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중국 산둥(장보고 유적지 답사)

마지막 이야기 : 쓰다오 시내~인천 /에필로그

Geotopia 2014. 7. 20. 06:07

◆ 넷째 날~마지막 날 : 2013.8.11(일) ~8.12(월)

 

여 정 : 쓰다오 치샨호텔 - 치샨 - 법화원(장보고 기념관) - 점심식사(치샨호텔)-쓰다오 시내 마트-쓰다오항-인천  *이번 글은 빨간색 글씨까지 입니다.

 

▶ 열대 과일은 중국산일까?

 

<점심은 다시 치샨호텔이다. 중국에서 먹는 최후의 만찬이다. 여전히 푸짐한 반찬에 코카콜라가 곁들여진다>

 

  점심 후에는 쓰다오 시내의 마트에 들렀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여러 가지 중국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우리 일행들의 관심은 단연 고량주이다. 옌타이고량주는 중국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술인데 이곳 산둥에서 생산이 되기 때문에 이 마트에서 많이 팔리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워낙 우리 일행이 많다보니 일찍 들어온 사람들이 대부분 차지를 해버리고 남은 옌타이가 없다. 사실 아직도 신뢰감이 떨어지는 것이 중국 상품이기 때문에 꼭 사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므로 그다지 아쉬울 것은 없다. 과일은 포도나 복숭아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른 것들이 많다. 복숭아 중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납작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도 있다. 용과, 망고, 그리고 과일의 황제라는 두리안 등 열대성 과일도 많이 있는데 이것들은 수입품인지 중국 국내산인지 알 수가 없다. 남부의 아열대 지역에서 생산되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마트>

 

<납작한 모양의 복숭아>

 

<다양한 종류의 열대, 아열대 과일들>

 

<두리안>

 

▶ 익숙한 시내 풍경 

 

  별로 사고 싶은 물건이 없었으므로 한바퀴 휘 둘러보고는 밖으로 나왔다. 쓰다오 시내를 관통하는 중심 도로는 왕복 8차선의 대로이다. 차가 다니는 양에 비해 길도 뻥이 심하다. 교통질서는 예전에 왔을 때처럼 여전히 잘 안 지켜지는 것 같다. 건너편으로 지나가던 차가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 오더니 그대로 주차를 해버린다. 자동차의 앞부분이 차선 진행 방향의 반대 방향을 하고 있게 되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운전자가 내려서 유유히 사라진다. 예전에 초보 때 이렇게 주차를 했다가 주차 방법 위반이라는 듣보잡 딱지를 떼었던 생각이 난다.

 

<8차선으로 시원하게 뚫린 시내 중심 도로. 차는 많지 않다>

 

<반대편 차로에서 중앙선을 넘어와 반대 방향으로 주차한 자동차>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건너편에 교통사고가 나서 차 두 대가 서있다. 약간 썩음썩음한 승용차가 삐까번쩍한 SUV를 받았는데 앞차는 범퍼가 떨어졌고 뒷차는 보닛트가 다 찌그러졌다. 뒷 차의 운전자는 중년의 여자인데 부산하게 왔다 갔다 하면서 전화를 해대는 것이 우리나라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차를 길에다 세워놓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도 우리와 다를 것이 없다.

 

<길에 차를 세워놓고 사고 처리를 하는 사람들>

 

<시내 화단에 피어있는 꽃은 우리나라에서는 못 본 종류인 것 같다>

 

▶ 정부기관을 믿지 않는다?

 

  이제 돌아가기 위해 쓰다오항으로 가야한다. 버스로 이동하는 중에 가이드가 날씨 얘기를 한다. 오늘은 37도라고 예보가 나왔지만 자기가 보기엔 40도가 넘는다고 말한다. 가이드는 일기예보를 아예 믿지 않는데 이런 식으로 말했던 것이 오늘만 이 아니다. 하지만 공식 기록으로 40도가 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이곳은 바닷가가 아닌가. 자료를 찾아보지 않아서 산둥의 기후 특징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위도나 지리적 위치를 보면 가이드의 말이 옳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나저나 사회 전반에 깔린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은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며 왜 이런 분위기가 생겼을까? 권위주의적인 정부에 대한 백성들의 불신은 우리도 이미 많이 경험했던 것이다. 언론보다는 이른바 유비통신이 더 신뢰를 받았던 때가 있었으며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 역시 우리와 비슷한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는 뜻일까?

 

▶ 쓰다오 항

 

<쓰다오 여객터미널 옆의 해안. 안개가 자욱하게 낀 쓰다오항 앞에서 한동안 시간을 죽였다>

 

<전구로 만든 장식물이 거의 파손되었다. 파손도 파손이지만 장식이 상당히 촌스럽다>

 

<터미널 벽을 펭귄 모양으로 장식했다. 중국과 펭귄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국제선 터미널의 장식은 중국다운 것으로 해야하지 않을까?>

 

<군산시가 쓰다오터미널에 광고판을 설치해 놓았다>

 

<탑승용 계단. 착탈식이므로 조석에 따른 수위차이와 상관없이 승객들이 타고 내릴 수 있다>

 

<후아동페리 안에서 이런 지도를 발견했다. 보하이만 지도로 쓰다오~인천 항로를 알 수 있다>

 

<배가 출발하기 전에 저녁이 먼저 나온다>

 

<안개 낀 쓰다오항에 석양이 내린다>

 

 

 

◆ 마지막 날 : 2013.8.12(월)

 

<혹시 일출을 볼 수 있을까 해서 아침 일찍 나가봤으나 수평선에는 구름이 끼었다>

 

<파도가 심하지는 않지만 배는 계속 좌우로 흔들린다>

 

<아침식사. 단체 여행을 가는지 중국 노인들이 많다>

 

<우리 시간으로 오전 8:00, 아직도 우리나라 섬이 나타나지 않는다>

 

<1층 로비에서 객실로 올라가는 계단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되어있다>

 

<복도의 양쪽으로 객실이 배열되어 있다>

 

<10:30에 드디어 섬이 보이기 시작한다>

 

<화물선을 추월한다>

 

<인천항을 향해 들어가고 있는 여객선>

 

<저보다 훨씬 큰 배를 끌고가는 기특한 예인선>

 

<인천대교. 마침내 돌아온 모양이다>

 

<인천대교를 지나며>

 

◆ 에필로그 : 지리학도로서의 행복감, 하지만 장보고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

 

엿새 동안 장보고를 찾아 헤매었다. 기실 내내 내 눈으로 많은 것들을 보고 들었고 그것들은 대부분 나의 관심사인 지리학관련 내용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보고 유적지 답사라는 제목 때문에 끝내 나는 헤맨것으로 정리를 할 수 밖에 없다.

이 답사는 역사 답사이므로 그 전체 일정이 내 구미에 맞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 답사를 신청할 때 나는 역사 중심의 일정 틈새에서 지리적 현상을 보리라 마음을 먹었었다. 끝나고 정리해 볼 때 나름 나의 목적을 어느 정도는 달성했다고 자평해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그 이유는 바로 장보고 유적지 답사라는 제목에 기인한 것이다. ‘지리에 중점을 두리라고(지리학과 역사학의 영역을 칼로 자르듯이 구별하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지만) 혼자 마음먹었던 것과는 무관하게 이상하게도 자꾸 마음 한구석에서는 장보고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으며 그래서 마음이 불편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많은 답사지를 돌아 다녔지만 장보고와 관련된 답사지는 거의 없었다. 답사 일정 가운데 장보고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장소는 마지막 날 갔던 법화원뿐이다. 그것도 후대에 인위적으로 만든 것에 불과한. 약간 심하게 말하면 엿새 동안 만난 장보고에 관한 정보 중에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시청한 다큐멘터리-그것도 국내에서 제작하여 이미 오래 전에 방영한-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라리 답사 코스를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지역(예를 들면 양저우, 대운하, 신라방 유적 등)으로 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다큐를 보면서 들었다. 결국 나는 출발할 때의 원대한목표였던 해상왕 장보고가 이룬 업적이 그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하여 어떤 정보도 얻지 못했다.

대신에 막대한 국가의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이 진정한 의미보다는 국가출연 재단이 유지되기 위한 방편으로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듯한 단면만을 보았다. 어림짐작만으로도 이 사업은 상당히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임을 알 수 있다. 그 예산은 모두 국고에서 지출된다는 이야기는 관계자로부터 들었으니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사업의 목적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해양강국으로 대한민국을 키워나가는 것일 것이다. , 장보고의 의미를 교사들에게 알려서 교육에 투영이 되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한국해양재단이라는 단체가 존재하는 이유도 그것일 것이다.

그런데,

해양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어떤 내용도적어도 내 느낌으로는- 만날 수가 없었다. 옌타이 항구를 갔던 것이 해양경영과 관련된 거의 유일한 일정이었다. 그곳에서도 장보고, 또는 해양경영과 관련된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지만 의미를 확대해서 부여할 때 그렇다.

운영진의 태도에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시종일관 배려보다는 통제의 의도가 드러나는 언사들에서 이 행사가 우리보다는 재단을 위해서 무사히 치러져야 하는행사라는 분위기가 배어나왔다. 행사를 무사히 치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행사의 성패는 본래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는가를 기준으로 판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동행한 퇴역 해군 간부 및 해양경찰 간부에게서 위로 출장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은 나의 지나친 결벽증일까? 분위기로 보아 매년 모든 팀에 이런 인원이 계속 배정되는 것 같았으며, 또한 그들의 역할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리우공다오에서 있었던 해군제독의 戰史 강의는 답사의 주제와 전혀 무관한 안보 강의 이상이 되지 못했으며 그것은 오히려 이 답사의 학술적 의미를 훼손하기에 충분했다.

또 한 가지, 우리의 일정은 과소비적이었다. 소득 수준이 향상되었다는 것과는 무관하게 필요 이상의 환대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관련 기업의 예산 지원이나 중국 쪽의 지원이 없는, 순수한 국고 지원의 행사로서 이건 분명한 낭비이다. 의미가 강한 행사라면 그 의미만으로 충분히 참가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교사들이 이 행사에 참가 신청을 할 때는 그 생각이 거의 비슷하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교사들의 수준은 틀림없이 그 정도는 넘는다. 부디 먹고 자는 것보다는 의미로써 참가자들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행사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바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우리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지난 이명박정부 때 해양수산부가 폐지되었던 것이 좋은 예이다. 3면이 바다인 이 땅에서 바다를 도외시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실책이다. 더욱이 한쪽이 완전히 차단된 반도는 섬과 다를 바 없는데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섬나라가 바다를 버린다면 현재와 미래를 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바다를 지배하고 경영했던 시기에 우리나라는 보다 개방적이고 대외 지향적이었으며 자주적이었다. 일찍이 장보고가 그 가능성을 잘 보여줬다면 왕건은 바다를 이용하여 정권을 장악하고 또 바다를 경영하여 국부를 증진시켰다. 그가 개국한 고려는 중국과 대등한 황제의 칭호를 사용하였으며 아라비아 상인들과 거래를 할 만큼 강력한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반면에 조선은 바다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던 대륙 지향형의 나라였다. 그 결과로 일본에게는 국토를 유린당하였고 중국에게는 굴욕적인 굴종을 강요당했다. 바다를 중시하고 대비를 했던 이순신이라는 특이한인물이 없었다면 이 땅은 오래 전에 일본의 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임진왜란 이후로도 조선은 바다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중국에 의존하는 역사를 계속했으며 그 결과가 일제 식민지 역사로 이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로 비춰볼 때 우리 민족의 미래는 바다에 달려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역사적 사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국제 교류가 경제의 근간이 된다는 것은 이제 글로벌 경제의 기본이다. 섬과 다름없는 분단된 한반도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우리 땅을 태평양을 향해 머리를 곧추 세우고 있는 거대한 용의 머리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장보고는 지나간 시대의 위대한 인물을 넘어 다가올 시대에 해양 진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아이콘이 되어야 한다. 장보고 유적지 답사는 바로 그런 역할에 충실히 복무하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