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중국 산둥(장보고 유적지 답사)

다섯번 째 이야기: 쯔보-칭저우-웨이팡-쓰다오[Ⅰ]

Geotopia 2014. 6. 24. 22:23

◆ 넷째 날 : 2013.8.10(토)

 

여정 : 쯔보(완하오호텔)-강태공 사당-순마갱-제나라 역사박물관-칭저우 역사박물관-웨이팡(점심식사)-쓰다오

* 이번 글은 빨간색 글씨까지 입니다.

 

<4일째 여정  *원도: Google>

 

 

글로벌 자본은 이념을 초월한다

 

아침을 굶었다. 7:30 출발인데 새벽 3시까지 음주를 했기 때문이다. 지리샘들끼리 의기투합해서 한 잔 하다가 승규와 둘이서 끗발을 올리고 말았다. 어제 휴게소에서 사 온 고량주 한 병과 그저께 휴게소에서 사온 맥주 한 캔, 그리고 승규가 우리나라에서 사가지고 온 팩소주 세 병까지그러니 몸이 무거운 것이 당연하다. 모닝콜이 울렸고 잠깐 더 잤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떠보니 일곱시이다. 후다닥 샤워를 하고 가방 챙겨서 겨우 시간을 맞췄다.

 

<조촐한 술판>

 

역시 부지런한 승규! 그 긴박한 와중에도 자리가 넓은 좌석까지 확보했다. 우리가 탄 버스는 수제로 만든 버스인지 의자의 배열 간격이 일정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용케 우리가 앉은 자리는 이 버스에서 가장 넓은 반면에 통로 건너편 자리는 남자가 앉으면 무릎이 앞좌석에 닿을 정도로 좁다. 왜 이렇게 엉터리 같은 의자 배열이 이루어졌을까? 그건 그렇다 치고 버스 구조보다 더 감탄스러운 것은 하루 만에 버스의 의자 구조를 파악한 승규의 눈썰미이다. 자신의 다리가 길다보니 더 관심을 가지고 봤을까?

 

<완하오호텔 주변 도시 경관>

 

창문으로 보이는 호텔 뒤편은 웨이팡과 마찬가지로 아파트 숲이다. 모두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새 건물들인 것으로 보아 이 도시도 역시 한창 개발 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다. 웬만한 도시들은 모두 비슷한 것이 건설 붐이 일었던 우리나라의 80~90년대 상황과 비슷한 것 같다.

우리가 머물렀던 호텔은 쯔보완하오호텔(萬豪大酒店)’인데 인터넷에 뒤져보니 메리어트(Marriott)호텔이라고 나온다. 미국자본이 진출하여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모양이다. 대단한 글로벌 자본이다. 정치적 이해관계보다 훨씬 빠른 것이 경제적 이익이다. 중국의 경제정책 변화를 가장 빠르게 읽어내고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글로벌 자본들의 특징이다. 이들의 정보력은 국가를 초월하는 수준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치가 글로벌 자본의 보조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쯔보완하오호텔>

 

색다른 흑묘백묘론

 

<쯔보 시내의 가로수>

 

쯔보는 꽤 유서가 깊은 도시인 것 같다. 왜냐하면 그동안 거쳤던 다른 도시들과 비교해 볼 때 가로수가 가장 굵다. 굵은 정도가 물론 수 백 년 이상 된 진짜 유서가 깊은수준은 아니고 다른 도시들이 대부분 얼마 안 된 어린 나무들이 가로수로 서 있는 것과 비교할 때 좀 더 굵은 정도이다. 도시화가 좀 더 일찍 시작되었을 수도 있겠다.

호텔을 나와 오늘의 첫번째 목적지를 향해 가는 차 안에서 가이드는 색다른 黑猫白猫論해석을 한다. ‘先富論과 함께 덩샤오핑의 대표적 경제정책을 상징하는 이 말은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체제와 무관하게 중국인민들이 잘 살면 된다는 의미로서 덩샤오핑의 경제개방 정책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 결과로 중국은 자본주의적 경제 운영과 공산주의 정치제도 고수라는 인류 초유의 하이브리드 체제를 구축하여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가이드의 흑묘백묘론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나 필요하면 돈을 빌려가라라는 뜻이란다. 처음 듣는 해석이기는 하지만 현지인의 이야기니까 그런 의미도 포함이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유명한 강태공이 이곳 사람이었다

 

첫 번째 일정은 강태공 사당이다. 유명한 강태공도 역시 이곳 출신이다. 주나라 문왕의 스승이었고 그의 아들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하고 주나라를 세우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그 공으로 후에 제나라의 제후에 봉해져 제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거의 전설 속의 인물이어서 그 사당이 매우 고색창연하리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다. 아마도 최근 관광 산업이 발달하면서 새로 조성된 것 같다. 한가롭게 낚시를 즐기는 사람을 강태공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역사 속의 강태공은 그렇게 한가하게 시간을 죽였던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역동적으로 역사를 바꾼 행동파였다.

 

<강태공 사당 정문>

 

몇 개의 관문을 통과해야만 본전에 도착할 수 있다. 관문들은 둥근 원형의 중국식이지만 모두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조잡한 느낌이 든다. 기왕에 관광지로 가꾸려면 좀 더 시간과 자본을 투자하여 품위 있게 만들어 놓았으면 좋으련만 이렇게 만들어 놓았으니 머지않아 전면적으로 다시 지을 날이 오고 말 것이다.

 

나의 보수성도 어지간하다. 오늘도 계속해서 장보고와의 관련성을 마음속으로 찾고 있는 것이다. 마음 자세가 그러하니 강태공 얘기가 귀에 잘 들어올 리가 없다. 그냥 현실을 인정하고 강태공 사당에 대해 정보를 축적하는 것도 의미있는 여행일 수도 있는데 나는 그것이 잘 안 된다. 게다가 계속 나열되는 역사적 사실은 지리학도의 구미에 전혀 맞지 않는다. 그러니 특별히 메모를 할 것도 없는데 술기운까지 겹쳐서 이날은 거의 메모를 하지 못했다.

 

<만화나 영화에 나올법한 창문 장식. 모양은 그럴듯 하지만 조잡한 느낌이다>

 

 

<강태공과 제나라의 역사에 대하여: 술기운 때문에 거의 듣지 못했다>

 

▶ 문화 전파의 장벽은 무엇일까?

 

화장실의 세면대가 특이하다. 물을 막는 장치의 손잡이가 세면대 밖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뚜껑이 끼워진 채로 회전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니까 손가락으로 뚜껑을 회전시켜 막은 다음에 물은 받고 다 쓰고 나면 다시 손을 집어넣어 뚜껑을 회전시켜서 열어야 한다. 간단한 장치만으로 편리하고도 위생적인 시설을 만들 수 있는데 왜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문화의 전파를 방해하는 요소들은 의외로 많다. 그것이 체제일수도 있고, 보수성일수도 있고, 아니면 생산 기업의 시장 독점이 원인일 수도 있다.

 

<특이한 세면대 마개>

 

사당 안에는 대나무가 곳곳에 자라고 석류나무도 있다. 석류나무의 키가 꽤 큰 것으로 보아 겨울에 석류가 얼어 죽을 정도로 춥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중부지방도 겨울에 석류나무가 일쑤 얼어 죽어버린다. 하지만 열매는 조그만 것 몇 개만 달려 있어서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다.

 

<사당 안의 대나무>

 

<나무의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석류가 매달려 있다> 

 

<이건 무슨 꽃?>

 

성씨의 분화: 강씨가 103개의 성씨로

 

강태공 사당 안에는 구목공(丘穆公) 사당도 같이 있다. 구목은 강태공의 셋째 아들로 제나라의 수도였던 영구(营丘)자를 따서 구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강태공의 강씨는 무려 103개의 성씨로 분화되었다고 한다. 부친의 성씨를 이어받는 가부장적 전통은 그러니까 이 시대에는 정착되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가부장적 유교의식이 확립된 것은 12세기 성리학의 등장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성리학을 정립한 남송의 주희(주자)는 주자가례를 지어 관혼상제의 기본을 유교적으로 정립하였고 우리나라에는 고려말에 성리학이 도입되어 조선사회를 이끄는 핵심 사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경우는 중국보다 더 늦은 조선초(15세기)에 이르러서야 주자가례에 의거한 다양한 가례서들이 등장하였으며 종족집단이 사회적 조직으로 기능을 하기 시작하였다.  

 

<구목공 사당 정문>

 

<구목공 사당>

 

중국 '뻥'은 다 이유가 있다

 

다음 답사할 곳은 순마갱(殉馬坑)이다. 어제 고차박물관에서도 마차와 함께 순장된 말들을 많이 봤는데 이곳에 비하면 훨씬 규모가 작다고 했으니 얼마나 많은 말들을 묻어 놨을까 궁금하다.

지도에서 확인해 보니 순마갱은 고차박물관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지리적 위치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비슷한 역사적 연원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순마갱에 가려면 드넓은 옥수수 밭을 지나 시골길을 한참 가야만 한다. 가다보니 도로 옆의 대형 광고판이 무리를 지어 서 있는 특이한 풍경이 나타난다. 무엇이든 크고, 많은 것이 이 나라의 특징인데 그 뿌리는 상당히 깊지 않은가 싶다. 순마갱 같은, 우리나라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큰 규모의 유적들을 보면서 살아온 이들에게는 크고 많은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을 것 같다. 즉 중국 특유의 이 자연스럽게 길러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팔토시에 뚫린 구멍이 점점 커져서 이젠 보기 싫을 지경이 되었다. 그렇다고 착용을 안 하면 끈적거려서 불쾌하기 때문에 그냥 무시하고 끼고 다닌다.

 

<구멍난 팔토시>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밭>

 

<들판을 메우고 있는 대형 광고판>

 

그런데 그 순마갱이라는 곳은 기대했던 것 보다 입구가 초라하다. 고차박물관에 비해 훨씬 규모가 크다고 해서 무언가 거창한 모양을 상상했었는데 이건 전혀 중국답지 않은 소박한 모양을 하고 있다.

제나라 경공의 무덤으로 알려진 이곳은 자 모양의 무덤을 중심으로 그 둘레에 215m에 이르는 통로를 파서 무려 145마리의 말을 순장했다. 순장행위는 사후 세계를 믿었던 의식 세계와도 관련이 있겠지만 그보다는 후손들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의 의미가 더욱 강했을 것이다. 백성들은 한 마리 갖는 것조차 꿈도 꾸지 못하는 말을 백 수 십 마리나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순장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뭇 백성들은 절대 권력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고차박물관보다는 볼거리가 많지 않다. 현재 공개되고 있는 곳은 왕릉의 왼쪽 일부분으로 순장된 말은 열 마리 뿐이다. 사람들이 가끔 와서 그런지 전시관 내부에는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아 후덥지근하기까지 해서 그다지 땡기는 답사지는 아니다.

 

<소박한(?) 순마갱 입구>

 

<흰색으로 그려진 말이 공개되고 있는 부분이다>

 

<순마갱 내부>

 

 경제적 성장과 의식 성장의 괴리 

 

文明이라는 글자를 많이 볼 수 있다. 경제적 성장과 함께 의식도 함께 성장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들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그 괴리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 중국은 빠른 성장의 와중에 있는 나라이므로 우리보다 그 정도가 더 심할 것이다. 우리 버스의 뒷 유리에도 文明어쩌구 하는 말이 쓰여 있다.

 

<문명과 함께하는 여행?>

 

▶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관심이 가는 것?

 

경제적 수준의 향상은 자연스럽게 건강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그다지 번화하지 않은 시골 마을인데 순마갱 버스 주차장 입구에 看男科병원을 선전하는 작은 광고판이 서 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남성을 진찰하는 과인 셈인데 우리나라의 비뇨기과이다. 그런데 비뇨기과를 남성이 전유한단 말인가? 그러니까 성적 능력과 관련된 관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 아닌가 싶다. 또한 자본주의화와 함께 개인 병원도 특정 분야로 특화되고 있고 또 이를 광고함으로써 이윤을 더 많이 창출하고자 하는 것이다.

 

<'看男科병원 안내판>

 

  ▶ 도랑에 나무를 심은 이유는?

 

옥수수밭과 함께 길옆에 작은 숲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도로를 따라 일정한 넓이로 미루나무 종류가 자라고 있는데 방풍림 같은 구실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목재로 사용하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나무젓가락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고 약품 처리한 나무젓가락을 우리나라에 팔아서 문제가 되었던 적도 있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런 용도로 키우는 나무인지도 모른다. 미루나무는 재질이 약해서 다른 목재로는 사용이 어렵고 나무젓가락용으로 적당하다고 어렸을 적에 들은 적이 있다. 나의 고향 동네 앞 냇가에 누군가가 몇 해 동안 미루나무를 심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들었던 얘기이다.

또 하나 납득이 되지 않는 경관이 하나 있다. 그 숲과 도로 사이에 작은 도랑이 설치되어 있다. 아마도 숲으로 물이 직접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인 모양이다. 그런데 그 도랑 안에도 나무가 심어져 있다는 것이다. 나무가 숲에 있는 것보다 작은 것으로 보아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왜 도랑을 파고 그 안에 나무를 심었는지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알 수가 없다. 물이 귀한 건조지역에서는 수분의 유실을 막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심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이곳도 강수량이 풍부한 곳은 아니므로 그런 이유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지만 그렇게 해석을 하면 도랑 밖에 있는 더 큰 숲은 설명할 길이 없다.

 

<미루나무 숲과 숲 앞 도랑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

 

▶ 지도가 많은 제나라역사박물관-중국이 축구의 종주국 이라구?

 

다음은 제나라역사박물관이다. 이곳에서는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지도가 많이 있어서 눈길을 끈다. 어디서든 지도에 눈길이 가는 것은 직업병이다. 설명문들에 꼭 한글 설명이 같이 들어 있는데 일본어보다도 위에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상당히 많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누가 감수를 했는지 영 문장이 엉성해서 웃음이 나오는 것이 많다. 그중 가장 재미있는 것은 봄과 가을 시기이다. 이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春秋時代의 번역이 봄과 가을 시기가 된 것이다.

 

<지도 범례-복잡한 중국 역사를 잘 보여준다>

 

<지리학도의 눈길을 끄는 지도들이 많다>

 

<안상시대?>

 

<봄과 가을 시기?>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제나라의 도시 모형이다. 도시를 건설하는데 지하로 하수도를 만들었다. 모형의 맨 앞부분에 하수도가 있어서 그 구조를 쉽게 알 수 있다. 이렇게 지하수로를 만들어 놓지 않았다면 규모가 큰 도시의 하수들이 땅 위로 흘러서 상당히 불결하고 불편했을 것 같다.

 

<도시 모형도>

 

가장 압권은 중국이 축구의 종주국이라고 주장하는 전시물이다. 중화사상이 발현되어 조금이라도 모종의 관련성이 있으면 자기들 중심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 중국의 특징인데 축구는 좀 그렇다. 그런데 어떻게 근거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FIFA 회장까지 초청해다가 공식 확인을 받았다고 한다. 참 대단한 나라다. 동북공정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역사왜곡을 비판하지만 중국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중국이 축구의 종주국이란다…> 


▶ 이제 중국에도 영어가 흔하다

 

영어가 매우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간판이나 광고판, 자동차 등에 영어가 병기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간체자 중에 못 읽는 글자가 꽤 많기 때문에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영어가 병기되어 있는 것이 사실은 좋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버스에도 회사 이름이 영어로 병기되어 있다.

 

<영어가 자연스럽다> 

 

▶ 흑백사진 같은 린쯔 시내 풍경

 

쯔보(淄博)이라는 도시는 린쯔(臨淄)와 보추안(博川)이라는 도시가 통합되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순마갱이나 제나라역사박물관은 린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쯔보시의 동쪽 부분으로 우리가 머물렀던 중심가 보다는 도시화가 덜 진행되었다. 높은 건물도 없고 대부분 낡은 건물들이 좁은 골목 양편에 자리를 잡고 있고 예전에 많이 봤던 작은 삼륜자동차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하지만 시내를 가로지르는 도로 만큼은 왕복 6차선으로 널찍하게 잘 만들어져 있다.

 

<린쯔 시내 풍경들> 

 

▶ 중국인들이 오리 요리를 많이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은 칭저우(靑州)로 가서 칭저우시박물관을 관람할 차례이다. 버스가 제법 큰 강을 건넌다. 우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이정도로 강물이 풍부하다면 벼농사가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지도를 살펴보니 쯔허(淄河)라고 하는 강이 북쪽으로 흘러 황하 하구 삼각주 지역에서 바다로 유입한다.

 

<쯔보에서 칭저우로 가는 길에 만나는 쯔허(淄河)-강 양쪽으로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칭저우로 가는 도중에 알 이드리시의 지도가 나오는 다큐가 다시 방영된다. 어제 잘 못 봤던 부분이라서 다시 나오니 다행스럽다. 잽싸게 화면 캡쳐 사진을 찍었다. 신라가 섬으로 표시되어 있는 부분이다.

 

<장보고 관련 다큐멘터리에 알 이드리시 지도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우리 버스 옆으로 오리를 가득 실은 트럭이 지나간다. 오리를 많이 먹는 사람들답다. 똥이 덕지덕지 붙은 지저분한 플라스틱 케이지에 오리가 두세 마리씩 들어 있는 것 같다. 도축장으로 이동하는 모양인데 동물 보호론자들이 보기라도 한다면 동물학대니 어쩌니 하는 말이 나오게 생겼다. 우리나라도 오리 요리가 제법 발달했지만 최근 음식점을 중심으로 발달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예부터 민간에서 오리 요리가 발달한 나라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오리를 싣고 가는 트럭>

 

<케이지 안에 두 세 마리씩 오리가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