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삶과 지리

왜 지리를 공부하는 것일까?

Geotopia 2013. 6. 26. 17:23

왜 지리를 공부하는 것일까?

 

  나는 버스를 타게 되면 언제나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애를 쓴다. 앞자리는 시야가 넓고 양쪽을 모두 볼 수 있지만 앞자리 이외의 자리는 휙휙 지나가는 장면을 순간적으로 볼 수밖에 없고 그나마 한쪽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직접 운전을 하면서 여행을 하는 경우에는 운전 중에 자꾸 한 눈을 팔게 된다. 덕분에 옆자리에 앉은 아내에게 불안감과 함께 꽤 많은 지청구를 듣곤 한다. 그렇지만 가끔씩은 칭찬(?)을 듣기도 한다. 지리적 사실에 대하여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는 것이다. 지리를 공부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일상생활 속에서의 이점이라면 이점인 셈이다. 그렇다면 지리를 공부함으로써 얻는 이점은 아내의 칭찬을 듣는 정도에 불과한 것일까?

 

<앞 자리의 매력>

 

‘사랑하면 보이나니 보이는 것이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고 못 보던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사랑하는 것’은 ‘아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것은 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땅을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는 만큼 그 땅에서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아는 만큼 본다.’는 말처럼 사랑함으로써 많은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이 자산이 되어 점점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국토애, 또는 민족애라는 것은 결국 아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하여 잘 안다는 것과 통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지리를 공부한다는 것은 땅을 사랑하는 첫 출발이다. 국토애는 국토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지리를 공부함으로써 첫 번째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국토에 대한 사랑, 나아가서는 민족에 대한 사랑을 느끼고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이웨이'와 '왕의 남자'

 

  지난 2005년 우리나라 영화계에는 재미있는 사건이 있었다. 역대 한국 영화 관객 동원 수 3위의 대기록을 가지고 있는 ‘왕의 남자’가 그 주인공이다. 저예산 영화로 제작비가 50억원이 채 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톱스타가 주연한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려 1,230만 명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당시 사회적 쟁점이었던 스크린쿼터 축소라는 영화계의 충격파가 약간은 영향을 미쳤음직도 하지만 ‘왕의 남자’의 흥행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지난 2011년에는 국내 영화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300억)를 들였고, 내로라하는, 그것도 한․중․일의 톱스타들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마이웨이’가 243만 명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로 참패를 당한 일이 있었다. 여러 가지 분석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헐리우드식의 블록버스터로는 결코 헐리우드 영화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1975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 ‘죠스’가 처음으로 수익 1억달러라는 ‘마의 장벽(block)'을 ‘깨뜨렸다(burst)'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블록버스터는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이 사용했던 폭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후 엄청난 제작비를 들이고 그만큼 수익을 거둬들이는 영화제작 관행이 헐리우드에 자리를 잡았고 지금은 1억달러 이상의 제작비를 들이는 영화가 일반화되었다.

  국내 사상 최대의 제작비를 들였다는 ‘마이웨이’의 제작비가 300억원인데, 헐리우드 역사상 최대의 제작비가 투여된 ‘캐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은 3,760억으로 그 열 배가 넘는다. 이와 같은 엄청난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영화 ‘마이웨이’가 많은 볼거리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볼거리에 관한 한 헐리우드 영화를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왕의 남자’에는 헐리우드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요소, 즉 우리민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여기에 바탕을 둔 정서적 공감대의 요소가 깔려있고 게다가 당시의 우리나라 정치상황과도 연결이 가능한 코드를 내장하고 있었다. 역대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을 가지고 있는 ‘괴물’(2006년, 1301만, 제작비 110억) 역시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제작비는 ‘왕의 남자’에 비해 훨씬(?) 많이 들였지만 헐리우드에 비하면 푼돈에 가깝다. 이 영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매우 한국적인 소재(한강, 미군의 오염물질 방류, 서민 가족의 가족애, 공권력에 대한 불신 등)를 다뤘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쌀 시장이 개방되었고 내년에는 의무적으로 쌀을 수입해야만 한다. 스크린쿼터 축소로 상징되는 영화시장 개방은 이미 한 고비를 넘었다. 교육개방, 병원 개방 등이 줄줄이 뒤를 이었다. 강대국, 특히 미국 중심으로 세계질서가 재편되는 세계화로 인한 결과들이다. 대비책을 세우지 않고 무조건 개방을 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세계화 시대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특성을 잘 살리는 것이다. ‘왕의 남자’처럼.

  우리의 특성을 잘 안다는 것, 그것은 상대방에 대해 잘 아는 것과 통하는 것이며 우리와 상대방을 잘 아는 것이 바로 지리이다. 얼핏 지역의 특성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는 세계화 시대는 역설적으로 지역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더 깊은 이해를 요구하고 있다. 지리는 세계화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효과적인 도구이다.

 

개발로부터 소외된 덕분에 가능해 진 '은어축제'

 

  이와 같은 원리는 국가와 국가간에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고 한 국가 내의 여러 지역간에도 성립을 한다. 전에 경상북도 동해안에서 영주쪽으로 이동하는 중에 봉화읍을 지나가게 된 적이 있었다. 원래는 그냥 지나치려고 했던 곳인데 읍내쪽에 여러 개의 애드벌룬이 높이 떠있어서 잠깐 들어가 보았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하천 주변에 여러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봉화 은어축제'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그 때가 한여름이었는데 하천에 은어를 풀어 놓고 잡는 '은어잡이 체험' 프로그램이 한창 진행중이었다. 하천 양쪽에는 놀이 시설과 장터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 가운데 인기 코너는 단연 은어요리를 파는 곳이었다. 길 뚫고, 공장 세우는 전형적인 '개발'이 가장 큰 이슈였던 시기에 이 지역은 개발로부터 소외되었던 대표적인 지역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덕택에 시내 한가운데를 흐르는 물에서 은어를 잡을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것이 다른 지역에서는 흉내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지역축제의 기반이 되었다.

 

<봉화은어축제>

 

  지방자치가 점차 확립되어 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더욱 지역의 특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각 자치단체별로 한 해에 몇 개씩의 축제가 일반화되었고 근래에는 읍·면 단위에서도 지역축제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역축제는 모두 지역의 특성을 소재로 한 것, 즉 지리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들이다. 비단 지역축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특성에 대한 이해는 여러 가지 지역개발에 있어서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지금은 국가단위의 획일적인 개발이 실효성 면에서나 형평성 면에서 그 의미가 축소되면서 지역과 주민의 요구를 바탕으로 한 지역개발이 일반화 되고 있다. 지역의 특성에 맞는 개발은 지역간의 격차를 줄이고 주민의 요구를 잘 반영하며, 나아가 환경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지리는 지역화, 지방화 시대에 지역의 특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지역간의 격차를 줄여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공헌 할 수 있다.

 

환경을 이용할수록 환경에 유리한 농사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벼농사를 해 왔다. 삼한시대에 축조된 저수지를 통하여 아주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 벼농사가 이루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열대성 작물인 벼는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어느 곡물보다도 많아 인구 부양력이 매우 높은 작물이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하면서 벼는 우리의 생활에 엄청난 공헌을 해 왔다. 그러나 벼의 공헌은 식생활을 풍부히 해준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여름철 강수 집중도가 매우 높아서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정도이다. 해마다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물난리를 겪지만 현대적 기술로도 여전히 완벽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강수 특성이 특이하다는 방증이다. 오늘날이 이 정도라면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더욱 피해가 심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이 여러 방면으로 연구되고 실행되었다. 강수량을 측정하고 마을과 가옥의 위치를 홍수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선정하였으며 배수시설을 정비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러한 환경적 제약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한 것이 바로 벼농사이다. 단순히 대응을 한 정도를 넘어 환경적 악조건을 능동적으로 이용하여 도리어 장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벼농사이다.

  벼는 열대성 작물이어서 고온다우한 환경을 좋아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한서(寒暑)의 차이가 커서 겨울이 몹시 춥고 길기 때문에 평균 기온이 낮다. 하지만 벼의 생육기간에 해당하는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150일 정도는 높은 온도가 유지된다. 특히 벼는 모내기가 끝난 후 빠르게 성장하며 새끼치기를 하기 때문에 많은 물을 필요로 한다. 이 시기가 우리나라의 장마철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벼의 성장에 유리하다. 즉, 강수와 기온의 계절차가 매우 크지만 그 정점이 벼의 성장기와 일치하기 때문에 벼농사가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벼의 북한계 지역에 해당하지만 생산량은 열대의 어느 나라와 견주어 보아도 결코 적지 않다.

  이처럼 기후적 특징을 벼의 생육조건에 맞게 활용해온 것과 아울러 우리 민족은 지형적 조건도 벼농사에 맞도록 잘 활용하였다. 과거에는 주로 하천 상류지역이 벼농사의 중심이었지만 수리관개 시설이 발달하면서 점차 중·하류의 하천 주변으로 농경지가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의 하천 주변에 넓게 발달한 범람원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나라의 하천 주변에는 상류에서 하류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논이 발달하고 있다. 이처럼 전국적으로 하천을 따라 발달하고 있는 논은 강수가 집중하는 시기에 하천으로 직접

  유입하는 물을 1차적으로 저장하는 저수지의 역할을 하기에 적당하다. 논의 위치나 벼의 생육조건으로 볼 때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경의 충격을 완화시키는 완충지대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환경을 이용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생태계의 최종소비자로 군림하면서 환경을 인간의 욕구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 생태계의 일부로 인간을 인식하고 환경과 인간이 공존하는 길을 찾아 가는 것도 환경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환경에 대한 이해, 이것이 바로 지리이며 이것이 지리를 공부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우리나라의 산천 어디를 가도 논을 볼 수 있다>

 

통일을 위한 준비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에 어떤 동자승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식민지 시대 당시, 우리 땅에 조선인과 일본인이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가 태어났을 때 우리 땅은 이미 식민지였기 때문에 식민지화 과정을 전혀 모르는 그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인식이라는 사실을 소설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날 통일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분단 조국에서 태어난 세대들은 분단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그거 꼭 해야 되는가?’, 심지어는 ‘안하는 것이 낫다’고 하기까지 한다. 독일 통일과정에서 겪었던 혼란을 그 이유로 들기도 한다. 하지만 5천년 기나긴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분단으로 고통을 당한 시기는 고작 50여년 정도이다. 그 50년 속에서 우리는 태어났고 그것을 정당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몰 역사적이고 단편적인 판단인가?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다만 통일은 꼭 필요하고, 대세이며, 실제로 우리 눈앞에 상당히 가까이 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런데 그것이 ‘갑자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독일이 통일 이후에 적지 않은 혼란을 겪은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 ‘갑자기’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6.15 남북 공동선언을 정점으로 남북간의 경제교류가 활발히 전개되고, 육로를 이용한 금강산 관광과 끊어진 철도 잇기, 개성공단 건설과 이곳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국제 경기대회 공동 입장과 공동 응원 등등 남북간의 거리 좁히기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후 급랭한 남북관계는 이 모든 성과를 단지 5년 만에 물거품으로 만들었고 2013년 현재 개성공단 철수라는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통일은 우리민족의 번영을 위해서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업임은 부인할 사람은 없다.

  서로를 아는 정도가 커질수록 하나가 되었을 때 겪는 혼란과 충격이 적어진다. 지역간의 이해가 지역갈등과 지역차를 해소하는 첫걸음인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남한과 북한도 통일을 전제로 할 때 한반도 내의 하나의 지역이다. 따라서 남한과 북한 서로에 대한 이해는 통일을 위한 첫 걸음이 되어야 하며 지리는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학문이다.



왜 지리를 공부하는가.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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