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삶과 지리

"장구때미 뭇치겄네!"-세계화의 빛과 그림자

Geotopia 2013. 6. 24. 12:17

▶ 허무하게 무너진 기대-장구때미 뭇치겄네!

 

  대학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친구 아버님 환갑잔치에 간 적이 있었다. 그 나이에는 대부분 그랬겠지만 껀 수 만난 건달패와 다를 바 없는 우리들은 개떼처럼 친구 집으로 몰려가서는 주변머리가 없어 잔치에 별 도움도 못주고 술만 축내고 있었다. 그 친구는 형제가 많아서 손님들이 아주 많았다. 동네 사람들뿐만 아니라 형제, 자매들의 손님들이 꽤 많았는데, 막내아들인 친구의 손님들이란 다 나 같은 공짜 술을 탐하는(?) 축들이었다. 국수 좀 나르는 척하다가 마당 한켠에 앉아 동동주 잔을 기울이다 보니 동네 할아버지들이 마당에서 흥겨운 풍물을 치기 시작하였다. 마침 나는 한창 풍물 가락에 빠져있던 중이어서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할아버지들 나누는 말씀 중에 오가는 장단의 이름이 생전 처음 듣는 것들이었다. ‘한짐마치’, ‘두짐마치’, ‘세짐마치’, 단 세 장단만 돌려가며 연주를 하는데, 내 얄팍한 상식으로는 들어보지 못한 장단일 뿐만 아니라 따라하기도 아주 어려웠다. 내가 배운 것 중에 ‘세마치’라는 것이 있었지만 그것과는 아주 판이하게 달랐고, ‘일채’, ‘이채’, ‘삼채’하고도 물론 달랐다. 그래도 귀 기울여 들으면 장단을 좀 따라할 수 있으려니 하고 열심히 들어봤지만 그 장단이 머리 속에 그려지질 않았다. 마침 친구가 오더니 나보고 같이 한번 쳐 보란다. 조금 배웠으니 실력을 보여 달라는 말이었는데 자신이 없었지만 술김에 한번 덤벼보기로 하였다. 마침 장구 하나가 옆에 놓여 있기에 들고 끼어들었다. 좀 틀린다고 하더라도 살살치면 잘 드러나지 않을거라는 편한 생각도 있었다. 한참을 괴발쇠발 따라서 해보았지만 물론 내 자신조차도 신통칠 않았다. 그래도 혹시 아는가 ‘젊은 사람이 열심히 한다’고 할아버지들께 칭찬이라도 들을지…

 

  내 가당찮은 기대는 잠시 후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갑자기 상쇠할아버지가 꽹과리를 팽개치더니 ‘장구 때미 못 치겄네’ 하시면서 술판으로 가버리시는 것이 아닌가? 그 무안함과 미안함이란…

 

  어설프게나마 내가 배운 장단은 당시 대학 문화패들 사이에 퍼져나가던 것으로 전라 좌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별다른 이론적 배경이 없었으므로 풍물의 지역성에 대하여 거의 무지했었다. 김덕수패가 등장하여 ‘사물놀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풍물장단이 부각되기 시작하고 있었고 대체로 그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지금이나 그 때나 비슷한 상황이었다. 2/4, 3/4, 4/4 등 서양의 박자 관념에 세뇌되어 있던 우리로서는 풍물이라는 새로운(?) 장단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겨우 장단을 익힌 수준이었던 나는 당연히 기존에 배운 얕은 기능을 중심으로 새로운 것을 끌어다 맞추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니 상쇠 할아버지가 보기에 내 장단이 얼마나 어설펐을까?

 

  거꾸로 보면 그 상쇠 할아버지는 자신이 낳고 자라온 자기 동네의 풍물 가락 외에는 다른 장단을 잘 몰랐을 것이다. 그렇지만 옛날에는 그것이 정상이었다. 마을마다 조금씩 다른 풍물 가락이 오랫동안 독자적으로 유지되어왔으므로 다른 지역, 심지어는 바로 이웃동네와도 가락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사회 공동체가 마을 단위로 형성되어 있었으므로 공동체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였던 풍물장단이 마을별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매우 당연한 것이었다.

 

▶ 풍물 대중화의 기수 김덕수패, 동네 할아버지의 가락을 잊게하다

 

  전라좌도를 중심으로 풍물 장단이 통일된 것은 잊혀져가던 풍물의 대중화에 큰 공헌을 하였다. 198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우리문화에 대한 관심은 점점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켜서 마침내 고 박동진명창의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에 이르게 되면서 사회적으로 그 위치가 매우 높아졌다. 각급 학교의 특별활동반이나 단체행사에서 필수적인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고 수많은 연수프로그램과 강습소들이 양산되었다. 풍물 한가락 정도는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이젠 주변에 흔히 있다. 아주 먼 옛날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아주 당연한 것이지만 식민지시대 이후 1970년대까지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변화이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문화가 불과 몇 십 년 만에 뒷전으로 밀렸다가 불과 20여년 사이에 화려한 부활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화려한 부활을 위해 우리는 마을 단위로 다양했던 수많은 가락들을 잃어버리는 큰 손실을 댓가로 치러야만 했다. 정형화된 좌도가락을 얼마나 화려하게, 다양한 변형가락으로, 높은 기교를 부려서 연주하느냐가 풍물의 수준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충청도 웃다리 풍물 정도의 지역성을 인정하는 가락이 연주되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마을 단위의 다양성을 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정형화되어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규격화, 통일화는 다양성을 소멸시키는 폐해와 함께 그것을 주도하는 것이 마을 단위의 독특한 장단이 아니라 이미 큰 세력을 확보하고 있는 장단 중심으로 모든 다양한 가락들이 재편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아까 얘기로 되돌아가서 내 친구 동네의 상쇠 할아버지는 ‘한짐마치’, ‘두짐마치’, ‘세짐마치’ 장단으로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세계 제1의 꽹과리 연주자이다. 동네 사람 외에는 아무도 그 장단을 모르니 그 동네 최고의 상쇠인 할아버지가 전 세계 최고인 것은 당연한 것이다. 어떤 좌도가락의 고수도 할아버지의 동네 가락은 쉽게 따라잡을 수 없다. 하지만 좌도가락의 기준으로 본다면 아주 형편없는 연주자이다. 아마도 그 할아버지가 알고 있는 장단으로 우리나라 풍물장단이 통일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어서 빨리 동네 장단을 버리고 좌도가락을 배우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아무리 열심히 연습한다 한들 어찌 김덕수패를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전체에 적용되는 보편성과 지역별 차별성을 강조하는 특수성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성립되어야 맞는 것일까? 좀 더 범위를 확대해 본다면 세계적으로 기준과 규격이 통일되어가는 세계화(globalization) 현상과 국가 및 지역의 특색을 강조하는 지방화(localization)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세계화란 지구가 한 마을처럼(global village) 되는 것이다. 내 어릴적을 생각해 보면 한 마을 안에서는 눈짓 하나로 풍물가락이 조화롭게 연주되었고, 온 동네 사람들은 물론 동네사람의 가까운 친척, 심지어는 돌아가신 조상의 제삿날까지 대략 공유하고 있었다. 낯선 사람이 동네를 찾아오면 그게 누구네 친척인지를 어른들은 금방 알아 채셨다. 그만큼 서로간의 의사소통이 많고 왕래가 많았던 것이다. 즉, 세계화란 교통·통신의 발달을 전제로 규격이 통일되고 한 가지 기준이 지구 전체에 통일적으로 적용되어 국가와 민족의 개념이 해체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요구로 우리나라 자동차의 전조등 조도가 높아졌던 것이나 근래에 번호판 부착 방식을 자국의 자동차 기준에 맞춰 바꿔줄 것을 우리나라에 요구했던 것 등이 세계화의 대표적 사례이다. ‘세계화’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여 다른 나라에서도 받아들여지는 수준에 이르는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와는 차원이 매우 다르다. 우리나라의 이봉주선수는 국제적인 마라토너이며 우리나라의 반도체나 휴대폰, 시디롬 등의 수준 역시 국제적이다. ‘국제화’의 개념은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파괴하지는 않는다. 한 때 우리의 김영삼대통령이 ‘세계화’와 ‘국제화’를 혼동하여 ‘세계화’를 부르짖었던 해프닝도 있었지만 강대국 중심의 규격통일이 당연시되는 세계화는 우리에게 있어 앞장서 부르짖을 만한 것은 분명 아니다. 선진 7개국(G7) 회의가 개최되면 의례히 대회장 앞에서 NGO들의 반세계화 시위가 일어나곤 하는 것이 그런 이유이다.

 

  세계화는 어쩌면 대세일지도 모른다. 수출중심의 우리나라 경제구조에서 선진국이 정해놓은 기준을 잘 따라가서 성공만 한다면 유리한 점도 없지 않을 수 있다. 미국 규격에 맞춘 우리나라 자동차가 미국에 잘만 팔려나간다면 해로울 것이 없지 않을까? 하지만 미국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추다 보면 언제까지나 그들이 정해놓은 기준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세계화의 논리 속에는 앞서가면서 주도권을 계속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강대국의 논리가 숨어있는 것이다.

 

  한편, 통일성, 보편성을 강조하는 세계화는 거꾸로 지역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지방화의 필요성을 더욱 증대 시켰다. 특히 경제적 측면과는 달리 문화적 측면은 보편성으로 평가하기가 매우 어려운 측면이며 통일적인 표준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도도한 세계화의 물결속에서도 독특성을 나름대로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문화'이다. 바야흐로 '문화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 가운데 하나가 경복궁인 것을 보면 규모나 화려함 같은 일반화된 가치보다는 특정 지역만이 갖고 있는 독특성에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금성을 보고 온 어떤 사람은 ‘우리나라 경복궁은 왕궁도 아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경복궁은 경복궁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길은 우리만의 문화적 독특성을 찾아가고,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소중히 여기고 아끼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우리를 소중하게 여겨주겠는가?

 

<경복궁 근정전>