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삶과 지리

명당 개념의 변화-북쪽 사면도 명당이 될 수 있다

Geotopia 2016. 3. 4. 19:34

  전국 스키대회 입상자 명단을 보면 유독 많이 나오는 학교가 있다.

 

  설천중학교, 도암중학교. 


  설천중학교는 전북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있고, 도암중학교는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에 있다.

 

  도암중학교가 있는 대관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눈이 많이 내릴 뿐만 아니라 해발고도가 높아 눈이 잘 녹지 않는, 국내에서 가장 스키장의 입지 조건이 좋은 곳이다. 대관령의 용평리조트가 우리나라 최초의 스키장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11월 중순부터 이듬해 4월초까지 스키를 탈 수 있는 천혜의 입지라서 가장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인기가 최고인 스키장이다. 봄의 불청객인 황사가 올 때까지 스키를 탈 수 있으니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이곳을 능가할 곳이 없다. 그래서 대관령 일대에는 이외에도 알펜시아, 피닉스파크 등 많은 스키장이 몰려 있다. 유명한 선수들이 나올 수 있는 납득할 만한 배경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2018 동계 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자연적 조건이 배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울이나 수도권과 거리가 가까워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참 좋은 곳이다.

 

<도암중학교. 용평리조트, 알펜시아리조트의 북동쪽 인근에 있다>

 

  그렇다면 설천중학교가 있는 무주군 설천면은? 무주군 일대는 눈이 그다지 많이 내리는 지역은 아니다(☞ 명이 주는 오해-눈이 많이 오지 않는 雪川  http://blog.daum.net/lovegeo/6780683).



<설천중학교. 덕유산 무주리조트 북쪽 인근에 있다>


  하지만 무주덕유산스키장은 고도가 높은 덕유산 자락의 북록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눈이 잘 녹지 않아 누적 적설량이 많은 곳이다. 강설량까지 많으면 더할 나위없이 좋은 조건이지만 남부지역은 호남 서해안을 제외하고는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다(☞ 호남 해안에 눈이 많이 온다구?, 왜? http://blog.daum.net/lovegeo/6780713).


  무주가 유명해진 데에는 특이한 지리적 조건의 영향도 있었다. 무주덕유산리조트는 우리나라 스키장 가운데 영남의 알프스에 있는 에덴벨리(35˚25’30”)를 제외하면 가장 위도가 낮은 곳(35˚53’24”)에 위치한 스키장이다. 1990년에 개장했으므로 비교적 빠른 시기에 개장을 한 편인데 당시 모든 스키장들이 수도권에 인접하고 있었다. 따라서 충청 이남 사람들이 스키장에 가려면 상당히 먼 거리를 이동해야만 했다. 그러므로 무주는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등 삼남지방 사람들이 접근하기에 가장 유리한 곳이었다. 2007년 경남 양산에 에덴벨리가 개장을 하기 전까지는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쨌든, 지금의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는 '좋은 곳'이다.


  과거에는 어땠을까?

  대관령은 조선시대까지 잘 알려진 화전지역이었다. 고위평탄면이어서 집을 짓고 산밭을 만드는 데는 유리했지만 여름이 짧고 겨울이 추워서 옥수수나 밀 외에는 곡식 농사가 거의 불가능했다. 겨우 감자나 심어야 연명을 할 수 있었으니 사람이 머물러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다. 감자나 옥수수가 전래된 것이 조선 중기이니 그전까지는 사람이 살 수 없던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지금 스키장이 들어서있는 곳은 발왕산(1,458m)의 북사면으로 사람이 살기에는 더욱 부적합한 자리였다.

  설천의 스키장이 있는 곳 역시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덕유산의 북사면에 위치하여 기온이 낮고 평지가 적어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좋은 자리'가 명당이다. '좋은 자리'란 물론 사람이 살기에 좋은 땅이란 의미일 것이다. 배산임수형의 남향인 자리는 농업에 우선 유리하고, 여러가지 생활환경이 유리하기 때문에 옛부터 명당으로 알려져 왔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산의 북사면은 환경적 조건이 매우 불리한 '좋지 않은 자리'였다. 더구나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은 기온이 낮아 작물의 생육기간이 짧기 때문에 인간 거주지역으로는 더욱 불리한 곳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발왕산과 덕유산의 북사면은 이와 같은 불리한 조건을 전형적으로 갖추고 있는 곳으로 전통사회에서는 틀림없이 좋지 않은 자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관령과 덕유산 주변은 '명당'이라 할 만 하다. 눈이 많이 내리거나, 적어도 눈이 잘 녹지 않는 특성은 스키장이 발달할 수 있는 배경이 되고 있다. 스키장이라는 레져 시설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전통 농업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그러니 이곳이 명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처럼 '살기 좋은 곳'의 기준이 변화하는 것은 과학기술의 발달(자연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산업구조의 변화 등 사회적 변화와 관련이 있다. 농업사회에서는 절대로 명당이 될 수 없었던 위치가 스키라는 레져스포츠 산업이 발달한 오늘날에 와서는 뛰어난 명당으로 변화한 것이다. 명당을 규정하는 조건이 과거에는 주로 자연환경과 관련이 있었던 것에 비해 오늘날은 교통이나 레져 등 인문적 조건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무주덕유산리조트. 남쪽으로 덕유산(1,614m)을 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