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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평준화?-울산 쌈밥과 언양 불고기

Geotopia 2015. 3. 7. 07:40

  첫번째 답사지인 현대중공업을 가기 전에 울산고속도로(16번)를 빠져나와서 신복로터리를 지나 삼호대교를 건넜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 태화강변에 조성된 '십리대밭먹거리단지'를 지향한 것이다. 1년전에 우연히 들렀다가 푸짐한 반찬에 가자미 식혜를 얻어 먹었던 쌈밥집에 또 들렀다. 그집이 꼭 생각이 나서라기 보다는 위치가 우리의 이동 경로상에서 볼 때 가기가 쉽도록 되어 있었다. 전에 왔을 때도 강변도로를 타고 하류쪽으로 내려가면서 구미가 당기는 음식점을 찾았었다. 두 가지 조건이 맞아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첫째는 구미가 당겨야하고, 둘째는 주차장이 있어야 한다. 강변도로의 안쪽은 음식점이 이어지고 바깥쪽, 그러니까 태화강쪽은 도로주차장이다. 내려가다보니 주차장이 모두 차서 주차할 곳이 없다. 장면이 마치 데자뷰 같은데 작년에도 상황이 비슷했었기 때문이다. 그쯤에서 주차장 빈 곳이 나타났고, 일단 차를 세웠으며 둘러보니 그 집이 보였다. 창문너머로 안쪽을 슬쩍 들여다봤더니 그집이 틀림이 없다. 안에서 밥을 먹던 여인들이 깜짝 놀란다. 갑자기 '어떤 놈'이 창에 얼굴을 들이대고 안을 들여다봤으니…(죄송;;)

  들어가 아는 척을 했지만 1년 전에 딱 한 번 왔던 사람을 기억할리가 없다.

 

  "식혜 주셨었잖아요"

  "우리집은 식혜 없는데, 그럼 다른 집인가봐요"

  "그럴리가요? 가자미 식혜요"

  "아~ 그럼 맞아요. 근데 오늘은 마침 떨어졌어요"

  "뭐 어쨌든 맛있게 해주세요. 친구들 데리고 다시 왔으니까…"

 

  친구들과 다른 점이라고는 내가 먼저 이곳에, 그것도 딱 한 번 더 왔었다는 점 뿐인데 왜 이런 경우엔 손님을 모시는 주인같은 느낌이 드는 것일까? 전혀 실익(?)이라고는 없는 수작을 주고 받으며 자리에 앉자니 내 친구 이정록이 떠오른다. 내가 몇 번 가봤던 음식점을 데리고 가보면 이 친구는 처음 가는 그날로 주인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는 놀라운 재주를 가지고 있다. 같은 식당을 가도 주인이 먼저 알아주기 전까지는 그저 데면데면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특기인 나로서는 놀랍고 부러울 뿐이다. 그가 여기 왔으면 냉장고 구석에 짱박혀있는 무엇이라도 그예 꺼내 오게 만들었을 것이다.

  주 메뉴는 쌈밥 백반인데 떡갈비 또는 대패삼겹살을 선택할 수 있다. 지난 번에는 떡갈비를 먹었는데 오늘은 대패삼겹살을 먹어보기로 한다. 배까지 고파서(지난 번에도 그랬다) 오늘도 맛이 좋다. 하지만 지리학도의 관심을 끄는 식단, 즉 울산의 특징이 느껴지는 음식은 아니다. 더구나 떡갈비는 전형적인 전라도 음식이 아닌가. 주인은 경상도 사람이 분명하니 여기 떡갈비는 경상도식이다. 대체로 음식이 평준화되고 맛이 평준화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 만은 아니다.

 

<십리대밭먹거리단지의 쌈밥정식>

 

  저녁은  일산동의 어느 횟집에 갔다. 오랫 동안 울산에서 살아 온 분이 소개를 했으니 꽤 유명한 집인 것 같다. 이른바 '스께다시'가 조금 나오더니(배추잎전이 눈길을 끈다) 바로 본론이 나온다. 우리 동네와는 다른 점이다. 우린 온갖 에피타이저들이 나와서 배를 잔뜩 불린 다음에 회가 나오는데 여긴 바로 본론이 나오니까 어떻게 보면 주제에 매우 충실한 셈이다. 서울내기 정진규선생님이 한 마디한다.

 

  "이게 강남식이랍니다"

  "그게 뭔데?"

  "스케다시 잔뜩 먹고 배부르면 메인을 못 먹으니까 이제 메인이 빨리 나오고 다 먹고 나면 나중에 스께다시가 나온대요"

  "오~  그거 좋은 아이디어네. 근데 여긴 울산인데 이 집도 강남스타일이 나오는 거 맞어?"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메인이 빨리 나오겠어요?"

 

  그래서,

  기다렸다. 강남 스타일을.

  그리고,

  기다리다가 혹시나 해서 물었더니,

  끝이란다. 다 나왔단다.

  헐~

  덕분에 술을 매우 쬐금밖에 먹지 않는 우리 '설걷이' 역사상 초유의 경사가 났다.

  역시 경상도 음식은 아직인가?

 

<배추잎을 통째로 부치는 배추잎전은 강원도나 경상도에서 볼 수 있다>

 

  둘째 날 점심은 언양 불고기를 먹기로 했다. 어제 내려올 때 고속도로에서도 언양불고기 간판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메뉴를 정해놓고 있었다. 언양 불고기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석쇠에 호일을 깔고 굽는다. 그러니 당연히 국물이 없다. 고기를 다져서 떡갈비처럼 둥그렇게 석쇠 위에 올려놓고 구워 먹는다. 양념을 했겠지만 보통 불고기처럼 표시가 나지 않고 점점이 박혀있는 통마늘이 눈에 띄는 양념의 전부다. 요건 우리 지리학도의 관심을 끌만하다. 우린 맛은 둘째다. 배추를 절인 백김치와 콩잎 장아찌도 특징이다. 콩잎은 경상도에서 주로 먹는다. 전체적으로 차림이 간명하고 맛도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경상도 냄새가 많이 난다.

 외국인들에게 우리 음식을 소개할 때 불고기는 우리나라 음식의 대명사 쯤 된다. 과연 불고기는 언제부터 우리나라 음식이었을까? 식사를 하면서 우리끼리 근거가 희박한 갑론을박을 했는데 나오면서 보니 신라 법흥왕 때부터 왕실에 진상되었다는 텔레비젼 방송 화면을 캡쳐한 사진을 볼 수 있다. 그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쭉 그랬다기 보다는 수도인 경주에 가까웠던 신라 때 이 일대의 소고기가 유명했을 것 같다.

 

<백김치와 콩잎 장아찌가 곁들여진 언양불고기>

 

<콩잎 장아찌>

 

<신라때 왕실에 진상되었다는 언양불고기>

 

  내 옆에 놓인 카메라를 보더니 직원이 블로그를 하느냐고 묻는다. 요즘 맛집을 다루는 파워블로거들이 많아서 음식점마다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혹자는 그것도 권력으로 이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내 관심사는 전혀 다르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찍기 보다는 '독특한', 즉, '지역의 특색이 잘 드러나는' 음식을 찍는다. 맛을 깎아 내리거나 반대로 까닭없이 칭찬해줄 생각이 나는 당연히 없다. 입맛이 엉터리라서 그럴 주제도 못 되지만… 그런 사람 아니니 신경쓰지 마시라고 말했지만 나중에 육회 한 접시가 써비스라며 나온다. 원래 누구한테나 주는 건지, 블로거일까봐 주는건지…

 

  결론은,

  음식 맛이 많이 평준화되었고 지역의 특색이 약화되고 있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여전히 경상도 음식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일정 부분 살아있다. 상차림이 간결하고 맛이 담백하다. 배가 부른데 이른바 '배 터지게 먹은' 느낌은 잘 들지 않는다.

  더불어 한 가지 더 느낀 점.

  사람들이 직설적이다. 블로거로 짐작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우리 지역 음식점 주인들이 취할 법한 행동은 블로거일까 아닐까를 짐작하기 위해 촉을 세우고 말없이 '탐색'을 하는 것이다. 반면에 이곳 사람들은 직설적으로 묻는다.

  '있는 줄 알고 달라고 하는데 아니 줄 방법이 없다'는 옛말이 있다. 블로거인지를 밝히도록 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요구하는 것. 표현하지 않고 짐작만 하다가 어긋났을 때 실망하고 상처를 받는 것 보다는 훨씬 현명한 방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