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삶과 지리

보편성(Catholic)과 정통성(Orthodox), 누가 정통파인가?

Geotopia 2014. 3. 30. 23:49

  이르쿠츠크의 러시아정교회 수도원인 즈나멘스키 수도원은 1762년에 세워진 시베리아 최초의 여성 수도원이다. 지붕에 각각 모양이 다른 첨탑이 있는 건물이 하나씩, 두 개가 있고 주변에 단층 건물들이 배치된 즈나멘스키수도원은 화려하거나 웅장한 느낌보다는 단아하고 소박한 느낌이 드는 수도원이다. 로마가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의 가시적인 차이점은 성상이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이다. 물론 두 교회가 갈라진 원인은 성상에 대한 견해 차이와는 큰 관련이 없다.

 

<즈나멘스키수도원 전경>

 

<수도원 안에 우리나라 차가 있어서 반갑다>

 

 

 

보편성(Catholic)과 정통성(Orthodox), 누가 정통파인가?

 

<수도원 내부에서는 한창 벽화를 수리하는중이다. 2차원의 성상을 볼 수 있다>

 

성상파괴 논쟁은 상당히 오랫동안 찬반 의견이 밀고 당기며 진행되었다. 성상파괴 운동은 레오3(재위 717~741)와 콘스탄티누스5(재위741~775) 때 절정에 달했다. 강력한 비잔틴제국의 초석을 세운 레오3세는 성상숭배를 우상숭배를 금했던 기독교 사상에 위배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강력하게 성상파괴 정책을 지속하였다. 그런데 성상파괴 정책은 콘스탄티누스5세가 죽은 뒤인 787년 여황제 이레네가 니케아에서 소집한 제7차 에큐메니컬 공의회에서 철회되었다. 그러나 814년 레오5세가 즉위한 이듬 해 부터 다시 성상 사용이 금지되었다. 두 번째로 성상파괴론자들이 권력을 잡았던 이 기간은 842년 황제 테오필루스가 사망하면서 끝이 났다. 그리고 843년 그의 미망인은 성상숭배를 다시 회복시켰다. 이후로 성상 숭배는 지속되고 있으며 동방정교회는 지금도 이 사건을 정교회의 축일로 기념한다. 결국 성상파괴운동은 로마가톨릭과 동방정교회가 분리되는 데 영향을 미친 하나의 원인이었던 것은 맞지만 로마가톨릭과 동방정교회를 구분하는 결정적인 차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가톨릭교회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형태와 기법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고 재래의 방법으로 그린 2차원적 벽화(Icon)만 허용이 된다. 예를 들면 그림을 그리는 순서도 천지창조의 순서에 따르기 때문에 배경을 먼저 그리고 그 위에 삼위일체 하느님이나 성인을 형상화 한다. 그러므로 로마가톨릭과 구별되는 측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어쨌든 즈나멘스키사원 안에 있는 대규모의 벽화는 바로 동방정교회 특유의 성상(Icon)으로 그 자리에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수도원 내부 모습. 한 여성 화가가 천정 벽화를 보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방정교회와 로마가톨릭의 분리는 언제,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동방정교회와 로마가톨릭이 분리된 시기를 케룰라리오스사건이 일어난 1054으로 보는 견해가 많은데 그 때는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들이 성상숭배를 선언한 843년이 훨씬 지난 후의 일이다. , 성상파괴가 둘의 분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또한 실질적으로 분할된 것은 1054년이 아니라 십자군 전쟁 이후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케룰라리오스 사건(로마교황 레오 9세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미카일 케룰라리오스가 서로 파문한 사건) 이후로도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은 계속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분열의 계기가 된 것은 십자군 원정 때로 원정군이 정교회 신도를 살해하고 예루살렘 총대주교를 추방했을 뿐만 아니라 로마식의 교회를 세웠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계기는 제4차 십자군 원정(1204)으로 원정군이 정교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콘스탄티노플을 장악하고 이전에 저질렀던 정교회 탄압 행위를 자행함으로써 정교회 교도들의 반 로마가톨릭 감정을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동·서 교회의 결별이 본격화 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동방정교회가 정통(Orthodox)교회임을 자임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조직이든 자신을 정통파라 주장하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동방정교회라는 이름은 로마가톨릭에 반대하여 동방정교가 분리되어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통파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12제자인 사도들이 활동했던 곳으로서 사도의 권위가 안수로 이어져 내려온(사도전승) 교회는 예루살렘, 안티오키아(지금의 터키 안타카야 Antakya),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 이스탄불 Istanbul), 알렉산드리아 등 4곳에 있었고 그곳에 총대주교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로마제국이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한 서기 324년 이후에는 로마에 총대주교구가 하나 더 설치되었다. 그런데 현재 이 다섯 총대주교구 가운데 로마를 제외한 네 개를 정교회에서 사도전승의 근거로 선언하고 있다. 또한 로마는 사도들이 직접 활동하고 교회를 세운 곳이 아니고 단지 베드로와 바울의 무덤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정교회(Orthodox)’라는 이름은 나름대로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로마가톨릭이 라틴족의 식민지 침략과 더불어 전 세계로 확산된 것에 비해 정교회를 신봉하는 슬라브족은 식민지 침략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에 와서는 분포범위가 상대적으로 적어짐으로써 생긴 오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여성 수도원이라서 그런지 남자 화장실(오른쪽)은 표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