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중국 산둥(장보고 유적지 답사)

일곱번째 이야기: 쓰다오 법화원

Geotopia 2014. 7. 19. 21:59

◆ 넷째 날 : 2013.8.11(일)

 

여 정 : 쓰다오 치샨호텔 - 치샨 - 법화원(장보고 기념관) - 점심식사(치샨호텔)-쓰다오 시내 마트-쓰다오항-인천    * 이번 글은 빨간색 글씨까지 입니다.

 

여유있는 출발

 

  여유 있는 출발이다. 아침 먹고 객실에 들어가서 양치질을 하고 방을 찬찬히 휘둘러보고 나올 만큼. 10원을 팁으로 올려놓으면서 생각하니 어제는 서둘러 나오느라 팁도 못 놓고 나왔다. 넓은 방에 술판까지 벌여서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 나왔기 때문에 팁이라도 놓고 왔어야 하는데. 청소하는 사람은 실수로 이해해줄까? 아마도 그보다는 매너 없는 한국인을 욕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해장국은 아니지만 어젯밤의 술기운을 조금은 눌러주는 스프>

 

<냉장고에 들어있는 음료들 중에 생수 2병은 무료로 제공이 된다. 병목에다 무료(免費商品)이라고 써진 예쁜 목도리까지 씌워 놓았다>

 

▶ 승리한 역사속에는 트라우마가 없을까?

 

  나오기 전에 잠깐 텔레비전을 보니 텔레비전에서는 전쟁 기록화면이 나오는데 전쟁영웅들이 사이사이 등장해서 증언을 곁들인다. 보아하니 국공내전 이야기인데 정권의 정통성과 관련하여 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실일 것 같다. 기록화면은 어떻게 찍은 것인지는 몰라도 매우 사실적이다.

  아마도 참전 용사들은 역사를 바꾸는 혁명의 대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동참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기억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혹시 없을까? 하는 생각이 뜬금없이 든다.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정당성을 확신하는 경우에는 잘 생기지 않는 것일까? 미군 참전용사들은 트라우마를 많이 겪는다고 하는데 종전 후에 느끼는 전쟁의 부당성에 대한 자각과 관련이 깊을 것 같다. 반면에 이들은 역사적 의미로 정당성을 부여할 것이므로 전 세계 불특정 다수를 적으로 참전했던 미군 병사에 비하면 정신적 충격은 적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신에 동족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면에 비친 모습으로만 판단해 보면 그들은 매우 자신감이 있어 보인다. 아마도 전후에 정권이 안착되어 가는 과정에서 정책적으로 그들에게 많은 혜택과 정당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리라. 사실은 항상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이므로 참혹한 전쟁의 기억도 자랑스러운 역사적 사실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부지런한 승규

 

  출발 시간이 꽤 남았는데 승규가 먼저 나간다고 슬그머니 일어난다. 왜 같이 가자고도 않고?? 알고 보니 일찌감치 차에 가서 제 다리 사이즈에 맞는 자리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역시 승규, 소리 없이 강하다. 부지런한 승규 덕분에 짧은 내 다리까지 호강하게 생겼다.

 

<Friendly Shandong>

 

 

  산둥성이 내걸고 있는 구호는 ‘Friendly Shandong’이다. 타이샨의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처음 봤던 이 구호가 호텔 복도에 있는 강연용 데스크에 쓰여 있다. 알록달록 무지개 색 비슷하게 도안되어 친근감이 넘치는데 무엇보다 영어로 되어 있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는데 체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산둥성이 세계적 관광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이런 제스처도 필요할 것 같다.

 

▶ 무서운 버스기사

 

  캐리어를 짐칸에 실어주는 기사의 표정이 무섭다. 더운 날 무거운 여러 개의 가방을 들어서 넣으려니 힘이 들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자신의 본업인데 즐기지 않으면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지만 전혀 반응이 없어서 오히려 힘들게 일하는 사람을 약 올린 꼴이 된 것 같다. 우리 가이드들도 그렇고 이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일을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젠 이런 장면을 만나기가 어렵다. 일본 사람들의 직업의식과 거기에서 배어 나온 친절함은 우리보다도 한 수 위이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비단 소득이 늘어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 분명하다. 서비스 정신은 단순한 훈련이라기보다는 일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담보될 때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사회적으로 자신의 계급을 받아들였을 때 가능한 행동일 수도 있다. 인도의 카스트가 자신의 계급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결과적으로는 비슷하다고 할까?

 

▶ 일본이 복원한 법화원

 

  법화원은 일본 사람들이 복원했다는 예상 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 불교계에서 옌닌의 자취를 찾아서 세운 것이다. 정작 우리가 생각하는 주인공 장보고와는 직접 관련이 없이 세워진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차려진 밥상에 운 좋게도 숟가락을 얹어놓은 꼴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출발이 장보고로 인한 것이었던 법화원이 옌닌과 관련이 있는 법화원으로 변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법화원 입구에는 무대가 꾸며져 있는데 현수막 그림으로 보아 장애인 단체가 방문을 하는 모양이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발달하는 것도 선진국의 특징이다. 중국이 급성장하고 있는 또 다른 측면으로 보인다.

 

<법화원 앞의 장애인 관련 행사장>

 

▶ 장보고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었을까?

 

  토질이 토박한 전형적인 화강암 산지인데다 사찰이 세워진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큰 나무들이 없다. 고갯길을 오를 때 그냥 햇볕에 노출되는 구간이 꽤 되어 무척 덥다. 장보고 기념탑이 사찰 뒤편 언덕 위에 자리를 잡고 있다. 생각해 보니 어이없게도 이번 답사에서 장보고와 직접 관련된 것으로는 처음 만나는 유적 같다. 최근에 세운 것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장보고 유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榮成시 지방정부가 세운 장보고기념탑>

 

  기념탑 뒤편 계단에 모여 앉아 1호차 안내를 맡고 있는 김병곤교수님의 설명을 듣는다. 교수님의 설명을 통해서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들을 알 수 있다.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장보고라는 이름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장보고의 이름은 그의 원래 이름이었던 궁복(弓福)’에서 왔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잘 생각하지 않으면 그 연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궁복은 중국에 건너오면서 중국식 이름이 필요하게 되었다. 우선 성씨가 필요했는데 당시 신라에는 육두품 이상의 고위계급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성씨의 개념이 없었다. 당연히 장보고도 성씨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우선 성씨가 필요했던 장보고는 長三李四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에서 가장 흔한 성씨였던 ()’씨를 택했다. 그 다음에는 자신을 상징하는 활궁() 자 앞에 붙여 씨가 되었다. 그 다음에 자는 이두식으로 풀어서 썼다. , 중국인의 이름이 보통 두 자이므로 ''자를 음으로 풀어서 '보고(保皐)'로 만들었다. 장보고란 이름을 그렇게 많이 들었으면서도 보고가 음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설명을 듣고 나서야 깨우쳤다. 그러니 안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니다. 사물이나 현상 속에는 정말 수많은 의미들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 이면을 보지 못하면서 너무도 쉽게 속단하고 섣부른 의견을 내뱉으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장보고는 신분이 평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보고는 삼국사기 열전에 수록되어 있다. 보통 전제 왕조 시대의 역사서들은 기전체라고 부른다. 기전체라는 말은 본기(왕의 전기)와 열전(신하들의 기록)을 합쳐서 만든 용어이다. 그러니까 삼국사기 열전이라 함은 왕을 제외한 신하들의 기록이다. 전제 왕조 시대에는 안타깝게도 공식적으로 평민의 기록은 없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신분상으로 볼 때 장보고가 공식적으로 역사서에 등장할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예외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후에 왕실을 넘보는 절대 권력을 갖게 되면서 신분이 상승했다고 봐야 할까?

 

▶ 정법의 시대는 과연 있기는 한 것일까?

 

  법화사라는 절 이름은 법화경(묘법연화경)에서 왔다고 한다. 법화경은 석가모니의 말씀을 모아서 적은 경전이므로 불경 가운데 으뜸이다. 그리고 이를 연구하는 불교사상이 법화사상이다. 장보고가 활약하던 신라후기 당시는 석가모니의 사상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던 말법의 시대였다(완벽하게 석가모니의 사상이 이루어지는 시기가 정법의 시대이고 그 중 한 두 개가 이뤄지면 상법의 시대이다). 장보고는 그런 말법의 시대를 틈타 인생 역전을 이뤄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말법의 시대를 안타까워했었다는 뜻이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지금의 말법의 시대는 그 때부터 이어져 온 것일까, 아니면 말법의 시대는 반복적으로 역사에 등장하곤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역사의 진보란 불가능한 것일까? 만약 역사의 진보가 불가능하다면 정말 삶의 많은 부분이 의미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의 진보는 틀림없는 진실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정법의 시대가 아주 가끔씩 역사에 등장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기득권은 권력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자기 재생산을 도모한다. 기득권의 형식은 시대에 따라 계속 바뀌어 왔지만 형식과 무관하게 시대를 초월하여 자신을 유지하고자 온 힘을 다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일제에 아부했던 친일파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서 친일을 근대화라고 주장하는 어이없는 사태를 보면 그 자기 재생산 본능과 기득권의 힘이 얼마나 끈질긴지를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역사는 이익만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기득권에 의해 언제나 正道를 가운데 두고 그 양쪽을 왔다갔다 갈지자걸음을 반복해 왔다. 갈지자걸음을 반복할 때 가운데에 있는 정도를 잠깐씩 지나치는데 그 때가 바로 짧은 정법의 시대인 것이다. 그 정도, 정법으로 돌아오게 한 것은 언제나 이익보다는 양심과 정의를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을 한 민중들이었다. 이익은 그 끝을 모르고 끊임없는 자기 증식을 추구하지만 양심은 찰나에 불과한 정법의 순간만으로도 깊이 감동하면서 삶의 지표로 삼는다. 그래서 인류는 공멸의 길을 가지 않고 이렇게 진보해오고 있는 것이다.

 

▶ 장보고전기관

 

  장보고전기관이라는 곳이 있다. 그의 일대기를 그려 놓은 그림과 전시물들이 있고 전시관 앞에는 갑옷을 입은 커다란 장보고상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전시관의 내용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 이상의 것은 없다. 중국어 설명 밑에 한글 설명이 붙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이것은 이곳이 주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관광지라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인들이 이런 공간을 허락한 것은 바로 한국인 관광객들이 증가하는 추세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장보고의 위대함에 중국인들이 반응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중심의 지나친 확대 해석이 아닌가 싶다.

 

<장보고전기관의 현판은 금박을 씌워 놓아서 거울처럼 반짝거린다>

 

<전기관 내부의 전시물>

 

<이건 왠 뜬금없는 돌덩이?>

 

▶ 급속한 자본주의화와 천민자본주의

  장보고전기관을 나오면 아담한 연못이 나온다. 거칠게 만들어진 수직의 돌제방 안에는 그다지 깨끗하지 않은 물이 담겨있고 비단잉어들이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먹으려고 사람들을 따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모든 경관이 평균 이하라서 눈길을 끄는 것이 별로 없는데 딱 한 가지, 눈길을 휘어잡는 물건이 있다. 연못 한가운데에 서있는 빨간색의 플라스틱 잉어가 그 주인공이다. 몸 길이가 1m가 조금 넘을 듯한 이 녀석은 꼬리 일부만을 물에 담그고 있고 온몸이 거의 물 밖으로 나와 있는 형태이다. 그리고 입을 한껏 벌리고 있다.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지 않는 수준 이하의 조형물이라서 어색할 것도 없는데 가만히 보니 잉어 옆의 물속에서 수많은 동전들이 반짝거리는 것이 보인다. 그러니까 잉어의 벌린 주둥이는 관광객들에게 돈을 던지라고 유혹하는 것이었다. 관리하는 측에서 동전을 던지지 말라고 하소연하는 경우는 종종 봤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동전을 던지라고 하는 경우는 난생 처음 본다. 급속한 자본주의화로 돈이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노골적이다.

 

<돈을 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듯한 잉어상>

 

  연못 옆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는 이끼가 잔뜩 낀 더러운 어항이 하나 있는데 잉어 두어 마리가 비좁은 공간을 헤매고 있다. 방생용이다. 이 녀석을 사서 연못에 풀어 주라는 얘긴데 내 생각엔 주인이 다시 잡아서 다른 손님에게 또 팔 것 같다. 방생이란 무엇일까? 인간에게 구속된 생명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주변에 그런 생명체가 없다면 방생이 필요 없는 것이고 그런 세상이 正法의 세상일 것이다. 따라서 생명체를 일부러 구속한 다음 그것을 팔아서 방생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큰 죄악이다. 누군가의 죄를 사해주기 위해서 장사치는 기꺼이 죄악을 대신 저지르는 것인가? 죄지은 자들을 위해 십자가를 대신 진 예수처럼낙산사 연못에 바글거리던 붉은귀거북이 떠오른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전세 버스 한가득 방생객을 태우고 강가로 가서 구매한 생명체를 놓아주는 행위는 정말 이기적인 행위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고기를 판매하는 누군가는 죄를 짓는 것이고 그것을 구매해서 놓아주는 사람은 덕을 쌓는 것인가? 사실 둘은 공범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는 생태계에 맞지 않는 이질적인 생명체를 방생하는 더 큰 죄를 저지르는 행위일 수도 있다.

 

<방생해봤자 도로 잡아올릴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이것을 사는 것이 선행이고 공덕을 쌓는 일일까?>

 

  <적산명신상을 오르내리는 전기차 주차장에 쓰다오 특산 해산물 안내판이 서있다>

 

▶ 중국인들이 법화원을 찾는 이유 : 적산명신

 

  적산을 찾는 이유는 우리와 중국인들 사이에 확실한 차이가 있다. 이곳은 유서 깊은 문화유적도 아니고 뛰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경승지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중국 사람들이 찾는 것은 복을 빌기 위함이다. 특히 거대한 '적산명신'은 많은 중국인들에게 매력적인 기복처인 것 같다. 이마가 툭 튀어나온 적산명신은 중국 전통의 토속신인 대명신인데 재물과 복을 주는 신이라고 한다. 실제로 중국인들은 장보고전기관에 들렀다가는 길을 선택하기 보다는 직접 적산명신상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 장보고전기관은 적산명신상으로 올라가는 길 옆 계곡 안에 있어서 다리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데다 입구에서 적산명신까지 운행하는 전기차가 있어서 이걸 타는 사람들은 장보고전기관을 그냥 지나쳐야 한다.

 

<적산명신상>

 

  뻥이 센 만큼 크게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은 큰 조상 역시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는 장보고를 따라 왔으므로 이곳이 의미 있는 공간이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매력적인 관광지는 아니다. 지리학도의 눈으로 보면 화강암산이라는 것 외에는 온통 조잡한 인공물 덩어리인 이곳이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리우의 코르코바도 언덕의 예수상이 떠오른다. 코르코바도의 예수상 역시 어마어마한 크기의 인공 구조물인데 당당히 세계적인 관광상품이 되었다. 일단 크기로 압도를 하기 때문에 일반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 수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기독교라는 종교의 힘이 컸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의 거대한 적산명신상도 장차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을까? 그건 쉽지 않을 것 같다. 왜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것일까? 무엇보다 대명신은 중국인들이 고래로 받들어왔던 토속신으로 기독교에 비해 보편성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외에도 주변의 풍광이 리우데자네이루만큼 수려하지 않다거나 쓰다오라는 도시가 리우데자네이루만큼 유명하고 큰 도시가 아닌 것 등등이 모두 이유로 작용할 것 같다.

 

<적산명신상은 앞이마가 툭 튀어나온 것이 특징이다>

 

  명신상 아래에는 내부 공간이 있는데 화려한 금색의 작은 조상들이 무수히 많다. 무엇이든 크거나 많게 하는 것이 이 나라 사람들의 특징이다. 혼자 구경하고 있는데 어떤 중국 여인이 구멍이 난 내 토시를 가리키며 뭐라고 하면서 웃는다.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때는 같이 웃어주는 것이 제일 무난하다.

 

 

<친절하게도 적산명산을 모시는 방법을 한글로 안내해 놓았다>

 

<적산명신상 아래 내부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

 

<중국스러움을 잘 보여주는 화려힌 금빛과 많은 수의 불상들>

 

 

  적산명신상에 올라보니 쓰다오 시가지와 법화사 전경이 잘 보인다. 약간 연무가 끼어 시야가 아주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 조망은 괜찮은 편이다. 사방으로 왔다갔다 하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분수 쇼를 한다고 했기 때문에 빨리 내려가야 하는데 나는 분수쇼 보다 이게 더 좋다. 나의 뻘짓이 끝나기를 말없이 기다리고 있는 승규에게 미안해서 먼저 내려가서 보고 있으라고 했더니 그냥 기다리겠단다. 분수 쇼는 포기할 수밖에 없겠다.

 

 

<적산명신상 뒷편에서 바라본 법화원 전경>

 

<적산명신상에 오르는 계단과 그 아래로 보이는 쓰다오 시내 전경>

 

<적산명신상에서 바라본 쓰다오 시내>

 

▶ 기복신앙이 발달한 나라

 

  그래도 혹시 끝부분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해서 빠른 걸음으로 내려왔지만 저만큼에서 벌써 쇼를 다 보고 나오는 우리 일행들을 볼 수 있다. 어차피 틀렸으니 서두를 것 없이 천천히 구경하면서 가보기로 한다. 가다보니 산책로 옆에 작은 우리들이 설치되어 있는데 철망으로 사방을 폐쇄한 조잡한 우리 안에는 연두색 잉꼬새들이 들어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풍경이 사라진지가 꽤 오래되었기 때문에 상당히 어색해 보인다. 더욱이 사찰 안인데 이렇게 동물을 가둬 놓아야 하는 것일까?

 

<법화원 경내의 새장>

 

  기복신앙이 발달한 나라라는 것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불상 앞에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상당히 다양하다. 보통 노년층이 많은 것이 우리나라의 풍경이라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이곳의 특징이다. 잘 차려입은 젊은 여인이 치성을 드리는 모습이 특이하게 보이는 것은 나의 선입견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불교와 도교가 기복신앙으로 발달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소원을 비는 리본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법화원 경내의 나무>

 

<복을 비는 사람들은 남녀노소가 따로업다>

 

▶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관음상

 

  분수 쇼가 끝난 관음상에 도착했다. 거대한 관음상은 분수가 설치된 작은 연못 안에 설치된 높다란 좌대 위에 앉아 있다. 관음상의 앞부분을 제외한 주변에는 호위하듯 나한상이 둘러싸고 있는데 돌로 만든 나한상 역시 규모가 상당히 크다. 어디서나 크기와 수량으로 압도하는 것이 중국이다. 반면에 일본은 아기자기하고 세밀한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는 중국 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우리나라는 중국의 제후국이었으므로 어떤 시설을 설치할 때 대부분 규모의 제약을 받았다. 그러므로 전통적 문화유산 중에는 규모로 압도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근래에 들어와서 설치된 것들 중에 규모가 크고 숫자가 많은 것들이 종종 등장하고 있지만 사실 중국에 비할 정도는 아니다. 우리의 환경적 조건은 아기자기한 일본과 보다 유사하지만 은 중국에 가까운 묘한 정체성으로부터 나온 결과이다. 사대주의에 빠질 필요도, 그렇다고 스스로에 대한 비관에 빠질 필요도 없다. 우리는 우리일 뿐이다.

  관음상의 모습은 여성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관음상들은 약간 중성적인 느낌이 강한 편이기 때문에 완벽한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관음상이 특이하게 느껴진다. 이곳에서도 역시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관음상과 나한상>

 

<관음상에 치성을 올리는 사람들>

 

▶ 법화원에서 시간 죽이기

 

  시간이 많이 남아서 관음상 앞 연못가에서 한동안 시간을 죽였다. 계속 차를 타고 먼 거리를 강행군해왔던 그간의 일정에 비해 오늘은 지나치게 한가한 일정이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까지 자유시간이지만 마땅하게 자유를 즐길 곳이 없다. 호숫가에 한동안 앉아 있다가 다시 법화원 앞으로 내려와서 또 벤치에서 꽤 많은 시간을 죽였다. 사정은 똑같으므로 우리 뿐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법화원 앞에 삼삼오오 모여서 잡담을 나누는데 이젠 얼굴들이 낯이 익어서 다들 식구같다. 법화원은 장보고가 세웠다는 그 사찰의 이름이다. 하지만 장보고가 세웠던 그 사찰과는 거리가 먼 최근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더구나 일본 사람들이 세웠으니 그 의미가 커 보이질 않아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기념품 가게나 들락거리다가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벤치 신세만 졌다. 서각가 이봉진샘은 나무 조형물에도 관심이 많다. 목판을 실톱으로 잘라서 만든 과일 접시를 하나 사왔는데 나름 멋져 보인다. 타원형의 목판을 실톱으로 잘라서 늘어뜨리면 가운데 부분이 자연스럽게 내려가는 그릇이 되었다가 접으면 평평한 나무판자가 되는 아이디어 상품이다. 들었다놨다 들먹거리다가 결국 그냥 나오고 말았다. 기념품이란 것이 항상 그렇다.

 

<법화원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