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영남 일주

밀양

Geotopia 2014. 2. 5. 21:35

답사 일시: 2014.1.18(토)~1.19(일)

 

주요 답사지삼문동 하중도-추화산 봉수대(하중도 관망)-밀양관아-밀양여고-영남루-밀양읍성 성곽-무봉사-시례호박소-얼음골-밀양댐-삼랑진 양수발전소(안태호)  * 붉은 글씨 부분이 이 글의 내용입니다.

 

<밀양시 답사 경로(1월19일)  *원도: Google>

 

▶ 밀양을 간 이유: 삼문동 하중도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남밀양IC에서 밀양으로 진입했다. 밀양시내쪽에서 나오는 불빛이 많지 않아 잘못 나온 것이 아닌가 싶은데 그도 그럴 것이 남밀양IC는 밀양시 상남면 소재지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밀양시내까지는 25번 국도를 타고 1.5km 정도 더 북쪽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밀양강을 가로지르는 예림교를 건너면 밀양역으로 이어지는 삼거리를 만난다. 역 주변은 최상위 중심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2차 중심지 정도는 만들어지는 것이 보통이므로 일단 가서 근처에 숙소가 있는지 확인을 해보았다. 다른 곳을 돌아다니다가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면 돌아올 베이스캠프 격으로.

  몇 개를 확인해 두고 이번엔 시내쪽으로 들어가보기로 한다. 밀양에 오게된 가장 큰 이유인 밀양강 하중도는 삼문동에 있다고 알고 있었으므로 삼문동을 향했다. 역전에서 직선도로를 따라 가다가 다리(용두교)를 건너면 삼문동이다. 이 섬은 특별한 이름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크기는 한강의 여의도에 비하면 훨씬 작지만 전형적인 하중도(河中島) 지형을 보여준다. 장축의 길이가 1.9km정도로 3.6km에 이르는 여의도의 절반 조금 넘는 수준이다. 그렇지만 여의도가 한 쪽(영등포쪽) 지류의 수량이 적어 불완전한 하중도 형태를 보이는 것에 비해 이곳은 사방이 모두 수량이 풍부하여 섬의 모양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비슷한 크기의 하중도가 상류쪽에 하나 더 있는데 삼문동 일대에는 시가지가 발달하는 것에 비해 이곳은 모두 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아래 지도 참조>

 

 

▶ 된장이 없는 된장박이바비큐

 

  천천히 삼문동을 지나다보니 금세 반대쪽 다리(밀양교)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다보니 울긋불긋 숙박업소 네온사인이 보이는 것이 이쪽이 더 번화가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시내로 들어가보니 벌써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의외로 유흥업이 발달하지 않은 곳으로 보인다. 다시 되돌아서 삼문동으로 가기로 했다. 아까 지나온 길은 삼문동 중심가는 아닌 듯 하여 되돌아가서 중심가를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밀양보건소 앞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해서 좀 더 섬의 중심부로 진출해보았다. 하지만 이곳 역시 크게 번화한 곳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밀양의 최고 중심지는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궁금하지만 지금은 그곳을 찾아나설 시간이 아니다. 일단 숙소를 정하고 고픈 배를 달래야 한다. 섬 중심부를 북서-남동쪽으로 가로지르는 25번 국도를 가로질러 건넜더니 몇 개 숙박업소가 보여서 그 중 하나를 골랐다. 대충 짐을 풀고 걸어나와서 음식점을 찾았다. 근처에 음식점이 많지 않아서 25번 국도를 다시 건너 시내쪽으로 갈까 하다가 날씨는 춥고 가봐도 (아까 오는 길에 봤던 바로는) 요란한 식당가는 없었기 때문에 가까운 곳을 골라 들어갔다.

  이번 여행에서는 음식점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항상 그냥 가까운 곳을 찾아 들어갔는데 언제나 평균 이상은 되었던 것 같다. 이날도 마찬가지. 밀양의 특산 음식은 무엇일까? 아내와 둘이서 생각을 해봤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앞에 바베큐집이 보이는데 출출한데다 소주도 한 잔 마셔야 하므로 바베큐가 괜찮을 것 같다. 장사를 거의 마쳤는지 열심히 정리계산을 하고 있던 주인이 된장박이바비큐를 추천한다. 처음 듣는 이름의 음식이므로 일단 먹어보기로 한다.

 

  결론은?

  대~박~

 

  나야 음식 맛을 몰라서 질보다는 양으로 먹는 사람이니 나의 맛 품평은 믿을 것이 못 되지만 아내도 괜찮다고 하는 것을 보면 괜찮은 모양이다. 오죽하면 친구들은 내가 구별할 수 있는 음식 맛은 '맛있다'와 '아주 맛있다' 두 종류 뿐이라고 놀릴까ㅠㅠ. '된장박이'란 이름이 붙어서 된장 장아찌 마냥 된장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돼지고기를 연상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된장이 묻어있는 고기일 줄 알았다고 했더니 그런 얘기들을 많이 듣는다고 한다. 하지만 된장에 박아놓는 것은 아니라면서 이름을 조금 바꿔야할 것 같단다. 그리고 경남의 술 '즐거워예(요 녀석 이름이 영 생각이 나질 않아서 주인에게 '좋은데이' 말고 다른 소주라고 말했더니 알아듣고 가져다 준다)'를 드디어 밀양에 와서 맛보게 되었다. '좋은데이'는 돗수가 16도에 불과한 소주 아닌 소주다. 소주맛이 나고 돗수가 낮으니 아마도 술의 소비량이 훨씬 많지 않을까 싶다. 반면에 '즐거워예'는 일반 소주인데 이 녀석은 만나기가 어려웠다. 근데 왜 '그대여…예'라고 써있는 것일까? 분명히 주인도 '즐거워예'라고 했는데… 이유를 못 물어봤다.

  오늘도 소주 1병, 맥주 1병, 쏘맥으로 가볍게 취기를 올려본다. 이러다 알콜중독이 되는 건 아닌지… 왕창 먹고 며칠 못 마시는 것보다 매일 조금씩 먹는 것이 알콜중독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말이다.

 

<된장박이바비큐와 '즐거워예' 소주>

 

 

▶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시위현장을 지나다

 

  여명과 함께 일찍 일어났다. 추화산에 올라 삼문동 하중도를 보기 위해서이다. 어제 저녁에 아내에게 새벽 산행을 제안했더니 예상외로 순순히 동의를 해서 속으로 약간 놀랐었다. 산행을 거듭하면서도 실력이 도무지 늘지 않는다고 지청구를 해대기도 했지만 느리긴 해도 실력이 조금 늘기는 한 것 같다. 늘었다기 보다는 어쩌면 요령이 생겼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 나이에 체력이 향상될리는 없을 것 같고 경험이 축적되니까 체력을 안배하는 요령이 생긴 것이다. 새벽 산행을 생각한 이유는 산에 다녀오면 아무래도 땀이 나므로 그대로 돌아다니면 하루종일 찜찜한 느낌이 계속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새벽 일찍 다녀와서 샤워를 하고 길을 나서면 하루가 훨씬 상쾌하지 않을까 하는.

  삼문동 시내를 통과하여 어제 갔던 밀양교를 향했다. 그런데 다리 앞에 이른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전경들이 서 있다. 왠일일까 생각하는데 다리 앞 공터에 비닐을 두껍게 씌워서 만든 천막이 쳐져 있고 현수막이 여러 개 걸려있다. 그 유명한 밀양송전탑 반대 시위현장인 것이다. 어제 저녁에는 다리 건너 영남루 앞에서 피켓 시위가 있었다고 아내가 일러준다. 나도 사람들이 서 있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운전중이라 글귀를 자세히 보지 못했었다. 이른 새벽이라서 전경들 외에 주인공들의 인기척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이틀 전에 지났던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가 이곳을 통과하게 되면서 생긴 사태이다. 단순히 이 지역민들의 문제로 보는 차원을 넘어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 정책 전반에 걸친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는 사태이다. 원자력 발전소는 해안 입지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이처럼 장거리 송전 역시 불가피한 것이며 이 과정에서 이런 문제가 파생되는 것이다. 소비 전력의 대부분을 원자력의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전력 생산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은 이런 문제들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역사의 현장을 그냥 지나치려니 일종의 부채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나중에 영남로에 올랐을 때 영남루에서 찍은 사진. 영남루는 밀양강을 사이에 두고 농성 현장과 떨어져 있다>

 

 

▶ 추화산 앞에서 추화산을 찾다

 

  미리 지도를 보고 위치를 확인해 두기는 했지만 실제로 찾는 것은 항상 만만치 않다. 추화산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짧은 코스는 밀양시립박물관 뒷쪽 충혼탑에서 올라가는 길이라고 지도에는 나와있었다. 밀양관아 앞에서 우회전해서 직진(용평로)을 하다가 고갯마루 내려서자 마자 시청 방향으로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그대로 직진을 했다. 가다보니 자꾸 시내를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아내가 재빠르게 네비양을 호출했는데 네비양은 한 술 더 떠서 계속 앞으로 가란다(나중에 알고 보니 네비양이 알려준 곳 역시 추화산 등산로가 맞기는 한데 다른 출발점이다). 육안으로 보기에는 밀양강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산(영남루와 밀양읍성이 있는 산)이 가장 시야가 좋을 것 같은데 우린 자꾸 거기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의 특기(?)를 발휘하여 네비양의 의견을 무시하고 그 산을 지향하면서 큰길을 벗어나 우회전을 했다. 네비양은 경로를 벗어났다며 난리가 났다. 다리(용평교)를 건너면 삼문동 하중도 상류쪽에 있는 또다른 하중도인데 그 앞에서 차를 돌렸다(미리 알았더라면 간 김에 그 섬을 좀 돌아보고 나왔을텐데… 그래서 답사는 사전 준비가 많을수록 더 많이 보게 되어 있다). 시립박물관 근처니까 이렇게 멀리 나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는데 마침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네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추화산이 어디있어요?"

  "추화산? 잘 몰라요"

  엥~?

  "그럼 시립박물관은요?"

  "진작 그렇게 말하시지. 조~기 앞으로 가다가 오른쪽으로 가면 되요"

 

  거참 헷갈린다. 동네사람이 추화산을 모른다면 이 산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산이란 말인가?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우린 추화산 바로 앞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길을 일러준 그 할아버지는 추화산 바로 아랫마을에 살고 있는 분이었고ㅠㅠ 그렇다면 동네사람들은 이 산을 추화산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밀양시내 *원도: Daum지도>

 

 

▶ 지리학도에게만 의미있는 장소?

 

  어쨌든 어렵사리 시립박물관과 충혼탑을 찾았고 새벽 등산을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에도 등산로 안내판이 없다. 그렇다면 이곳이 아닐 수도 있다. 좀 전에 동네 할아버지가 추화산을 몰랐던 것이 겹쳐지면서 갑자기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지도에는 틀림없이 충혼탑 옆으로 등산로가 나 있었다. 찾아보니 표지판은 없지만 조그만 등산로가 분명히 있기는 있다. 나는 의미를 많이 두고 찾아온 곳이므로 거기에 그럴싸한 안내 표지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의외로 유명하지 않은 장소인 모양이다.

  표지판이라고는 전혀 없는 길을 따라 산을 올랐다. 우리 천안의 봉서산을 생각해보면 중간에 표지판이 몇 개씩은 서 있는데 여긴 전혀 없어서 가는 동안에도 조금 걱정이 된다. 올라갔다가 허탕을 치면 새벽잠을 설치며 올라온 보람이 전혀 없지 않은가? 더구나 아내는 길도 모르면서 끌고 다녔다면서 다시는 안 따라 나선다고 으름장을 놓을 것이다. 그래도 여기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올라가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급경사면이 나타난다.

  급경사면을 올라서자 드디어 정상의 평지가 나타나는데 돌을 가지런히 쌓아 만든 봉수대 구조물과 함께 노출된 암괴를 볼 수 있다. 이 일대는 백악기 화산암(안산암)이 분포하는 지역으로 노출된 암괴는 울퉁불퉁한 화산암 암괴이다. 밀양시의 지질구조는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대부분의 지역이 낮은 저지대로 제4기 충적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밀양역 주변에서부터 삼문동 하중도, 그리고 영남루 앞쪽과 시청 일대까지가 모두 4기 충적층이다. 반면에 충적층 주변의 산지들은 모두 백악기 화산암이다. 화산암으로 이뤄진 구릉성 산지들이 시내 주변에 분포하는데 이 산지들은 모두 산성과 읍성 등 방어를 위한 성으로 이용되었다. 추화산은 읍성의 외곽에 위치하여 읍성을 보위하기 위한 산성이 설치되었다. 반면에 영남루 뒷산에서 밀양여고에 이르는 관아를 둘러싼 낮은 산지들은 읍성으로 이용되었다.

 

<*Kma: 유천층군 주사산안산암질암류 밀양안산암(중생대 백악기) / Qa: 제4기 충적층  *자료: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전망이 아쉬운 추화산 봉수대

 

정상의 봉수대 주변은 돌담을 가지런히 쌓아 놓아서 올라서서 걸어 다닐 수 있다. 1m라도 더 높은 곳에서 전망을 보기 위해 봉수대에 올라서니 주변이 잘 보이기는 하지만 앞에 키가 큰 나무들이 가려서 약간 아쉬운 전경이 펼쳐진다. 약간 아쉽기는 하지만 어쨌든 밀양에 온 목적은 달성을 했다.

밀양읍성 성벽이 지나는 산지의 정상 부분이 나무 사이로 보이는데 이 봉우리는 밀양강에 바로 면하고 있기 때문에 시원하게 강줄기를 보는 것을 방해한다.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대신에 밀양강 하류의 너른 들판과 수많은 비닐하우스 등 예상치 못했던 볼거리가 쏠쏠하다.

이 봉우리는 추화산성의 정상 부분으로 시야가 좋기 때문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 산성의 최고봉은 사실은 봉수대가 아니라 봉수대에서 동쪽으로 200m 정도 떨어져 있는 봉우리이다. 혹시 전망이 좀 나을까 해서 걸어가 봤더니 여기는 그냥 나무숲으로 덮여 있어서 주변을 전혀 볼 수가 없다. 봉수대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은 옛날부터 그 자리가 주변이 잘 보이는 곳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봉수대는 무조건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너무 높은 곳에 있으면 시야는 좋을지 몰라도 사람이 통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긴급한 연락을 하는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불리하기 때문이다.

 

<추화산 봉수대. 높이가 높지는 않지만 주변이 잘 보여서 봉수대 입지로 좋은 위치이다> 

 

어제 밤에 헤매고 다닌 곳은 모두 중심지가 아니었다

 

봉수대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영남의 알프스가 우람하게 펼쳐져 있다. 서쪽으로는 밀양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산에 올라서 보니 밀양의 중심지는 바로 그곳, 추화산의 서쪽, 그러니까 시립박물관 아래쪽인 것을 알 수 있다. 어제 저녁에는 그곳의 존재를 아예 몰랐기 때문에 거기까지 갈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추화산에 올라서서 밀양시내 전체를 관망하다 보니 대략 그림이 그려진다. 밀양강 북쪽 영남루와 관아를 중심으로 원래 밀양의 중심지가 있었다. 그리고 경부선 개통과 함께 밀양역이 밀양강의 하류 쪽에 세워졌다. 이곳은 과거 밀양의 중심지로부터 남동쪽으로 3km 가까이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하중도를 사이에 두고 강을 두 번이나 건너야 하는 곳에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곳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역 주변은 중심지로 크게 성장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밀양역과 구 밀양 사이에 삼문동 하중도가 있다. 경관이 뛰어나고 철도역과 시가지 사이에 있으므로 택지로 각광을 받았을 것 같다. 지금의 중심지는 구 밀양의 서북쪽, 밀양읍성의 밖에 발달하고 있다. 그래서 밀양은 삼문동 하중도를 가운데에 두고 북북서 쪽에서 남남동 쪽으로 길게 뻗은 형태로 발달하는데 모양도 그렇고 중심지의 형성 과정도 그렇고 상당히 특이한 느낌이 든다. 지금의 시청은 북쪽 외곽에 있는 것으로 보아 근래에 이전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원래 있던 자리는 어디였는지 알 수가 없다. 삼문동은 아파트를 중심으로 택지로 발달한 곳임을 알 수 있으며 북쪽의 중심가는 시가지의 확대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팽창한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밀양의 중심가는 삼문동도, 영남루 앞도 아니다. 영남루 일대는 조선시대의 중심지였으며 새로운 중심지는 옛 중심지의 북쪽으로 시청, 공설운동장, 시립박물관 등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니까 어젯밤에 헤매고 다녔던 곳들은 모두 중심가가 아니었다. 엉뚱한 곳에서 중심가를 찾아 헤매고 다녔던 것이다.

 <밀양 하중도에 자리 잡은 삼문동과 구시가지(사진의 오른쪽)>

 

<봉수대에서 밀양강 하류쪽(남쪽)을 조망한 장면. 하천의 양 옆으로 넓은 범람원이 발달하고 있다> 

 

<봉수대 주변에는 중생대 화산암들이 노출되어 있다> 

 

<봉수대의 동북쪽으로는 영남의 알프스가 웅장하게 펼쳐진다>

 

<정상 바로 아래의 급경사면. 내려가기가 약간 불편할 정도다> 

 

<어느님의 유택(幽宅)에는 문이 달려있다. 유택도 집은 집이므로 문이 있을 법도 하다> 

 

대로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는 밀양 관아

 

숙소로 돌아와 아침식사(여행 중 우리의 아침 식사는 과일과 미숫가루, 그리고 커피 한 잔이었다. 시간도 절약하고 영양 과다를 조금이라도 막아볼 생각으로)를 한 다음 밀양관아로 향했다. 이번엔 25번 국도를 타고 서북쪽으로 섬을 가로지른 다음 밀양강의 북쪽 제방을 따라 영남루 방향으로 이동했다. 이 길의 이름은 남천강변로인데 기세 좋게 갔더니 영남루 앞에서 좌회전을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밀양교를 건너 다시 삼문동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다행스럽게도 차가 없어서 잽싸게 후진을 해서 골목으로 들어간 다음 상설시장을 끼고 서쪽과 북쪽으로 빙 돌아서 밀양관아에 도착했다.

관아 정문에는 인형 병사들이 보초를 서고 있는데 관아에서 밖을 보면 길(중앙로)이 직선으로 보이지 않고 약간 틀어져 있다. 대략 10°~15° 정도 왼쪽으로 틀어져 있는데 아마도 이 길은 과거 밀양읍성 내부에 있던 도로가 그대로 고착화된 것 같다. 우리나라 읍성 내부의 길들은 대개 직선상으로 교차하도록 만들지 않고 약간씩 어긋나도록 만들었다.

 

<밀양현 관아 정문인 응향문(凝香門)>

 

<관아 정문에서 시내를 바라보면 관아로 이어지는 대로가 약간 틀어진 방향으로 뻗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관아의 동헌. '近民軒', 백성 가까이 있다는 뜻인데… 어쩌면 이런 허울뿐인 구호들이 백성들이 관을 믿지 못하게 하는 이유였을수도 있다>

 

<관아 서문 옆에 이런 지도를 안내해 놨다>

 

<밀양현 관아 앞의 공덕비들. 얼마나 많은 민초들의 어깨에 짐을 지웠을까? 가로등은 영남루를 형상화한 것 같다>

 

밀양여고 학생들은 다리가 튼튼하다?

 

관아를 돌아다니다 보니 관아 뒤쪽 산 중턱에 학교가 하나 보인다. 지도를 찾아보니 밀양여고인데 올라가 보면 시내를 관망하기가 좋을 것 같다. 밀양여고는 학생들이 모두 다리가 튼튼할 것 같다. 높이도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경사가 얼마나 급한지 자동차로도 힘이 들 지경인데 학생들이 이 길을 걸어 다니려면 얼마나 힘이 들까? 날씬해지겠지만 졸업할 때쯤엔 종아리는 굵어질 것 같다고 아내랑 농담을 주고받으며 밀양여고에 들어갔다. 학교에 들어가 보니 운동장은 더 기가 막힌다. 본관 건물에서 거의 수직에 가까운 경사면을 내려가야만 운동장에 갈 수 있다. 체육시간이 두렵겠다.

비교적 전망이 좋은 편이기는 한데 안타깝게도 오른쪽은 나무에 가려서 관아와 상설시장 쪽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앞쪽으로 영남루와 삼문동 시가지는 잘 보인다. 밀양읍성 성벽은 이곳의 뒤편으로 조성되었을 것이다. 강이 앞을 막고 산이 둘러싸고 있는 방어상으로 상당히 유리한 형세로서 읍성은 이러한 자연적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조성되었다.

 

<밀양여고에서 바라본 영남루와 삼문동 일대>

 

자기 페이스로 걸을 수 있는 영남루 계단

 

산비탈을 내려와 영남루 임시주차장(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안내되어 있다)에 주차를 하고 영남루에 올랐다. 어제 밤에 송전탑 반대 시위를 했던 바로 그곳이다. 계단이 무척 인상적이다. 계단을 지그재그로 가로질러 경사면을 만들어 놓았다. 계단을 타고 올라갈 수도 있고 힘에 부치면 경사면을 따라 자기 페이스로 올라갈 수도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다른 곳에서는 이런 계단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으니 밀양의 특산품인 셈이다. 다른 곳에서도 차용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 어떤 문화는 쉽게 전파되지 않는 것도 있다(한 달 후쯤 제주도 추사적거지 전시관에서 같은 구조의 계단을 만났다). 대중문화, 특히 다소 퇴폐적인 것들은 상대적으로 전파가 빠른 것에 비해 이런 종류의 문화는 쉽게 전파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가 없으며 수익과 직접 연결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영남루에 올라보니 빨간 옷을 입은 노인들이 많이 있다. 소방차도 와 있고 소방훈련을 한다는 글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의용소방대 훈련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인데 긴장감있게 진행하는 훈련은 아닌 것 같다. 아내는 일요일인데 무슨 훈련이냐며 혹시 송전탑 시위 반대 시위가 아닐까 넘겨짚는다. 내 생각엔 아내가 너무 나간 것 같다.

 

<계단으로 갈 수도 있도 경사면으로 갈 수도 있는 영남루 앞 오르막길>

 

<영남루>

 

<영남루에서 바라본 밀양강과 삼문동(하류쪽)>

 

<영남루에서 바라본 밀양강과 삼문동(상류쪽). 멀리 보이는 다리는 경부선 KTX 노선이다>

 

영남루 뒷산에 발달한 단구

 

영남루 마당을 지나면 또 계단이다. 계단을 오르기 전에 옆으로 작곡가 박시춘의 고택이 있다. 초가를 복원하여 단장을 해놓았다. 계단을 계속 오르면 사명대사상이 있고 산책로가 이어지는데 일제 때 만들어졌음직한 느낌의 특이한 구조물이 방치되어 있다. 무슨 설명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계속 정상 쪽으로 올라가다 보니 동그란 원력(圓礫)들이 산 중턱에 흩어져 있다. 이곳이 단구라는 뜻인데 현재의 하상면과는 꽤 고도차가 난다. 낙동강의 중하류 부분에 해당하지만 융기량이 상당히 컸음을 알 수 있다.

능선에는 복원된 성벽이 길게 이어지는데 시간이 충분하면 걸어보고 싶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영남루와 연결된 밀양읍성 성곽을 올라가는 길에 단구를 만났다>

 

<중턱의 경사면에 둥근 돌들이 쌓여있다>

 

<밀양읍성 성곽>

 

 

<밀양읍성 성벽에서 무봉사로 내려오는 길에 바라본 밀양강 상류쪽과 경부선 KTX>

 

무봉사에서 무봉리 순대가 떠오르다니

 

올라온 쪽의 반대쪽, 그러니까 밀양강 쪽으로 경사면을 따라 내려왔다. 이 산은 곡류하는 밀양강의 북쪽 공격사면에 위치하여 남쪽의 경사가 매우 급하다. 약간 높은 신발을 신은 아내의 발걸음이 상당히 불안하다. 혹시 아내가 굴러 떨어지면 앞에서 막아야 하므로 이런 지형에서는 앞장을 서서 내려가야 한다.

강변의 급경사면에 세워진 작은 절이 있는데 이름이 무봉사(舞鳳寺)이다. 아담한 절이지만 주변 경관이 수려해서 상당히 분위기가 있다. 아내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유명한 절인 것 같다고 한다. 좀 흔한 이름인 것 같아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다가 농담으로 혹시 무봉리 순대 생각하는 거 아녀?’ 하고 물었더니 박장대소를 한다. 무봉이 이 절 이름 무봉과 헷갈렸던 것이다. 순대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밀양강 공격사면에 자리를 잡고 있는 무봉사>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