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영남 일주

부산Ⅰ: 산복마을 야간 답사

Geotopia 2014. 2. 2. 12:14

답사 일시: 2014.1.17(금)~1.18(토)

 

주요 답사지: 고리원자력발전소(관망)-영도 해양조사원(전국지리교사연합회)-동구 산복 마을-송도해수욕장-암남공원-아미산 전망대-을숙도 에코센터-낙동강삼각주(부산광역시 강서구)  * 이번 글은 빨간색 부분까지 입니다.

 

 

<17일 답사 경로  *원도: Daum 지도>

 

 

고리원자력 발전소를 지나며

 

  서생면 소재지를 통과하면서 진행방향으로 고압선 철탑들이 보인다.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고압선들이다. 이것들 가운데 어떤 것이 밀양을 거쳐 창녕의 북경남 변전소로 향할 것이다. ‘밀양 송전탑 사태’는 매우 유명한 사건이지만 기실 그 전기가 어느 발전소에서 오는지는 대부분 관심 밖이다. 2011년과 2012년에 신고리 1,2호기가 새롭게 건설되었고 현재 3, 4호기가 건설 중인데 여기서 생산되는 전기가 송전될 통로가 바로 밀양을 통과할 예정인 것이다. '밀양 송전탑 건설'로 알려진 이 사업의 정식명칭은 '765KV 신고리-북경남 송전 선로 건설'이다.

 

<신고리원전교차로에서 바라본 고리원전 송전탑들>

 

  고리원자력발전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건설된 원자력발전소이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에 있는 이 발전소는 1978년 4월부터 발전을 시작한 1호기를 필두로 현재 6호기가 가동 중이고 새롭게 2호기가 현재 건설 중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원자력 발전소이다. 최초의 원자로는 수명이 30년으로 설계되어 이미 2007년 6월에 공식적인 가동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 해 12월에 10년 간 재가동을 결정한 후 2008년 1월부터 재가동에 들어갔다. 이는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하겠다. 세계적으로 볼 때 선진국의 추세는 대부분 원전 축소, 또는 최소한 현상 유지가 대부분인데 우리나라는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한수원과 정부는 물론 안전성 검사를 마쳤기 때문에 수명 연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후쿠시마 사태에서 보듯이 원전의 안전성은 단 한 번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을 만큼 되어야만 한다. 원자로가 파괴된 지 햇수로 4년째 접어들고 있지만 현재 후쿠시마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여전히 방사능을 내뿜고 있다. 작년에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원자력 발전소에 부실부품을 사용했던 사건은 노후 원전의 재가동과 함께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밀양 송전탑 사건은 1차적으로는 해당 주민의 생존권과 연결된 문제이지만 우리나라 원전 전반에 걸친 큰 그림으로 볼 필요가 있는 사건이다.

 

<31번 국도변에서 바라본 고리원자력발전소>

 

부산의 인구 감소 : Rank-Size Rule이 안 맞는 후진국?

 

  고리를 지난 시간이 대략 5:10분, 복잡한 부산의 교통 장벽을, 그것도 퇴근시간의 교통 체증을 극복하고 목적지에 제시간에 도착하려면 또 네비양의 신세를 져야만 한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해안도로를 따라 부산까지 가면 좋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날도 저물어서 경관을 볼 수가 없으므로 또한 의미가 없다. 네비양이 60번 지방도로를 안내하기에 부산-울산고속도로를 타라는 모양이구나 생각했더니 고속도로를 그냥 가로질러 지나쳐 버린다. 그러더니 정관면이라는 곳에서 좌회전을 해서 시내를 통과한 다음 회동교차로에서 번영로와 합류를 하는 길을 안내한다. 마음에 드는 길이다. 정관면은 물론 처음 가보는 곳인데 면단위 중심지지만 규모가 상당히 큰 교외주거단지로 보인다. 부산은 도시 내부에 택지가 절대 부족하기 때문에 빠르게 교외화가 진행되고 있는 도시이다. 3,567,776명(2013년 3월)으로 우리나라의 N0.2 도시지만 No.1의 절반이 훨씬 못 되는 인구 규모를 보이고 있다. Rank-Size 법칙(P=P1/rq)으로 본다면 우리나라는 심각한 종주도시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후진국형의 국가인 셈이다. 하지만 수위도시가 홀로 성장하여 법칙을 깨뜨린 것이 아니라 차위도시가 인구가 감소하여 법칙이 깨진 매우 특이한 형태이다.

 

 

 

  이미 부산시 외곽으로 많이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시 경계 안에 있는 이런 지역들이 활성화 된다면 부산시의 인구 감소를 어느 정도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충청도식 대화법과 경상도식 대화법

 

  번영로는 우리 천안에도 있는 이름인데 그 의미 때문인지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나는 개발이데올로기의 잔재 같은 느낌이 들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길은 생각과는 달리 크게 막히지 않는데다 네비양이 잘 안내를 해줘서 무난히 시간에 맞춰 도착을 할 수 있었다. 한국해양수산연수원과 국립해양조사원은 서로 인접하고 있는데 연수원에서는 식사와 숙박을 하는 것 같고 해양조사원에서는 대회를 하는 모양이다. 저녁 식사가 마무리 되어가는 시간인데 성환이가 주차장으로 마중을 나왔다. 밥을 안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벌써 식판에 내가 좋아할 것으로 추정되는 기름기 많은 반찬을 푸짐하게 담아서 챙겨 놓았다. 마눌 밥까지… 안 먹을 생각을 했던 것이 언제냐 싶게 푸짐한 반찬과 고봉으로 쌓아 올린 밥을 깨끗하게 해치웠다.

  저녁 행사(지리인의 밤)는 일곱 시 시작인데 행사장에 시간 맞춰 올라갔더니 아직 앞 강연이 끝나지 않아서 행사가 시작이 안 되고 있다. 로비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옆자리의 동서대학교 입학처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동서대학교가 이번 행사에 스폰을 했고 지리인의 밤에 학교 홍보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중 우리 잡담에 동참을 하게 된 것이다. 이야기 내용이야 고등학교 교사와 대학교 입학처장이 나눌 수 있는 일반적인 내용들이었지만 느낌이 참 독특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개입을 한다는 것이다. 전에 러시아 앙가라강 연안의 어느 음식점에서 만난 부산 할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그분 역시 난데없이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어 결국 판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렸었다. 그땐 좀 무례하다 느꼈었는데 이분은 ‘끼어든’ 것은 그때 그분과 같지만 내용은 좀 다르다. 자신의 얘기가 중심이 되긴 했지만 지속적인 의사교환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 충청도 정서와는 많이 다르다. 우린 웬만해서는 남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는다. 끼어들기는 커녕 멀쩡한 자기 자리에서도 자기 이야기를 다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표현하지 않으면 자신을 알릴 방법이 없다. 우린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중간이라도 가려’는 소극적인 자세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푼수를 떨어서 다른 사람의 입길에 오르는 것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절하게 자신을 표현해야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필요하면 기다리지 말고 직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예기치 않게 만난 그분에게서 배웠다.

 

간신히 받은 상

 

  30분 이상 늦게 지리인의 밤이 시작되었는데 문제는 여덟시에 동구청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산복마을(동구청 관할 지역)을 답사하기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지리인의 밤을 전지연 사상 최단 시간에 마무리하는 약식 행사 진행이 불가피해졌다. 사실 내가 여기에 시간을 맞춰 온 것은 이 시간에 ‘올해의 지리인 상’을 받기 위해서였다. 사정이 부득이하면 대리 수상도 가능하겠지만 추천을 해주신 충지연의 최규학 회장님과 문승규 사무국장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와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쨌든 각 시도별로 한 명씩 추천인이 호명되어 단상에 나갔다. 초스피드로 한 명씩 상패를 받는데 너무 서두르다 보니 한 명의 수상자가 상패를 받지 못했다.

문제는 그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 ㅠㅠ

  단상 바닥에 상패 한 개가 남아 있는 것이 보였으므로 그것이 내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나 못 받았어요~’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손수 주워들 수도 없고… 인사하고 내려갈 때 가져가리라 맘먹고 있는데 앞에 앉아 계시던 어느 선생님이 안 받은 사람이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덕분에 괜히 나온 사람으로 오해받는 신세는 면했는데 사진이라도 찍으려고 기다리고 있던 객석의 아내는 셔터 찬스를 놓치고 말았단다.

 

 

 

동구 산복마을 이바구길

 

  부산광역시 동구청에서 네 대의 버스를 제공해서 야간 답사길에 올랐다. 야간 답사는 쉽지 않은 아이템인데 부산지리연구회에서 독특한 답사를 기획한 것이다. 급사면에 가옥이 들어선 부산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는 지역이 바로 동구지역이다. 부산항에 야간에 입항한 외국인들이 산비탈의 달동네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보고 한국에 고층빌딩이 많음을 보고 놀랐다는 얘기는 어렸을 적부터 많이 들었던 얘기다. 부산항에 면한 수정동, 초량동, 범일동 일대를 포괄하는 동구가 바로 그곳으로 부산을 대표하는 사면 마을들이 입지하고 있는 곳이다. 옛날에 ‘부산 고층빌딩’으로 오해를 받았던 바로 그 지역인 것이다. 산비탈에 오래된 건물들이 많아 점차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부산에서 대표적인 인구 이출 지역이기도 하다.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은 상당수가 예전부터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연령대가 높다고 한다. 새롭게 주거지를 마련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들이 이곳을 새로운 삶터로 선택할 가능성은 크지 않으므로 결국 인구의 자연감소 만으로도 점차 인구가 감소할 수밖에 없는 인구 구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구청장이 직접 나와서 내내 답사를 함께 하고 안내를 하는 특이한 일정이다. 지방자치 시대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겠다. 부산광역시 동구는 지역의 특징을 ‘산복마을’이라는 용어로 정의하고 이를 상품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산복(山腹)이라는 용어는 지리학적으로 본다면 사실 많이 쓰이는 용어는 아니다. ‘산의 중간’ 쯤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 말은 내가 알기로는 일본어이다. 순 우리말로 ‘산허리’라는 말은 써도 ‘산배’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산허리’ 또는 ‘산기슭’이 되어야 하고 흔히 쓰는 지리학 용어는 ‘산록(山麓)’이다.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아마도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산록이라고 하면 높은 산의 언저리를 말하고 대체로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 떠오르므로 이곳의 이미지를 표현하기에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비탈 마을’, ‘기슭 마을’ 같은 이름은 어떨까?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내려오면서 발달하기 시작한 마을이므로 그와 관련된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커피숍, 게스트하우스, 전시관 등 다양한 시설들이 비탈길 곳곳이 마련되어 있다. 지리를 전혀 모르는데다 한밤중이라서 도무지 위치감이 잡히지는 않지만 재미있는 경험이다. 아마도 동네사람들은 한밤중에 몰려다니는 우리가 더 큰 구경거리가 아닐까 싶다.

  남해에서 작용한 횡압력은 경동성 요곡운동을 일으켰고 그 결과가 해안을 따라 발달한 산지로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바다와 인접한 산지의 경사가 매우 급한 것이 부산의 전반적인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당연히 서해안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큰길까지 모두 꼬부랑길이고 골목길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시내버스가 들어오고 택시가 오가는 사람 사는 곳이기는 여늬 평지와 마찬가지이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주차장이다. 평지가 없는 곳에서는 주차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어렵다. 궁하면 통하고, 필요하면 발명하는 법이다. 길옆으로 제법 넓은 주차장이 곳곳에 있는데 이건 모두 길 아래편에 있는 집의 옥상이다. 그러니까 집의 옥상의 길의 높이에 맞춰서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길의 높은 쪽에 있는 집들은 주차장을 만들기가 상당히 어렵다. 어떤 집은 1층을 주차장으로 만들어 활용하는데 공간이 작아서 차의 보닛 부분이 길 밖으로 많이 튀어나온 곳도 있다.

 

<한밤중 답사는 드문 경험이었다>

 

<비탈에서 바라본 부산시 야경. 길 옆으로 주택의 지붕을 이용하여 만든 주차장이 재미있다>

 

<부산역 주변 풍경-사진 오른쪽 빌딩 사이에 다른 빌딩보다 약간 낮고 넓은 지붕이 부산역사이다>

 

<이런 이벤트들을 기획해서 관광기능을 강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추운 밤에도 식지않는 지리샘들의 답사 열기>

 

<멀리 보이는 부산항과 산복마을의 급경사도로. 항구에서 이곳을 바라보면 고층건물들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이 마을에 살면 다리가 튼튼해질 것 같다>

 

<도로높이의 옥상을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까꼬막'이라는 종합 체험시설에는 숙박시설까지 갖춰져 있다>

 

<시가지 야경-남서쪽 용두산 방향이다>

 

<주차공간이 좁아서 이렇게 주차를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늦게 출발했으므로 끝나는 시간도 예정보다 훨씬 늦은 시간이다. 열한시가 거의 다 된 시간에 충지연팀들끼리 한잔 하러 길을 나섰다.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은 후 피곤하다는 아내를 떼어놓고 후배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나까지 모두 여덟 명인데 젊은 선생님들이 많이 와서 기분이 좋다. 가리비 조가비 탑이 있는 동삼동 언덕바지 술집에서 가볍게 한 잔 나누고 내일을 위해 아쉬운 작별을 한다. 숙소로 들어가는 후배들은 또 안주와 술을 한보따리 사들고 들어가는데 이젠 술 욕심이 나지 않는다. 나이는 어쩔 수 없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