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적에 울보였다. 어른들에게 조금만 야단을 맞아도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름 억울한 일이라도 당하면 말도 못하고 금세 눈물이 먼저 나왔다. 동네 상가집에 갔다가 몰래 눈물을 훔쳐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은 적도 있다. 그래서 안 우는 척 하는 버릇이 생겼다. 하지만 지금도 슬픈 영화라도 보려면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난다. 그런데 애써 참으려고 한다. 그냥 쏟으면 어떻다고 억지로 참으려고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다. 울고 싶을 때는 그냥 실컷 울어버리면 될 것을… 어릴적 트라우마에, 머리 속에 각인 되어 있는 '남자는 세 번 운다' 따위의 같지 않은 말 때문인 것 같다. 억지로 울음을 참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그럴 때 누가 뺨을 한 대 때려 준다면 핑곗김에 실컷 울 수도 있을 텐데… 그래서 '울고 싶은데 뺨 때린다'는 말이 나왔겠지?
땅에도 울보가 있다. 걸핏하면 눈물을 소나기처럼 떨어뜨리는 땅.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접경에 위치한 마갈라야(Maghalaya, 1970년에 Assam주에서 분리됨)주의 소라(Sohra, 일명 Cherrapunji)라는 곳이다. 얼마나 울보인지 이곳은 1년에 평균 11,777㎜라는 기록적인 양의 눈물을 쏟는다. 세계 평균이 807mm, 우리나라 평균이 1,274mm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울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엄청 울고 싶은데 누군가가 뺨을 후려갈기는 것이다.
<체라푼지 주변의 지형 *원도: Google earth>
이 일대는 벵골만에서 불어 들어오는 습기를 가득 머금은 바람이 인도 동부의 동고츠산맥과 미얀마의 아라칸산맥에 의해 깔때기 모양으로 모여드는 곳이다. 그런데 마갈라야주 일대는 가로카시(Garo-Khasi)산맥이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이 산맥은 동서 길이가 170km가 넘어 마갈라야주의 대부분을 가로지르는 해발 1,000m가 넘는 구릉지대이다. 그래서 이곳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빠져나갈 곳이 없기 때문에 강제로 계곡을 타고 높이 상승할 수 밖에 없도록 되어있다.
체라푼지는 카시구릉(Khasi Hills)의 남록에 위치하고 있다. 벵골만에서 불어오는 다습한 계절풍은 갠지스의 지류인 메그나(Meghna)강의 넓고 평평한 계곡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와서 카시구릉에 부딪혀 강제 상승을 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엄청난 비를 퍼붓는 것이다. 벵골만에서 불어오는 '다습한 공기'가 울고 싶은, 울음을 참고 있는 상태라면 카시구릉이라는 '지형적 장벽'은 바로 뺨을 때리는 행위이다.
<*출처: Wikipedia>
비가 내리려면 공기 중에 수증기의 양이 많아야 한다. 그러나 수증기의 양이 많다고 해서 비가 오는 것은 아니다. 수증기라는 기체가 액체인 물로 변하려면 온도가 내려가야만 한다. 물을 수증기로 만들려면 가열을 해야 되므로 거꾸로 수증기가 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열을 빼앗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공기의 온도가 내려가서 수증기가 구름이 되고, 비가 내리는 것일까?
대기는 상승할수록 지구의 복사열이 미치지 않기 때문에 점점 기온이 떨어진다. 일정한 고도 이상으로 올라가게 되면 마침내 수증기가 구름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를 응결고도라 한다. 물론 응결고도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공기 중에 포함되어 있는 수증기의 양과 기온에 따라 차이가 있다.
공기가 상승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지형적 장벽을 만나 강제로 상승하는 것이다. 다습한 공기가 바람에 실려 산을 오르게 되면 고도가 증가함에 따라 점점 기온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응결고도에 이르게 되면 구름을 형성하고 마침내 비가 되어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잘 일어나는 곳이 대부분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多雨地)이다.
하지만 정말 울고 싶은데 아무도 뺨을 때려주지 않는다면?
그저 울음을 삼킬 수 밖에…
울고 싶은데 울지 못하는 곳, 우리나라 서,남해에 있는 많은 섬들이 그들이다. 섬 바람은 사시사철 습기가 많아서 한 동안 맞고 있으면 얼굴이 뻣뻣해지고 머리카락이 서로 엉겨붙는다. 섬은 바다에 둘러싸여 있으니 당연히 습기가 많은 것이다. 한마디로 울 준비가 되어 있는, 울고 싶은 바람이 분다. 하지만 의외로 비가 잘 내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섬들은 육지에 비해서 강수량이 적다. 왜 그럴까?
평양을 가로지르는 유명한 대동강의 하류에는 강을 사이에 두고 평안남도의 남포, 황해도의 은율, 송림, 황주 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 강을 끼고 있고 바다에 가까우므로 이 지역도 당연히 습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 역시 전국적으로 강수량이 적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소우지이다. 왜 그럴까?
정답은?
이미 짐작하고 있듯이 높은 산이 없기 때문이다.
서·남해의 섬들은 모두 한 때는 육지였다. 바다쪽으로 뻗어나온 산줄기가 후빙기에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바닷속에 잠겼는데 이때 채 잠기지 않은 부분이 지금 서·남해의 섬들이다. 그러니 그 높이가 높을 수가 없다. 대개 응결고도에 이를 만한 높이도 못 되지만 그나마 규모가 작은 섬들이 독립적으로 분포하기 때문에 바람을 막는 장벽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 뺨을 때려줄 능력이 없는 것이다.
대동강 하류도 높은 산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석회암의 용식으로 만들어진 너른 평야가 바로 대동강 하류에 펼쳐져 있는 평양평야(낙랑평야)다. 높은 산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가 없다. 아무리 습기 많은 바람이 불어와도 그것을 상승시킬 만한 지형적 장벽이 없다. 울음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아무도 뺨을 때려주지 않는 것이다.
<대동강 하류 일대. 구월산을 빼면 높은 산이 없다. *원도: Google earth>
눈물 이야기 한 김에 하나 더.
작별 인사가 참 어렵다. '이별은 짧게'라고 농담 삼아 말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졸업시키거나 학교를 옮기려면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 그게 어려운 이유는 어이없게도 자꾸 눈물이 나와서 그렇다. 뭔가 폼잡고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온다. 그래서 그걸 감추느라 하고 싶은 얘기를 다하기도 전에 대충 마무리를 하고 만다. 나이가 들면서 엉뚱한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학교를 떠날 때 대표로 인사를 하는 것 ㅠㅠ.
참는 연습보다는 자연스럽게 흘리는 연습을 해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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