업까지 봐야겠다.

  오랫만에 열차 여행을 하기로 했다. 차를 가지고 가서 여행 날짜를 더 늘려볼까 생각도 했지만 편안하게 열차 여행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전라선에도 KTX가 간다. 익산부터는 가짜지만 그래도 2시간30분 밖에 안 걸리니 그것만해도 어디인가. 무궁화호가 3시간50분 걸리니까 무려 1시간20분이나 차이가 난다. 10D좌석, 순방향으로 예약했지만 기둥에 가려서 밖이 안 보여서 밖을 보려면 뒷쪽으로 고개를 한참 돌려야한다. 곰을 잡았더니 쓸개가 없더라고, 마치 비행기 창가 자리를 차지했더니 날개 위인 것과 같다ㅠㅠ


40쪽 짜리 답사자료


  어차피 밖을 볼 수 없으니 갑인이가 보내온 답사자료나 읽어야겠다. 해양문화 전문가답게 1박2일 답사 자료가 무려 40쪽이다. 예나제나 이 인간 자료 꼼꼼하게 만드는 것은 변함이 없다. 갑인스럽다.

  거문도를 중심으로 여수, 한국, 세계가 모두 들어있는 그야말로 통합 문화역사지리 자료다. 거문도가 독특한 역사를 경험했기 때문에 세계사와 연결이 잘 되는 측면도 없지 않지만 모든 지역의 특성은 어떤 형태로든 세계사와 연결이 될 수밖에 없다. 잘 드러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는 물론 있겠지만 세계사적 스케일에서 지역을 바라봐야만 그 연결 고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거문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역교육 자료로 활용하면 의미가 있겠다. 통합교육의 모범사례를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 여수엑스포역 : 시간적 특성을 공간화 한 이름


  졸다, 자료 보다를 반복하다보니 여수엑스포역에 도착했다. 졸다가 코라도 골았는지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은 다른 빈 자리로 피난을 갔다. '여수엑스포역', 아직은 엑스포의 기억이 생생해서 이름이 신선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이 이름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88올림픽고속도로가 빛 바랜 느낌이 드는 것과 비슷해질 것이다. 역 이름은 지명의 한 갈래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엑스포라는 일시적 행사를 그 이름으로 썼다. 시간적 특성을 공간적 상징으로 사용한 것이다. 아마도 행사 전과 행사 중에 선전효과를 노리고 지은 이름일 것이다.

  그렇다면 잘못 지은 이름일까? 아주 잘 지었다고 칭찬할 수는 없지만 잘못 지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기억에 남을 이름은 지역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좋은 요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이름이 그렇지는 않다. '바꿀 수도 있다'는 전향적인 생각을 해본다면 일단 시의적으로 가장 효용가치가 높은 이름을 쓰는 것도 의미가 있다. '물 들어올 때 배 띄운다'고 하지 않던가. 여수엑스포역이라는 이름도 그렇게 지어졌을 것이다.


시스템을 모르면 어리바리가 된다


  10:11분에 열차가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여수연안여객터미널로 달렸다. 거문도가 포켓몬고가 되는 곳이라고 알려지면서 혹시라도 배표를 못 구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보니 엑스포를 개최하면서 여수가 많이 변했다는 느낌이 든다. 길이 좋아지고 도시 전체가 한층 깨끗해진 느낌이다. 비릿한 항구의 이미지보다는 산뜻하고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10:30 도착, 근데 표를 안판다. 출발 한 시간 전인 12:40부터 판다고 한다. 예매는 이틀 전에 마감을 한다고 하고… 터미널을 한참 헤매고 다니다가 텅빈 매표 창구에 적혀있는 해운사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를 해서 알게된 사실이다. 터미널 안의 사람들은 모두들 의자에 차분하게 앉아 있는데 모르는 나만 중뿔나게 싸돌아 다니다 보니 좀 창피한 생각도 든다. 나이를 먹어도 항상 새롭고 낯선 경험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도 참 나다. 어째 이런 걸 미리 못 알아 봤을꼬… 생각날 때 얼른 해야 하는데 미뤘다가 깜박 잊곤한다. 아들 생각이 난다. 어째 그런 건 꼭 닮는 것일까? 갑인이에게 배표 예매가 가능한지 물어보기는 했었다. 답을 기다리다가 깜박한 것이다. 나중에 어째 대답이 없었는지 물어봤더니 '모든 일이 노심초사로 되는 것이 아니고 될 일은 호들갑 떨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굳이 답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한다. 역쉬~ 예나제나 변하지 않는 내친구 김갑인답다. 아닌게 아니라 전화를 받은 해운사(오션호프해운) 직원이 배표는 넉넉하게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나이 들어서 노파심만 늘었다. 젠장~


▶ 최고의 피서지 대합실: 노인들의 천국


  그나저나 얼추 두 시간이 남는다. 뭐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미리 알았으면 여수엑스포역에 있는 전망대나 올라갔다 올걸… 슬슬 돌아다녀 보자니 짐(호도과자를 몇 개 샀더니 꽤 짐스럽다)이 신경쓰이고 그냥 앉아 있자니 시간이 아깝다. 자료나 읽을까? 배에서는 경치 구경을 하고. 아직 다 못 읽었으니 그게 좋겠다.
  넓은 터미널이 한산한데 듬성듬성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들이다. 나도 그 중에 끼어 있는데 어색한 느낌이 별로 없다. 이제 노인네 축에 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때가 된 것도 같다.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일찌감치 나왔거나, 아니면 노파심이 커서 미리 나왔거나, 또 그도 아니면 나처럼 정보를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 날이 더우니 시원한 대합실로 피서를 나온 근처에 사는 노인도 있다. 시원한데다 종일 텔레비젼이 나오니 이만한 피서지가 어디 있겠는가? 가만히 살펴보니 피서를 나온 노인들이 대합실 인구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채널 선택권이란 없는 텔레비전 앞에 마냥 앉아서 같은 화면을 똑같이 응시하고 있다. 그 장면을 가만히 보니 '종편에 노인들이 세뇌된다'는 말이 이해가 될 것 같다. 누구라도 하루종일 같은 소리를 반복해서 듣다보면 세뇌되지 않고 배겨낼 수가 있겠는가? 어쩌면 내가 세상 물정 모르고 천방지축인 것은 텔레비젼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오랫만에 맛본 장어탕


  맨 앞줄에 앉아 있었으므로 매표 창구를 열자마자 달려가서 일찌감치 표를 끊었다. 이제 슬슬 나가서 배를 채우고 떠날 준비를 해야한다. 밖에 나와보니 바닷가라서 그런지 훨씬 남쪽인데도 우리 동네보다 덜 더운 것 같다. 터미널 건너편에 음식점 골목이 있다. 무엇을 먹을까 훑어 보니 대부분 메뉴가 비슷한데 해산물 요리 일색인 것이 여수답다. 여기저기 돌아다닐 필요도 없겠다 싶어서 맨 첫번째 집으로 들어섰다.


<음식점 출입문이 메뉴판이다>


  메뉴판이 해산물 요리 일색이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이 있으니, 바로 장어탕이다. 오래전에 고흥 녹동항에서 처음 먹어봤는데 그 비릿한 맛이 강한 여운으로 남아있다. 다른 메뉴들, 게장백반이나 갈치탕 같은 것도 땡기지만 오랫만에 장어탕을 회고하고 싶다. 나이가 좀 있는 주인 아주머니에게 아나고탕이냐 물었더니 그렇단다. 값은 만원. 여기 음식은 게장을 빼면 모두 만원으로 좀 비싼 느낌이 든다. 녹동항에서 맛봤던 그 비릿한 맛은 느낄 수 없고 대신 맵고 짠 남도스러운 맛이 강하다.

  동네 사람인지, 직원인지 잘 분간이 안되는 아줌마, 아저씨가 한 사람씩 들어와서 건너편에 걸터 앉아서는 밥 먹는 내내 장단을 맞춰준다. 여행중인 나는 당연히 현지 사람들이 관심의 대상이지만 현지 사람들에게는 이방인인 내가 관심의 대상이다. 


<비린 맛 대신 맵고 짠 맛이 강한 여수식 장어탕. 숙주나물, 부추, 고사리 등 채소가 많이 들어있다>
 

▶ 진통제를 파는 배


  더운 거리를 좀 걷다가 얼추 꼴찌로 배에 올랐는데 자리는 넉넉하다. 갑판에 나갈 수 없는 쾌속선이라서 창가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데 창가 자리도 널럴하다. 하긴 창가 자리 좋아하는 것은 아이들 빼고는 별로 없다. 배 이름은 '오션호프', 거문도만 왕래하기에는 너무 큰 배다. 그래서 이 배는 고흥군의 나로도, 손죽도, 초도를 들러서 거문도로 간다. 거문도에서도 먼저 서도의 장촌마을을 들렀다가 고도의 거문항으로 간다.
  아까부터 머리가 좀 아파서 진통제를 먹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식당에서 얻어볼까 했더니 주인 아줌마는 자기는 머리가 아프지 않아서 진통제가 없단다. 사실은 나도 그랬는데 이번 여름을 지나면서 더위를 먹었나? 배에 올랐는데 여전히 머리가 맑지 않다. 매점에 가서 진통제가 있는지 물었더니 반색을 하며 '당연히 있죠'다. 커피랑 물을 샀는데 타이레놀 두 알 값은 따로 받는다. 그래서 반색을 했구나. 진통제류를 일반 슈퍼에서 팔 수 있게 되면서 이런 문제가 생겼다. 배삯이 무려 삼만육천백원인데 상비약을 사먹는 건 좀 아니다 싶다.


<나로도 선착장. 정박 시간이 긴 편이어서 잠깐 밖에 나갈 수 있다>


<비행기고 배고 나는 이런 창문이 정말 싫다. 더러운데다 물까지 튀었다. 밖에 나갈 수 없다면 잘 보이기라도 해야지…>

 

▶ 멀리서도 보이는 내 친구

 

  초도를 지나서 한 이삼십분? 배가 많이 흔들린다. 연안을 나와 외해로 들어섰다는 뜻이다. 웬만해서는 멀미를 잘 하지 않는데도 속이 약간 울렁거리려고 한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짜릿한 기분과 약간의 울렁임이 함께 한다. 
  육지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배안에서는 GPS가 잘 안 듣는다. 휴대폰 앱인 맵스미도, 인터넷 네이버 지도도 위치를 못 잡는다. GPS액정의 거리 표시는 계속 늘어나고 있기는 한데 잘 찍히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근데 확인도 못해보고 데이터를 날려 버렸다. 집에 와서 기계를 만지작거리다 갑자기 공장초기화를…ㅠㅠ

  2시간20분, 짧지도 길지도 않은 항해 끝에 거문항에 도착했다. 느릿느릿 걸어 나가다 보니 기다리고 있는 갑인이가 보인다. 갑인이는 멀리서도 보인다. 키가 크기도 하지만 그보다 사랑하는 내 친구라서 그렇다. 세월이 지나도 내 눈엔 그 때 그 시절 갑인이가 보인다.


< [Ⅱ]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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