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영남 일주

밀양Ⅱ

Geotopia 2014. 5. 28. 14:39

답사 일시: 2014.1.18(토)~1.19(일)

 

주요 답사지삼문동 하중도-추화산 봉수대(하중도 관망)-밀양관아-밀양여고-영남루-밀양읍성 성곽-무봉사-시례호박소-얼음골-밀양댐-삼랑진 양수발전소(안태호)  * 붉은 글씨 부분이 이 글의 내용입니다.

 

 

 

天眞宮, 萬德門에서 왜 나는 일본이 느껴지는 것일까?

 

다시 영남루 마당으로 내려왔더니 아까 그 사람들이 모두 가고 거의 마당이 텅 비었다. 아까는 사람들이 많아서 자세히 볼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이제 좀 한적한 분위기가 되어 찬찬히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 우선 천진궁(天眞宮)이란 전각이 눈에 들어온다. 일제 강점기에는 감옥으로도 쓰였다는 이 건물의 이름이 매우 이국적이다. 정확히 말하면 왜색(倭色)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이 전각의 정문은 만덕문(萬德門)으로 역시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이건 중국 느낌이 드는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전혀 쓰지 않는 이름들은 아니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이름은 아닌 것 같다.

<영남루 앞의 만덕문>

 

정체불명의 돌꽃

 

천진궁 앞마당에는 이곳의 명물이라는 돌꽃(石花)이 있다. 마당의 돌이 물에 젖으면 선명한 국화꽃 모양이 보인다고 한다. 물에 젖지 않아서 그런지(날씨가 맑았다) 노출된 바위의 모양이 선명한 국화꽃 모양은 아니지만 겹겹이 겹친 꽃잎 모양으로 바위가 풍화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종의 박리(剝離, exfoliation)현상으로 보인다. 어제 부산 암남공원에서 봤던 중생대 퇴적암의 박리와 유사한 현상인데 암남공원에서는 사면에서 볼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평평한 마당에서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열팽창과 수축을 거듭하면서 양파껍질 모양으로 바위의 표면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 박리의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본다면 이곳은 양파를 위에서 자른 모양을 하고 있으므로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모양을 하고 있다.

지질도에 의하면 이 산은 모두 중생대 백악기 화산암(안산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박리가 잘 일어나는 심성암이 아닌 분출암이라는 점도 특이하다. 형성 시기가 오래되었으므로 상층부부터 풍화가 진전되었고 풍화물이 걷히면서 압력의 감소와 함께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 것이다.

<영남루 마당에 노출된 화산암괴의 절리면은 북동-남서 방향이다>

 

<화산암 절리가 만들어낸 국화꽃무늬 모양>

 

 

<영남루에서 송전선 반대 농성 현장이 건너다 보인다>

 

머릿속에 지도가 잘 안 그려지는 지역

 

다음 목적지는 밀양 얼음골이다. 밀양시 산내면에 있는 얼음골은 영남의 알프스 서북사면에 발달한 돌너덜(talus)이다. 여름철에 기온이 상승할수록 온도가 더 내려간다는 이곳은 여름에 와야 진면목을 볼 수 있겠지만 내 관심사는 그 차가움을 느끼는 것보다는 얼음골의 지리적 환경이다. 여름철에는 아마도 발 디딜 틈조차 없을 텐데 그 또한 내가 즐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돌너덜 속은 일종의 거대한 동굴처럼 외부 기온과 무관하게 항상 일정한 기온이 유지되기 때문에 이런 기이한 자연현상이 일어나게 되었을 것이다.

영남의 알프스는 밀양시와 울산광역시의 경계를 이루면서 대략 북북동-남남서 방향으로 흐른다. 셋째날 갈 뻔했던 가지산이 이 산줄기와 연결이 되며(얼음골 남서쪽의 천황산(1189)에서 얼음골 위쪽 능선을 거쳐 능동산(983)-가지산(1241)으로 이어진다) 그날 머물렀던 등억리 역시 바로 인접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산줄기와 연결되는(그 산줄기는 능동산에서 갈라져 배내봉(965)-간월산(1069)-신불산(1209)으로 이어진다) 신불산 기슭에 있는 마을이다. 밀양과 울산이 이렇게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답사를 하면서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다. 이 일대는 쉽게 오기 어려운 지역이기 때문에 머릿속에 지도가 잘 안 그려지는 지역이다.

 

엄청난 인파 때문에 케이블카 타기를 포기하다

 

24번 국도는 새로 단장을 한 4차선의 시원한 도로이다. 울산, 언양 방면으로 달리다가 산내면 소재지에 있는 얼음골교차로에서 내려서 옛길을 타고 얼음골로 들어간다. 우선 케이블카를 타기로 마음먹었다. 대구에서도 케이블카를 타려다가 시계가 좋지 않아 포기했었는데 오늘은 날씨도 좋은 편이니까 기대가 된다. 영남의 알프스를 걸어서 올라가지 못하고 케이블카 신세를 진다는 것이 좀 마음에 걸리지만 시간 관계상 어쩔 수가 없다. 주변 경관은 봐야겠고 산행할 형편은 안 되니 어쩌겠는가?

!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좁은 길이 올라갈수록 더욱 복잡해진다. 길 옆으로 주차된 차가 수도 없이 많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이 모두 케이블카를 타러 온 사람들이란 말인가? 이 정도라면 케이블카를 타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케이블카는 다음 문제고 주차를 한 공간조차 없다. 케이블카 승강장 가까이에 이르니 빨간 경광봉을 든 사람이 나와서 주차 안내를 한다. 옳다구나 하고 안내하는 대로 따라 들어가려고 보니 케이블카 업체와는 무관한 사설 주차장이다. 주말마다 이런 북새통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큰 나무에 그늘이 많다던가? 케이블카 때문에 생긴 산중 주차 전쟁을 이용하는 이런 틈새 영업도 있는 것이다.

위쪽에 주차를 한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도로를 따라 내려오고 있는데 그 행렬이 끝이 없다. 차를 돌릴 수도 없으니 그냥 올라가는 수밖에 없는데 조금씩 올라가다 보니 승강장으로부터 와도 너무 멀리 와버렸다. 마침내 주차할 공간을 만났지만 거기다 주차를 하고 내려가서, 또 한참을 기다렸다가 케이블카를 탈 생각을 하니 엄청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이번 여행에서는 케이블카와 인연이 닿지 않는 모양이다. 영남의 알프스는 다음 기회에 직접 산행으로 감상하기로 하고 그대로 상류 쪽으로 더 올라가기로 한다. 표지판에 보니 시례호박소라는 곳이 위쪽에 있기 때문이다.

 

시례가 무슨 뜻일까?

 

시례 호박소는 안내판을 봐도 그 어원이 알듯말듯하다. 우선 절구()의 호박 같이 생겼다라는 표현이다. 문맥으로 보면 절구의 일부 중에 호박이라는 것이 있다는 의미인데 나는 여태 절구의 어느 부분이 호박인지 알지 못한다. 다른 자료를 찾아보니 호박은 방앗간에서 쓰던 절구의 하나라고 한다. 그렇게 해석하니 겨우 이해가 된다. 그러니까 폭포의 낙하 에너지가 화강암 암반을 깊이 파서 호박(절구) 모양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례(詩禮)’라는 호박소 앞에 붙은 수식어이다. 안내문 어디를 봐도 그에 대한 설명은 없다. 마을 이름도 아니고 골짜기 이름도 아닌 이 수식어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이름이란 말인가?

백운산(885m)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이 폭포는 화강암 암반의 급경사면에 발달한 폭포이다. 계곡의 바닥에 퇴적물이 전혀 없는 구간이 상당히 길다. 강한 낙하에너지로 만들어진 호박소 주변에는 당연히 하상 피복물이 없다. 하천 양안의 사면에는 크고 작은 화강암 돌멩이와 바위가 흩어져 있다. 금강산의 상팔담처럼 연속적으로 계단상의 웅덩이가 화강암 암반위에 만들어져 있다. 우연히 왔지만 노출된 화강암 지역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경관이다.

 

<사면에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화강암 암설들은 각진 돌이 대부분인데 빙하기 때 동파로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화강암 암반이 침식되어 만들어진 호박소>

 

<호박소 아래쪽에도 크기가 작은 웅덩이(Pot hole)가 발달하고 있다>

 

<호박소 아래쪽 화강암 암반 지역을 지나면 퇴적물질들이 쌓여있는 곳이다>

 

<아래쪽에서 올려다 본 호박소 계곡. 화강암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박소 안내판. 詩禮가 도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그 유명한 시락국이란?

 

호박소를 나와서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케이블카 승강장을 지나면서 보니 여전히 사람이 많다. 얼음골 입구에는 큰 주차장이 있지만 케이블카 승강장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주차장이 텅텅 비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얼음골에 가기 전에 밥을 먼저 먹기로 했다. 차를 세우면서 보니 들깨된장시락국이란 것이 있다. 들깨, 된장까지는 잘 알겠는데 시락국은 무엇일까? 혹시 이 지역의 특산 음식은 아닐까? 근처에 음식점이 없어서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락국을 먹어보기로 했다. 게다가 산채비빔밥을 주문하면 시락국이 그냥 딸려 나온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 시락국이란 것이 알고 보니 시래기 국이었다. 듣고 보니 시래기와 시락은 어감이 얼추 비슷한 말인데 이 지역 사투리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뭐래도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비빔밥을 주문하면 당연히 국이 따라 나오는 법인데 그게 시래기국이었던 것이다.

실망ㅠㅠ

유난히 기억나는 맛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무랄 맛도 아닌 평범한 음식이다. 우리가 들어올 때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영업을 하는지 묻고 들어왔었는데 자리를 잡고 나니까 한 두 사람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식당 안이 제법 시끌벅적 해졌다. 이상하게 나는 이런 장면을 데자뷰처럼 기억하고 있는 것이 많다. ‘우리가 들어오면 사람들이 따라 들어오나?’ 약간 민망한 농담을 아내와 주고받았다.

 

<산나물 비빔밥과 들깨된장시락국>

 

<얼음골사과 판매장>

 

관광객이 적을 때 입장료를 내는 것이 아까운 이유

 

식사 후에 얼음골로 향했다. 식당 주인에게 물었더니 차가 못 들어가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 한 20여 분이 걸린단다. 반구대가 생각이 난다. 거기도 걷는 거리가 상당히 멀어서 한 참을 걸어갔었다. 여유있게 세월아 네월아 걷는 것도 여행의 묘미이기는 하지만 다소 빡빡하게 일정을 정해 놓고 가는 여행이 내 스타일이다 보니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다음 일정에 차질이 생길 때가 있다.

걷기에는 너무 먼 거리 같아서 혼잣말로 멀다고 했더니 알아듣고는 그 정도를 멀다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일갈을 한다. 이 동네 사람들은 그 정도는 그냥 걷는 모양인가? 어쨌든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걷기로 한다. 그런데 산모퉁이 하나를 돌아서니 멀리 입구가 보인다. 나는 입구까지의 거리를 말했던 것이었고 아줌마는 안에까지 들어가는 시간을 말했던 모양이다.

얼음골 사과를 형상화한 벤치가 입구 앞에 설치되어 있다. 여름이라면 나름 운치가 있었을지도 모를 시설이지만 겨울철에는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사람을 넣어서 찍어보면 어떨까 싶어서 아내보고 잠깐 앉아 보라고 했더니 바닥의 차가운 느낌이 싫은지 그냥 내빼버린다.

우리 외에는 앞에도 뒤에도 단 한 명의 관광객도 없는 얼음골 최대의 비수기인데 입장료를 내려니 괜히 아까운 생각이 든다. 이것은 무슨 심뽀인가? 숙박업소들이 주말에는 방값을 더 받는 것도 어쩌면 같은 생각인지도 모른다. 방이야 주말이든 주중이든 들어가는 비용이 똑같은 법인데 어째 사람이 많은 주말에 돈을 더 받는단 말인가? 경쟁률이 높아지는 것과 방값이 올라가는 것이 비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사람이 몰릴 때 한 몫 잡자는 얘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구차한 변명 같지만 그런 문화 속에 살다보니 관광객이 없을 때 입장료를 내는 것이 아까운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닐까? 사람이 적든, 많든 일정한 액수의 입장료를 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 어쨌든 이런 날은 입장료 받는 사람이 엄청 심심할 것 같다.

올라가는 길 옆의 사면에 암설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위쪽에 진짜 주인공을 만나기 전에는 그 돌너덜(talus인지 block field인지 육안으로는 잘 구별이 되지 않는)들도 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올라가는 길에 나중에 찍으려고 게으름을 떨다가 엉뚱한 곳으로 내려오는 바람에 셔터 찬스를 놓친 경우도 적지 않았지만 이렇게 섣부르게 감동했다가 진짜를 보고 미리 찍어댄 것이 무색해지는 경우도 있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알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시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얼음골 입구 앞에 있는 벤치. 반으로 자른 사과 모양이다>

 

<얼음골 안내판에서는 그 원리를 알 수가 없다>

 

 

알 듯 말 듯 한 얼음골의 비밀

 

잔설이 남아있어서 발걸음이 조심스러운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오른쪽으로 엄청난 돌너덜 지대가 나타난다. 중생대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이 암설들은 산정부의 암괴가 동파되어 굴러 떨어진 애추(talus)이다. 안식각에 퇴적되어 있지만 사면의 경사가 상당히 급하다. 이런 대규모의 암설지대는 일종의 동굴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볼 수 있다. 보령의 폐광을 이용한 냉풍욕장과 기본 원리는 유사한 것이다. 지하의 기온은 연중 일정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느껴진다. 보령 냉풍욕장의 경우는 그 온도가 약 14정도이다.

그런데 이곳은 시원한 정도를 넘어 얼음이 어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는 얘기가 되므로 보령의 예와는 다른 메커니즘이 있어야 한다. 더욱이 늦봄부터 얼음이 맺히기 시작하여 한여름에 더욱 많은 얼음이 생기고, 여름이 지나면서(處暑) 녹기 시작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도대체 어떤 원인일까?

두텁게 쌓여 있는 바위틈으로 유입한 공기는 동굴 속처럼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냉각이 된다. 너덜 내부의 차가운 지하수도 공기의 온도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그런데 차가워진 공기가 바위틈에서 뜨거운 외부로 빠져 나올 때 특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즉 냉각되어 압축(고기압) 상태인 공기가 외부의 저기압 상태인 공기 중으로 유입되면서 급격히 팽창하게 되는 것이다. 열적인 원인 없이 기압차에 의해 일어나는 이러한 현상을 단열팽창이라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급격하게 기온이 내려가는 현상이 발생한다. 지형장벽에 의해 강제로 상승하는 공기가 일정한 고도에 이르면 기압차에 의해 팽창하는 현상과 같은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공기가 팽창할 때 온도가 하강하는 것은 반대로 압축에 의해 온도가 상승하는 현상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공기에 압력이 가해지면 온도가 올라가는 것과는 반대로 공기의 압력이 감소하면 온도가 내려가는 것이다. 이러한 원인으로 외부와의 기압차가 커지는 한여름으로 갈수록 암설 내부에서 표면으로 배출되는 공기의 온도가 더욱 내려가면서 급격하게 수증기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얼음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곳에도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서 있다. 자세하지는 않지만 전설 따위로 가득 채워져 있는 안내판이 아니라서 훨씬 보기가 좋다. 울산에서, 부산에서, 그리고 이곳에서도 이렇게 지리적 설명이 되어있는 표지판을 보니 이 지역이 이쪽 방면으로는 훨씬 진전된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양의 아이콘인 '미르피아'는 밀양의 상징인 용(미르)에서 나왔다>

 

<마음에 쏙 드는 안내판. 경고와 제약, 또는 훈계조 일색인 안내판들이 이젠 사라졌으면 좋겠다>

 

<얼음골 가는 길>

 

<얼음골 돌너덜이 만들어진 원리를 설명하는 안내판을 드디어 만났다. 하지만 얼음이 어는 원리를 설명한 것은 아니다>

 

<여름에 얼음이 언다는 그곳. 근데 지금은 겨울이니…>

 

<이 설명문에서도 얼음이 어는 원리를 정확히 설명하고 있지 않다>

 

<얼음골의 돌너덜(애추, Talus)>

 

<얼음골 가는 길에 케이블카가 보인다>

 

<귀여운(?) 1인용 주차장>

 

<계곡에 얼음이 얼어서 아이들이 썰매를 탄다>

 

<영남의 알프스 준령을 오르는 케이블카>

 

밀양댐 전망대의 착한 음식점

 

다음 목적지는 삼랑진댐이다. 밀양으로 되돌아가서 가는 길은 아까 왔던 길이므로 매력적이지 않은데 지도를 보니 산내면 소재지에서 24번 국도를 가로질러 영남의 알프스를 타고 가는 길이 있다. 1077지방도, 1051지방도, 69번 지방도로 이어지는 이 길은 지도상으로도 상당히 구불구불한 산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077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단장면 범도리에서 1051번 도로를 바꿔타고 남쪽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이 길을 따라 가다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횡재를 만났다. 길 옆으로 경상계 퇴적층과 돌너덜을 보면서 가고 있는데 갑자기 높다란 댐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지리학도에게는 이런 것이 횡재다. 지도를 찾아보니 밀양댐이다. 밀양댐은 삼랑진댐과는 달리 일반 댐식 발전을 하는 다목적댐이다. 퇴적암 지역에 발달한 협곡을 막아서 만들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1051지방도에 바로 붙어 있고 전망대도 있어서 지나가는 길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면서도 답사를 할 수 있다. 댐의 위쪽에도 전망대가 있어서 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데 간이 음식점도 있고 넓은 주차장도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숨을 돌리고 간다. 떡볶이, 김밥 같은 것들을 파는 음식점에 들어갔더니 예상과는 달리 값이 아주 싸다. 착한 가격만큼이나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유쾌한 주인아주머니와 성격이 모친을 꼭 닮은 딸 덕분에 기분이 좋다.

 

<밀양댐>

 

<밀양댐 하류쪽 산록에 드러난 퇴적암층>

 

<밀양댐>

 

<밀양댐 옆에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 옆의 경상계 퇴적층 노두>

 

<전망대에서 바라본 밀양댐 전경>

 

<전망대에서 바라본 상류쪽>

 

경상남도에도 스키장이 있다

 

1051번에서 69번으로 바꿔 타는 부분은 길이 약간 복잡하다. 고도가 높은 산길인데도 가게가 여러 개 있는데 특히 스키샵이 눈에 띈다. 양산에덴벨리와 관련된 스키샵들이다. 여러 해 전에 고입 선발고사 출제를 들어갔던 때가 생각이 났다. 무주가 가장 남쪽의 스키장이라는 선택지를 만들어 놓고 혹시 몰라 자료를 찾다보니 바로 이 스키장이 개장 예정이라는 광고를 찾을 수 있었다. 광고를 보면서 과연 이 지역에 스키장이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어엿하게 개장을 해서 이렇게 손님을 맞고 있는 것을 우연히 확인하게 된 것이다. 과연 영남의 알프스라 할 만한 지역이다. 위도 상으로는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지역이지만 산지의 고도가 높기 때문에 스키장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일대는 겨울 적설량이 150mm 이하로 우리나라의 여러 스키장 가운데 가장 눈이 적게 내리는 지역이다. 해발고도가 높아서 눈이 녹지 않는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강설량이 적기 때문에 인공강설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스키장이 만들어진 이유는 시장 접근성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이곳을 제외한 국내 최남단 스키장이 전북 무주에 있는 점을 생각하면 이곳은 영남 지역을 포괄할 수 있는 최적의 접근성을 가진 곳이라고 볼 수 있다. 부산을 비롯하여 대구, 울산 등 광역시를 시장으로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스키장에 비해 유지비가 많이 들어도 시장을 확보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지인 것이다.

 

<영남권에서 유일한 스키장이 근처에 있다>

 

마침표를 제대로 찍지 못한 삼랑진 발전소

 

69번 지방도를 타고 낙동강 연안까지 내려간 다음 1022번으로 바꿔 타고 밀양쪽으로 다시 올라간다. 천태산(631m)의 남록에 위치한 천태호는 상부댐이고 능선 넘어 금오산(766m), 구천산(620m)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안태천을 막은 안태호는 하부댐이다. 그러니까 삼랑진 양수발전소는 같은 수계에 상부댐과 하부댐을 건설한 것이 아니라 다른 수계(물론 모두 낙동강으로 유입하지만)를 막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안태호에 잠깐 들렀다가 천태호를 향해 산길을 올라갔다. 안태호의 상류에 해당하는 삼랑진읍 행곡리에는 팬션 등의 시설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천태호만을 생각하고 계속해서 올라갔는데, 아뿔사 거의 정상 부근에 차단기가 내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용무가 있는 사람은 연락하라고 담당자의 전화번호가 붙어 있어서 전화를 했다. 멀리서 답사를 왔노라고. 하지만 눈이 녹지 않아서 출입을 허가할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멀리서를 재차 강조했지만 대답은 똑같다. 여기까지 왔는데 상부댐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실 직접 눈으로 본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발전하는 것을 사진으로 남긴다거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지리학도는 꼭 그것을 확인하고 싶은 본능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답사의 마지막 코스인데 마침표를 제대로 찍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차를 세워놓고 차단기를 넘어 걸어간다고 했더니 도보로는 한 시간은 걸리는 거리라고 한다. 최소한 왕복 2시간이 걸린다는 얘긴데 지금 시각이 오후 4시다. 불가능할 때는 얼른 포기하는 것이 마음이 덜 아프다. 조금 걸어 올라가서 안태호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서 안태호 사진을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안태호>

 

<천태호 가는 길에서 바라본 안태호>

 

계획적인 무계획, 다음을 기대하게 한다

 

~ 이젠 돌아가야 한다. 나는 하루, 이틀은 더 있을 수 있는데 아내가 내일 일이 있어서 가야만 한단다. 일주일여의 짧지 않은 답사였지만 그동안 보고 싶었던 것들을 볼 수 있어서 피곤할 줄 모르고 돌아 다녔다. 계획은 세웠으나 구체적인 계획은 없이 돌아다니니 훨씬 부담이 없어서 좋았던 것 같다. 시간을 정해 놓고 여행을 하게 되면 시간에 쫓기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일정을 빡빡하게 짜야 하기 마련이다. 나의 여행은 항상 그랬다. 물론 그런 여행 방법에 아쉬움을 느꼈던 적은 없었지만 이날까지 그런 방법만 고집하다 보니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아내와 아이들까지 나의 그런 방법에 적응, 또는 세뇌가 되어 우리의 여행은 항상 그랬다. 기회가 된다면 또 이런 기회를 만들어 봐야겠다.

마침 광덕산을 다녀온 광덕산 동지들이 빨리 올라오라고 연락을 해왔다. 오늘 이 답사 때문에 내가 산행 약속을 어겼으니 저녁에 막걸리라도 푸지게 함께 해야겠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