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지리/지질&암석

화강암 지형의 전시장 선유계곡, 화양계곡(Ⅱ)

Geotopia 2015. 8. 1. 23:49

▶ 화양동계곡

 

 

<화양구곡 답사 경로  *원도: Google earth>

 

 

<화양동계곡 지형도  *원도: 국토지리정보원>

 

  화양동계곡 일대의 지질은 우백질반상화강암(중생대 백악기)으로 생성 시기와 지질구조가 선유동계곡과 유사하다. 하지만 선유동에 비해 좀 더 하류에 해당하므로 하천의 폭이 넓고 수량이 풍부하며 넓은 범위에 걸쳐 다양한 형태의 화강암 지형이 나타난다. 하천의 양안에 발달한 수려한 기암괴석은 우암 송시열이 이곳에 구곡을 정하여 이름을 짓고 글을 읽었던 자연환경적 배경이 되었다.

 

九曲문화의 대명사 화양(華陽)구곡 https://lovegeo.tistory.com/6780613

 

  화강암 암반이 하천의 바닥을 이루는 곳이 꽤 많다. 하천의 유속이 빠른 상류지역이므로 침식력이 강하여 모래 등 미립질의 퇴적이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암반이 드러난 곳에는 포트홀과 나마(Gnamma, 가마솥바위)가 곳곳에 발달하고 있다.

 

 - 파곶(巴串): 화강암지형 박물관

 

  특히 화양구곡 가운데 제9곡에 해당하는 파곶 일대에는 다양한 형태와 규모의 포트홀을 볼 수 있다. 암반에는 전체적으로 판상절리가 발달하여 절리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박리가 일어나고 있는데 하천이 작용하기 때문에 더욱 진행이 빠를 가능성이 크다.

 

 

<물이 닿지 않는 부분에 발달한 포트홀. 수위가 올라가는 계절에는 지형 발달이 진행될 것이다>

 

 

<암반층의 위를 흐르는 계곡>

 

<진행중인 포트홀>

 

 

<판상절리가 떨어져 나온 너럭바위>

 

 

<연안의 일부에서는 박리가 일어나고 있다>

 

 

<규모가 큰 포트홀에 물이 고였다>

 

 

<토르에 어지러이 옛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虎死留皮 人死留名'

  죽어서 이름을 남기라는 것은 이렇게 이름을 남기라는 뜻은 아닐 것 같은데 옛 선비들은 곧잘 이렇게 이름을 남겼다. 광덕산 강당골에도 바위마다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위에 아랫 것들 시켜서 멋진 글씨체로 새겨 놓았지만 철부지들이 뒷골목 벽에 휘갈겨대는 낙서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 이름의 주인공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참 부질없는 짓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름을 '남기는 것'은 모범적인 삶을 살아서 그 결과가 후손들에게 긍정적인 의미로 남겨지도록 하라는 의미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사실인데 현상적으로 '남기는 것'에 의미를 두었으니… '머리를 쓰는 축구를 하라'고 했더니 '헤딩'을 하더라는 우스개가 생각난다.

 

 

<판상절리와 수직절리가 발달한 암괴의 아랫 부분이 먼저 침식을 당하여 처마 모양의 바위가 되었다>

 

- 학소대(鶴巢臺): 암반 위에 서 있는 토르형 하식절벽

 

  학소대는 공격사면에 발달한 하식절벽이다. 수직, 수평 절리가 발달하며 학소대 주변의 하상 역시(파곶 일대 만큼은 아니지만) 암반이 드러난 곳이 많다.

 

 

<파곶에서 학소대로 가기 위해 산책로로 올라섰다. 산책로 곳곳에서 노출된 화강암괴를 볼 수 있는데 대부분 판상절리가 발달한다>

 

 

<학소대 아래쪽은 다양한 크기의 력(礫)들이 흩어져 있고 모래나 자갈이 퇴적된 여울이 발달한다>

 

 

<높이 20m, 폭 30m의 절벽인 학소대는 하식을 받은 토르이다. 주변에는 암반이 드러나 있다>

 

- 와룡암(臥龍巖) : 절리면을 따라 발달한 연속된 포트홀

 

  화양구곡을 안내하는 표지판은 손을 좀 봐야할 것 같다. 빨리 걸은 탓도 있겠지만 두 곳(3곡 읍궁암, 7곡 와룡암)이나 놓치고 그냥 지나쳤다. 6곡 능운암까지 내려간 다음에야 7곡 와룡암을 지나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 누구라도 이런 실수를 할 것이다. 능운암 앞에 가게가 있어서 주인에게 물었더니 한 10여 분 다시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어떻게 할까?'

  잠깐 망설이다가 다시 갔다 오기로 했다. 와룡암은 꼭 보고 싶다. 학문을 완성하기 직전 선비의 모습인 승천을 꿈꾸는 용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다. 빨리 다녀오면 일행들 꽁무니에 따라 붙을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땀을 뻘뻘 흘리며 혼자서 되돌아 갔다. 다시 가서 보니 표지판이 있기는 한데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조금 더 탐방객을 배려하는 표지판이면 좋겠다. 시간에 쫓기다 보니 여유있게 관찰을 할 상황이 아니다. 주변 경관은 패스하고 건성 건성 주인공만 살핀다.

  와룡암은 연속적으로 길게 이어지는 포트홀인데 암반에 형성된 긴 절리면이 부유물질에 의해 마식(磨蝕)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의 하상면과는 꽤 고도 차이가 있어서 웬만한 홍수에도 물에 잠길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이곳은 과거의 하상면인 단구면인 셈이다. 일부 포트홀에는 물이 고여 있지만 이 물은 하천에서 공급된 것이 아니라 빗물이다.

 

 

<현재의 하상면과는 상당한 고도차가 있는 것을 볼 때 일종의 단구면으로 보인다>

 

 

<절리면을 따라 길게 발달한 포트홀에 빗물이 고여있다>

 

 

<

되돌아 가는 길에 보니 탐방로의 하천 쪽으로 소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는데 제법 운치가 있다. 바쁘지만 후다닥 한 장 찍어본다>

 

- 능운대(凌雲臺): 구름을 능가한다고?

 

  능운대휴게소 주인에게 잘 다녀왔다고 인사를 했더니 반갑게 웃어준다. 이럴 땐 당연히 무엇인가를 팔아주는 것이 상도인줄 알지만 삼십여 분 가까이를 지체한 처지에 예의를 차릴 게재가 아니다. 기약 없는 다음을 기약하고 땀을 흘리며 다시 출발.

  '구름을 능가한다'는 능운대는 뻥이 좀 심한 느낌이다. 구름은 커녕 전기줄도 능가하지 못해서 사진을 찍으려니 자꾸 전기줄이 걸린다. 위에 올라가서 보면 앞 산의 첨성대보다 더 높다고 하는데 내 눈으로 보기엔 절대 그렇게 보이질 않는다. 혼자이다 보니 스케일로 넣은 사람도 없어서 사진이 더욱 왜소해 보인다. 능운대 역시 화강암 토르인데 계속되는 거대 암괴에 이제 충격이 좀 줄어든 느낌이다.

 

 

<능운대도 화강암 토르이다. 하지만 학소대나 선유동의 경천벽 같은 하식절벽은 아니다. 하천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 첨성대(瞻星臺): 산 중턱에 우뚝 솟은 토르

 

  첨성대는 전형적인 화강암토르이다. 산 중턱에 우뚝 솟아 있어서 단연 눈길을 끈다. 능운대가 그저그런 느낌이었던 것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주변의 풍화물질이 걷혀 나가고 핵석 만이 남아서 우뚝 솟았는데 맨 위의 암괴는 곧 굴러 떨어질 것만 같다.

 

 

<우뚝 솟은 화강암 토르인 첨성대>

 

  능운대와 첨성대는 화양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둘이 마주 보고 있는 부분의 바로 아래쪽에서 탐방로는 '화양3교'를 통해 화양천을 건넌다. 화양3교에서 상류쪽을 바라보면 화강암반과 거력들, 그리고 일부 모래 퇴적물 등을 볼 수 있다. 암반층에는 다양한 방향의 절리가 발달하고 있는데 북서-남동 방향, 남-북 방향, 동-서 방향 등을 관찰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북동-남서 방향과는 다른 방향이다.

 

  에피소드?

  이곳에 왔던 지가 벌써 십오년은 되었다. 그 때 이곳 선유동과 화양동을 답사했었는데 이날 처럼 전 구간을 걸은 것이 아니라 대부분은 자동차를 타고 다녔었다. 그 때 찍어놓은 사진이 있는데 화양3교에서 보니 딱 이곳이다. 화양동 어디쯤이라고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제대로 찾아낸 것이다. 사진이 참 재미있다. 사진을 찍으면 기억은 사진의 장면으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화양3교 상류의 절리. 이 구간에서 하천의 방향은 대략 북북서-남남동 방향이며 기본 절리가 이 방향으로 발달하고 있다>

 

 

<화양3교에서 바라본 하류쪽. 굵은 암괴들이 넓은 하곡을 가득 채우고 있고 멀리 암서재가 보인다>

 

- 금사담(金沙潭): 판상절리, 소, 여울, 암반을 흐르는 급류, 모래 퇴적층

 

  제4곡 금사담은 우암이 암서재라는 집을 짓고 글을 읽고 강론을 했던 곳이다. 큰 길에서 가려면 물을 건너야 하니 잡인들의 사사로운 통행이 없었을 것이고, 앞에는 암반을 따라 급하게 흐르는 시끄러운 계곡물이 있으니 잡소리라고는 들리지 않는 정말 글을 읽기 좋은 장소이다. 주변에는 규모가 큰 판상절리가 발달하고 있고 암서재도 거대한 판상절리 위에 세워졌다. 급류 아래로는 깊은 소(沼)가 발달하고 소의 반대쪽에는 모래가 퇴적되어 있다. 이런 모습에서 금사담(金沙潭)이라는 이름이 유래했을 것이다.

 

 

<암서재 건너편 길 옆에 노출된 판상절리>

 

 

<판상절리 위에 세워진 암서재와 그 앞의 깊은 소(沼)인 금사담. 암서재 반대쪽 하안에는 모래 퇴적층(金沙)이 발달한다>

 

- 읍궁암(泣弓巖)과 운영담(雲影潭): 너럭바위와 소, 그리고 토르

 

  일행을 따라잡기 위해 서둘러 가다가 놓쳐버린 두 번째 곡(曲)이 제3곡 읍궁암이다. 제2곡 운영담에 가서야 놓친줄을 알 수 있으니 참 낭패스럽다. 제4곡 금사담과 제2곡 운영담의 거리가 비교적 가까와서 그 사이에 있는 제3곡은 그리 거리가 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는 있으나 되돌아 가기에는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또 몸도 많이 지쳤다. 이쯤에서 일행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만 그저 조용할 뿐이다.

  읍궁암 대신에 화양서원만 흘낏보고 걸음을 재촉한다. 운영담은 학소대와 유사한 공격사면에 발달한 하식절벽이며 토르여서 지형 경관상으로는 큰 특징은 없다. 하지만 주변의 수심이 얕아서 바위가 두드러져 보였던 학소대와는 달리 아래쪽에 보를 막아서 구름 그림자(雲影)가 드리울 수 있도록 해 놓아서 바위 보다는 못(潭)이 두드러져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너무 인공적이어서 영 맛이 안 난다. 보 때문에 수심이 깊어지고 유속이 느려졌기 때문에 바닥은 모두 모래로 덮여있다.

 

 

<운영담은 인공 보로 만든 못이다. 물이 멈춰있기 때문에 모래 퇴적이 많고 물도 그다지 깨끗하지 못하다>

 

- 경천벽(擎天壁)은 어디에?

 

  운영담을 지나면 다시 다리를 건넌다. 화양2교이다. 운영담의 보는 화양2교의 바로 위쪽에 설치되어 있다.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모르지만 보를 허무는 것이 지형관광자원을 보호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여전히 일행들의 자취를 발견할 수는 없고 땀은 쉴새 없이 흐르는데 마침내 전화가 온다. 전화가 온다는 얘기는 제법 기다렸다는 뜻이다. 마지막 1곡이 남았는데 더 빨리 걸어야 한다. 하지만 일행들이 기다리는 주차장에 도착할 때 까지 경천벽은 보이지 않는다. 두 번의 실패가 있었기 때문에 매우 신경을 쓰면서 왔는데 도대체 어디서 놓친 것일까?

  나중에 알아보니 경천벽은 주차장보다 더 아래쪽에 있다. 경천벽을 보려면 중간에 내려서 다녀와야 하는 것이다. 구곡을 답사하는 일정이라면 버스를 주차장에서 타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린 '구곡' 답사 보다는 '화양계곡' 트레킹에 촛점을 맞춘 팀이었으므로 경천벽은 자연스럽게 '패스'되었다. 가봐야 화강암 암벽과 토르겠지만 그래도 '하늘을 떠 받치는 인재'가 되고자 했던 선비의 기개를 상징하는 경천벽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운영담에서 주차장으로 가는 길. 아스팔트 포장이 나오는 것이 이제 거의 도착했다는 뜻이다>

 

 

<땀을 흘린 후의 식사는 꿀맛이다. 박주산채라도 꿀맛일텐데 토속적인 수많은 반찬들로 이루어진 성찬은 입을 바쁘게 한다>

 

 

▶ 보너스: 쌍곡계곡 소금강

 

  선유동 가는 길(517번 지방도로)에 쌍곡계곡을 지난다. 소금강에서 잠깐 쉬어갔다. 계곡 옆의 기암절벽은 가히 '소금강'이라는 이름을 붙일만 하다. 우뚝 솟은 기암절벽과 애추는 육안으로 보기에는 화강암질이 아니라 퇴적암 계열의 바위인데 지질도에는 이 일대가 백악기 우백질화강암으로 표기되어 있다. 오르도비스기 퇴적암과 화강암이 경계를 이루는 곳이어서 아마도 미세한 오류가 아닌가 싶다.

 

 

<쌍곡계곡의 암벽>

 

 

<쌍곡계곡 소금강의 애추(talus)>

 

 

<지질도 *원도: 지질자원연구원 / Klgr 우백질반상화강암(백악기), Ochsi 조선계(규화대 회색함력석회규산염암, 고생대 오르도비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